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1월호 표지 작품인 ‘내린다, 부푼다’(2007) 앞에 선 동양화가 이지연 씨.
작품에 드러난 겹겹의 잔가지들을 표지에 모두 담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일부분만 차용했다.
흔히 ‘쓸쓸한’ ‘황량한’ 같은 수식어로 겨울나무를 묘사하는 데 비해 이지연 씨의 해석은 참 신선하다. 그의 관점은 <행복> 12월호 표지 작품의 제목인 ‘내린다, 부푼다’와도 상통한다. “눈이 내리는 싸늘한 겨울에도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어요. 그 기운은 쌓인 눈을 부풀게 해요. 나무도 싹을 틔울 준비를 하느라 부풀어요. 이미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지요.”
얼음장 밑에서도 이미 물이 돌고 있다. 그래서 겨울 물은 유난히 맑은 느낌이란다. 물이 피어나려는 것 같다. 새 생명, 약동하는 기운이 응축되어 있다. “생명은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않아요. 순환해요. 마치 겨울이 사계의 끝이 아니라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듯이 말이지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불가에서 말하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 그에게는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게 여겨졌다. 관념으로 구분 짓지 않으니 경계가 사라지고, 처음과 끝도 없어진다.
이지연 씨의 설경도 그렇다. 나무가 무수히 겹을 이루고 서 있다. 저 멀리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다. 끝없이 펼쳐졌다. 그 가운데 멋진 나무 한 그루 찾기 어렵다. “크고 잘생긴 나무는 기가 세서인지 어쩐지 위압감이 느껴져요. 산이 높아질수록 나무의 키는 낮아지는데, 제게는 그렇게 키 작고 가녀린 나무가 더 편안합니다.” 뿌리에서 시작해 줄기를 지나 이리저리 꺾이고 휘어지며 점점 가늘게 이어져가는 나뭇가지야말로 순환하는 자연을 가장 잘 상징하는 모티프라고 생각한다.
이지연 씨는 산을 참 좋아한다. 원경보다는 근경으로 본 산이 좋다. 산을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면 시정詩情을 표현하기 어렵다. 그는 포커스를 좁혀 가까이 들여다보는 산에서 감흥을 느낀다. “산에 들어가면 일단 천천히 걸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숲과 함께 숨 쉰다는 느낌이 들지요. 그런 순간이 되어야 스케치를 시작합니다.” 이지연 씨는 이때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확 좋아지는 기분”과도 같단다. 전체 작업 중 현장에서 숲을 직접 보면서 스케치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들인다. 감흥이 있어야 장면이 포착되고, 장면이 포착되면 스케치하면서 기운을 한꺼번에 끌어올린다. 작업실로 돌아와 막상 붓을 쥘 때는 차분해진다. 먹으로 가지를 잇고 또 잇고, 눈꽃을 무수하게 찍고…. 같고도 다른 붓질을 거듭하는 동안 작가는 무념무상에 이른다. 그가 붓질을 하는지, 붓이 그를 움직이는지 헷갈린다.
(왼쪽) ‘눈뜨다’(2007), 한지에 수묵
(오른쪽) ‘12월의 나무’(2007), 한지에 수묵
프로필 동양화가 이지연 씨는 작년 노암갤러리에서 열린 <내린다, 부푼다>전을 통해 데뷔했다. 1979년에 태어난 그는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일곱 차례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올해 5월 7일 공화랑에서 열릴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