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내수공업 양식당 비토Vito 오너 셰프 김상진
수작手作의 즐거움에 빠지다
턱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이자 비토의 주방을 책임지는 김상진 셰프.
부전동의 한 골목 끄트머리에 ‘가내수공업’이라는 수상한 간판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자 턱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것처럼 보이는 사내가 손끝으로 두툼한 반죽을 연신 치대고 있다. 곧이어 제면기에서 뽑아내는 면을 삶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스타 한 그릇을 완성한다. 집 안에서 작은 규모로 이루어지는 수공업을 뜻하는 이름처럼 이곳은 김상진 셰프의 소박한 트라토리아(이탈리아에서 지방의 특색 있는 음식을 중심으로 선보이는 작은 식당을 가리킨다)다.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 이름을 ‘가내 수공업 양식당 비토’로 짓고 파스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탤리언 요리를 선보인다. 요리한 지 어느덧 10년 차에 접어드는 그는 방황하던 스물다섯 살, 굴 소스와 고춧가루, 달걀 등을 넣고 만든 그의 짜장라면 맛이 기가 막히다는 지인들의 권유로 요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길로 요리 하나만을 바라보고 인생을 가열차게 달려왔다.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탈리아의 유명 요리 학교인 ICIF에도 들어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르코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에서도 공부하며 서울 유명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았다. 유명한 셰프로 성공하려면 서울이 더 유리할 법도 한데, 그는 부산행을 택했다. 연산동 그린 스푼의 메인 셰프를 거쳐 자신의 레스토랑인 가내수공업 양식당 비토를 오픈했다. 서면 한복판에서 5년 이상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손맛이 느껴지는 이탤리언 가정식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도미를 종이로 감싸서 담백하게 찐 생선 요리와 라자냐.
“비토의 핵심은 자가 제면과 소스예요. 10년 정도 요리를 해오면서 생면을 뽑고 저만의 비법으로 소스를 만들 자신이 있었어요. 음식이 맛있으려면 식재료가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해요. 부전시장 근처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는 매일 아침 오토바이로 5분 거리에 있는 부전시장에 가 당일 잡은 생선, 신선한 고기와 채소 등을 사 와 요리를 한다.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의 라구 소스를 끼얹은 라자냐가 대표 메뉴. “볼로냐 지방 관광청에서 발행한 책자를 보면 오리지널 라구 소스 레시피가 실려 있어요. 그에 따라 토마토 페이스트, 우유, 쇠고기, 치즈 덩어리와 껍질까지 넣고 네 시간 동안 푹 끓여 완성해요. 시골 된장처럼 구수한 풍미가 좋아 인기가 많죠. 쫄깃한 면발과도 잘 어우러지고요.”
붉은 벽돌로 벽을 쌓고, 아늑한 분위기의 조명등을 달아 이탈리아 가정집에 온 듯하다.
김상진 셰프는 얼마 전부터 시간을 쪼개 부산 농업기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농사학교에 다닌다. 수업을 다 들으면 김해에 있는 조그만 땅에 비닐하우스도 지을 예정이라고. “1차 농산물부터 손수 지어 로컬 푸드를 식탁에 올리고 싶어요. 가게 이름처럼 모든 것을 진짜 가내수공업으로 만드는 것이 저의 최종 목표입니다.” 주소 부산시 부산진구 중앙대로 680번가길 77 문의 051-806-5868
골목 끝에 서울집 대표 김세정·배수현 부부
엄마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차리다
부산살이 11개월 차인 김세정・배수현 부부.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골목 끝에 서울집’은 부경대학교 근처에 입소문 난 가정식집이다. 이곳에는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부부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된 사랑은 없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처럼 김세정·배수현 부부는 요리 하나만을 바라보고 부산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 딸아이를 키우며 요리에 대한 재능을 발견한 배수현 씨와 자격증까지 취득할 만큼 평소 요리를 좋아한 남편 김세정 씨가 의기투합했다. “요리가 좋고 바다가 좋아서였어요. 취미가 업이 되면 안 된다고 주위에서 말렸지만,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수년 전부터 제주도에 가길 원했던 남편과 마지막 절충지로 부산을 택했죠.” 두 사람은 골목 끝에 자리한 낡은 주택을 개조해 식당으로 탈바꿈했다.
(위, 아래) 오래된 주택의 골조만 남기고 개조했으며, 테이블과 의자 하나까지 손수 골랐다. 식물로 작은 마당도 꾸몄다.
위치를 설명하다 보니 골목 끝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했고,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하는 밥집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렇게 이름 지은 것. 주메뉴가 덮밥인 것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 서울에서 패션 잡지 기자로 일한 배수현 씨는 끼니를 걸러가며 치열하게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단다. 또 대학교 근처라 손님 대부분이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인 점도 중요했다. 건강하고 맛있는 덮밥 한 그릇이라면 누구나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부엌은 주로 김세정 씨가 도맡는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부산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레시피를 여러 번 수정하기도 했고요. 간장 삼겹살 덥밥의 경우 달짝지근한 소스 맛이 좋아 인기가 꽤 많아요. 데리야키 소스에 생강을 넣어 개운함을 더했죠. 짭조름한 명란과 고소한 버터의 조화가 잘 어울리는 명란 버터밥도 공들여 만든 메뉴예요.” 그는 두툼한 삼겹살에 매콤한 양념장을 발라 구운 고추장 삼겹살 덮밥과 큼직하게 썬 생연어를 올린 덮밥, 쇠고기와 달걀, 오이를 고명으로 올린 삼색 소보로 덮밥, 추억의 도시락을 연상시키는 스팸 마요 덮밥 총 여덟 가지 메뉴를 선보인다.
각양각색 밑반찬과 달짝지근한 소스로 맛을 낸 간장 삼겹살 덮밥.
온종일 정신없이 일하고 집으로 가면 배수현 씨의 또 다른 일과가 시작된다. 제철 재료 호박을 무친 나물, 감자 샐러드, 망고 요구르트 등 덮밥에 곁들일 밑반찬을 만드는 것. 매일 아침 양손 가득 아이스박스를 들고 출근하는 일이 고되지만 좋아하는 일이기에 마음만큼은 훨씬 편하다. “처음에는 낯선 도시에 발 디디기가 두려웠어요. 그런데 정이 넘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게 즐거워요.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새것이고, 매일 아침 바다를 마주할 때마다 행복해요.” 주소 부산시 용소로21번길 21-6 문의 051-612-0527
달맞이 포차 오너 셰프 윤나미
바다 내음 가득한 로브스터로 요리하다
쫄깃한 로브스터 생회부터 구이, 떡볶이 등 국적 불문하고 다채로운 메뉴가 윤나미 셰프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로브스터 요리 전문점 ‘달맞이 포차’의 윤나미 셰프를 말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이란 한국 대사관저 주방 총책임자와 뉴욕 한국 총영사관 셰프 그리고 반기문 사무총장의 재취임식에 참여한 셰프라는 것.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요리가 천성인 것이 확실하다. 족발집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족발을 삶고 배달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손맛을 물려받았을 뿐 아니라, 넓은 세상에 나가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 있는 배짱도 덤으로 받았다.
“스무 살 때 푸드 스타일링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유학을 갔어요. 우연찮게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더 적성에 맞더라고요.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은 문을 닫은 청담동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뱅드따블에서 일했어요. 단골손님이던 외교부 대사 부인이 대사관저 주방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며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못 할 게 뭐 있을까 싶어 이란으로 갔지요.” 그는 2009년 어린 나이에 이란 한국 대사관저 주방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그 후 대사가 뉴욕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뉴욕 한국 총영사관에서도 2년간 셰프로 일했다. 각국 대사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면서 전통의 맛은 살리되 서구식으로 풀어내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반기문 사무총장님의 재취임식 만찬을 준비할 때 비빔밥을 미니멀하게 표현했어요. 사흘 밤낮 꼬박 채소를 썰고, 메추리알을 사용해 한 입 크기 비빔밥을 만들었는데, 반응이 굉장했어요.”
찾아오는 손님이 늘자 2년 전엔 15평이던 식당을 40평이 넘는 공간으로 확장했다.
오랜 타국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그는 2013년에 귀국했고 언니가 있는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그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것은 싱싱한 해산물이었다. “기장시장에 가면 온갖 해산물이 다 있어요. 가격도 저렴한데 신선하기까지 하니 요리하고 싶어 미치겠더라고요. 여기서 살지 않으면 이 맛을 평생 모르겠구나 싶어 달맞이 포차를 차렸어요.”
(왼쪽) 로브스터와 조개, 전복, 새우를 넣고 끓인 해라면과 (오른쪽) 세 가지 소스로 맛을 낸 로브스터 구이와 각종 해산물 요리로 구성한 달맞이 타워.
‘로브스터로 시작해서 로브스터로 끝내기’가 콘셉트라며 허허 웃는 윤나미 셰프는 성인 남성 팔뚝만 한 로브스터를 거침없이 손질했다. 그중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메뉴가 달맞이 타워와 해라면이다. 달맞이 타워는 케이크 스탠드처럼 커다란 그릇에 각종 해산물 요리를 담은 것이 특징. 1층에는 치즈, 표고버섯과 함께 요리한 가리비구이와 홍합 요리, 샐러드를 놓고, 2층에는 매콤한 칠리소스, 담백한 치즈, 짭조름한 허니 버터 소스를 발라 구운 로브스터를 담는다. 국물이 얼큰하고 개운한 해라면은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단골손님 중 일흔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계세요. 부산에 지인만 왔다 하면 저희 집으로 오시더라고요. 다 먹고 나선 꼭 ‘맛있다. 고맙다’라고 말씀해주세요.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누군가 제 요리를 맛보고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주소 부산시 해운대구 달맞이길65번길 5 문의 051-747-7472
갈매기 브루잉 대표 스티븐 올솝
부산을 대표하는 맥주를 꿈꾸다
부산을 대표하는 맥주를 만들고 싶다는 갈매기 브루잉의 스티븐 올솝 대표.
“부산 하면 해운대, 해운대 하면 갈매기, 갈매기 하면 맥주?” 우스갯소리처럼 들릴 테지만 맥주를 사랑하는 부산 사람이라면 이미 눈치챘을지도! 몇 년 전부터 수제 맥주 열풍이 불면서 부산에서도 수제 맥주의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는 곳이 있으니, 바로 스티븐 올솝Steven Allsopp 대표가 운영하는 ‘갈매기 브루잉’이다. 7년 전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그가 부산에 아주 터를 잡고 맥주를 만들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바다, 산, 음식, 사람. 이 모든 것이 모여 만들어내는 부산의 에너지가 좋았어요. 한 가지 딱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맥주였어요.(웃음) 외국 맥주에 비해 맛과 향이 다소 밍밍한 한국 맥주가 맞지 않더군요. 그래서 틈만 나면 직접 맥주를 만들곤 했어요. 처음에는 그저 재미로 시작했는데 만들수록 오기가 생기더군요.”
(위 아래) 매일 만드는 신선한 크래프트 맥주를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실 수 있다.
스티븐 올솝 대표가 취미로 시작한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맥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 혹은 네 번씩 시간을 내 맥주 만들기에 몰두했다. 새로운 맥주를 만들 때마다 주변 지인들과 평가해보면서 그 맛을 함께 즐겼다. 긍정적 반응이 돌아올수록 자신감도 붙었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제 맥주 사업에 뛰어들었고, 남천동에 작은 탭 하우스를 오픈했다. “부산 하면 갈매기가 떠오르잖아요. 고향 집처럼 편해진 부산을 상징하는 이름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결과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부산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불과 2년 만에 본점을 큰 건물로 옮겼고, 해운대와 서면 그리고 남포동까지 매장도 네 개로 늘었다. 서울 신촌의 수제 맥줏집 네이버후드에 갈매기 브루잉의 전 맥주가 입점했다고 하니 그 인기가 놀랍다.
갈매기 브루잉에서 맛볼 수 있는 에스프레소 바닐라 스타우트와 캠프파이어 엠버.
“대개 원가를 아끼기 위해 값싼 옥수수와 맥아를 발효시켜 맥주를 만들고 홉은 향을 내기 위한 용도로만 써요. 반면 우리는 미국에서 공수해온 품질 좋은 특수 맥아와 홉으로만 맥주를 만들어요.” 그가 자신 있게 선보이는 맥주는 총 일곱 가지다. 본점에 전문 시스템을 갖춘 브루어리를 마련해 매일 신선한 맥주를 만든다. 대표 맥주는 갈매기 IPA다. 홉의 씁쓸한 풍미가 느껴지며 목 넘김도 일품이다. 제철 과일을 활용한 맥주도 인기가 많다. 제주도산 한라봉 제스트와 밀맥아를 주재료로 만든 한라봉 휘트, 유자와 천일염으로 만든 유자 고제 맥주로, 쓴맛 사이로 달큰한 과일 맛이 난다. 그 외에도 라이트하우스 블론드, 문라이즈 페일 에일 등을 판매한다.“블러드, 스웨트 앤드 티어스blood, sweat and tears라는 말이 있어요. 좋은 맥주를 만드는 일이 분명 힘들지만 피와 땀, 눈물을 흘릴 만큼 최선을 다했다면 그 맛을 알아주는 이가 반드시 있을 거예요.” 주소 부산시 수영구 광남로 58 문의 070-7677-9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