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교순대
왼쪽의 겹쳐놓은 작은 볼과 오른쪽에 놓은 숙우는 이인진 작가 작품, 작은 볼 아래 있는 자완은 권은영 작가 작품으로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판매. 그 옆의 주병은 석황, 황토빛 주병은 바바리아 제품.
1800년대 후반에 쓰인 조리서 <시의전서>에 ‘ ’라는 한글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이 전통 요리책에 나오는 민어 부레로 만든 순대는 “숙주와 미나리를 삶아 소고기와 함께 다져 두부를 섞은 후 갖은양념하여 부레에 얹어 삶은 후 썰어 낸다”라고 설명돼 있다. 기록을 바탕으로 조희숙 요리 연구가가 재현한 어교순대는 본래 조리에 사용한 재료 외에 호박을 추가해 좀 더 부드러운 식감의 소를 채워 넣었다.
도야지순대
그릇장은 석황, 맨 위 칸의 달접시는 이능호 작가 작품, 두 번째 칸 오른쪽에 놓은 미니 볼 두 개는 이인진 작가 작품으로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판매. 미나리를 담은 나무 볼과 손잡이가 달린 검은색 주병, 고추와 버섯 등 식재료를 담은 스틸 컬런더, 뒤편의 나무 주걱은 모두 바바리아, 파를 담은 함지박과 주병은 석황, 순대를 담은 우드 플레이트는 수이57아뜰리에 제품.
<시의전서>에 “‘도야지 ’는 데친 숙주, 미나리, 무, 배추김치, 두부, 파, 생강, 마늘을 다져 섞고, 여기에 깨소금, 기름, 고춧가루,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한 후 피와 함께 주물러 창자에 넣고 삶은 음식”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의 순대와 유사한 점이 많다. 육경희 대표는 이 전통 방식에서 피를 줄이는 대신 양배추와 당근 등의 재료를 넣어 현대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순대를 만들었다.
한반도 순대의 역사
순대에 감칠맛을 더하는 양념장도 된장의 일종인 막장부터 초장, 새우젓, 소금 등 다양하다. 함지박은 석황, 쌈장을 담은 볼과 초장을 담은 볼은 이인진 작가 작품, 새우젓을 담은 볼은 권은영 작가 작품으로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판매.
<시의전서>에 소개한 도야지순대와 어교순대를 통해 선지가 들어가지 않아도 동물의 내장에 소를 채운 음식을 순대라 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순대’에 대한 수많은 고서를 연구하며 책을 펴낸 <순대실록>의 저자 육경희 대표는 “동물의 내장이나 케이싱(식용 비닐)에 각종 재료를 넣은 원통형 음식”을 순대라 총칭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 소시지도 순대의 한 종류라 할 수 있다. 다수의 요리책과 역사 기록을 통해 순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 중국에 전파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이를 통해 우리 음식 문화에도 삼국시대부터 순대가 전해졌을 것으로 본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 19세기 초 <농정회요>와 19세기 말 <시의전서>에 순대가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러 우리 식문화에서 순대를 친숙한 음식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1950년 즈음 매체에 기록된 서울의 풍경을 보면 그 안에 구수한 순댓국이 정감 있는 모습으로 자리한다. 이후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당면을 넣어 만든 것이 순대의 대명사처럼 되었지만, 생각보다 순대의 종류는 지역마다 다양하다. 속초의 아바이순대, 천안의 병천순대, 담양의 암뽕순대 등 각 지역의 명물 순대들은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골라 정성스럽게 만든다. 어떤 재료로 소를 만드는지, 어떤 양념이나 반찬을 곁들여 어떻게 먹는지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 같은 소를 채워 넣더라도 지역마다, 만드는 손맛에 따라 서로 다른 맛을 내는 순대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음식이다.
피순대와 백순대
미나리를 담은 짚 바구니와 그 옆의 짚 바구니, 앤티크 나무 주걱 두 개는 모두 석황 제품. 순대를 썰어 담은 달접시는 이능호 작가 작품으로 조은숙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판매. 전골을 담은 주물 팬은 스타우브 제품.
소창에 당면과 멥쌀, 돼지 선지, 파 등을 넣어 만든 피순대는 고소하면서 부드럽다. 선지를 듬뿍 넣은 전라도 피순대가 유명한데, 국물이 맑은 순댓국으로 많이 먹는다. 그에 반해 백순대는 선지를 넣지 않고 소를 만들어 색감이 허옇고 맛도 더 깔끔하다. 1977년 순대와 양파, 깻잎 등의 간단한 채소를 양념 없이 연탄불에 볶아 먹는 백순대볶음이 처음 나와 신림동 순대볶음의 효시가 되었다. 그 백순대와 피순대를 넣어 구수하고 깊은 맛의 전골을 만들었다. 다진 양념을 한 숟가락 떠 넣어 풀면 칼칼하면서도 감칠맛이 감돈다.
강원도의 명물,
오징어순대와 명태순대
우드 원형 플레이트와 옻칠 젓가락은 수이57아뜰리에, 순대를 놓은 나무 도마는 석황 제품.
오징어순대와 명태순대는 본래 이북 지방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다. 한국전쟁 이후 함경도 실향민들이 고향과 가장 가까운 속초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전해졌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일컫는 함경도 사투리인 ‘아바이’를 붙여 만든 속초 아바이마을의 식당에서 시작해 강원도 속초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함경도식 순대는 대창 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부위를 사용하며, 양배추와 채소가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 명태순대는 겨울에 몸집이 큰 명태를 골라 배를 가르지 않은 채 입을 통해 내장을 꺼내 손질한 뒤 내장과 알, 부추, 쌀, 두부, 양파 등을 만두소처럼 다져서 명태 안에 채워 넣고 쪄 먹는다. 오동통하고 먹음직스러운 오징어순대와 오징어먹물순대는 오징어 몸통 안을 꽉 채운 당면, 찹쌀, 양파, 버섯, 시금치, 당근 등의 내용물이 씹을수록 쫀득하고 고소하다. 묵은지나 가자미식해, 도루묵식해와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명태순대는 속초 아바이마을의 ‘명천순대’ 식당에서, 오징어순대는 ‘진양횟집’에서 공수해 온 것으로, 이 두 식당은 신선한 재료를 골라 지금도 직접 손으로 순대를 만든다.
제주식 전통 순대,
수애
검은색 옻칠 트레이와 몸국을 담은 옻칠 볼, 순대를 놓은 옻칠 트레이는 모두 수이57아뜰리에 판매.
수애(수웨)는 제주도의 전통 순대를 이른다. 돼지고기로 만들어 돗수애(돗수웨)라고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잔치가 열릴 때 돼지고기를 골고루 나눈 뒤 몸(모자반)과 수애를 넣고 끓인 진하고 토속적인 몸국을 먹었다. 현무암이 많은 지역 특성상 쌀 대신 메밀가루와 선지를 섞어 만든 수애는 다른 순대보다 수분과 지방이 적어 식감이 다소 퍽퍽한 편이지만, 덩어리진 선지가 들어 있지 않아 국물과 함께 먹으면 담백하면서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 현재 그 명맥이 남아 있는 제주도 서귀포시 가시리의 ‘가시식당’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순대 스테이크
순대 스테이크를 담은 주물 팬은 스켑슐트, 스테이크 나이프는 바바리아, 주병은 석황 제품.
육경희 대표가 개발, 서울 대학로에 자리한 식당 ‘순대실록’에서 선보이는 순대 스테이크. 견과류를 듬뿍 넣고 만든 후 철판에서 지글지글 구워 먹는다. 순대 특유의 피 냄새 대신 고소한 맛이 나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한데 섞어 즐기는
당면순대 볶음
주병은 석황, 순대를 담은 우드 볼은 바바리아, 옻칠 젓가락은 수이57아뜰리에 제품.
1980년대 초반, 신림동 순대집에서 순대에 고추장 양념을 넣어 볶은 메뉴가 나왔다. 당시에는 약간의 채소와 순대에 다른 양념을 하지 않은 고추장으로 빨갛게 볶았지만, 1992년 민속순대타운 건물로 옮기면서 대형 철판에 양배추, 파, 버섯 등 다양한 채소에 오징어와 가래떡, 쫄면까지 다양한 재료를 담아 기름에 볶은 푸짐한 양념순대볶음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순대볶음에 주로 넣는 당면순대는 탱글탱글 씹히는 당면의 식감과 저렴한 가격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두루 사랑받고 있다. 여기에 매콤한 소스, 달짝지근한 채소와 찰떡궁합을 이뤄 그야말로 온 국민의 대표 간식거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요리 순대실록(02-742-5338), 조희숙, 민들레 푸드 스타일링 민송이・민들레(7 doors) 캘리그래피 강병인 도움말 육경희 참고 도서 <순대실록>(BR 미디어)
- 우리 음식 문화의 숨은 맛 순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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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싸고 건강하지 못한 음식으로 치부해온 순대에도 다양한 맛과 매력이 숨어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록에서 기원을 볼 수 있을 만큼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순대는 우리 음식 문화에서도 오래전부터 등장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해방 이후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우리의 속과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소중한 먹거리가 된 순대. 전통과 문화, 맛과 멋을 두루 품은 우리 음식, 순대를 재조명해본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