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삭막하기 그지없는 바그다드 카페에 뚱뚱한 독일여자가 나타난다. 관광여행 중 다툼으로 남편과 헤어진 자스민이라는 이름의 뚱뚱한 여자는 상처받은 카페 주인 여자를 위로하고 동지가 되어준다. 그녀는 새롭게 늙은 남자를 사랑하고, 기꺼이 그 아마추어 화가의 누드모델이 되어준다. 황량하고 사람 냄새가 사라져버린 사막을 인간적인 체취와 환상이 공존하는 연금술적 공간으로 바꾸어놓은 뚱뚱한 여자! 뚱뚱한 여자는 대지모 같은 넉넉함과 포용력으로 단숨에 건조하고 거친 사막을 사람이 살 만한 오이시스의 공간으로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나는 보테로의 작품을 보면,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그 살찐 독일여자가 생각난다. 영화 속 그녀는 거부감 없이 뚱뚱했고, 심지어 아름다웠다. 그녀가 살짝 가슴을 드러내며 누드모델이 되었던 순간에도 그것은 말초적 관능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 대지모의 생명력으로부터 기인한 건강한 관능을 환기시킨다고 느꼈다.
사실, 보테로의 실제 작품을 보기 전 나는 그의 작품이 그저 좀 우스꽝스럽고 유머러스한, 그림을 보면서도 화창하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정도의 작가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에 출품된 몇 작품을 보고 그의 작품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단순히 유머러스한 작품이 아닌, 회화적 진지함과 순수성을 지닌 거장급 작품이었다. 게다가 작품 속의 등장인물과는 사뭇 다른 카리스마를 가진 까칠해 보이는 보테로의 얼굴을 보면 살짝 더 그의 그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곤 한다.
보테로는 살아있는 라틴아메리카 화가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거머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최근의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것에 인색하다. 대중은 그의 작품에 환호를 보내지만,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무시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작가사전에 보테로의 작품이 올라와있지 못했던 것은 나의 예술에 대한 편협성, 대중성이 반드시 예술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입장, 혹은 예술은 절대적으로 미와 숭고 혹은 선과 진리를 담보해야 한다는 심각한 엄숙주의에 중독되었던 까닭이다. 그때까지 나는 그림을 보고 울 수는 있어도(사실 음악이나 영화에 비하면 그림을 보고 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가끔 소름 끼치는 육체적 체험을 하기는 하지만), 경거망동하게 깔깔거릴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뿐더러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작품을 좋아하기라도 하면 타인들이 나의 지적 수준을 비아냥거릴까봐 두려워했던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 현대미술은 재미Fun의 요소가 매우 중요해졌다. 요즘 세태가 그렇거나 말거나 이제 길들여진 눈이 아닌 나의 본성이 원하는 대로, 나는 이제 감히 그의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보테로 작품은 선과 악, 미와 추, 성과 속, 고급과 저급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우리에게 자신의 진실된 얘기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1 이번호 <행복> 표지 작품인 보테로의 ‘그린 드레스를 입은 여인’(1992년, 180×98cm). 표지에는 판형을 맞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 원작의 양 측면이 조금씩 늘어난 변형 작품을 실었다.
2브론즈 조각인 ‘돈나 스트라이아타Donna Sdraiata’(2001년, 69.85×19.69×20.32cm).
3 ‘책을 들고 누운 여인의 누드’(1997년, 128×206cm).
보테로는 정규미술교육을 통해서라기보다는 고향에서 인쇄물을 통해 공부했던 경험, 유럽 여행 시 르네상스 회화를 모사했던 경험, 멕시코 벽화운동의 영향 등을 통해 어느 작가와도 변별되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게 된다. 콜롬비아의 떠돌이 외판원의 아들로 태어난 보테로는 1952년 ‘비올렌시아Violencia’라는 군사독재시대를 겪던 와중에 유럽으로 떠난다.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아카데미아 산페르난도에 입학해 프라도미술관을 자주 드나들면서 고야와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모사했다. 그 후 이탈리아 피렌체로 건너가 산마르코 미술아카데미에 입학, 초기 르네상스의 프레스코화와 조각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섭렵한다. 특히 지오토, 마사치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르네상스 작품이 색과 형태를 모두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점에 특별히 매혹된다.
보테로의 이런 여정은 디에고 리베라가 자신보다 30년 앞서 멕시코로 돌아가기 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프레스코화를 배운 것을 상기하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갔던 것이다. “리베라처럼 행동하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우리 젊은 중앙아메리카 화가들에게 유럽에 의해 식민지화되지 않은 미술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나는 혼혈인의 특성에 매료되었고, 스페인과 고대 인디언문화의 혼합에도 감명을 받았다.” 1955년 유럽 여행을 마치고 콜롬비아로 돌아온 그는 유럽에서 제작한 작품을 보고타에서 전시했지만, 반응은 매우 냉담했고 작품은 전혀 팔리지 않았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두 달 동안 타이어를 팔거나 잡지의 편집 일을 해야만 했을 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렇다면 보테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뚱뚱한 여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이 작가는 정전의 미술사에서 나타나던 착한 몸매를 지닌 여자들과는 철저하게 다른 무거운 여자들을 등장시켰던 것일까? 보테로가 뚱뚱한 여자를 특별히 선호했던 것일까?
그는 특별히 뚱뚱한 여자를 좋아했다기보다는 그저 여성 일반을 사랑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는 남자들을 경멸했으며, 여자에게는 늘 관대했다. 물론 보테로는 여자들만을 뚱뚱하게 그린 건 아니었다. 남자도, 신부도, 군인도, 투우사도, 아이도, 심지어 과일조차도 모두 뚱뚱하게 그렸다.
1 ‘아담과 이브’(2003년, 353×163×116cm, 363×130×117cm).
2 ‘길’(1998년, 196×117cm).
보테로는 형태를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즉 그의 작품의 주요 이슈는 기법이 아니라 형태다. 그는 자연현상은 다소 기형으로 되어 있으며, 자신도 기형을 사용할 뿐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보는 기형은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어쩔 수 없이 말려든 결과이다. 내 견지에서 이 커다란 형태와 감각적으로 자극하는 볼륨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것들이 뚱뚱하게 보이거나 말거나 나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내 그림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나의 관심은 형태의 충만함과 풍부함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다른 그 어떤 것이다.” 이처럼 보테로는 뚱뚱한 여자를 그리고자 의도한 적이 없으며, 자신의 그림 속의 여자들이 전혀 뚱뚱하게 느껴지질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날씬하게 느껴진다나? 이처럼 그는 여성의 몸이 주는 형태의 충만함과 풍부함이라는 미적 조형성에 천착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들의 몸은 또 얼마나 촉각적인 것인가? 캔버스의 평평한 표면에 인물의 볼륨을 팽창시킴으로써 촉각성을 극대화시킨 그림! 그는 르네상스 그림의 촉각성을 유지, 변형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감히’ 만질 수 없을 만큼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보테로 그림 속 여자들은 언제나 살 냄새에 향수 냄새까지 풀풀 풍기며 나를 받아줄 것 같은 그런 여자들처럼 보인다. 어쩌면 언제나 탕아인 나를 받아줄 것 같은, 그러나 늘 너그러울 것 같지는 않은, 가끔 백치미를 풍기는 애인이자 어리수룩한 엄마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테로가 볼륨이라는 형식에만 몰입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화가로 입문하는 과정에서 옛 거장들의 작품, 열대정물화, 누드화를 통해 주제의 다양성이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특히 보테로는 군사독재의 부패한 권력과 부르주아 계급의 파렴치함을 비난하는 그림을 많이 그리는 등 사회 부조리에 대한 민감하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곤 했다. 그 중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성직자가 등장하는 그림이 자주 눈에 띄는데, 이는 성직자의 부도덕성을 은밀하게 풍자하는 것을 통해 사회와 정치 현상을 고발,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보테로의 뚱뚱한 여자는 남미의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집단무의식의 원형적 이미지에 가깝다. 보테로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미 인디언의 대지모 혹은 지모신에 가깝다. 보테로의 뚱뚱한 여자 역시 원초적인 생명력과 충만, 그리고 풍요를 담보하는 대지모의 화신이다. 때로 그녀들은 그 부드러운 살덩이로 보테로의 분신인 남자들을 다정하게 감싸 안는다. 그녀들은 거대한 어머니의 육체와 완전하게 한 몸이었던, 유년시절에 잠재워진 기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절대적 양감을 지닌 이런 여성 이미지는 더 이상 소외된 여자도 아니고, 게으른 여자도 아니다. 그 뚱뚱한 여자는 바로 인간이 태생 이전에 안겼던,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안기고 싶은 최초의 이미지다. 시각적 쾌감과 촉각적 쾌락이 함께하는 그런 이미지다.
1 ‘투우사’(1990년, 32×26cm). 투우는 남미사회에서 인기 있는 대중적인 스포츠였다. 보테로도 소년 시절에 투우사 양성학교에 다녔다. 투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녔기에 그의 작품에는 유난히 투우사가 자주 등장한다.
4월호의 표지 이야기는 지난 3월 15일까지 <보테로와 앤디 워홀>전시를 개최한 오페라 갤러리(02-3446-0070)의 도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오페라 갤러리는 파리에서 처음 문을 열어 현재 런던, 베니스, 뉴욕, 마이애미, 싱가포르, 홍콩, 서울 등에서 전 세계 거장과 중견작가 및 세계적인 큐레이터들의 안목으로 선택된 신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는1932년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태어나 메델린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작업을 지속하다가 서른 살이 되던 1952년에 스페인으로 떠났고, 이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미술 공부 및 작품 활동을 했다. 1961년 뉴욕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도로시 밀러가 그의 작품 <12세의 모나리자>를 구입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해, 파리의 클로드 베르나르 갤러리 및 뉴욕의 말보로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거쳐 1976년 파리 비엔날레와 1977년 파리 그랑 팔레 등 대규모 전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현재 콜롬비아, 파리, 마이애미에서 살고 있다. 인물사진 제공 오페라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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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여자가 <행복>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그것도 올록볼록한 흰 살을 드러낸 초록빛 미니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입고서 말이다. 예쁘장하고 날씬하며 젊어야 한다는 요즘 잡지 표지 모델의 세 가지 필수조건을 저 앙증맞은 빨간 구두로 살포시 즈려밟고 선 것 같다. 그래서 이번 <행복> 표지로 등장한 ‘그린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그린 보테로가 더욱 궁금하다. 미술평론가 유경희 씨가 보테로 작품 속 여성을 이야기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