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그곳은 대부분 크메르루주(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 무장단체)의 참혹함 혹은 시엠 립Siem Reap의 앙코르와트가 보여주는 대서사로 기억되곤 한다. 앙코르와트가 펼치는 문화와 예술의 장대한 서사는 크메르 문화를 대표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재 살아 있는 캄보디아 문화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근래 그런 앙코르와트 곁에 새로운 캄보디아 문화와 예술의 바람이 일고 있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캄보디아는 아시아권 국가 중에서 아시아인은 물론 서구 관광객의 발걸음이 매우 잦은 국가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작품을 알리고 판매하고자 하는 작가와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캄보디아 현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술 교육이 이루어진다거나 예술계 활동이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따라서 시엠 립에 부상하는 예술계의 움직임은 현재 이러한 상황을 알고 들어온 외부 사람들, 그중 특히 서구 예술가나 자본가들을 주축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외부 사람들 중 몇몇은 작년 11월 그들이 시엠 립에 가지고 있는 갤러리 10곳을 연결한 일종의 예술 연계인 아트비뉘Artvenues를 형성해서 캄보디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그들의 존재와 활동상을 좀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트비뉘를 조성한 주역 중 하나인 존 맥더멋John McDermott이 설립한 갤러리를 시작으로 캄보디아 내에 태동하는 서양 예술계의 현주소를 찾아가 보자.
1 레드 갤러리는 중앙에 있는 중국식 문을 중심으로 레드 룸과 블랙 룸으로 나뉜다. 블랙 룸에서 레드 룸을 바라봤을 때 정면에 있는 중앙 전시 벽에는 아시아의 특징이 가장 뚜렷한 작품을 배치해 갤러리 콘셉트를 강조했다.
2 시엠 립 시내 올드 마켓에 있는 맥더멋 갤러리 2의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본 모습. 맥더멋 씨 자신의 흑백 사진을 닮은 공간 연츨을 엿볼 수 있다.
3 맥더멋 갤러리 1의 인포메이션 데스크. 데스크 뒤로 올드 마켓에 있는 맥더멋 갤러리 2의 전시 소개가 보인다.
맥더멋 갤러리 2003년 시엠 립의 포캄보Pokambor가에 맥더멋 갤러리 1 McDermott Gallery 1이, 시엠 립 시내에 있는 올드 마켓Old Market에는 맥더멋 갤러리 2가 들어섰다. 두 갤러리를 설립한 존 맥더멋은 미국 출신 사진작가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맥더멋 씨가 방콕에 주재할 때 앙코르와트와 인연을 맺은 뒤로 앙코르와트 전문 사진가로 전업하게 되었다. “앙코르와트에서 개기일식이 있던 1995년 어느 날 세상의 모든 빛이 잠시 사그라들었어요. 앙코르와트 주변이 백금을 입힌 세계처럼 일순 신비롭게 뇌리에 각인되었지요.” 맥더멋 씨는 이때의 영감을, 드라마틱하게 빛이 번지는 효과를 연출할 수 있는 인프러레드 필름infrared film으로 포착했다. 그는 현재 대표적인 앙코르와트 사진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단층 건물의 맥더멋 갤러리 1은 맥더멋 씨의 흑백사진과 어울리는 우아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구성되었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오른편과 왼편에 맥더멋 씨의 앙코르와트 사진이 눈에 띈다. 코끼리를 타고 가는 긴 행렬, 클로즈업된 해맑은 승려들의 미소, 대담한 앵글로 포착한 사원을 휘감은 웅장한 압실리아 나무, 광활한 하늘 밑에 펼쳐진 앙코르와트 및 앙코르와트가 투영된 잔잔한 호수….
조금 더 들어가니 작은 방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일본의 유명한 사진작가 겐로 이쓰 씨가 20세기 초에 사용한 플래티넘 프린트 기법으로 제작한 ‘앙코르로 가는 길Passage to Angkor’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맥더멋 씨는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 관광객들이 앙코르와트의 유구한 역사와 크메르 전통의 진수에 눈뜰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한다. 앙코르와트 및 크메르 문화에 대한 그의 진한 애정이 갤러리 곳곳에서 느껴진다.
시엠 립 시내의 올드 마켓에 있는 맥더멋 갤러리 2는 건축가 리사 로스Lisa Ros와 이반 티치아넬Ivan Tizianel이 두 채의 집을 통합 개조한 2층 건물이다. 캄보디아계 프랑스인인 로스 씨와 프랑스인 티치아넬 씨는 한 팀이 되어 시엠 립 시내 유수의 건축물에 독창적인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깊은 유대 관계가 있는 두 나라 출신 건축가의 건축물에서는 캄보디아의 정서와 튀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유러피언의 색조가 느껴진다. 이곳에는 들어오는 햇빛이 잘 반사되도록 내부를 모두 하얀 벽으로 처리했다. 세계 각국 작가들의 사진·회화 작품을 통일성 있게 전시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는 차분하다. 여기에 전시된 작품의 작가들은 캄보디아 현지 작가, 아시아 작가 혹은 아시아를 작품 소재로 다루는 작가들로 이루어진다. 맥더멋 갤러리 2의 1층은 전체 맥더멋 갤러리 아트 숍으로, 맥더멋 씨의 작품이 프린트된 엽서, 포스터 및 오리지널 프린트나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살 수 있다.
맥더멋 갤러리 1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문의 (855)063-760-842, www.mcdermottgallery.com, john@asiaphotos.com 주소 FCC Complex, Pokambor avenue, Siem Reap, Cambodia
맥더멋 갤러리 2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10시 문의 (855)012-274-274 주소 btw. Pub St. & the Old Market, Siem reap, Cambodia
1 맥더멋 갤러리와 레드 갤러리를 설립한 사진가 존 맥더멋 씨.
2 , 3 입구에서 바라 본 레드 갤러리 내부. 차이나 레드의 화려한 배경 위에 전시된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보인다.
레드 갤러리 레드 갤러리Red Gallery는 작년 11월 맥더멋 씨가 캄보디아 현지 예술가나 아시아 작가들의 전시를 위해 설립한 공간이다. 맥더멋 갤러리 1과 나란히 붙어 있다. 갤러리 이름처럼 건물 입구부터 강렬한 붉은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붉은색 인테리어는 내부로 일관되게 이어지다가 중국풍으로 꾸민 둥근 문에서 검은색 장식과 대조되며 절정을 이룬다. 레드 갤러리의 인테리어에서 도드라지는 중국풍 이미지에는 동양에 대한 서양인의 고정된 시각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현지 예술에 대한 애정으로 갤러리 곳곳을 섬세하게 디자인한 맥더멋 씨의 정성이 감동적이다.
그는 이 레드 갤러리를 아시아 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특별히 만든 만큼 아시아 출신 작가나 아시아를 주제로 다룬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준다고 한다.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 아직 서방 세계에는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아담한 공간에 짜임새 있는 구조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맥더멋 씨는 근래 미얀마 예술계와 작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미얀마도 캄보디아처럼 아름다운 문화적 전통이 있는 나라로 그들만의 독특한 예술계를 열어 보일 수 있는 무한한 잠재성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레드 갤러리가 속한 FCC 콤플렉스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FCC 콤플렉스는 전 주 캄보디아 프랑스 대사관을 개조하여 만든 호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이 호텔 콤플렉스에 묵으면 호주계 주방장 마크 라이트Mark Wright가 선보이는 고급스러운 퓨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카페 프레스코와 30~1백75 달러 사이의 다양한 고급 스파와 마사지를 즐길 수 있는 비사야Visaya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의 모든 공간은 예술적으로 꾸며졌다. 레드 갤러리를 건물 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공간과 공간을 잇는 구석구석에 팝아트풍 조각 작품이 멋스럽게 자리한 점 등을 보아도 그렇다.
4 FCC 중앙에 위치한 수영장 위로 압실리아 나무가 무성하다. 마치 스파에 온 듯 고즈넉하다.
5 레드 갤러리에는 근래 주목받는 캄보디아 현지 작가의 설치 작품이 소장 전시되었다.
6 FCC 2층 카페 프레스코에서 나와 레드 갤러리로 가는 통로. 레드 갤러리의 관람을 예고하려는 듯 아기 코끼리 조형물을 센스 있게 배치했다.
이 호텔 2층에 있는 ‘카페 프레스코’는 시엠 립을 여행할 여행객이라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먼저 유리창이 없는 넓은 창틀을 이용해 테라스와 본채가 한곳처럼 느껴지도록 전체 공간을 꾸몄으며, 테라스 바깥에 넓은 하얀 차양을 달아 캄보디아의 신선한 공기가 본채까지 날아들도록 만들었다. 카페 프레스코에 들어서면 왼편에 있는 부산한 주방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주방 건너편에는 마네Manet의 작품 ‘A Bar at the Folies-Bergere’서 보았을 것 같은 서양식 바가 큰 거울을 마주하고 있다. 에그 옐로와 화이트로 처리한 벽면에는 캄보디아를 담은 흑백 사진 작품들이 걸려 있어 카페 전체가 하나의 사진 갤러리 같다. 도시의 건조함에 지친 여행객이라면 맑은 햇살과 신선한 바람,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 향기에 묻혀 캄보디아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해보는 것도 좋겠다. 단, 스테이크 메뉴가 30달러 정도이니 현지 음식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음식 값을 각오해야겠다.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10시 문의 (855)012-274-274 주소 btw. Pub St. & the Old Market, Siem Reap, Cambodia
‘오텔 드 라 페’의 더 아트 라운지 레드 갤러리처럼 서구의 예술 관계자들이 캄보디아 현지 작가들을 위해 기획한 전시 공간으로 말하자면, 캄보디아 현지 작가들만을 엄선하여 선보이고 있는 오텔 드 라 페Hotel de la Paix 호텔의 더 아트 라운지The Arts Lounge를 빼놓을 수 없다. 오텔 드 라 페 호텔은 하버드 디자인 스쿨 출신에 대학 시절부터 저명한 건축상을 받은 빌 벤슬리Bill Bensley가 설계와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인테리어가 돋보일 뿐 아니라 모든 객실에 아이팟을 설치해 손님이 원하는 음악을 실내에서 감상할 수 있는 부티크 호텔이다. 또한 이 호텔 1층의 대부분을 차지한 로비 공간 전체를 예술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대담함이 돋보인다.
더 아트 라운지는 차를 마시며 대화할 수 있는 로비 라운지의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호텔의 기조인 ‘유일무이한unique 경험’을 방문객에게 선사하는 대표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방문객들은 평상 형태의 소파에 기대 앉아 캄보디아 칵테일을 즐기며 주위를 에워싼 예술 작품을 편안하게 즐긴다. 으레 그렇듯 호텔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형식적으로 작품을 걸어놓은 로비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더 아트 라운지의 사방을 두른 하얀 벽은 모두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는데, 한 벽면을 가득 채우는 대형 작품부터 와이어로 설치한 소품까지 다양한 장르 및 크기의 작품으로 변화를 주었다. 그런가 하면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을 촬영한 영상 작품을 한쪽 벽면에 상영하고 있었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곳의 방문객들이 전시 작품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평상시에는 소파가 놓이는 중앙 공간은 두 층계 정도로 움푹 내려간 플로어 형태를 띤다. 여기에는 수중 조명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전시 형태에 따라 워터 리플렉션으로 사용할 수 있다. 공간을 유동적으로 활용하는 감각이 돋보인다. 더 아트 라운지의 큐레이터인 돈 프로타시오Don Protasio는 “이곳에는 크메르 전통을 이어받은 캄보디아 현지 작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전시합니다. 뿐만 아니라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현대적인 작품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마케팅을 담당하는 노엘린 헨더슨Noelene Henderson 팀장은 “이 호텔의 투숙객은 그저 흔한 경험이 아닌 가장 캄보디아다운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호텔의 기조인 만큼, 더 아트 라운지에 전시하는 작품도 그런 독특한 정서를 담은 것으로 선택한다”고 덧붙였다.
운영시간 오전 10시~이른 새벽 문의 (855)063-966-000, www.hoteldelapaixangkor.com, bbuns@hoteldelapaix.com 주소 Sivutha Boulevard, Siem Reap, Cambodia
1 오텔 드 라 페 호텔에 있는 더 아트 라운지의 낮 풍경. 편안한 소파에 몸을 묻고 한껏 휴식을 취하다가 때때로 벽에 걸린 작품에 눈을 돌린다. 이만한 호사가 없다.
2 오텔 드 라 페의 1층은 자연광을 멋지게 활용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3 더 아트 라운지에 진열된 조각 작품.
그 밖에 둘러볼 아트 공간 이 밖에도 시엠 립에는 피에르 포레티Pierre Poretti가 설립한 ‘갤러리 클릭Klick’이나 캄보디아 젊은 현대 작가들의 아지트인 ‘디 아트 하우스The Art House’와 같이 서구 예술가나 예술 관계자들이 캄보디아 예술계의 활성화를 위해 창안한 공간들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예술 공간은 고사하고 예술 교육도 부재한 캄보디아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아트비뉘를 형성하는 등 다양한 움직임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을 전망 있는 비즈니스 수단으로 삼기도 하는 서구 예술계의 운영자들이 그 주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진정성이 얼마나 발휘되느냐가 관건이다. 전 세계가 서구식 비즈니스 마인드로 예술을 유통하는 것에 열광하는 현 상황에서 시엠 립에서 만난 맥더멋 씨나 큐레이터 프로타시오 씨가 보인 캄보디아 예술계에 대한 애정도 진정성의 평가를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애정이 캄보디아 예술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관광지를 상품화하겠다는 산업적 시각이나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폄하하는 시각으로부터 비롯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캄보디아는 아시아권 국가 중에서 아시아인은 물론 서구 관광객의 발걸음이 매우 잦은 국가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작품을 알리고 판매하고자 하는 작가와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캄보디아 현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술 교육이 이루어진다거나 예술계 활동이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따라서 시엠 립에 부상하는 예술계의 움직임은 현재 이러한 상황을 알고 들어온 외부 사람들, 그중 특히 서구 예술가나 자본가들을 주축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외부 사람들 중 몇몇은 작년 11월 그들이 시엠 립에 가지고 있는 갤러리 10곳을 연결한 일종의 예술 연계인 아트비뉘Artvenues를 형성해서 캄보디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그들의 존재와 활동상을 좀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트비뉘를 조성한 주역 중 하나인 존 맥더멋John McDermott이 설립한 갤러리를 시작으로 캄보디아 내에 태동하는 서양 예술계의 현주소를 찾아가 보자.
1 레드 갤러리는 중앙에 있는 중국식 문을 중심으로 레드 룸과 블랙 룸으로 나뉜다. 블랙 룸에서 레드 룸을 바라봤을 때 정면에 있는 중앙 전시 벽에는 아시아의 특징이 가장 뚜렷한 작품을 배치해 갤러리 콘셉트를 강조했다.
2 시엠 립 시내 올드 마켓에 있는 맥더멋 갤러리 2의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본 모습. 맥더멋 씨 자신의 흑백 사진을 닮은 공간 연츨을 엿볼 수 있다.
3 맥더멋 갤러리 1의 인포메이션 데스크. 데스크 뒤로 올드 마켓에 있는 맥더멋 갤러리 2의 전시 소개가 보인다.
맥더멋 갤러리 2003년 시엠 립의 포캄보Pokambor가에 맥더멋 갤러리 1 McDermott Gallery 1이, 시엠 립 시내에 있는 올드 마켓Old Market에는 맥더멋 갤러리 2가 들어섰다. 두 갤러리를 설립한 존 맥더멋은 미국 출신 사진작가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맥더멋 씨가 방콕에 주재할 때 앙코르와트와 인연을 맺은 뒤로 앙코르와트 전문 사진가로 전업하게 되었다. “앙코르와트에서 개기일식이 있던 1995년 어느 날 세상의 모든 빛이 잠시 사그라들었어요. 앙코르와트 주변이 백금을 입힌 세계처럼 일순 신비롭게 뇌리에 각인되었지요.” 맥더멋 씨는 이때의 영감을, 드라마틱하게 빛이 번지는 효과를 연출할 수 있는 인프러레드 필름infrared film으로 포착했다. 그는 현재 대표적인 앙코르와트 사진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단층 건물의 맥더멋 갤러리 1은 맥더멋 씨의 흑백사진과 어울리는 우아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구성되었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오른편과 왼편에 맥더멋 씨의 앙코르와트 사진이 눈에 띈다. 코끼리를 타고 가는 긴 행렬, 클로즈업된 해맑은 승려들의 미소, 대담한 앵글로 포착한 사원을 휘감은 웅장한 압실리아 나무, 광활한 하늘 밑에 펼쳐진 앙코르와트 및 앙코르와트가 투영된 잔잔한 호수….
조금 더 들어가니 작은 방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일본의 유명한 사진작가 겐로 이쓰 씨가 20세기 초에 사용한 플래티넘 프린트 기법으로 제작한 ‘앙코르로 가는 길Passage to Angkor’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맥더멋 씨는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 관광객들이 앙코르와트의 유구한 역사와 크메르 전통의 진수에 눈뜰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한다. 앙코르와트 및 크메르 문화에 대한 그의 진한 애정이 갤러리 곳곳에서 느껴진다.
시엠 립 시내의 올드 마켓에 있는 맥더멋 갤러리 2는 건축가 리사 로스Lisa Ros와 이반 티치아넬Ivan Tizianel이 두 채의 집을 통합 개조한 2층 건물이다. 캄보디아계 프랑스인인 로스 씨와 프랑스인 티치아넬 씨는 한 팀이 되어 시엠 립 시내 유수의 건축물에 독창적인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깊은 유대 관계가 있는 두 나라 출신 건축가의 건축물에서는 캄보디아의 정서와 튀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유러피언의 색조가 느껴진다. 이곳에는 들어오는 햇빛이 잘 반사되도록 내부를 모두 하얀 벽으로 처리했다. 세계 각국 작가들의 사진·회화 작품을 통일성 있게 전시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는 차분하다. 여기에 전시된 작품의 작가들은 캄보디아 현지 작가, 아시아 작가 혹은 아시아를 작품 소재로 다루는 작가들로 이루어진다. 맥더멋 갤러리 2의 1층은 전체 맥더멋 갤러리 아트 숍으로, 맥더멋 씨의 작품이 프린트된 엽서, 포스터 및 오리지널 프린트나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살 수 있다.
맥더멋 갤러리 1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문의 (855)063-760-842, www.mcdermottgallery.com, john@asiaphotos.com 주소 FCC Complex, Pokambor avenue, Siem Reap, Cambodia
맥더멋 갤러리 2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10시 문의 (855)012-274-274 주소 btw. Pub St. & the Old Market, Siem reap, Cambodia
1 맥더멋 갤러리와 레드 갤러리를 설립한 사진가 존 맥더멋 씨.
2 , 3 입구에서 바라 본 레드 갤러리 내부. 차이나 레드의 화려한 배경 위에 전시된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보인다.
레드 갤러리 레드 갤러리Red Gallery는 작년 11월 맥더멋 씨가 캄보디아 현지 예술가나 아시아 작가들의 전시를 위해 설립한 공간이다. 맥더멋 갤러리 1과 나란히 붙어 있다. 갤러리 이름처럼 건물 입구부터 강렬한 붉은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붉은색 인테리어는 내부로 일관되게 이어지다가 중국풍으로 꾸민 둥근 문에서 검은색 장식과 대조되며 절정을 이룬다. 레드 갤러리의 인테리어에서 도드라지는 중국풍 이미지에는 동양에 대한 서양인의 고정된 시각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현지 예술에 대한 애정으로 갤러리 곳곳을 섬세하게 디자인한 맥더멋 씨의 정성이 감동적이다.
그는 이 레드 갤러리를 아시아 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특별히 만든 만큼 아시아 출신 작가나 아시아를 주제로 다룬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준다고 한다.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 아직 서방 세계에는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아담한 공간에 짜임새 있는 구조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맥더멋 씨는 근래 미얀마 예술계와 작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미얀마도 캄보디아처럼 아름다운 문화적 전통이 있는 나라로 그들만의 독특한 예술계를 열어 보일 수 있는 무한한 잠재성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레드 갤러리가 속한 FCC 콤플렉스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FCC 콤플렉스는 전 주 캄보디아 프랑스 대사관을 개조하여 만든 호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이 호텔 콤플렉스에 묵으면 호주계 주방장 마크 라이트Mark Wright가 선보이는 고급스러운 퓨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카페 프레스코와 30~1백75 달러 사이의 다양한 고급 스파와 마사지를 즐길 수 있는 비사야Visaya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의 모든 공간은 예술적으로 꾸며졌다. 레드 갤러리를 건물 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공간과 공간을 잇는 구석구석에 팝아트풍 조각 작품이 멋스럽게 자리한 점 등을 보아도 그렇다.
4 FCC 중앙에 위치한 수영장 위로 압실리아 나무가 무성하다. 마치 스파에 온 듯 고즈넉하다.
5 레드 갤러리에는 근래 주목받는 캄보디아 현지 작가의 설치 작품이 소장 전시되었다.
6 FCC 2층 카페 프레스코에서 나와 레드 갤러리로 가는 통로. 레드 갤러리의 관람을 예고하려는 듯 아기 코끼리 조형물을 센스 있게 배치했다.
이 호텔 2층에 있는 ‘카페 프레스코’는 시엠 립을 여행할 여행객이라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먼저 유리창이 없는 넓은 창틀을 이용해 테라스와 본채가 한곳처럼 느껴지도록 전체 공간을 꾸몄으며, 테라스 바깥에 넓은 하얀 차양을 달아 캄보디아의 신선한 공기가 본채까지 날아들도록 만들었다. 카페 프레스코에 들어서면 왼편에 있는 부산한 주방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주방 건너편에는 마네Manet의 작품 ‘A Bar at the Folies-Bergere’서 보았을 것 같은 서양식 바가 큰 거울을 마주하고 있다. 에그 옐로와 화이트로 처리한 벽면에는 캄보디아를 담은 흑백 사진 작품들이 걸려 있어 카페 전체가 하나의 사진 갤러리 같다. 도시의 건조함에 지친 여행객이라면 맑은 햇살과 신선한 바람, 그리고 진한 에스프레소 향기에 묻혀 캄보디아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해보는 것도 좋겠다. 단, 스테이크 메뉴가 30달러 정도이니 현지 음식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음식 값을 각오해야겠다.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10시 문의 (855)012-274-274 주소 btw. Pub St. & the Old Market, Siem Reap, Cambodia
‘오텔 드 라 페’의 더 아트 라운지 레드 갤러리처럼 서구의 예술 관계자들이 캄보디아 현지 작가들을 위해 기획한 전시 공간으로 말하자면, 캄보디아 현지 작가들만을 엄선하여 선보이고 있는 오텔 드 라 페Hotel de la Paix 호텔의 더 아트 라운지The Arts Lounge를 빼놓을 수 없다. 오텔 드 라 페 호텔은 하버드 디자인 스쿨 출신에 대학 시절부터 저명한 건축상을 받은 빌 벤슬리Bill Bensley가 설계와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인테리어가 돋보일 뿐 아니라 모든 객실에 아이팟을 설치해 손님이 원하는 음악을 실내에서 감상할 수 있는 부티크 호텔이다. 또한 이 호텔 1층의 대부분을 차지한 로비 공간 전체를 예술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대담함이 돋보인다.
더 아트 라운지는 차를 마시며 대화할 수 있는 로비 라운지의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호텔의 기조인 ‘유일무이한unique 경험’을 방문객에게 선사하는 대표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방문객들은 평상 형태의 소파에 기대 앉아 캄보디아 칵테일을 즐기며 주위를 에워싼 예술 작품을 편안하게 즐긴다. 으레 그렇듯 호텔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형식적으로 작품을 걸어놓은 로비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더 아트 라운지의 사방을 두른 하얀 벽은 모두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는데, 한 벽면을 가득 채우는 대형 작품부터 와이어로 설치한 소품까지 다양한 장르 및 크기의 작품으로 변화를 주었다. 그런가 하면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을 촬영한 영상 작품을 한쪽 벽면에 상영하고 있었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곳의 방문객들이 전시 작품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평상시에는 소파가 놓이는 중앙 공간은 두 층계 정도로 움푹 내려간 플로어 형태를 띤다. 여기에는 수중 조명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전시 형태에 따라 워터 리플렉션으로 사용할 수 있다. 공간을 유동적으로 활용하는 감각이 돋보인다. 더 아트 라운지의 큐레이터인 돈 프로타시오Don Protasio는 “이곳에는 크메르 전통을 이어받은 캄보디아 현지 작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전시합니다. 뿐만 아니라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현대적인 작품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마케팅을 담당하는 노엘린 헨더슨Noelene Henderson 팀장은 “이 호텔의 투숙객은 그저 흔한 경험이 아닌 가장 캄보디아다운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호텔의 기조인 만큼, 더 아트 라운지에 전시하는 작품도 그런 독특한 정서를 담은 것으로 선택한다”고 덧붙였다.
운영시간 오전 10시~이른 새벽 문의 (855)063-966-000, www.hoteldelapaixangkor.com, bbuns@hoteldelapaix.com 주소 Sivutha Boulevard, Siem Reap, Cambodia
1 오텔 드 라 페 호텔에 있는 더 아트 라운지의 낮 풍경. 편안한 소파에 몸을 묻고 한껏 휴식을 취하다가 때때로 벽에 걸린 작품에 눈을 돌린다. 이만한 호사가 없다.
2 오텔 드 라 페의 1층은 자연광을 멋지게 활용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3 더 아트 라운지에 진열된 조각 작품.
그 밖에 둘러볼 아트 공간 이 밖에도 시엠 립에는 피에르 포레티Pierre Poretti가 설립한 ‘갤러리 클릭Klick’이나 캄보디아 젊은 현대 작가들의 아지트인 ‘디 아트 하우스The Art House’와 같이 서구 예술가나 예술 관계자들이 캄보디아 예술계의 활성화를 위해 창안한 공간들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들은 예술 공간은 고사하고 예술 교육도 부재한 캄보디아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아트비뉘를 형성하는 등 다양한 움직임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을 전망 있는 비즈니스 수단으로 삼기도 하는 서구 예술계의 운영자들이 그 주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진정성이 얼마나 발휘되느냐가 관건이다. 전 세계가 서구식 비즈니스 마인드로 예술을 유통하는 것에 열광하는 현 상황에서 시엠 립에서 만난 맥더멋 씨나 큐레이터 프로타시오 씨가 보인 캄보디아 예술계에 대한 애정도 진정성의 평가를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애정이 캄보디아 예술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관광지를 상품화하겠다는 산업적 시각이나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폄하하는 시각으로부터 비롯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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