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의 구성원이 한데 모였다. 오른쪽부터 창립자 도정한 대표,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스터 디스틸러&블렌더 앤드루 샌드, 홍보와 마케팅을 맡은 김유빈 과장.
스코틀랜드 증류기 회사 포사이스에 디자인을 맡겨 제작한 증류기. 두 대의 증류기를 통해 2차 증류를 거친 원액을 사용한다.
한국에 위스키의 영혼을 불어넣다
독한 증류주를 스피릿spirit(영혼)이라 부른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 불을 붙이면 불꽃이 일어 영이 깃들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위스키whisky의 어원이 켈트어로 ‘생명수’를 의미하는 어스퀴보Usquebaugh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이유다. 이른바 생명의 술, 위스키가 한국에서도 그 명맥을 이어 새 탄생을 예고했다. 국내 최초의 크래프트 싱글 몰트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가 지난 9월, 오크통에서 첫 번째 위스키를 꺼낸 것.
경기도 남양주 끝자락, 고도가 높은 지대에 위치한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를 찾았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다름 아닌 재미교포인 창립자 도정한 대표,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스터 디스틸러&블렌더 앤드루 샌드, 그리고 한국인 직원들로 구성한 ‘세 개의 사회’라는 뜻. 이 특별한 사회를 설계한 도정한 대표는 어떻게 수입산 위스키가 전부인 한국 땅에 싱글 몰트 증류소를 짓게 되었을까?
도정한 대표가 오크통에 숙성 중인 위스키를 피펫pipette이라는 도구로 꺼내고 있다.
분쇄한 몰트는 입자 크기에 따라 허스크husk(보리 껍질), 그리스트grist (맥아 가루), 플라워flour(고운 가루)로 나누어 2:7:1 비율로 당화에 사용한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한국 지사 최연소 임원이라는 경력을 과감히 내려놓고, 수제 맥주 브랜드 ‘핸드앤 몰트’를 창립한 인물이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부흥기를 연 도정한 대표는 또다시 새롭고도 고난이 예견된 길을 개척하고자 결심했다. 수제 맥주시장보다 더욱 척박한 시장, 바로 위스키였다. “옛날부터 위스키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만과 일본도 좋은 위스키를 만드는데, 우리나라에는 왜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가 없을까 의문이었어요. 그리고 제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기왕 첫걸음을 뗀다면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숙련된 마스터 디스틸러를 찾아 나섰고, 스코틀랜드 출신의 앤드루 샌드를 영입했다. 그는 열여덟 살 나이에 글렌리벳 증류소에서 시작해 올해로 42년째 증류소에서 일하고 있는 일명 ‘위스키 장인’이다. 그리고 한국 싱글 몰트위스키의 길을 연다는 도정한 대표와 뜻을 같이한 한국인 직원들까지 쓰리소사이어티스의 구성원이 모두 모였다.
2차 증류 시 중류만을 커팅해 얻은 증류액. 이 맑은 스피릿을 오크통에 숙성하면 호박색을 띠는 위스키가 된다.
한국을 상징하는 호랑이,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유니콘,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를 담은 쓰리소사이어티스 로고.
특별한 위스키 한잔이 되기까지
위스키는 발아한 보리, 즉 몰트와 물, 효모 세 가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쓰리소사이어티스에서는 스코틀랜드에서 수입한 크리스프Crisp사의 몰트를 사용하는데, 한국 보리보다 씨알이 굵고 더 고소한 맛이 난다. 분쇄한 몰트는 보리 안에 있는 전분을 당으로 전환시키는 당화 과정을 거치고, 당화된 엿기름 같은 맥아즙은 72시간 동안 발효시킨다. 발효가 끝나면 도수 7~9의 알코올 워시가 생성되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인 증류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키세스 초콜릿 모양의 증류기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증류 장비 회사인 포사이스Forstyths에서 맞춤 제작한 것이다. 1차 증류가 끝난 로 와인low wine을 2차 증류기에서 초류, 중류, 후류로 분리하는 커팅cutting 작업을 진행한다. 이때 증류의 중간 단계인 중류만 사용하는데, 초류는 아세톤과 메탄올을 함유해 마실 수 없고, 후류는 도수가 60%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루가 알코올 도수와 맛과 향을 고려해 커팅한 증류액의 알코올 도수는 68~74 정도로, 이를 스피릿spirit이라 한다. 스피릿을 오크통에 숙성해야 비로소 우리가 마시는 위스키가 되는 것이다. 쓰리소사이어티스에서는 헤븐 힐Heaven Hill, 짐빔Jim Beam, 올드 피츠제럴드Old Fitzgerald, 와일드 터키Wild Turkey 등 해외 유명 증류소의 다양한 오크통을 사용한다. 오크통에서 위스키가 숙성되는 동안 나무가 위스키 원액을 먹었다 뱉었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이를 통해 위스키에 나무 향과 색이 배어들어 독특한 풍미가 생긴다.
“스코틀랜드 날씨는 1년 내내 습하고 서늘해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연교차가 커요. 기온차가 클수록 오크통의 수축과 팽창 폭이 커지기 때문에 숙성도 훨씬 빨리 되지요.” 앤드루에 따르면 한국이 스코틀랜드보다 숙성 속도가 2~3배 빠르다. 의외로 한국이 위스키를 만들기에 꽤나 적합한 기후 환경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스키는 반드시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사계절을 담은 첫 번째 싱글 몰트위스키 ‘기원’이 오크통에서 1년 만에 세상에 나온 것도 그런 이유다.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루가 증류기의 창을 여는 모습.
오크통을 열거나 오크통 속의 위스키를 빼는 데 쓰는 각종 도구.
국내 싱글 몰트위스키의 기원이 되다
‘기원’이라는 단어에는 ‘사물의 근원’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람’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국 위스키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세계적 위스키로 인정받고자 하는 쓰리소사이어티스의 바람을 담아 이름 지었다. 소사이어티 컬렉션의 첫제품은 한국을 상징하는 호랑이 에디션으로 쓰리소사이어티스가 처음 증류를 시작한 2020년 6월 15일을 기념해 1천5백6병을 한정 출시한다. 내년에는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유니콘 에디션, 내후년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 에디션까지 총 세 가지 한정판을 선보일 예정이다.
기원은 한국에서 만든 위스키답게 특유의 매운맛이 특징이다. “한국만의 캐릭터를 넣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국 위스키’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끔 스파이스가 강하게 날 수 있는 오크통을 쓰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했지요.” 여름 과일의 달콤하고 깊은 오크 향, 바닐라와 달콤한 복숭아 과즙, 그리고 곡물의 달큼함과 함께 길게 이어지는 매운맛의 여운. 기원 위스키의 첫인상이다. “자랑스러운 위스키를 만들었어요. 이 점이 가장 중요해요. 한국에서 생산한 위스키임을 해외에도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다면 그보다 뿌듯한 일은 없을 거예요.” 한국 위스키를 천천히 음미하며 친구들과 깊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는 도정한 대표. 기원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도 근사한 위스키 문화가 자리 잡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스코틀랜드 크리스프사의 몰트. 한 배치에 2톤의 보리를 사용하면 약 1000L의 원액이 나오고, 약 열여덟 개의 오크통을 채울 수 있다.
첫 증류를 시작한 2020년 6월 15일을 기념해 1천5백6병을 한정 출시한 국내 최초 싱글 몰트위스키 기원 호랑이 에디션. 국내에서는 법적으로 1년 숙성부터 위스키라 할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3년 이상 숙성한 것을 위스키로 인정한다. 따라서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실제 정식 제품은 2023년에 만날 수 있다.
Tips! 기원 위스키, 어떻게 먹으면 좋을까요?
와인을 디캔팅해서 먹듯이, 이 위스키도 천천히 시간을 가지며 음미해보세요. 뚜껑을 열어 살짝 덮어놓고, 향이 완전히 열릴 때까지 하루 정도 두고 마셔보면 풍미를 더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기원 위스키는 캐스크 스트렝스 cask strength, 즉 물을 첨가하지 않고 숙성했기 때문에 도수가 56도로 높은 편이에요. 이 도수에 익숙하지 않다면 물을 10~20ml 정도 섞어 희석해서 드셔보세요. _ 쓰리소사이어티스 마케팅 김유빈 과장
-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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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해온 위스키가 한국에서 생산된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한국 싱글 몰트의 새 시대를 여는 역사적 순간을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에서 포착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