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너머 푸른 녹음이 펼쳐지는 단정한 공예관.
뚜껑의 말 장식이 미소 짓게 만드는 이세용 도예가의 작품.
“작은 기물 하나라도 아름답게 써야 사회가 아름다워집니다.” 오랫동안 우리 도자기와 공예를 사랑해온 박여숙 관장이 한국의 멋과 맛을 선보이는 ‘수수덤덤’을 열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의 미美를 알리고 싶은 순수한 열의에서 비롯했다. 1999년, 한국 도자기의 고유한 멋을 소개하고자 ‘우리그릇 려’를 운영했지만, 전통 공예를 대중에게 알리는 일에 한계를 느껴 갈무리한 것이 지난 2013년. 그가 우리 공예를 향한 애정에 다시 불을 붙인 건 2015년 밀라노 트리엔날레디자인뮤지엄에서 열린 한국 공예 전시의 예술 감독을 맡으면서부터다. “당시 밀라노 트리엔날레의 ‘아트앤푸드Arts and Foods’ 전시를 보면서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았어요. 한국의 정신이랄까,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를 전달하려면 그릇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겠더라고요. 식기나 다구 등 모든 공예품이 음식, 차, 술과 어우러졌을 때 그 쓰임에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이러한 각성과 사명감을 담아 마련한 공간이 공예관 ‘수수덤덤’이다. 조선 학자 정도전이 <조선경국대전>에서 조선 궁궐 건축에 대해 표현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글귀에서 박 관장은 한국적 미감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을 읽었다. 이를 수수하고 덤덤하다는 순우리말로 바꾸어 ‘수수덤덤’이라 이름 지었고, 이헌정 작가의 도자기, 허진규 작가의 옹기, 박성욱 작가의 분청, 이택수 작가의 백자, 김수영 작가의 목기와 유기 등 도자뿐 아니라 금속공예, 목공예 등 공예 전반에 걸쳐 조선시대의 아름다운 미감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복날은 간다’ 행사에서는 이헌정 도예가가 빚은 그릇에 민어탕과 민어회를 담아낸다.
박여숙 관장은 청아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헌정 작가의 그릇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중 하나로 꼽았다.
한국 전통문화와 현대적 미감을 접목한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는 박여숙 관장.
“공예와 음식이 잘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생활 전체가 아름다워진다”는 박여숙 관장의 철학은 곧 새로운 미식 경험으로 이어진다. 여름 복날을 맞아 기획한 ‘복날은 간다’ 행사는 전통 그릇에 복달임 음식을 담아내는 식문화 이벤트로, 우리 공예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간다. 갤러리나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공예가나 문화재 장인의 작품을 일상에서 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 안에 담은 음식을 맛보는 일은 더욱 귀할 수밖에 없다.
이바지 음식 장인 김정자 대표의 전통 육포 브랜드 정육포와 협업해 진행하는 이 행사는 안심·채끝·부채살 등 고급 부위로 만든 육포와 여름철 대표 보양식인 민어 요리, 그리고 이와 어울리는 와인 페어링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전통 공예품에서 미처 알지 못한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이를테면 허진규 장인의 옹기 그릇이 근사한 트레이로, 조선시대에 사용한 오동나무 약재 상자가 테이블의 센터피스로 변신한다. 초복(7월 16~17일), 중복(7월 24~26일, 31일, 8월 1일), 말복(8월 15~16일) 총 9일간 점심과 저녁 2회씩 진행하며, 회당 최대 15명 예약 가능하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38길 30-34 | 문의 02-549-7575
- 한국의 맛에 멋을 담은 공예관 수수덤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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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아래 새하얀 여백처럼 자리한 ‘박여숙화랑’ 2층에 한국의 미감을 알리는 공예관 ‘수수덤덤’이 문을 열었다. 한국 공예와 식문화의 품격을 함께 높이는, 이름 그대로 수수하고 덤덤한 공간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