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화가 안미선씨 의뭉스러운 고양이의 나른한 일탈
온몸을 쫘악 펴면서 기지개 켜는 고양이를 보면 절로 나른해진다. 5월호 표지 작가 안미선 씨는 그 고양이를 몽환적인 공간으로 불러왔다. 이제 나른함에 신비롭고 묘한 긴장감이 더해진다. 의뭉스러운 너, 게서 무얼 좇고 있느냐? 어디로 훌쩍 가려는 거지?

세 폭으로 구성된 작품 ‘비상-매혹’(2007)과 <행복> 5월호 표지 작품을 그린 화가 안미선 씨. 그의 뱃속에 8개월 된 아기가 세상으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모든 작품은 비단에 분채를 하고 수를 놓아 만들었다.

어릴 적 안미선 씨는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덕분에 동네 채소 가게, 쌀집, 슈퍼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그의 어린 마음에 쑥 들어와 웅크리고 앉았다. 고양이를 안으면 푸근한 털이 그를 따뜻하게 덥혔다. 새끼 고양이 얼굴에 뺨을 비비던 순간은 그리 정겨울 수 없었다. 담요 속으로 파고드는 고양이는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고양이랑 노느라 학원에 가지 않아 어머니에게 맞기가 일쑤였다.

유년기의 교감 덕분에 고양이는 작가가 자기 세계를 가장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오브제가 되었다. 애완동물을 꺼려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뒤 처음으로 슈퍼 아주머니에게 얻은 새끼 고양이를 키우면서 작업은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제 고양이는 작가가 제 몸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까지 담아내는 그의 분신이 되었다.


‘비상-마법에 걸리다’(2007).

“원래 고양이는 독립적으로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동물이에요. 자기만의 세계에 골똘히 빠져 있을 때가 많지요.” 안미선 씨가 보기에 고양이는 자기 주관이 강하고 제 성격과 기분을 드러낼 줄 아는 동물이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고양이의 표정을 관찰하는 일이 즐겁다. 눈이 마주치면 고양이는 일순 의뭉스러운 얼굴을 하고 그를 빤히 바라본다. “웬 참견?”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낯을 가리고 사교적이지 못한 고양이의 성격은 작가와 참 많이 닮았다.

고양이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일련의 전시 제목은 모두 <비상飛上>이었다. 반쯤 눈을 감은 채 졸고 있는 듯싶은데, 과연 어디로 비상하는 것인지? “그림 속 고양이는 좁은 공간에서 뒹굴고 있는 게 아니에요. 꿈꾸고 있어요. 일상을 폴짝 뛰어넘어 또 다른 세상에서 노닐어요.” 꿈꾸는 고양이의 눈을 통해 상상하는 만큼 세상은 넓어진다. 한껏 나른한 몸짓으로 가뿐하게 일탈을 감행한 것이다.

실제로 고양이는 잠이 많은 동물이다. 그런데 시체처럼 꼼짝 않고 자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몸을 굴려가며 자유롭게 잠잔다. 그래서 잠든 고양이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조연의 등장으로 화면은 더욱 자유로워진다. 창가와 꽃 사이를 가벼이 나는 나비나 연못에서 유영하는 물고기는 고양이의 시선을 이리저리 낚는다. 5월호 표지 작품 ‘비상-잡힐 듯 말 듯’의 고양이는 아예 나비 잡기 삼매경에 빠졌다.


(왼쪽) ‘비상-잡힐 듯 말 듯’(2007).
(오른쪽) 안미선 씨.

그림 안에서 고양이를 뛰놀게 하는 작업은 상당히 손이 많이 간다. 털의 미세한 음영으로 고양이의 동세를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아주 가는 붓으로 털을 일일이 그린다. ‘털을 하나하나 심는 기분’이란다. 재료는 다루기 까다로운 비단과 분채를 고집한다. 오묘한 빛을 내는 비단과 채도가 높은 분채는 고양이를 그리는 데 최선의 재료다. 여기에 은사로 수를 놓았다. 은사의 은은한 반짝임이 고양이의 천연스러운 표정과 잘 어울린다.

이장희 시인의 작품을 빌려 “봄은 고양이로다”라고 되뇌인다.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그 봄이 곧 저만치 달아나버릴 것 같다. 톡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꿈틀’ 하며 화면 밖으로 뛰어나올 것 같다.

* 5월호 표지 선정은 김현주 갤러리의 도움으로 진행했습니다. 이곳에서 4월 1일부터 13일까지 안미선 씨의 <비상>전이 열렸습니다. 문의 02-732-4666 화가 안미선 씨는 1998년에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2000년에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공화랑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0회의 개인전 및 70여 회의 단체전을 열었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