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홍차 즐기기
유구한 차 역사에서 영국은 큰 기여를 했다. 동아시아에서 물 건너와 소수의 사람만 즐기던 차의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기 때문. 대영제국의 너른 식민지는 티 플랜테이션으로 재탄생했으며 신속하고 균일한 품질을 보증하는 대형 티 팩토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크림티는 따뜻한 홍차, 스콘, 클로티드 크림, 과일 잼 등으로 구성한 차림. 영국 내에서는 정통 크림티의 본고장으로 콘월과 데번을 꼽는데, 두 지역의 팽팽한 자존심 싸움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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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티Cream Tea + 아삼 Assam
버터가 듬뿍 든 스콘의 고소하고 묵직한 풍미에는 그에 밀리지 않을 깊고 짙은 풍미를 지닌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어울린다. 퍽퍽한 스콘을 한 입 베어 물고 진하게 우린 차를 한 모금 넘기면 입안이 금세 개운해진다. 좀 더 특별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기본이 되는 산지인 인도 아삼 지역의 홍차를 권한다. 대부분 시티시CTC, 즉 부수고(Crush), 찢고(Tear), 만(Curl) 찻잎으로 만들지만, 정통 제법으로 만들어 금빛 차 싹이 눈부신 ‘아삼 골든 팁스’의 매력은 그 이상이다. 갱엿을 곤 듯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를 지닌 풀보디 홍차다. 골든 팁이라 부르는 어린 새싹이 듬뿍 든 찻잎에서는 설핏 말린 장미꽃잎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익숙한 이에게는 그립고도 색다른 우아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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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콩 커리Chickpea Curry + 차이Chai
차이는 보통 찻잎에 우유, 설탕, 마살라 스파이스를 넣어 만든 인도식 밀크티를 가리킨다. 신분 질서가 엄격한 인도는 다른 계급이 같은 식기를 공유하는 것이 금기이기에 한 번 사용하고 바닥에 던져버리는 일회용 초벌구이(테라코타) 컵, 쿨라드Kulhad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차이 레시피는 지방마다 집집마다 다르지만, 물과 자잘하게 부순 찻잎, 설탕과 마살라 스파이스를 넣고 끓이다 미리 데워둔 우유를 넣어 다시 한번 끓여 걸쭉하게 만드는 법은 공통이다. 콜카타의 향신료 시장에서는 가게마다 각기 오리지널 레시피로 블렌딩한 티 마살라를 구입할 수 있다. 카스트제도의 흔적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는 인도에서 브라만을 비롯한 상류계급은 유제품을 제외한 모든 동물성 식재료를 배제하곤 한다. 그런 그들이 가장 애용하는 식재료 중 하나가 병아리콩이다. 각종 향신료가 듬뿍 든 알싸한 병아리콩 커리를 먹은 뒤 진한 차이 한 잔을 마시면 얼얼한 혀와 입안이 진정되며 속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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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니Bolani + 랍상소총Lapsang Souchong
랍상소총은 정산소종(正山小種)의 영어식 표기로, 17세기 중반 중국 푸젠성 우이산의 동목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만든 최초의 홍차다. 인근에서 흔히 자라는 소나무를 태워 차를 만들기에 특유의 스모키한 송연 향이 은은히 배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훈연 향을 머금은 독특한 풍미가 마치 위스키와도 흡사한데, 덕분에 짭짤한 술안주나 간단한 식사와 궁합이 좋다. 음식의 기름기를 말끔히 씻어주는 것은 물론, 익숙하고도 낯선 특유의 향미가 볼라니에 든 각종 향채와 어우러져 감칠맛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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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럼핏Crumpet + 얼그레이Earl Gray
얼그레이는 빅토리아시대에 수상을 지낸 2대 그레이 백작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가 중국 귀족에게 대접받은 차 한 잔에서 착안해 홍차에 감귤계 과일인 베르가모트 오일을 넣어 만든 최초의 가향차, 플레이버드flavored 티인 것. 일반적으로 미디엄 보디 정도의 중국 홍차나 스리랑카 홍차를 베이스로 만들며, 스콘에 비해서는 다소 가벼운 질감인 크럼핏과 궁합이 잘 맞는다. 얼그레이 티에 들어 있는 베르가모트 시트러스의 상큼한 향기가 버터와 골든 시럽에 경쾌한 리듬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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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비한 아로마이던 차가 유럽의 티 문화를 꽃피우기까지, 홍차는 아마도 세계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일 식품일 것이다. 달콤한 스콘, 알싸한 커리, 고소한 치즈 등 무엇과 곁들여도 좋을 홍차 이야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