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립스틱의 다섯 가지 변주
코코 샤넬의 우아하고 세련된 레드 Gabrielle Chanel
레드 립스틱의 우아한 매력을 마드무아젤 샤넬만큼 극명하게 드러낸 여성이 또 있을까. 그는 평소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는 외출하지 않을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모습을 추구했다. 특히 포인트 메이크업으로 레드 컬러 립스틱을 자주 애용했다고. 이때 진주 목걸이를 착용해 붉은 입술이 도드라져 보이게 했으며, 피부 톤이 환해 보이는 효과까지 누렸다. 핑 크 오팔과 화이트 토파즈 반지, 목걸이는 모두 레쿠 제품.
마릴린 먼로의 관능적인 레드Marilyn Monroe
물결치듯 출렁이는 금발과 아치형으로 구부러진 눈썹, 충분히 마스카라를 칠한 풍성한 속눈썹과 옷깃만 스쳐도 묻어날 듯 윤기가 흐르는 새빨간 입술. 1950년대를 대표하는 뮤즈인 마릴린 먼로의 관능미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특히 그는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살짝 위로 올라가도록 레드 립스틱을 발라 섹시한 매력을 배가시켰다.
줄리아 로버츠의 역동적인 레드 Julie Roberts
작은 얼굴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입, 그 붉은 입술에서 터지는 함박웃음은 줄리아 로버츠의 매력을 발산시 키기에 충분하다. 자연스러운 브라운 컬러 펜슬로 눈썹을 그려 넣고 입술 전체에 선명한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그의 모습은 자신감 넘치는 활동적인 여성상을 떠올리게 한다.
탕웨이의 신비로운 레드 Tang Wei
영화 <색, 계>에서 어린 소녀의 낯빛을 성숙한 여인으로 변화시킨 것 역시 레드 립스틱이다. 창백한 듯 파리한 피부 위에 바른 핏빛의 붉은 입술은 이제 막 소녀에서 여인으로 거듭났음을 의미한다. 레드 립스틱을 입술에 가볍게 찍듯이 바른 다음 손가락으로 넓게 펴 바르면 자연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김혜수의 강렬하고 위험한 레드 Kim Hye Soo
은밀하고 노련한 악녀의 이미지에 레드 립스틱이 빠질 수 없다. 영화 <타짜>에서 마담 역, <모던보이>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조난실 역을 맡은 김혜수 역시 팜 파탈적인 매력을 레드 립스틱으로 표현했다. 이때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컨실러로 피부결점을 커버하고 립 라이너로 입술 선을 또렷하게 만든 다음 레드 립스틱을 바를 것.
“우윳빛의 밝은 톤 피부라면 노란색이나 주황색이 감도는 레드, 노란 톤 피부라면 와인 빛의 레드 컬러 립스틱이 잘 어울립니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고 싶다면 연어의 속살과 같은 핑크 빛 레드를 선택하세요.”
1 에스티로더의 퓨어 칼라 립스틱 베리 코디얼 초콜릿 컬러와 짙은 레드가 부드럽게 마블링되어 있어 입술에 깊이 있는 컬러를 남긴다. 3만 원.
2 크리니크의 컬러 서지 립스틱 #214 보습 성분과 색소 성분이 입술의 잔주름을 메워주어 매끈하고 건강한 입술로 연출한다. 2만 4천 원.
3 겔랑의 키스키스 루즈 인피니 120 입술에 부드럽게 발리며 매트하게 마무리되어 깔끔한 느낌을 연출한다. 3만 3천 원.
4 베네피트의 풀 피니시 립스틱 소량을 손가락으로 입술 전체에 펴 바르면 자연스러운 붉은 입술이 연출된다. 2만 8천 원.
5 헤라의 더 루즈 홀릭 레드오렌지 상큼한 사과 향기가 나며 소프트 슬라이딩 오일이 첨가되어 입술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 2만 7천 원.
6 엘리자베스 아덴의 컬러 인트리그 이펙트 립스틱 01 비타민 A, C와 알로에 성분이 들어 있어 입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며 윤기를 부여한다. 3만원.
7 슈에무라의 루즈 언리미티드 크림 마뜨 165M입술을 건조하지 않게 하는 크리미한 텍스처로, 매트한 마무리감이 특징. 3만 2천 원.
8, 10 샤넬의 루쥬 알뤼르 #08, # 58 미니멀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립스틱으로 입술에 가볍게 발리며 선명한 붉은색이 오랫동안 유지된다. 3만 8천 원.
9 디올의 루즈 디올 #721 입술의 볼륨감을 살려주며 미네랄 파우더 성분이 진주 빛의 반짝임을 남긴다. 3만 5천 원.
레드 립스틱의 컬러 레시피
1 레드 + 블랙 사무실에서 강렬한 레드 립스틱을 부담스럽지 않게 연출하려면 블랙 아이라이너를 십분 활용할것. 레드 립스틱은 그 하나만으로도 돋보이기 때문에 다른 부위의 강한 색조 화장은 피하는 것이 좋다. 대신 깔끔하게 아이라인만 그려 넣으면 데이 메이크업으로도 부담스럽지 않다. 펜슬은 쉽게 번질 수 있으므로 젤 타입 아이라이너를 사용할 것. 마스카라는 여러 번 덧발라 볼륨감을 살리기보다는 속눈썹을 정리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바르는 것이 좋다.
2 레드 + 샴페인 골드 특별한 저녁 모임이라면 화려하게 반짝이는 주디스 리버 클러치백과 레드 컬러 립스틱은 필수 아이템. 이때 샴페인 골드 아이섀도를 매치하면 흥겨운 파티의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먼저 손가락을 사용해 눈두덩 전체에 샴페인 골드 아이섀도를 펴 바른다. 눈 언더 부분에는 다크 브라운 컬러의 아이섀도를 바른 뒤 그 위에 샴페인 골드 아이섀도를 덧발라 자연스럽게 그러데이션한다. 조명 아래 당신의 모습은 그 어느 날보다 눈부실 듯.
3 레드 + 오렌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캐주얼 룩에 레드 립스틱을 사용할 경우 옅은 오렌지나 앰버 컬러 블러셔로 피부에 생기를 줄 것. 이때 블러셔는 볼 중앙에 옅게 펴 바르는데, 그 위에 파우더를 덧발라 원래 자신의 혈색인 양 표현하는 것이 좋다. 파우더 타입 블러셔를 사용할 경우 블러셔를 묻힌 브러시를 가볍게 한번 털고 사용해야 화장이 뭉치지 않는다. 펄이 들어가지 않은 크림 타입 블러셔를 펴 바르면 좀 더 자연스러운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할 것.
4 레드 + 베이지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페미닌 룩에 레드 립스틱을 매치하려면 도자기 같은 피부 표현에 신경을 쓰자. 피부에 비해 지나치게 밝은 파운데이션을 사용하면 얼굴과 목의 경계를 만들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따라서 자신의 피부 톤에 맞는 파운데이션을 바른 뒤 이마와 코 부분에 하이라이트를 주어 입술은 선명하게, 얼굴은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브러시로 파운데이션을 펴 바른 뒤 스펀지로 가볍게 두드려주면 자연스러운 윤기가 도는 피부 메이크업이 완성된다.
컬렉션에서 배우는 레드 립스틱 활용법
1 브라운을 가미해 부드러운 레드를 즐겨라
기존에 강하고 섹시한 이미지를 어필했던 돌체앤가바나가 이번 시즌 새롭게 바뀌었다. 귀족적인 우아함마저 느껴지는 따뜻하고 편안한 스타일의 룩을 제안한 것. 이때 립스틱은 브라운 톤이 감도는 레드 컬러가 적당하다. 은은하면서도 부드럽게 가을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것. 아이 메이크업은 브라운 컬러 아이섀도를 눈두덩 전체에 바른 다음 눈 앞머리 부분에만 펄이 든 골드 컬러 아이섀도를 덧발라 고혹적이며 그윽한 눈매를 완성해보자.
2 피부 톤은 최대한 맑게 표현하라
중세의 고딕 모티프에 정교한 수공예풍 디테일을 가미해 로맨틱한 느낌을 살린 클로에 룩에 레드 립스틱을 사용했다. 이때 피부 톤은 맑고 가볍게 연출해 입술에만 시선이 가도록 한다. 부드러운 타입의 립스틱으로 입술을 촉촉하게 연출하는 데 신경 쓸 것. 레드 립스틱을 입술 전체에 바른 뒤 면봉으로 립 라인 부분만 둥글리면 자연스러운 느낌을 낼 수 있다. 파우더는 생략해 피부에 건강한 윤기가 감돌도록 한다.
3 컨실러로 입술 라인을 정리하라
여성의 보디라인을 한껏 강조해 섹시한 베드 걸 이미지를 내뿜는 디스퀘어드. 물랑루즈의 2008년 판을 보는 듯한 이번 쇼에도 레드 립스틱을 사용했다. 입술 라인이 살아 있게 레드 립스틱을 바르려면 먼저 컨실러로 입술 가장자리를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 립 브러시를 사용해 레드 립스틱을 입술 전체에 꼼꼼하게 바를 것. 립스틱을 바른 다음 티슈로 한 번 찍어내고 다시 그 위에 립스틱을 덧바르면 컬러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
4 직선적인 눈썹으로 중성적인 매력을 가미하라
몸을 타고 흐르는 듯 부드럽게 떨어지는 루스한 피트 의상을 선보인 도나카란에서는 마치 생전 처음 레드 립스틱을 바른 듯한 소녀의 모습을 담아냈다. 방금 손에 든 라즈베리를 한 움큼 먹은 양 립 라인이 분명하지 않게 레드 립스틱을 표현한 것. 매트한 타입의 립스틱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듯 입술에 펴 바르면 된다. 이때 직선적인 느낌을 강조해 눈썹을 그리면 중성적이면서도 소녀와 같은 느낌을 낼 수 있다.
여자의 자존심, 혹은 화려한 위장
립스틱에 관한 우스갯소리부터 한마디 해보자. 여자들이 평생 먹는 립스틱의 양은 평균 세 개 정도란다. 반면 남자들이 평생 먹는(혹은 먹어야 할) 립스틱의 양은? 열 개란다. 이 농담을 처음 접했던 청소년 시절의 나는 단박에 속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박에 속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최근의 광고에도 립스틱이 등장한다. 잘생긴 남자 둘이 나란히 앉아 다정하게 피아노를 친다. 그 사이로 둘을 의미심장하게 보고 있는 여자 한 명. 카피는 다음과 같다. “두친구의 위 속에 헬리코박터균을 심은 것은…? 키스.” 죽마고우의 우정을 위협한 불장난의 당사자인 그녀의 입술에도 빨간 립스틱이 선연했다. 남녀 간의 유혹과 성애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빨간 립스틱만 한 것도 없다. 그 신비한 화합물이 만든 부드러운 듯 날카로운 절묘한 폐곡선은 수많은 사진으로, 그림으로, 기호로, 심지어 소파로까지 재탄생되었다. 최근에 본 가장 도발적인 붉은 립스틱은 뜻밖에도 국민 여동생 김연아의 것이었다. 블랙&레드의 탱고 스타일 의상을 입고 보여준 유명한 스파이럴 동작에서 그는 입술을 살짝 비틀어 깨물며 심사위원을 뜨겁게 응시했다. 연기 점수를 위해 의도한 것이라지만, 그 어린 입술에 묻어 있는 짙은 립스틱에선 한없이 도발적인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덕분에 TV를 보던 남자 어른들, ‘아이에게 이럼 안 되지’ 하며 화들짝 많이들 놀랐다.
유럽에선 노천카페 같은 공공장소에서 거울을 들고 립스틱을 바르면 거리의 여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지만, 반대로 많은 영화 속에서 짙은 립스틱은 정신적 순결을 상징하기도 한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여주인공 크랄랄라나 <리빙 라스베가스>의 여주인공 사라는 모두 거리의 여자. 남자들에게 참혹한 유린을 당한 후 그들의 정신적 고통을 표시하는 이미지로 공히 쓰인 것이 바로 입가에 어지럽게 번진 핏빛 립스틱 자국이었던 것이다. 영화가 아닌 일상 속에서 붉은 립스틱은 여자가 지키는 최소한의 미적 자존심이다. 많은 여자들이 맨얼굴로 나가야 하는 급한 외출의 순간에, 최소한의 예의로 립스틱만 바르곤 한다. 이런 경우에 바르는 립스틱은 붉으면 붉을수록 좋다. 맨얼굴에 꽂힐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일종의 위장일 테니까. 하지만 그런 오만한 응급 화장을 가능케하는 희고 매끈한 맨얼굴을 갖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남자들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얼마 전, 배우 이승연이 DJ를 보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일이다. 매주 보는 얼굴이지만, 유독 그날 그는 정말로 새빨간 립스틱을 제대로 바르고 있었다. 그때 내가 멍청한 말실수를 했다. “이야, 오늘은 한창 때 화장을 다시 했네. 예쁜걸!” 본의는 칭찬이었지만, 무심한 실수를 두 가지나 범한 것이다. 첫째, 아직도 젊고 화사한 여성에게 ‘한창때’란 말은 너무 몹쓸 표현이었다. 둘째 옛날 화장은커녕 새빨간 립스틱은 요즘 트렌드라는 ‘레이디 라이크 룩’의 히트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사실 나 같은 남자에게 립스틱은 참 곤란한 습관에 다름 아니다. 밥 먹을 때 입가에 끈적거리는 게 조금만 묻어 있어도 쉴 새 없이 티슈를 뽑아 드는 내게는 입술 치료용 립글로스조차도 찝찝한 이물질이 되고 만다. 간혹 게으른 와인 바의 와인 잔에서 발견되는 덜 닦인 립스틱 자국이나, 둔감한 중년 부인의 앞니에서 발견되는 립스틱의 잔해는 나 말고도 모두가 공감하는 이물질로서의 립스틱을 표현하기도 한다. 위장 수단으로서의 이물질과 미적 자존심으로서의 화장품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넘나들게 하는 건, 역시 쓰는 이의 섬세함이다. 예컨대 정겨운 인사 키스 후 꼭 내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닦아주는 내 여자친구의 속 깊은 배려 같은 것이다. 입술 하나 건넜을 뿐인데, 립스틱의 본질이 그토록 달라질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섹시한 그는 잘 알고 있다. ‘도발’과 ‘우아’라는 여자의 상반된 두 얼굴을 가르는 경계선은 바로 그 붉은 립 라인인 것이다
- 샤넬과 춘자 사이 레드 립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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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갓 찍어낸 듯 조악하고 값싼 진주가 있는가 하면, 조개의 품 안에서 고이 자라 영롱한 빛을 내뿜는 고급스러운 진주도 있다. 레드 립스틱은 이러한 진주와 닮았다. 3초 안에 당신을 우아하거나 촌스럽게 만드는 힘이 새빨간 립스틱 한 통에 담겨 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