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밥상
1 자광도 막걸리 2 물에 만 백석밥 3 술지게미울외장아찌 4 녹두도 감자옥수수밥
“한식의 기본은 논밭과 텃밭입니다. 그 밭과 땅에서 난 작물과 곡물로 각 지형과 환경에 맞게 음식을 짓고 저장해 스물네 계절을 살아왔습니다. 한 마을에 열 농가가 있다면 손맛과 입맛이 다 다른 열 가지 밥상 차림이 있었을 테지요. 강원도는 지형상 쌀농사가 되지 않아 흰쌀밥을 먹는 일이 1년에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조밥, 감자밥, 메밀밥 등 다른 작물과 섞어 밥의 양을 늘려 먹었지요. 강원도 김형수 농부에게 입말로 배운 감자옥수수밥은 강원도 산간 지역의 일상식입니다. 보통 보리를 섞어 밥을 짓는데, 토종 쌀 중 유난히 야생적이고 입안에서 다글다글 맴도는 맛이 강한 녹두도로 감자옥수수밥을 만들었습니다. 농부들이 새참으로 즐겨 먹은 대표적 음식이 바로 물밥입니다. 백석은 갓 지었을 때보다 식었을 때 윤기를 머금고 고들고들하게 씹히는 맛이 좋아 물밥으로 표현했지요. 밥맛 없는 여름에는 백석밥을 찬물에 말아 삭힌 조선간장 몇 방울과 송송 썬 고추를 넣어 먹어보세요. 농주인 막걸리는 고된 노동으로 인한 땀과 갈증을 씻어주고 배고픔을 달래주었어요. 자광도 막걸리는 이근이 농부가 담근 것으로 향이 강하고 진자색을 띱니다. 남은 술지게미는 된장을 섞어 울외장아찌를 담갔습니다. 자광도와 잘 어우러져 안줏거리로도 좋고, 맨밥에 먹기 좋은 반찬이 됩니다.”
한 그릇 별미 밥
1 백경조 차밥 2 버들벼 커리 덮밥 3 메산디 제주식 팥죽
“요즘은 잘 지은 밥 한 그릇에 찬 한 가지만 곁들여 간편하게 즐기는 한 그릇 별미가 인기입니다. 토종 쌀 각각의 그 특징을 살려 별미 밥으로 만들어보세요. 제주도 장례식에서는 죽은 이를 보내느라 목청껏 울었을 산 사람의 축난 몸을 돌보라고 사돈집에서 팥죽을 쑤어 보내주곤 했어요. 팥과 쌀을 같이 넣고 끓이는 제주식 팥죽은 제주 토박이 해녀 음식을 만드는 진여원 선생님에게 입말로 배운 것입니다. 제주도 방언으로 ‘밭에서 나는 메벼’라는 뜻의 메산디는 찰기가 적당해 시나리팥과 엉켜 붙으면서 독특한 식감을 자아내지요. 유난히 쌀뜨물이 잘 나는 북한 토종 쌀 백경조는 식었을 때 맛이 더 찰지고 구수해서 차밥에도 잘 어울립니다. 쌀뜨물에 보리 굴비를 담갔다 찐 후 식은 백경조 위에 올려 보리차나 녹차를 부어보세요. 백경조와 감칠맛이 강한 보리 굴비가 한데 어우러져 한 끼 별미로 그만이지요. 버들벼는 쌀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요. 안남미와 비슷하지만 꼬득꼬득한 식감과 구수한 맛이 훨씬 좋지요. 한식보다 리소토, 아란치니, 커리 덮밥 등 서양식 요리에 적합합니다. 밥알이 커리 국물을 잘 흡수하면서도 고유한 식감을 잘 유지한답니다.“
우리 모두의 밥, 일상식
1 조동지 백미밥 마리아주 2 자광도ㆍ자치나ㆍ버들벼 블렌딩 밥 3 북흑조 현미밥 마리아주
“백미와 현미는 엄연히 맛이 다릅니다. 솥밥으로 지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어요. 백미는 단맛과 담백한 맛은 좋지만, 감칠맛이나 구수함이 입안에서 오래 남아 있는 현미에 비해 뒷맛이 옅어요. 각자의 맛을 살려주는 반찬과 마리아주해 심플하게 즐기는 순간, 매일 마주하는 밥상에 품격이 더해지지 않을까요? 야생미가 강한 조동지는 백미로 도정하면 단맛이 진해져 짭조름한 콩비지찌개, 매콤한 토하젓 또는 젓갈과 매치해 맛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좋습니다. 특히 조동지 백미는 향이 강하지 않아 파래김과 곱창김, 감태에 싸 먹거나 들기름에 구운 달걀을 곁들여도 잘 어우러지지요. 북흑조 현미밥은 입안에서 오물오물 씹을수록 구수합니다. 감칠맛과 쓴맛, 고소한 맛 등 다양한 맛이 느껴지기 때문에 주로 삭히거나 묵힌 맛을 지닌 반찬과 마리아주해보세요. 예를 들어 게딱지장이나, 깻잎된장박이, 열무들깨지짐이 등과 함께 먹으면 밥맛을 더욱 살려주지요. 물기가 있는 쌈채소에 현미밥을 싸 먹으면 다글다글 느껴지는 현미의 식감을 부드럽게 감싸줘요. 기호에 따라 다양한 쌀을 섞어 먹으면 색다르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자광도와 자치나, 버들벼를 1:1:1의 비율로 섞어 밥을 지으면 자광도의 향, 자치나의 찰기와 윤기, 버들벼의 식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답니다.”
후식이 된 주식
1 흑도 보리단술 셰이크 2 강릉도 기정떡 3 흑저도 현미 커피 4 흑저도 누룽지와 쌀 스프레드 5 자치나 젤라토
“토종 식재료를 오래 맛보려면 일상으로 꾸준히 끌어들이고, 오늘날의 맛으로 자주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토종 쌀을 활용해서 얼마든지 다양한 디저트를 만들 수 있어요. 흑도로 만든 보리단술은 아산에서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정년옥 농부가 외할머니의 입말로 배운 음식입니다. 일반적으로 엿기름으로 만드는 식혜와 달리 보리밥에 누룩을 넣고 3일 정도 발효시켜 끓이는데, 보리밥 대신 흑도를 넣어 만들었어요. 흑도 보리단술은 구수한 맛이 좀 더 두드러지고, 지나치게 달지 않아 뒷맛이 깔끔해요. 믹서에 단술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넣고 만든 크림을 보리 단술 위에 올리면 서양식 디저트 못지않게 시각적 효과도 훌륭하지요. 토종 쌀 중에서도 찰기가 가장 높은 강릉도로 만든 떡은 충청도 도산리에서 기능 쌀을 재배하는 권영창 농부가 외할머니에게 배운 입말 음식인 기정떡을 현대적으로 푼 것입니다. 강릉도를 7분도로 도정해 생막걸리를 넣어 발효시켜 만든 떡으로, 커피 시럽이나 차를 자작하게 부어 티라미수처럼 떠먹으면 색다른 후식이 되지요. 흑저도의 경우 밥보다는 가공했을 때 향이 더 강하게 나는 특징이 있어요. 흑저도를 커피콩처럼 로스팅해서 우려 마시면 특유의 풍미가 진하게 나고, 카페인이 없어 편하게 마시기 좋아요. 쌀과 우유로 만든 흑저도 쌀 스프레드는 누룽지에 발라 먹어보세요. 바삭한 식감과 달콤한 맛의 조화가 남다르답니다. 식감이 쫀득한 자치나는 쌀 젤라토로 만들어 즐겨보세요.”
- 우리가 알아야 할 토종 식재료_ 입말한식가의 제안 밥맛 살아 있는 한 상
-
쌀을 알아야 밥맛도 좋아진다. 색과 찰기가 제각기 다른 쌀을 취향 따라 섞어 밥을 지어도 좋고, 식으면 향미가 살아나는 쌀로 밥을 지어 찻물에 말아 먹어도 맛있다. 입말한식가 하미현이 제안하는 열네 가지 쌀 요리.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