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필 대표의 손끝에서 빚어낸 방주품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간장은 이웃을 향한 정성을 일상으로 구현한 집약체나 다름없었다.
35년 전부터 유기농업을 지속해온 방주명가영농조합법인 강문필 대표. 그는 국내 최초 고추 유기 재배 품질 인증을 획득한 농부이기도 하다.
참발효어워즈 대상 수상작 중 하나인 방주명가영농조합법인은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위치한다. 치유의 숲이라 불리며 경북 3대 문화권으로 꼽히는 금강송 군락지는 중앙고속도로를 빠져나와 1백 여 킬로미터의 구불구불한 국도를 더 달려야 당도한다. 인근 마을에서 나고 자란 울진 토박이 강문필 대표는 제대로 된 유기농업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30여 년 전 가족과 함께 통고산 골짜기행을 택했다. 농경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제아무리 농약을 치지 않아도 땅속과 공기 중에 잔류하는 농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 유기농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1980년대 후반, 그는 동네에서 손꼽히는 고집불통이었다. “고추 농사로 시작했어요. 고추에 어떻게 약을 안 치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어. 다 미친놈이라고 그랬지. 고추가 벌레 먹고 흠집이 나니까 제값도 못 받고 수없이 실패를 반복했어요. 동네 사람들 앞에서 농사 이야기만 꺼내면 다 도망갔다니까. 결혼반지, 애들 돌 반지 다 팔아서 쌀 사 먹고 그랬지.” 유기농업을 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는 데만 꼬박 4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결국 그는 국내 최초로 고추 유기 재배 품질 인증을 획득한 농부가 되었다.
함께 나누는 삶
강문필 대표가 이토록 유기농업을 고집한 바탕에는 이웃을 향한 마음이 깔려 있었다. “내가 신앙이 있어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이 있지요. 당시 내가 먹을 작물은 무농약으로 기르고 있었는데, 농약 친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 수가 있나. 손님도 결국 내 이웃이잖아요. 그게 양심에 자꾸 걸리더라고.” 농사밖에 모르던 일개 농사꾼이 공동체를 꾸리게 된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어느날 전우익 선생의 저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보고 깨달음을 얻은 뒤 동네 사람을 하나둘 모아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전수해준 것. 혼자 했으면 아마 지금보다 돈도 잘 벌고 풍요롭게 살았을 거라며 천연히 웃는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당시 아내는 직접 기른 콩으로 담근 장을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곤 했는데, 장맛이 좋다며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본격적인 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쉴 새 없이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금강송 숲과 적당한 일조량, 태백산맥의 줄기를 따라 흘러 내려오는 깨끗한 지하수는 장을 담그기에 최적의 자연환경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3천 평 대지에 매일 아침 쏟아지는 햇빛이 1천여 개의 옹기에 닿아 눈부시게 반짝인다.
전국에서 받은 유기농 콩은 자동 세척 시스템으로 깨끗하게 세척한 뒤 스팀으로 쪄낸다.
매년 정월 전에 장을 담그는데, 추운 날씨에 장을 담가야 염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
갓 만든 메주는 냉각기와 건조기를 거쳐 황토 발효실에서 40일가량 머무른다.
더 나은 장맛을 위하여
한 알의 콩이 메주를 거쳐 상품성 있는 된장이 되기까지는 최소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공장에서 만드는 된장은 연중 생산이 가능하지만, 전통 장은 해콩을 수확하는 11월부터 1월까지 1년에 딱 한 번 장을 담근다.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장의 양이 한정적이기에 높은 마진을 남기기 쉽지않다. 2002년부터 전통 방식으로 장을 만들어온 강문필 대표에게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이는 다름 아닌 도시에서 귀농한 아들 강형국 씨였다. “메주 만드는 달에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불을 때고 콩을 전부 가마솥에 삶았어요.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서 만들었지.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기계 이야기를 하더라고.” 늘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온 강형국 씨는 위생적인 측면에서 현대화한 설비를 도입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 확신했다. 2017년, 가마솥이 펄펄 끓던 자리에는 건조기가 들어섰고 콩의 세척부터 메주 성형까지 가능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존에 만들어온 장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메주의 규격부터 건조하는 틀까지 하나하나 고심하고 수많은 발효 샘플 테스트도 거쳤다. “수년 동안 내 나름대로 만들어온 방식을 버리는 게 쉽지는 않았지.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전통 식품 한다더니 무슨 기계를 쓰냐고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거든.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장맛도 균일해졌고, 위생적으로도 월등히 뛰어나고.”
메주를 띄울 때는 온습도 조절이 관건. 발효실 내부에 온습도 센서를 설치해 자동으로 제어한다.
발효가 막 끝난 메주. 황국곰팡이가 고르게 피었다.
방주명가에서 생산하는 방주품간장, 된장, 고추장. 위생적인 제조 과정과 숙성 환경으로 더욱 믿음이 간다. 문의 054-782-8612
방주명가를 찾은 1월 말은 발효를 갓 마친 메주를 옹기에 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해콩이 들어오는 12월부터 1월까지 공동체에 등록된 일곱 명의 조합원이 함께 모여 메주를 만든다. 콩은 한살림이 전국에서 수매한 무농약 콩을, 소금은 3년 이상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만을 고집한다. 무농약으로 기른 고추씨를 갈아 넣는데, 옛 조상들이 장맛을 위해 된장에 고춧가루를 넣던 방식을 따른 것이다. 방주명가는 더 나은 장을 만들기 위해 경북농업기술원과 함께 지속적인 연구를 해왔다. 메주를 만든 그 순간부터 온도와 무게, 질소, 영양 성분, 발효 정도에 따른 맛 평가 등을 꾸준히 기록하고 추적해온 것. 미신에 의존하던 과거의 발효와는 달리 과학적 방식을 통해 가장 맛있는 장의 표준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사로 재직 중인 아들 강형국씨는 최근 사무실 한쪽에 작은 연구실을 마련했다. 당뇨환자를 위한 기능성 장부터 젊은 고객의 입맛에 맞춘 즉석 된장국 등 전통 장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각도로 모색하기 위해서다. 좋은 발효란 무엇이냐는 마지막 질문에 강형국 이사의 막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은 균이 활동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는 거죠. 그렇게 완성한 발효는 우리 몸에 이롭게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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