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존의 가구를 그대로 두고 전통 상례 유물과 조화시킨 2층 응접 공간.
“삼천갑자 동방삭은 / 삼천갑자 살았는데 / 요네 나는 백 년도 못 살아 // 구름도 쉬어 넘고 / 날짐승도 쉬어 가는 / 심산유곡을 어이를 갈꼬 // (중략) // 심산험로를 어이를 갈꼬 / 육진장포 일곱매로 상하로 질끈 메고 / 상여 타고 아주 가네. ” 내세로 가는 길 닦는 상여꾼들의 만가가 울려 퍼지면 동네 어귀엔 어김없이 상여 행렬이 나타났다. 사람이 죽으면 상여를 타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훠이훠이 돌아간다고 믿었던 옛 어른들의 품 넓은 내세관이 이 만가에 깃들어 있다. 효율성과 속도를 숭배하는 신세계 시민인 우리는 상여 행렬 대신 병원에서 치르는 원스톱 장례 서비스에 길들여졌고, 이웃과 마을이 함께하는 상례 풍습도 잊은 지 오래다. 더욱 안타까운 건, 유일한 상여장이자 ‘영양 상여’ 기능보유자였던 김재환 옹이 세상을 뜬 뒤 후계자가 없어 더 이상 전통적인 형태의 상여를 제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화석화된 유물로 사라져갈 뻔한 우리 상례 문화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는 ‘쉼박물관’이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홍지마을에 문을 열었다. 전통 상례에 쓰던 상여, 요여(고인의 영혼과 관련된 혼귀, 신주, 명기 등의 물건을 실은 작은 가마), 상여 장식 조각, 도자기와 석조 유물 등 상례 용품 2백여 점이 전시된(1천여 점 소장) 한국 최초의 ‘전통 상례 문화 박물관’이다. 이곳은 박기옥 씨가 자신이 살던 집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으로, 살림집의 아늑한 흔적이 전시 공간 곳곳에 스며 있다. 안방에는 침대 대신 상여가 놓여 있고, 앤티크 가구로 꾸민 응접실에는 상여 장식 조각이 미술 작품처럼 전시돼 있는가 하면 ‘심청전’ ‘도깨비방망이’ 등 옛이야기에 맞춰 배열한 상여 장식 조각이 욕조 안에 들어가 있다.
2 1층 다이닝룸에는 주로 여성 복식을 살펴볼 수 있는 상여 장식 조각이 전시돼 있다.
3, 8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남은정 작가의 천사 작품.
“사람은 누구나 탄생의 문을 통과해 이 세상에 나왔다가 결국 마침의 문을 한 번 더 지나가게 되잖아요.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일상에서 편히 다뤄보고 싶은 생각에 제가 살던 집을 전시실과 휴식처, 아트숍으로 개조해봤지요. 외국에는 자신의 집을 작은 박물관으로 개조한 곳이 아주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옛 물건을 몹시 애착했고 상여와 상여 장식의 소박한 색감에 몹시 끌렸던 박기옥 씨는 40년 동안 꾸준히 모아온 집념의 산물들을 자신의 살림집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화여대 사학과 1회라는 그의 이력 또한 쉼박물관의 태동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었다. 프랑스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막내딸 남은정 씨가 소장품 배치를 도왔다. 살림집을 전시 공간으로 바꾸는 공사를 거쳤지만 박기옥 씨의 세간살이는 그대로 전시물과 함께 어우러지게 해, 음산한 느낌 대신 밝은 프랑스식 저택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준다.
4 일제강점기 이전 경상도 지방에서 사용하던 상여다.
5 쉼 박물관의 설립자 박기옥 씨.
“시어머니와 어머니, 남편이 세상을 뜨면서 죽음이 내가 감당해야 할 이야기로 다가왔지요. 직접 접하니 죽음은 쉬는 것, 자는 것이었어요. 죽음은 물론 슬픈 것이지만 그걸 갈무리하는 현재의 장례 문화가 너무 어두워요. 우리 옛 어른들의 상례는 엄숙하면서도 화려하기까지 한 문화였는데도요.” 이 ‘안식’의 공간에서는 올해 초 ‘조선시대 상례문화 재조명’이라는 학술 세미나도 열었다. 앞으로도 학술 행사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관람시간 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 일요일 오후 2~7시(월요일 휴관) 문의 02-396-9277, www.shuim.org
6 지하 전시실에 전시된 프랑스 작가 ‘마리 골드스타인‘의 작품.
7 용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을 담은 상여 장식 조각.
상여 상여는 망자가 이승에서 마지막 타는 가마다. 살아 있는 동안 누리지 못했던 행복과 기쁨을 누리라고 꽃, 용, 도깨비로 화려하게 장식한 ‘망자의 가마’인 것이다. 현재 쉼박물관에 전시 중인 상여는 일제강점기 이전 경상도 지방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단청으로 된 장식과, 일제강점기에 들여온 페인트로 칠한 장식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이전의 상여로 추정한다.
요여 우리 조상은 사람이 죽으면 혼(영혼)과 백(육체)이 분리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백을 모시는 상여 앞에 혼을 모시는 요여를 앞세웠다. 요여 안에는 명기(죽은 사람의 내세를 위해 무덤에 시신과 함께 묻는 부장품), 신주 등을 함께 실었다. 나무로 만든 요여 각 모서리에 새겨진 문양을 주목해서 볼 것.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상여 장식 조각과 용수판 상여를 장식하기 위해 연꽃, 봉황, 동방삭 등을 조각해 끼웠는데, 전통 목조각을 연구하려면 상여 장식 조각을 연구해야 할 정도로 뛰어난 조각 작품들이다. 용수판은 상여 보개(일종의 덮개) 앞뒤에 부착하는 반달 모양의 판이다. 잡신을 물리치고 혼령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물고기를 입에 문 도깨비,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는 용, 불사를 상징하는 뱀 등이 주로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