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아줌마들은 왜 했던 말을 자꾸 반복할까?
웹서핑에 열중한 딸아이에게 한 번 더 강조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모임에 갔다가 네 시쯤 올 테니까 된장찌개 데워서 먹어. 참, 반찬은 꼭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러자 뒤통수로 이야기를 듣던 딸 말하길 “엄마는 왜 자꾸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또 해?”란다. 뭐, 뭣이라고? 당황해서 이렇게 갈무리한다. “야,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너네 외할머니는 훨씬 심해….” 얼버무린 뒤에도 사실 개운치 않다. 대체 왜 아줌마들은 한 말을 반복할까?

리포트그녀는 방년 36세 미모의 꽃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듯 미래지향적인 추진력으로 똘똘 뭉친 여자! 그런가 하면 비엔나커피처럼 지성적인 매력이 가득 넘치는 여자! 어디 그것뿐인가? 막 피어나기 시작한 라일락꽃처럼 신비한 향기까지 듬뿍 지닌 여자였다. 그렇게 매력짱, 지성짱, 향기짱인 그녀가 오직 하나 취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 노릇!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하이고, 맙소사! 이건 완전히 한 편의 휴먼 다큐멘터리이자 개그 콘서트네?
아들은 친정엄마가 키워 주신다. 외할머니 손에서 애지중지 자라난 그녀의 아들은 덜렁덜렁하면서 대범하다. 학교 급식비를 줘도 열흘 넘도록 가방 속에 그냥 넣어가지고 다닌다. 선생님한테 독촉 전화를 받고 “너 왜 아직 급식비 안 냈어?” 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엄마, 제가 한꺼번에 두 가지 일 못하는 거 잘 아시잖아요? 급식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친구들하고 농구해야죠, 게임해야죠…. 에이, 급식비 내는 그깟 일, 좀 천천히 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으악~ 내가 못살아~ 저 녀석 능청 좀 보라지. 엄마 속은 만두처럼 팡팡 터지는데!”
시험 점수 가지고도 엄마와 아들은 팽팽하게 대립한다. 기필코 평균 90점 이상은 받아야 된다는 엄마,
“에이~ 80점 정도면 되지 뭘 그러셔용?” 하면서 시침 뚝 떼는 아들.
결국 85점으로 협상은 마무리되고 아들은 이렇게 선언한다.
“엄마, 85점만 되면 자유를 주시는 거죠? 제 인생의 ‘3대 뽀인트’ 마음껏 할 수 있는 거죠?”

“그게 뭔데?”
콧방귀를 날리며 엄마가 물으면 아들은 진지하게 대답한다.
“친구랑 놀기! 마음껏 농구하기! 게임하기!”
이렇게 유머 지수가 높은 아들이지만, 엄마의 강렬한 사랑을 쏟아 부으려고 모든 준비를 끝낸 그녀의 눈에는 말 안 듣는 문제아에 더 가깝다.
아들이 하도 덜렁대고 잘 까먹어서 그녀는 출근하기 전에 집 안 가득히 노란 스티커를 붙여놓는다. 스티커엔 이렇게 씌어 있다.
“물은 잠갔겠지?” “전깃불은 껐겠지?” “숙제랑 준비물은 다 챙겼겠지?”
엄마로서 그녀의 위력은 ‘시간대별 체크하기’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가히 자식 챙기기 11단. ‘열혈 엄마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큼 격렬하고도 과격하게 그 증세가 나타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점검한다. “엄마, 지금 밥 먹였어요?”
“학교 갔어요? “학교 다녀왔어요?” “학원에 갔어요?” “학원 갔다 왔어요?” “지금 뭐 해요?”
“게임한 지 얼마 됐어요?” “옷 갈아입었어요?” “손은 씻었어요?” “저녁은 많이 먹었어요?”
“TV는 안 봐요?” 친정엄마도 인내심의 극기 훈련을 하다 못해 가끔은 반항을 하신다.
“야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제발 회사일이나 잘해라.”

“엄마, 엄마가 일일이 챙기시려면 힘들잖아. 나라고 이렇게 하고 싶은 줄 알아?
엄마는 내 마음도 몰라주시네!”
친정엄마는 딸의 성화에 못 이겨서 손주가 학원에서 5분만 늦게 와도 학원 쪽을 향해서 오토바이처럼 득달같이 달려가야 한다.
하루는 그녀가 나에게 한숨을 내쉬면서 하소연을 했다. 아들 때문에 속상해서 죽겠다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들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나요? 그야 당근 행복하기를 바라죠!
그럼 그냥 내비두셔유. 이미 그 아이는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고 있네요.
낙천적이고 즐겁게 살잖아요? 왜 그렇게 징징거리면서 달달 볶으세요?
아들이 동해 바다의 멸치도 아닌데 프라이팬에 달달달달~ 엄마가 아니라 꼭 교도관 같아요. 아들을 꽁꽁 묶어두고 감시하는 교도관!

물론 그녀의 반론은 분명하다. 사랑하니까! 엄마니까!
물론 그녀의 사랑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프로 정신’이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스토커 정신이다. 물론 체력도 받쳐주고 능력도 있으니까 사사건건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겠지만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아야 한다.
노는 것도 공부 못잖게 중요하다. 엄마의 편견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아이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그렇게 교도관 노릇을 하는 여자들이 있다.
나는 운전을 하지 못해서 렌터카 기사가 나를 운반한다.
결혼 7년 차의 39세 렌터카 기사였다. 고속도를 달리고 있는데 30분에 한 번꼴로 전화가 왔다. 전화 내용도 별게 아니었다.

“엉? 나 지금 고속도로 달리고 있어. 강사님 모시고 가는 중이지. 아니, 안 막혀. 응, 빨리 갈게~ 알았어. 집에 들어갈 때 사가지고 들어갈게. 아침에 나한테 말했잖아?
왜 자꾸 그래? 지금 말한 거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다섯 번이다. 당신 그거 알아? 제발 걱정 좀 하지 말라니까! 아휴…. 지금 나 운전 중이라니까 그러네!”
결국 렌터카 기사는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에게 미안한지 보충 설명을 했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그러는 거죠? 잔소리 땜에 못살겠어요. 제 귀에는 아마도 잔소리가 수북하게 쌓여서 딱지가 앉았을 거예요. 아휴, 그놈의 잔소리, 언제나 졸업하려나?”
나는 그에게 아내의 대변인 노릇을 해주었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잔소리라고 생각하세요? 남편에 대한
배려요, 사랑이요, 관심이죠. 아내가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잔소리를 하겠어요? 자기도 그 시간에 잠자고
놀고 쉰다면 더 좋을 거 아녜요? 그래도 사랑하는 남편이니까 그러는 거예요. 젊었을 때 실컷 들어주세요. 나처럼 나이 들면 기운 딸려서도 그 짓 못해요. 들어오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다니까요.

그렇다. 여자들의 ‘말 반복하기’는 일종의 프로 정신이요, 책임감인 동시에 자기 역할 찾기다.
의무감에 짓눌려서 자꾸만 걱정하고 불안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심리학자 C. 앨리스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이미 지나가버린 일, 35%는 앞으로 발생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것이고, 12%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걱정, 나머지는 건강에 대한 걱정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걱정은 거의 필요 없다는 것!
사실 걱정한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것도, 또 걱정 안 한다고 될 일이 안 되는 것도 없다. 제발 염려는 붙들어 매고 걱정과 불안은 ‘가불’하지 말자.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못난이 삼형제 인형처럼 인생에도 못난이 삼형제가 있다. 걱정, 후회, 포기. 그리고
이쁜이 삼형제도 있다. 희망, 웃음, 노력! 이제 우린 못난이 삼형제를 이쁜이 삼형제로 바꾸며 살아야 한다.
못난이랑 동거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쁜이와 살면 사사건건 웃으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 우리는 왜 사는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다면 행복으로 가는 특급 비자, 이쁜이 삼형제와 ‘동거동락’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영양가 없는 잔소리 뚝! 웃음과 칭찬 팡팡! 행복 지수가 놀랍게 상승할 것이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