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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제안하는 2008 여름 가족 여행] 선비들에게 배우는 여름 나기 風流旅行
옛 어른들은 무더위를 피해 잠시 세상사와 인연을 끊고 산수 탐방하는 것을 피서의 으뜸으로 꼽았다. 산천이 가장 좋은 벗이자 훌륭한 의원이라고 생각한 옛 선비들의 산수기를 찬찬히 읽으면 오늘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여름 여행의 풍류를 발견하게 된다. 옛 어른들에게 배우는 품격 높은 여름 여행.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
“세상을 피해 누정에 오르니 누런 학이 멀리 날고
몸을 기울여 물가에 누우니 백구白鷗가 가벼이 나는구나.
오가는 세월 속에 희황제의 뜻을 남기는 듯하니
양보산 시를 읊으며 기인과 은사가 되려 함이네.” (조선 선비 송남수의 <유거육영> 중)


음력 6월 보름 유두(동류두목욕의 준말)에 선비들은 계곡이나 물가에 있는 정자를 찾아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며 운치 있는 하루를 보냈다. 유두연은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곳인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술・고기・떡 등 음식을 장만해 물가의 정자 옆에서 먹는데, 이는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기 위한 소망이 담긴 의식이다. 그렇게 심신을 정화한 뒤 작은 정자 안에서 벗과 함께 펼치는 바둑판에는 천하의 지략이 넘실거렸다.

호남의 정자 밀집 지역이 담양이라면 영남의 대표적인 정자 밀집 지역은 함양이다. 호남의 정자가 대개 언덕 위에 지어 조망권을 중시했다면 영남의 정자는 물과 가까이 붙어 있어 소리를 중시했다. 그래서 함양의 정자는 모두 물과 주춧돌이 서로 닿을 만큼 물과 가깝다. 화림동 계곡(지리산과 덕유산이 맞닿은)엔 농월정, 동호정, 거연정 같은 정자가 남아 있다. 또 이 주변에는 조선 성종 때 문인 정여창의 고택이 있는데 남도 지방 대표적 양반 고택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외에도 개평리 한옥 마을, 최치원이 조성했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숲 ‘상림’ 등의 볼거리가 있다.

* 함양 가는 길 서울-대전-금산-무주-함양, 서울-대구-거창-함양, 서울-대전-남원-함양
* 맛집 함양의 별미인 흑돼지 요리로 유명한 엄천원텃골 식당(055-963-9538), 남극 바다 차가운 물에서만 사는 ‘흑태’로 만든 흑태찜이 별미인 동원가든(055-963-4400)이 추천할 만하다.
* 문의 함양군청 문화관광과(055-960-5163).
* 사진의 장소는 함양의 화림동 계곡과 동호정. 가야금은 서울무형문화재 작품전시판매장에서 판매. 주병과 그릇은 정소영 식기장에서 판매.


산수유람山水遊覽
“무릇 유람이란 아취가 중요하다.
날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아름다운 데를 만나면 바로 멈추고,
지기지우를 이끌고 회심처(마음에 맞는 곳)를 찾아야 한다.
복잡하고 떠들썩거리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
어떤 이는 와서 ‘산중에서 음악을 들으니 어떻던가?’하고 묻는다.
나는 ‘나의 귀는 다만 물소리와 스님의 낙엽 밟는
소리만을 들었노라’고 대답했다.”(박제가의 <묘향산소기> 중)


선비들은 산천을 진실로 좋은 벗이자 훌륭한 의원으로 여겨 산수의 품격을 논하고 산수를 감상할 줄 아는 것을 으뜸의 멋으로 쳤다. 또 지기와 더불어 마음에 드는 산을 찾아 아취 있는 산행을 즐기기도 했다.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기생과 악공까지 데리고 호사스러운 유람을 떠나기도 했지만, 오늘날까지 ‘아취’ 있는 산행으로 추앙받는 건 박제가의 묘향산 기행이다.

하동은 화개장터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차를 처음 재배한 시배지始培地로 유명한데, 지리산 일대에 자주 끼는 운무가 일조량을 조절해주어 차나무가 자라는 데 아주 좋은 조건이다. 하동 쌍계사에서 출발해 지리산을 오르다 보면 ‘환학대’라는 널찍한 바위가 보인다(오른쪽 사진). 이 바위는 신라 말기 최치원 선생이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다닐 때 학을 불러 타는 장소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 하동 가는 길 여행의 참멋을 아는 이들은 고속도로보다 전주-남원-구례-하동으로 이어지는 국도로 이동하면서 남도의 멋을 즐기는 길을 추천한다. 남해군 미조에서 시작한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까지 오는 1백 리 벚꽃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불리기도 한다.
* 맛집 환학대를 지나 불일폭포로 가는 중턱에 ‘봉오산방’이라는 휴게소가 있는데 이 곳 마당에서 먹는 감자전과 막걸리는 가히 일품이다. 쌍계사 앞 수석원 식당(052-883-1716)이 돌솥밥으로 유명하고, 쌍계사 부근의 북카페 동헌마루(055-883-4704)에서 담박하게 내놓는 메밀국수도 맛이 깔끔하다.

타두회打頭會
“해가 향로봉을 비추니 자줏빛 안개가 일어나고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마치 긴 냇물을 걸어 놓은 듯하네
날 듯이 흘러 수직으로 삼천 척을 떨어지니 이는 아마도 은하수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듯하구나.” (이백의 한시 ‘망여산폭포’ 중)


역시 유두에 선비들은 폭포에서 물맞이 놀이를 즐기곤 했는데, 자연을 이용해 잔병을 고치고 더위를 식혔던 전통 피서법 중 하나다. 조선 순조 때 김이재는 <중경지>에서 이 물맞이 행사를 ‘타두회’라 불렀다. 심산유곡의 폭포 아래 온몸을 맡기고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면 무더위는 저만큼 물러간다.

예로부터 폭포 물맞이는 신경통·근육통·허릿병·산후통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맞이에 가장 적합한 조건은 수심이 허리 깊이 정도여야 하고 물줄기가 암벽과 50cm정도 사이를 두고 떨어져 있는 게 좋고, 물이 너무 차가워도 효과가 반감된다고 한다.
이 조건을 갖춘 폭포로는 하동군 화개면의 비룡폭포, 산청군 시천면의 법천폭포가 있다. 산청군 단성면의 선녀폭포는 높이가 2~3m밖에 되지 않아 명상을 하면서 물맞이하기에 제격이다. 지리산 10경의 하나인 불일폭포(경남 하동군 화개면)는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 쌍계사 계곡에서 쏟아지는 폭포다. 높이 60m, 너비 3m의 폭포로 폭포수 위로 오색 무지개까지 피어 올라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사진은 하동군 화개면의 불일폭포.


사가독서賜暇讀書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하는 것과 같다.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실은 충분히 익히고 또 익히는 데 핵심이 있다. 굽이굽이 환하게 파악하고 그 자태를 또렷하게 간직하고 그 정신과 통해야만 비로소 터득하는 것이 있다.”(조선 선비 어유봉의 <동유기> 중)

조선 세종 때는 관료들에게 한 달에서 석 달까지 휴가를 줘서 독서하게 하는 ‘사가독서’ 제도가 있어서 나라의 인재들이 그 기간 동안엔 모든 의무를 면제받고 독서에 힘썼다고 한다.
또한 선비들은 한여름 시원한 창가에 누워서 <산수기>를 읽는 것, 이름 하여 와유산수臥遊山水를 피서의 으뜸으로 쳤다. 실제 여행은 봄과 가을에 하고, 여름에는 산수기를 읽으며 상상의 여행을 즐기는, 마음의 풍류가 선비에게 있었던 것이다.

아름지기가 정선 전씨의 1백50여년 된 종택을 복원해 만든 경남 함양의 ‘아름지기 함양한옥’. 고택의 대문, 안채, 사랑채는 옛 형태 그대로 유지하고 식당채와 목욕채를 추가로 갖춘 한옥 문화 체험관이다. 마당 가득 정갈한 비질 자국을 남겨 먼 데서 온 손님을 반기는 마음, 조리장이 직접 캔 산나물을 말리고 아껴두었다가 손님 밥상에 올리는 마음, 집 뒤로 펼쳐진 대숲, 순백의 목공단 요와 정갈한 이불 홑청까지 눈에 닿는 것들이
그림처럼 그윽한 곳이다. 아름지기 함양한옥에서는 안채와 사랑채를 대여해준다. 방 세 개, 화장실 한 개가 딸린 안채는 4인 숙박과 아침식사 제공 기준으로 40만 원에, 방 두 개, 화장실 한 개가 딸린 사랑채는 3인 숙박과 아침식사 기준으로 30만 원에 대여하고 있다.
문의 아름지기 사무국(02-733-8375), www.arumjigihamyang.org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