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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빛나라 한식의 별
한식에 대한 특급 호텔들의 관심이 이토록 뜨거운 적이 있었을까.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낸 결정적 계기는 작년 11월 신라호텔의 한식당 ‘라연’이 2017 미쉐린 가이드에서 3스타를 받은 것이다. 또한 라연은 올해 2월에 열린 2017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38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한국 레스토랑 중 대부분이 한식당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한식이 또 하나의 미식 트렌드로 떠오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해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특급 호텔 한식당의 맛있는 변화가 눈길을 끌었다. 예스러운 한식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한층 모던한 담음새와 맛으로 공략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전통 한식의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곳도 눈에 띈다. 반얀트리는 지난 5월 강레오 셰프를 식음료 총괄 디렉터로 영입해 한식당 ‘페스타 다이닝’을 오픈했다. 지역 명인의 식재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강레오 셰프를 내세워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적합한 한식을 선보이겠다는 것. 반면 파크 하얏트 서울은 꼭대기 층에 있는 ‘더 라운지’를 컨템퍼러리 한식과 전통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리뉴얼했다. 1979년 롯데호텔서울 개관과 동시에 오픈하며 그 역사가 남다른 ‘무궁화’는 고서나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정통 음식을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호텔 내 한식당은 없지만 한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더 플라자의 뷔페 레스토랑 ‘세븐스퀘어’는 우리나라의 열두 종가와 협업해 내림 음식을 선보이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라운지 다이닝 ‘마루’는 꾸준히 한식을 찾는 이들을 위해 메뉴를 강화하는 추세.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받기 위한 지나친 경쟁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지만, 특급 호텔마다 앞장서서 한식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래서인지 한식을 요리하며 주방에서 잔뼈가 굵은 셰프들의 음식에서는 저마다의 철학과 맛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급 호텔 일곱 곳에서 한식을 책임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식의 맛을 새롭게 발견해보시길.

최고의 한식, 단순함에 있다


전복냉채
서울신라호텔 라연 김성일 총주방장

“심플 이즈 더 베스트!” 김성일 총주방장이 한식에 담고 싶은 맛은 단순함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요리는 각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단순한 조리법과 담음새로 표현된다. “한식을 해석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 다릅니다. 컨템퍼러리를 추구하는 셰프도 있고, 퓨전 한식을 추구하는 이도 있지요. 제가 짓고 싶은 한식은 예부터 내려오는 궁중 음식을 올바르게 이어받되 현재에 맞는 조리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공부도 게을리할 수 없지요. 한 달에 두 번 정도 모든 주방 스태프와 함께 하나의 식재료를 집중적으로 탐구합니다.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를 확장해 요리에 적용하지요.” 이러한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음식이 전복냉채. 청주에 재운 전복을 세 시간 이상 쪄서 속살이 굉장히 부들부들하다. 단촛물에 절인 배와 밤을 잣가루에 묻혀 전복 위에 올리고, 비름나물과 깻잎, 유자청, 잣을 넣고 갈아 만든 산나물장을 더했다. 전복의 부드러운 맛, 배와 밤의 아삭함, 새콤달콤한 산나물 장이 한데 어우러지는 맛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어느 누가 그의 요리를 보거나 맛보더라도 단박에 한식임을 알아차리게 만드는 것, 이것이 김성일 총주방장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한식이다.


배려가 담긴 맛, 한식이 되다


동해 피문어 샐러드
포시즌스 호텔 서울 마루 이재영 총주방장

포시즌스 호텔 서울 내 모든 레스토랑을 진두지휘하는 주인공으로, 지난 7월 한국인 최초로 총주방장에 임명된 이재영 셰프. 호텔 내 한식당은 없지만, 1층 라운지 마루를 통해 그가 한식에 접근하는 방법은 이렇다. 항상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고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가짐! “아무리 좋은 식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접시 위의 정갈한 담음새가 어우러지지 않으면 감동을 줄 수가 없어요. 배려가 담겨야 진짜 한식이죠.” 처음 호텔을 오픈할 당시 마루에 있는 한식 메뉴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비빔밥 정도가 전부였다. 외국 손님들의 반응이 좋으면서 한식 코스 요리를 제안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 한식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작년 가을부터 메뉴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그중 하나가 동해 피문어 샐러드다. 물을 최대한 적게 넣고 문어를 저온에서 여섯 시간 동안 삶아낸 뒤 남은 국물과 문어에서 나온 점액질을 굳혀 테린 형태로 만든다. 오미자와 간장으로 만든 젤리, 튀긴 키노아를 더해 시큼하면서도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이 한데 어우러진다. 이를 접시에 모던하게 담아 시각적 즐거움마저 선사하니 진정한 배려가 담긴 한식이 아닌가.


종가의 내림 음식, 모던하게 변하다


튀김 부각과 피편
더 플라자 세븐스퀘어 김용수 수석 셰프

농촌진흥청과 공동으로 우리나라의 열두 종가와 협업해 뷔페 레스토랑 세븐스퀘어에서 ‘섬김, 나눔, 배려’를 주제로 다양한 종가 음식을 선보이는 더 플라자. 그 중심에는 김용수 수석 셰프가 있다. “각 종가마다 오랜 세월을 거쳐 대물림되는 집장과 음식이 있습니다. 그 지역의 맛과 문화를 현대의 맛으로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그래야만 ‘기대 이상의 경험과 맛을 지닌 한식’을 제안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용수 수석 셰프는 각종 부각을 활용해 카나페 형태로 재해석했다. 유자청에 절인 후 말려 찹쌀풀을 발라 튀긴 삼채와 마른 오징어를 잘게 뜯어 마늘과 참기름으로 간한 오징어보푸름, 연근정과, 곶감, 김부각 등을 담은 뒤 시금치로 만든 드레싱을 곁들였다. 옛것만 고집하면 고루해질 수 있으니 여기에 약간의 아이디어를 더하면 전통 주전부리도 모던하게 변화한다. 최상의 재료로 고유한 맛과 질감에 충실한 것이 그가 선보이는 한식의 특징이다. 그래서 쇠고기 양지와 돼지머리를 푹 삶아 우려낸 육수에 문어, 닭고기, 표고버섯 등을 넣고 굳혀 만든 피편도 다른 곳에선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다.


한식의 가능성, 고서古書에서 찾다


소하빈대떡
롯데호텔서울 무궁화 총주방장 천덕상

급변하는 시대인 만큼 한식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고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37년간 무궁화에서 일한 천덕상 총주방장은 한식의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다. 그는 전통 조리법이 실린 고서를 연구하며 한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데 집중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소하빈대떡이다. “故 황혜성 선생의 궁중 음식책을 보면 연회 상차림에 표고버섯과 소하(작은 새우)를 지져 빈대떡을 만들어 올렸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고서나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 빈대떡을 재현하기 위해 2014년부터 몰두했지요. 녹두 가루의 배합을 달리하면서 여러 번 실험하고, 그 맛을 구현해줄 육질이 단단한 소하를 서해 바다에서 찾았어요.” 2016년 3월에 특허받은 소하빈대떡은 무궁화를 대표하는 메뉴로 자리매김했다. 녹두와 쌀가루를 7:3 비율로 섞어 반죽한 뒤 달큼하게 양념한 표고 버섯을 넣고, 다진 소하와 채 썬 밤을 고명으로 올려 구웠다. 일반 빈대떡과 달리 육류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소하와 표고버섯이 내는 감칠맛이 뛰어나다. 쌀가루 덕분에 바삭한 식감도 일품이다. “전통 음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정체성이 확실해야 합니다. 각 지역과 고택을 찾아다니며 전통 한식의 뿌리를 찾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한식의 기본을 지키면서 약이 되는 밥상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진화하는 한식, 시류에서 발견하다


갯벌장어구이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페스타 다이닝 강레오 총괄 셰프

한식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강레오 셰프는 정체성을 잃지 않되 본질을 찾고, 시류에 맞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흔히 퓨전과 컨템퍼러리가 지닌 의미를 헷갈려 합니다. 퓨전은 정체성이 확실한 A와 B가 결합해 탄생한 것이고, 컨템퍼러리는 동시대를 의미합니다. 한식은 과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지만, 시대적 상황에 맞게 진화해가고 있어요. 그에 맞는 한식을 재해석하려면 재료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지요.” 그의 말마따나 셰프라면 누구나 최고의 식재료를 탐하는 법. 강레오 총괄 셰프는 전국 1백61개 시・도・군을 돌아다니며 시장을 선도하는 농부와 어부를 만나고, 참신한 식재료를 발굴하고 있다. 현재 1백57곳을 다녔으며 이렇게 발굴한 식재료를 페스타 다이닝에서 그만의 스타일로 풀어낸다. 한 마리에 11만 원이나 하는 갯벌 장어를 구이로 선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접시 위에서는 식재료가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양식장에서 나와 75일 동안 뻘에서 자란 강화도 갯벌 장어는 살집이 실팍하고 마치 고기를 씹는 것처럼 육질이 단단해요. 대부분 장어를 요리할 때 식감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찌거나 삶는데, 이 장어의 경우 쫄깃한 육질을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요리했어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찐 듯 촉촉한 장어구이는 짚불에 한 번 더 구워 훈연 향이 은은하게 난다. 이는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쉼 없이 노력한 결과물일 터. 지금의 한식을 최고의 식재료로 재해석하는 그의 음식이 주목받는 이유다.


전통의 맛, 서양식 조리법으로 풀다


해산물구이와 도미회
파크 하얏트 서울 더 라운지 페데리코 하인즈먼 총주방장

“한식에는 한국 고유의 전통과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를 이해해야 비로소 진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더 라운지에서는 이 같은 음식을 ‘강남 컴포트 퀴진’이라는 브랜드로 선보이고 있어요.” 페데리코 하인즈먼 총주방장은 서양 조리 기법과 색다른 식재료의 조합으로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한식을 지향한다. 해산물구이와 도미회에서 그의 남다른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해산물구이는 매일 아침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신선한 생선과 전복, 가리비, 대하, 관자, 소프트 셸 크랩 등으로 구성한 메인 요리. 전복은 청주와 다시마, 마늘, 양파, 간장에 재워 여섯 시간 동안 쪄내는데, 수비드 기법을 적용해 식감이 굉장히 부드럽다. 특히 가리비의 경우 초장으로 만든 올랑데즈hollandaise 소스를 곁들인다. 애피타이저인 도미회도 이색적이다. 수비드한 도미에 에스푸마 기법으로 만든 초장을 더한 것. 풍성하면서도 부드러운 거품 형태의 초장이 자극적이지 않고 되레 입맛을 끌어올려준다. 페데리코 하인즈먼 총주방장은 간장과 된장, 고추장, 매실청도 호텔에서 직접 담가 올가을부터 사용할 예정이다. 한식의 기본은 발효장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처럼 앞으로 그가 선보일 한식의 변화가 기대된다.


옛것의 힘, 한식의 저력이 되다


삼겹살연저육찜
그랜드 워커힐 서울 온달 김성완 총주방장

대한민국 특급 호텔 한식당 중 그랜드 워커힐 서울의 온달은 1983년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들이 뭐라 하건 뚝심 있게 전통 한식을 고수해온 곳이라 그 가치가 남다르다. 손님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시그너처 메뉴로 자리 잡은 음식이 삼겹살연저육찜이다. “제가 표현하고 싶은 한식의 밑바탕은 궁중 음식과 향토 음식입니다. 지금껏 주방에서 배워온 음식이기도 하고요. 이를 토대로 담음새만 달라질 뿐 정통성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던 연저육찜은 수육보다 맛이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가을 보양식으로도 제격이지요.” 김성완 총주방장은 지인이 추천한 제주 유명 식당에서 백돼지를 먹은 뒤 그 맛에 반해 온달에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육질이 쫄깃한 흑돼지와 달리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뛰어나 연저육찜에 활용하기 좋다는 것. 간장 소스에 데친 삼겹살을 넣고 약 40분간 삶아 팬에 한 번 더 구운 것이 특징으로, 맛과 멋 그리고 건강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춘 품격 있는 한식으로 표현했다. 이를 시작으로 내년 봄부터 궁중 음식을 친숙하게 풀어낼 예정이다.

글 김혜민 기자 사진 김규한 기자 배경 제작 김보선(로쏘 스튜디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