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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예술, 무예]정신의 무예, 국궁 연마하는 이선중 씨 시위를 놓기 전에 自己를 놓아라
가늘게 모은 눈매와 일자로 다문 입술. 반평생 넘게 국궁을 연마해온 이선중 씨는 표정뿐 아니라 전신에도 미동이 없다. 몸은 물론 마음 역시 동하지 않았다. 결과에 집착하는 마음을 이미 놓았기 때문이다. 화살이 꼬리를 감추며 허공을 날면 그것으로 끝. 과녁을 맞추지 못한 것은 바람도 활의 탓도 아니다. 그는 오직 자신을 돌이켜 살핀다.

사직공원 근처의 활터 황학정에서 국궁 수련 중인 이선중 씨.

서울 종로의 북적대는 대로변에서 빠져나와 골목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활터 ‘황학정’이 나온다. 1899년 고종이 경희궁 안에 세웠다가 일제 치하에 사직공원 인근으로 옮겨온 활터로, 서울 도심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커다란 수목이 우거진 유서 깊은 곳이다.
47년째 활을 쏘는 전 법무부장관 이선중 씨(현직 변호사)는 일주일에 4~5번 황학정을 찾는 최고참 회원이다. 여든다섯의 그는 반평생 넘게 국궁에 매진했다. 오후 3시 무렵, 그가 당긴 활이 ‘휘익’ 난다. ‘쏜살같이’ 달리는 활은 자취를 쫓기도 어렵다. 과녁에 명중하는 소리가 ‘딱!’ 하고 울린다. 이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활의 방향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본업은 법 공부였고, 활쏘기는 그저 틈틈이 해왔을 뿐이오”라고 말하지만, 그가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보면 이는 겸양임을 알 수 있다. 잠잠한 얼굴은 활에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발사할 때까지 흔들림이 없다. 활을 한 번이라도 당겨본 사람이라면, 이 과정이 흐르는 동안 번민이 수차례 갈마드는 것을 알 테고, 이를 초월해 초연한 자세로 활을 당기기란 어려운 경지라는 사실도 알 것이다. 지름길은 없다. 그 역시 지난한 수련 과정을 거쳤다.

1961년 광주고검에 차장으로 재직할 때부터 사람들과 교우하기 위해서 국궁을 시작한 그는 하루에 15순(1순은 5발) 정도 쏘았다. 이듬해 전국체전에 도전, 3등에 입상해 귀한 미싱을 부상으로 받았다. 최고 기록은 30발 30중. 1960년대 어느 날 황학정에서 세운 기록이다. “그땐 잘 쏘았어. 근데 나이 드니 도리 없소. 단지 내 건강과 삶의 자세를 위해 하는 것이지. 그때도 지금도 내게 대회와 기록은 중요하지 않소.” 장수의 비결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는 10년 동안 감기 몸살을 앓거나 설사 한 번 하지 않았다.
언뜻 보아서는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팔만 놀리니, 그리 큰 운동이 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활을 놓는 순간 미동하지 않으려면 모든 근육을 써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팽팽하게 긴장해야 하므로 기가 막힌 전신운동이 된다. 활시위를 당기는 동안에는 복식호흡을 해야 하며, 활을 놓은 뒤에도 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활쏘기의 기본자세는 ‘가슴의 힘을 빼고 배에 힘을 줘야 하며, 쏘기 전에는 태산과 같이 움직임이 없어야 하면서, 쏜 뒤에는 호랑이가 꼬리를 내리듯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고 했네.” 이와 같이 활을 쏘면 심장이 튼튼해지면서 모든 장기가 좋아지는데, 특히 소화기관이 건강해진다. 여성의 경우 괄약근을 조여 요실금이 완화된다. 국궁의 뿌리는 한국 고대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동이족東夷族, 그러니까 동쪽의 오랑캐라 불렀다오. 오랑캐 이夷 자는 ‘大’와 ‘弓’ 자를 합한 글자로 큰 활을 뜻하는데, 우리 민족이 큰 활을 잘 다루었기 때문이지.

1 우리 전통 활인 각궁은 물소 뿔, 소 힘줄, 뽕나무, 민어 부레 등을 이용해 단단하고 탄성이 강하게 제작했다. 요즘 국궁을 처음 배우는 이들은 각궁 대신 개량궁으로 훈련을 시작하며, 대나무 화살 대신 개량 화살을 쓴다. 
2 국궁은 145m 떨어진 곳에 과녁이 있다. 양궁은 최대 90m 정도, 일본 활은 60~70m 정도 나가는 것에 비해 국궁은 장거리에 월등하게 강한 활이다. 
3 초보자는 활을 끝까지 당기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활의 탄성이 강하다. 그래서 엄지손가락에 반드시 ‘깍지’라는 도구를 껴서 손을 보호한다.


고구려 시조 주몽과 조선 태조 이성계도 명사수射手였소.” 국궁은 우리의 호국 무예였다.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제일 선두에서 기치를 발휘한 무예도 바로 궁술이었다. 중국이나 일본 활보다 멀리 나가고 파괴력도 높았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제작한 활이라도 사수가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활을 쏘는 이의 자세는 크게 두 가지오. 우선 근면성실해야지. 이건 기본이고, 또 하나 가슴에 새길 말이 있소. ‘발이부중發而不中 반구제기反求諸己’. <맹자> <중용> 등에 나오는 말인데, ‘쏜 화살이 정곡을 맞추지 못하거든 나를 돌이켜 살펴 그 원인을 구하라’는 뜻이지요. 활과 화살을 탓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바람이 불어서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다’라는 말조차 핑계라오. 바람이 불면 바람을 읽고 쏘았어야지.” 모든 세상사의 원인과 결과를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 찾으라는 말씀을 이선중 씨는 활을 쏘면서 배웠다.
무도武道에서 이르길 상대를 이기려면 먼저 자신을 이기라 한다. 국궁은 스스로를 살펴 바르게 하고, 이윽고 활을 당길 때는 그러한 자신도 사라진다. 무아의 경지에 활이 날아간다. 시위를 놓기 전에 먼저 나를 놓아야 화살이 과녁을 찾아간다. 

국궁을 배우려면 국궁은 남녀노소 누구나 하기 좋은 무예다. 황학정(02-738-5784)의 경우 회원이 20~80대까지 다양하며 그 중 여성은 1/5 정도 된다. 황학정의 신동술 사범은 “국궁은 자신의 근력과 체형에 맞게 할 수 있으며, 한번 익히고 나면 혼자 수련할 수 있어서 좋은 운동”이라고 말한다. 국궁을 처음 배우려면 반드시 정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매일 훈련하면 두 달, 일주일에 서너 번 훈련하면 서너 달 걸린다. 황학정 외에 전국에는 3백20여 개의 활터가 있다. 각 국궁장은 회비와 가입비가 각기 다르다. 디지털 국궁신문(www.archerynews.com) 웹사이트에 접속해 ‘전국 활터’ 란을 클릭하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가까운 활터를 찾을 수 있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