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스마트 실용주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재단, 모노톤이나 베이지 톤의 차분한 색상, 현대적이고 실용적 스타일…. 뉴욕 패션을 정의할 때 떠오르는 수식어들이다. 이처럼 뉴욕 패션은 단순하고 장식을 절제한 디자인이 지배적인데, 이는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볼거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지극히 평범함을 추구하는 ‘놈코어 룩(노멀normal과 핵심core을 합성한 신조어로, 누구나 옷장 속에 하나쯤 있을 법한 기본 아이템을 활용해 세련되게 연출하는 것)’이 급부상하면서 아메리칸 캐주얼을 비롯한 뉴욕 패션은 가장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일명 ‘스마트 스타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실 뉴욕은 패션의 도시로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다. 1940년대 이전까지 파리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1970년대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도나 카란 등 과도한 장식과 손질하기 어려운 화려한 소재를 사용하는 유럽 패션과 차별화하는 디자이너가 활약하며 시장이 급성장한 것. 뉴욕 스타일 케이프란 무채색의 튀지 않는 색상조차 어느 옷에나 맞춰 입기 편한 전략이 숨은 기능적이고도 편리한 옷이다.
뉴욕 스타일 케이프
1 네크라인의 너구리 털이 탈착 가능한 그레이 컬러의 케이프는 49만 8천 원, 꼼빠니아.
2 몸 판은 니트 소재, 팔 부분은 모직 소재를 패치워크한 케이프 코트는 49만 8천 원, 쟈니 해잇 재즈.
3 퍼가 탈착 가능해 활용도가 높은 헤링본 패턴의 케이프 코트는 가격 미정, 보티첼리.
파리, 예술적 감성 충만
파리는 오트 쿠튀르가 태어난 곳이다. 자신의 이름을 상표로 내세워 옷을 만들기 시작한 도시, 반세기가 넘도록 세계 최고의 패션 하우스로 군림하는 샤넬과 크리스챤 디올을 배출한 도시라는 것만으로 파리는 ‘패션의 수도’라는 명성을 얻을 자격이 충분하다.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키고, 상복으로만 생각하던 검은색을 가장 우아하며 가장 패셔너블한 색으로 변모시킨 샤넬 그리고 2차 세계대전으로 삭막해진 여성들에게 새로운 실루엣 ‘뉴룩’을 제안한 크리스챤 디올 모두 패션계의 혁명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에 비해 현대에 와서는 입생로랑, 칼 라거펠트, 마틴 마르지엘라 등 노장 디자이너를 능가하는 젊은 디자이너의 배출이 주춤한 편. 장 폴 고티에 이후 이렇다 할 톱 디자이너가 없다. 랑방, 발렌시아가 같은 굵직굵직한 브랜드의 수장 자리도 현재는 앨버 엘바즈, 알렉산더 왕 등 미국이나 영국 출신 디자이너가 꿰차고 있는 실정. 하지만 그 역사와 전통이 쉽사리 무너질 리는 없으니! 파리는 여전히 혁신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케이프 역시 소재나 패턴, 커팅이나 형태 등에서 가장 새롭고 창의적이다. 평범한 것보다 독창적이고 때로는 실험적이기까지 한 파리 스타일의 케이프로 개성을 표현해볼 것.
파리 스타일 케이프
1 모 소재의 인디언 패턴 케이프는 26만 9천 원, 매긴.
2 머플러를 세트 착장으로 구성한 그레이 컬러 블록 배색의 케이프는 98만 5천 원, 오브제.
3 팔 라인에 지퍼 트임이 있고 밍크 퍼와 패딩을 패치워크한 케이프는 4백20만 원, 사바티에.
런던, 보헤미안 랩소디
영국은 패션에서 매우 상반된 얼굴을 보인다. ‘신사의 도시’ 답게 말쑥한 고급 맞춤복의 중심지이자 구세대 가치와 금기에 반항하고 도전하는 펑크록의 발생지로서 이중적 코드를 지니고 있는 것. 그런데 이 두 가지 특징은 서로 조화롭게 영향을 미치며 영국 패션의 성격을 완성했다.타탄체크, 킬트 스커트, 아가일 니트, 잉글리시 테일러링 등 전통 요소와 번들거리는 싸구려 가죽과 고무, 과격한 장식 등 무정부주의적 미학이 만나 런던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그 중심에서 획일적 주류 패션의 미적 질서에 저항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디자이너로 비비안 웨스트우드, 폴 스미스 등을 꼽을 수 있다. 버버리는 주류와 비주류, 전통과 현대, 구세대와 신세대 간 줄타기에 성공하며 동시대인의 큰 사랑을 받은 대표 영국 브랜드. 한마디로 패션에서 ‘영국적’이라 함은 전통적 테크닉과 재료를 기존 틀에서 벗어나 모더니티와 위트로 풀어낸 것. 이러한 런던식 케이프는 비교적 캐주얼하고 마치 담요를 뒤집어쓴 것처럼 편안하고 포근하게 연출할 수 있다. 방랑자적 자유로운 영혼과 보헤미안 감성을 지닌 사람에게 추천한다.
런던 스타일 케이프
1 네크라인을 가죽으로 트리밍한 체크무늬 패턴의 케이프 코트는 53만 8천 원, 클럽 모나코.
2 앞면과 뒷면의 기장 차이로 언밸런스한 후드가 달린 케이프 코트는 가격 미정, 비비안 웨스트우드.
3 옆 라인에 단추가 있어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한 체크 패턴의 케이프 코트는 82만 5천 원, 닥스 레이디스.
밀라노, 우아한 럭셔리
프랑스 다음으로 패션의 중심지로 꼽히는 이탈리아. 수도는 로마지만, 패션의 수도는 밀라노다. 파리 패션에 의존하던 이탈리아는 귀족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등장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일까? 이탈리아 패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고급스러운 소재와 장인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 실크, 리넨, 모직, 가죽 등 패션의 주요 소재를 자국에서 생산하는데 이는 패션 산업을 위한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또 오랜 세월에 걸쳐 발달한 가내수공업과 외고집마저 느껴지는 장인 정신 덕에 ‘메이드 인 이탈리아’는 최상급 제품을 대표하는 의미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밀라노 패션은 고급스럽고 우아함의 상징이 됐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살바토레 페라가모, 지아니 베르사체 등이 대표적 디자이너로, 그들의 작품은 미니멀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세련되면서 유연하다. 또 섹시하기까지 하다. 직접적 노출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소재를 유연하게 재단한 촉각적 감성의 섹시함이다. 케이프 역시 화려한 장식이나 문양 없이 단순히 소재만으로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며, 착용하면 귀족적 품격까지 더할 수 있다. 평소 여성미가 흐르는 우아한 스타일을 추구한다면 제격일 듯.
밀라노 스타일 케이프
1 고급스러운 소재의 케이프 코트는 가격 미정, 살바토레 페라가모.
2 네크라인에 양털을 장식해 우아함을 더한 캐시미어 소재의 케이프는 1백60만 원대, 에스카다.
3 니트 칼라가 탈착 가능한 블랙 레더 소재의 케이프 재킷은 1천1백4만 원, 미쏘니.
- 시즌 핫 아이템 스타일링 컬처 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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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가 이번 시즌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패션이 시대를 반영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어려운 시대에 슈퍼 영웅들의 망토가 트렌드 중심에 자리한 건 우연의 일치일까? 이번 겨울 시린 몸을 따뜻하게 감싸줄 든든한 케이프를 찾는다면, 다음 패션 도시 네 곳의 스타일링법에서 힌트를 얻을 것.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