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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 창립자 카를로 페트리니 회장 당신이 먹는 것이 내일을 만든다
인류의 역사 속에 전해져 내려온 전통과 가치를 지켜내는 동시에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고, 최근의 식문화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지구와 인간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적 미식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오는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에 내한하는 슬로푸드Slow Food 창립자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았다.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의 주최자이며 25년 넘게 지역의 영세 농민에게 관심을 기울여온 카를로 페트리니 회장은 1980년대 중반 로마에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데 앞장선 것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 후반 국제 슬로푸드협회를 창립하고 이탈리아 토리노를 기반으로 ‘테라 마드레Terra Madre’ ‘살로네 델 구스토Salone del Gusto’ 등 슬로푸드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테라 마드레는 ‘어머니의 대지’를 뜻하는 말로, 전 세계 1백53개국의 농부, 어부, 목축인,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요리사 등이 저마다의 지혜와 경험을 한데 모아 의견을 나누는 커뮤니티 네트워크. 테라 마드레를 통해 세계 각지의 슬로푸드 활동가들이 다국적 농업 체계에 반대하며 지역에서 생산하는 건강한 농산물을 먹고 건강하게 살자는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최근 출간한 저서 <테라 마드레, 새로운 인본주의>에서 “지금의 젊은이들은 인류와 대지를 재결합시켜야 하는 세대”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그들의 역할이 왜 중요할까요?
오늘날 우리의 농산물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재고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20세기 이후 전 세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지구 자원의 물량 부족, 점점 균형을 잃어가는 생태계 환경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지구 환경과 우리가 먹는 농산물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재고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젊은이들의 이에 대한 적극적 인식이 필요합니다. 인류 역사가 발전하면서 이어져 내려온 농산물에 대한 전통적 지식과 함께 현대 과학기술을 접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젊은 리더들이 앞으로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입니다. ‘슬로푸드청년 네트워크Slow Food Youth Network’는 젊은 시민과 소비자들이 ‘미래의 땅’에 대한 책임 의식을 지니도록 인식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농부의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 삶을 위해 필수인 전통적 지식과 노하우를 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지구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면 이뤄낼 수 없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지식이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전통적 지식을 현대 과학에 접목해 더 나은 제3의 무엇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바로 세계 각 지역의 생산자들, 농부들, 생명의 원천인 여자들과 현명한 노인들이야말로 바로 이 전통적 지식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세계통합주의를 뜻하는 글로벌리즘globalism과 지역중심주의를 뜻하는 로컬리즘localism이 결합해 ‘지역적 자주성’을 뜻하는 글로컬리즘Glocalism이 탄생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식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세계적 차원의 새로운 혁명이란 오직 지역적 뿌리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로푸드는 식문화 분야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데, 이는 시민이 스스로 식문화를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하고, 생산자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도록 독려하며, 정부와 각종 기관이 친환경 정책을 제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스스로 개발한 방식으로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가는 지역적 자주성은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으로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게 하는 힘을 불어넣습니다. 점차 교육, 종교, 삶의 방식에 대한 인식에도 긍정적 활력을 부여할 것입니다.

우리 식문화에서 생물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이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다양성은 우리 식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지난 몇십 년간 지구 상에서 생물 다양성의 손실은 급격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것은 각 지역의 전통적 생산 커뮤니티가 사라지는 것뿐 아니라 식자재의 안전성 자체에도 혹독한 시련입니다.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 몸에 필요한 전체 칼로리의 60% 이상이 오직 세 가지 곡물을 통해 공급된다고 합니다. 바로 밀, 쌀, 옥수수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생산방식을 동원해 비교적 넓지 않은 면적을 활용한 소규모 농사짓기가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우리의 장바구니는 더욱 다양한 농산물로 채워질 거라 기대합니다.

저서에서 언급한 ‘지구환경에 순응하는 식문화’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나요?
슬로푸드가 생각하는 지구환경에 순응하는 식문화로 회귀하는 방법은 바로 ‘교육’입니다. 정크 푸드,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져 전 세계적으로 획일화된 입맛과 기호를 바꾸기 위해서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한 방법으로 ‘천천히 먹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산업혁명 이후 거세된 우리의 진실한 입맛을 되찾기 위한 것입니다. 개발도상국의 어느 작은 지방에서 농부가 생산한 농산물이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생산한 패스트푸드보다 건강에 좋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음식은 문화이며, 지역의 유산입니다. 각 나라, 각 지역의 고유한 식문화를 살려나간다는 것은 결국 그 지역의 정체성과 유산, 역사를 지켜나간다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유기농 농산물은 중산층 이상의 이들을 위한 것으로 여겨지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기도 합니다.
슬로푸드는 세계 각 지역의 영세 농부들과 생산자들을 지지하며 연결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좋은 음식을 기꺼이 제값을 치르고 사 먹는 것이야말로 좋은 집, 비싼 차, 명품옷을 좇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영세 농부ㆍ어부 등 1차 생산자들이 공급하는 값비싼 식재료를 ‘유기농’이라고 이름 붙여 소수만을 위한 것으로 치부하기 쉬운데, 바로 여기에서 인식의 개념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질 좋은 농산물을 그 가치에 합당한 가격으로 구매하고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몸에도 좋고, 전 세계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는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집에서 요리하거나 일부러 지역 생산물을 판매하는 마켓에 가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생각하지만, 제철과일과 채소를 이용하고, 부분육部分肉을 활용한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먹어도 전혀 문제없는 부위의 고기가 전 세계의 도살장에서 상당량 폐기되기 때문입니다. 하루 세끼, 자기 자신과 가족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약간의 음식을 조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맛의 방주(Ark of Taste)’와 ‘프레시디아Presidia’의 개념을 설명해주세요.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전 세계 생산량의 75%에 달하는 채소종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지구 상에 얼마 남지 않은 특별한 품종을 생산하는 몇 안 되는 생산자가 세상을 떠나거나 그 노하우를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는 그 품종을 영원히 잃게 되지요. 단순히 품종을 생산하는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 의미가 부족합니다. 슬로푸드는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맛의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맛의 방주란 전 세계 동식물종을 모두 모아놓은 국제적 카탈로그라고 볼 수 있는데, 각 지역 커뮤니티의 전통과 역사, 문화를 뒷받침하는 것이라는 전제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프레시디아’란 전 세계 각 지역의 생산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그들의 생산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맛지킴이두레’입니다. 슬로푸드는 프레시디아를 통해 멸종 위기에 놓인 전통 농산물을 보호하고 전통 기술을 공유하며, 토양 체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문제 등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프레시디아는 지구 상의 1만 명이 넘는 생산자들과 함께하고 있으며, FAO와 EU 등 국제기구들이 프레시디아 프로젝트를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슬로푸드 지구촌 식품 공동체 운동인 ‘테라 마드레’를 개최하면서 가장 뜻깊은 기억이 있나요?
‘어머니의 대지’를 뜻하는 테라 마드레는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데, 각국 농부들이 모여 굳건한 동맹과 친목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대표들과 자원봉사자들 중에 가끔 결혼하는 커플이 나오기도 하지요. 테라 마드레에 참여한 어떤 가족은 서로 친해져서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기도 했고요. 언어장벽은 쉽게 극복되고, 문화적 차이 또한 존중됩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와 서로 긴밀하고 뜻깊은 관계를 맺고, 지식을 나누며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해갑니다.


테라 마드레를 통해 전 세계 농부가 만나 경험을 나누는 것이 그들의 자부심 회복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농부들의 자부심 회복은 우리 식문화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요?
젊은 세대는 농업에 종사한다는 것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글로벌 트렌드가 도시에서 일하며 많은 돈을 버는 것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는 농부의 일을 경시하며, 삶의 풍요와 거리가 멀고, 돈을 벌기 힘든 직업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슈퍼마켓에 가서 쌀이나 밀가루, 채소와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도 도시 사람들은 그 식자재가 농부들이 힘들게 일구어낸 노력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무심코 잊습니다. 농부들의 손끝에 우리의 건강과 지구의 미래가 직결되어 있는데도 말이지요. 다행히 최근의 트렌드 연구 결과를 참조하면 많은 젊은이가 도시의 획일적 라이프스타일에 안녕을 고하고 스스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재배하기 위해 ‘땅’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농부에게 존경을 표함으로써 그들의 자부심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1년 내내 힘겹게 가꾸어낸 결실에 마땅한 가치를 지불하는 데 돈을 아끼지 말아야겠지요.

‘어머니의 대지’라는 뜻의 테라 마드레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한 영화가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영화감독 세사르 아우구스토 아세베도Cesar Augusto Acevedo의 영화 <대지와 그늘(Land and Shade)>을 추천합니다. 2015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콜롬비아의 남동쪽 지역인 바예델카우카 주에서 촬영했는데, 해당 지역의 모든 농장을 점령해버린 사탕수수 재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합니다. 영화는 전 세계 소규모 농부와 생산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들이 거대 자본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고, 토양과 전통을 온전하게 지켜내는지를 보여줍니다.

저서에서 “새로운 미식법이 우리의 행복 공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미식법이란 무엇이고 우리의 행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나요?
새로운 미식법은 삶의 철학이며, 음식을 다시 우리 삶의 중심에 세워 인간, 지구, 자연과 재결합하게 만드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새로운 미식법을 ‘행복의 공식’이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음식이 구세대와 신세대를, 과학적 경험과 신성함을, 이타심과 자기애를 융합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미식법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가 다시금 삶의 기쁨을 누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공정한 유통을 거친,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자재를 요리하고 소중한 이들과 좋은 음식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사회 공동체를 재결합시키고, 우리 스스로 지역 농업에 도움을 주며 지구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에도 참석하시지요?
2013년에 이어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가 두 번째 개최하는 슬로푸드 페스티벌입니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국제 식품 박람회인 살로네 델 구스토와 테라 마드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4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온 생산자들과 장인들, 지역의 다양한 식품 커뮤니티, 요리사, 식문화에 관심 많은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큰 행사라 기대가 큽니다.

한국의 식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국의 음식 문화 중 특히 ‘발효’에 관심이 많습니다. 유럽이나 서구 문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식품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발효 음식은 최근 전 세계 미식가의 관심을 받고 있는 대표적 식문화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식문화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나요?
최근 전 세계식품 산업은 굉장히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TV 쇼와 요리책, 요리 수강 코스 등을 통해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개인적ㆍ집단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지요. 이러한 흐름속에서 소위 식문화 트렌드라는것이 생기기도 했지만, 슬로푸드는 식문화를 지배하는 트렌드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식자재 하나하나를 더 소중히 여깁니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전세계 소비자의 작은 선택이 모여 ‘집단적 선택’이 되고, 이는 농산물이 경작되고 생산되는 환경에 영향을 미칠 만큼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소비자는 지역에서 생산한 제철 농산물을 구매하고, 스스로 텃밭을 가꾸는 노력 등을 통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을 맞이해 한국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번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의 다양한 콘텐츠에 흥미를 갖고 지켜봤으면 합니다. 그 어떠한 장벽이나 경계 없이 전세계인을 하나로 통합하는 유일한 한 가지, ‘음식’을 통해 한국 국민도 페스티벌을 마음껏 즐기길 바랍니다.

취재 협조 국제슬로푸드협회(www.slowfoo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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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