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하고 졸린 춘곤증의 시절. 그러나 그 몽환적인 점묘화의 밑바닥에는 한 해의 희망이 깔려 있는 계절, 봄. 플루트는 이 봄과 꼭 닮은 악기다. 그리고 봄을 연상시키는 플루트 곡 하면 가장 먼저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떠오른다. 곡이 시작되면서 등장하는 복잡하고 유동하는 플루트 프레이즈들은 처음에는 독주로 연주된 다음 반복되고, 이어 오케스트라의 현악기가 반주된다. 마디 줄을 넘어서 연속적으로 흐르는 느슨한 리듬이나 여린 악센트로 드뷔시는 인상파 음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꿈결처럼 유려한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말라르메의 시에 기초한 이 작품에 나오는 목신은 피리를 불며 양떼를 몬다. 목신이 부는 피리는 플루트로 표현된다. 목신의 피리가 만들어진 사연도 흥미롭다. 그리스 신화에 목신 ‘판’이 나온다.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이고 염소의 다리와 뿔이 달려 있으며, 산과 들에 살면서 가축을 지킨다고 믿었다. 연애를 즐겨 그의 사랑을 받은 님프인 에코는 몸을 숨겨 메아리로 변했다. 시링크스도 그에게 쫓겨 갈대로 변신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했고, 이 갈대로 목신의 피리가 만들어졌다.
교향곡 가운데서 봄의 향기를 찾아볼까? 단연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이다. 베토벤은 아침 하늘이 밝아짐과 동시에 일어나 오후 두 시경까지 일을 한 다음 보통 저녁때까지 산책을 하는 것이 일과였다. 모두가 잠든 밤중까지 산책이 계속될 때도 있었다 하니 그는 정녕 자연과 함께하기를 즐겼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한 ‘전원’은 그가 평생 동안 사랑한 빈 교외 하일리겐슈타트의 숲을 산책하면서 쓴 것이었다. 시냇물의 재잘거림이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 천둥소리 등 자연의 모습이 음으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매우 이해하기 쉽고 그의 교향곡 가운데 특히 친근감이 느껴진다. ‘전원’에서 플루트는 꾀꼬리 소리를 표현하고 있다. 카를 뵘이 빈 필을 지휘한 음반은 ‘전원’ 최고의 명연주로 꼽힌다. 거장의 손길이 커다란 캔버스에 음으로 된 그림을 그려나간다. 뵘은 적당히 바랜 빛과 그림자로 소박한 일상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미술에서 크로키나 소묘 등 뼈대만으로도 전체적인 특징을 잘 잡아낸 작품은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플루트 음악 중에도 크로키 같은 작품이 있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플루트 솔로로 연주한 음반을 소개한다. 벨기에의 플루트 연주자 바르톨트 쿠이켄이 연주했으며 루소가 편곡한 작품이다. 이 편곡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다.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루소는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쓴 <백과전서>에서 음악 항목을 담당했을 정도로 음악 분야에 정통했다. 연주와 편곡에도 능했던 그는 비발디의 ‘봄’에서 오케스트라가 없이도 오케스트라 연주를 상상할 수 있도록 1775년 바이올린 독주 파트를 플루트 독주로 편곡했다. 바르톨트 쿠이켄은 루소의 편곡에 장식음을 더 늘리는 등 몇 가지 수정을 더했다. 그 결과 원래의 편곡보다 더 자연스럽다는 평을 얻었다. 트라베르소(나무로 만든 바로크 플루트)로 연주했는데, 순수하고 고풍스러운 음색이 귓가에 오래 남는다. 참고로 쿠이켄은 벨기에의 원전 연주 3형제다. 첫째인 빌란트 쿠이켄은 비올라다감바, 둘째인 지기스발트 쿠이켄은 바로크 바이올린, 막내인 바르톨트 쿠이켄은 트라베르소의 명인으로 손꼽힌다.
관현악곡에서 목관악기는 매우 다양한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데, 특히 플루트의 경우는 순수하고 우아한 이미지로 연주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에서는 바이올린과 플루트, 그리고 오보에가 모두 돈 후안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바이올린이 아름답고 화려한 요부로 묘사되는 반면 플루트는 부끄러움이 많은 순결한 여인으로 그려진다. 이 곡에서 바이올린은 돈 후안의 뜨거운 구애를 받아들여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플루트는 돈 후안의 열렬한 구애를 피해 도망가는 순진한 처녀의 캐릭터를 연주한다.
플루트 편곡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벨기에의 플루트 연주자 마르크 그로웰스의 음반이다. 왈로니 로열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와 더불어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유명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플루트 협주곡으로 편곡했다. 봄을 닮은 플루트의 밝은 음색과 풍부한 음량을 다채롭게 살려내면서 현악 앙상블에서도 그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그 결과 그로웰스의 연주에서 해맑은 표정과 다이내믹한 선율이 쾌적하게 결합되어 있다.
1825년에 작곡된 플루트 소나타 Op.4와, 1838년 작곡되어 미출판 상태로 있다가 1952년에 와서 메뉴인이 다시 발굴해낸 소나타 F장조에서도 그로웰스의 연주는 생생하게 다가온다. 플루트는 이따금 꽃샘추위와 건조한 황사 속에서도 여리지만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의 꽃잎을 닮았다. 봄의 생명력과 따스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여인의 마음같이 변덕스럽고 급작스러운 프레이징까지. 플루트의 음색 속에서 봄을 느껴보면 어떨까.
글을 쓴 류태형 씨는 공연 전문지 월간 <객석>에서 기자로 일해왔다. 현재는 편집장 직함을 달고 있지만 여전히 바깥 바람 쐬는 것을 좋아하며, 옛 연주가 담긴 음반과 생동감 있는 라이브 무대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교차하는 삶을 사랑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8시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의 퀴즈 코너에 출연해 청취자들과 즐거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Flute Music
1 ‘목신의 오후 전주곡’ 중 프랑수아 로랑이 플루트를 연주하고 미셸 플라송이 지휘했으며 툴루즈 시향이 협연한 음반. 산뜻한 터치로 그린 수채화풍의 봄이 연상된다. 깨끗하고 섬세한 앙상블이 빚는 상쾌한 울림이 매력적.
2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플루트 솔로로 연주한 음반. 벨기에의 플루트 연주자 바르톨트 쿠이켄이 연주하고 루소가 편곡한 작품이다. 트라베르소의 순수하고 고풍스러운 음색이 진한 울림을 준다.
Flute Music
3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플루트 협주곡으로 편곡한 음반. 플루트 연주자 마르크 그로웰스의 작품으로 로열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협연했다. 현악 앙상블에서도 살아나는 플루트 음색이 반갑다.
4 1972년과 1973년 베를린 예수그리스도 교회에서 카라얀의 지휘로 연주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을 들어보라. 그 정갈하고 균형 잡힌 연주에서 플루트의 순결한 음색이 더욱 돋보인다.
말라르메의 시에 기초한 이 작품에 나오는 목신은 피리를 불며 양떼를 몬다. 목신이 부는 피리는 플루트로 표현된다. 목신의 피리가 만들어진 사연도 흥미롭다. 그리스 신화에 목신 ‘판’이 나온다.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이고 염소의 다리와 뿔이 달려 있으며, 산과 들에 살면서 가축을 지킨다고 믿었다. 연애를 즐겨 그의 사랑을 받은 님프인 에코는 몸을 숨겨 메아리로 변했다. 시링크스도 그에게 쫓겨 갈대로 변신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했고, 이 갈대로 목신의 피리가 만들어졌다.
교향곡 가운데서 봄의 향기를 찾아볼까? 단연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이다. 베토벤은 아침 하늘이 밝아짐과 동시에 일어나 오후 두 시경까지 일을 한 다음 보통 저녁때까지 산책을 하는 것이 일과였다. 모두가 잠든 밤중까지 산책이 계속될 때도 있었다 하니 그는 정녕 자연과 함께하기를 즐겼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한 ‘전원’은 그가 평생 동안 사랑한 빈 교외 하일리겐슈타트의 숲을 산책하면서 쓴 것이었다. 시냇물의 재잘거림이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 천둥소리 등 자연의 모습이 음으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매우 이해하기 쉽고 그의 교향곡 가운데 특히 친근감이 느껴진다. ‘전원’에서 플루트는 꾀꼬리 소리를 표현하고 있다. 카를 뵘이 빈 필을 지휘한 음반은 ‘전원’ 최고의 명연주로 꼽힌다. 거장의 손길이 커다란 캔버스에 음으로 된 그림을 그려나간다. 뵘은 적당히 바랜 빛과 그림자로 소박한 일상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미술에서 크로키나 소묘 등 뼈대만으로도 전체적인 특징을 잘 잡아낸 작품은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플루트 음악 중에도 크로키 같은 작품이 있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플루트 솔로로 연주한 음반을 소개한다. 벨기에의 플루트 연주자 바르톨트 쿠이켄이 연주했으며 루소가 편곡한 작품이다. 이 편곡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다.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루소는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쓴 <백과전서>에서 음악 항목을 담당했을 정도로 음악 분야에 정통했다. 연주와 편곡에도 능했던 그는 비발디의 ‘봄’에서 오케스트라가 없이도 오케스트라 연주를 상상할 수 있도록 1775년 바이올린 독주 파트를 플루트 독주로 편곡했다. 바르톨트 쿠이켄은 루소의 편곡에 장식음을 더 늘리는 등 몇 가지 수정을 더했다. 그 결과 원래의 편곡보다 더 자연스럽다는 평을 얻었다. 트라베르소(나무로 만든 바로크 플루트)로 연주했는데, 순수하고 고풍스러운 음색이 귓가에 오래 남는다. 참고로 쿠이켄은 벨기에의 원전 연주 3형제다. 첫째인 빌란트 쿠이켄은 비올라다감바, 둘째인 지기스발트 쿠이켄은 바로크 바이올린, 막내인 바르톨트 쿠이켄은 트라베르소의 명인으로 손꼽힌다.
관현악곡에서 목관악기는 매우 다양한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데, 특히 플루트의 경우는 순수하고 우아한 이미지로 연주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에서는 바이올린과 플루트, 그리고 오보에가 모두 돈 후안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바이올린이 아름답고 화려한 요부로 묘사되는 반면 플루트는 부끄러움이 많은 순결한 여인으로 그려진다. 이 곡에서 바이올린은 돈 후안의 뜨거운 구애를 받아들여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플루트는 돈 후안의 열렬한 구애를 피해 도망가는 순진한 처녀의 캐릭터를 연주한다.
플루트 편곡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벨기에의 플루트 연주자 마르크 그로웰스의 음반이다. 왈로니 로열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베토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와 더불어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유명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플루트 협주곡으로 편곡했다. 봄을 닮은 플루트의 밝은 음색과 풍부한 음량을 다채롭게 살려내면서 현악 앙상블에서도 그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그 결과 그로웰스의 연주에서 해맑은 표정과 다이내믹한 선율이 쾌적하게 결합되어 있다.
1825년에 작곡된 플루트 소나타 Op.4와, 1838년 작곡되어 미출판 상태로 있다가 1952년에 와서 메뉴인이 다시 발굴해낸 소나타 F장조에서도 그로웰스의 연주는 생생하게 다가온다. 플루트는 이따금 꽃샘추위와 건조한 황사 속에서도 여리지만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의 꽃잎을 닮았다. 봄의 생명력과 따스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여인의 마음같이 변덕스럽고 급작스러운 프레이징까지. 플루트의 음색 속에서 봄을 느껴보면 어떨까.
글을 쓴 류태형 씨는 공연 전문지 월간 <객석>에서 기자로 일해왔다. 현재는 편집장 직함을 달고 있지만 여전히 바깥 바람 쐬는 것을 좋아하며, 옛 연주가 담긴 음반과 생동감 있는 라이브 무대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교차하는 삶을 사랑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8시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의 퀴즈 코너에 출연해 청취자들과 즐거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Flute Music
1 ‘목신의 오후 전주곡’ 중 프랑수아 로랑이 플루트를 연주하고 미셸 플라송이 지휘했으며 툴루즈 시향이 협연한 음반. 산뜻한 터치로 그린 수채화풍의 봄이 연상된다. 깨끗하고 섬세한 앙상블이 빚는 상쾌한 울림이 매력적.
2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플루트 솔로로 연주한 음반. 벨기에의 플루트 연주자 바르톨트 쿠이켄이 연주하고 루소가 편곡한 작품이다. 트라베르소의 순수하고 고풍스러운 음색이 진한 울림을 준다.
Flute Music
3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플루트 협주곡으로 편곡한 음반. 플루트 연주자 마르크 그로웰스의 작품으로 로열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협연했다. 현악 앙상블에서도 살아나는 플루트 음색이 반갑다.
4 1972년과 1973년 베를린 예수그리스도 교회에서 카라얀의 지휘로 연주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을 들어보라. 그 정갈하고 균형 잡힌 연주에서 플루트의 순결한 음색이 더욱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