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체가 매우 크고 수려한 데다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 靈山으로 불리던 월출산이 김명성발효연구소 앞으로 펼쳐져 있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김명성 씨는 고향으로 돌아와 전통 발효 음식 제조법을 가르치고 있다. 항아리 위 연꽃 모양 표석에는 장을 담근 이의 이름과 재료, 제조 일자 등이 쓰여 있다.
바리데기 공주가 아버지를 살릴 약물을 구하러 가는 구만리 길처럼 돌고 돌아 도는 길이었다. 네 시간은 족히 고속도로에 탕진하고, 다시 내장같이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내달리고, 비포장도로까지 달리고 나서야 젊은 발효꾼이 산다는 ‘무릉’에 들어섰다. 전라남도 영암군 개심리, 어림잡아 해발 800m쯤 되는 월출산이 장대하게 버티고 선 마을, 그 아늑한 터에 새집처럼 숨은 그의 집은 그야말로 무릉이었다. “여가 바람골이어라. 어… 4월까지도 항아리 뚜껑이 날아가버릴 정도로 바람이 세요.” 정수리로 쏟아져 붓는 9월 햇살에 노곤하던 객들은 그 뜸 들인 말씨 덕에 잠시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의 집 뜰 한복판, 옹기 항아리들이 무더기무더기 입을 벌리고 서 있다. 발효 과학의 종주국을 만들어준 이 항아리, 고향 집 힘센 아재처럼 보기에는 투박해도 쉬 변치 않는 그 천성에 마음이 가는 항아리들이 일대 정렬해 있다. 간장이며, 된장이며, 식초가 담긴 장독대로 달려가는 그의 뒤꿈치에 설렘이 툭툭 튕겨나간다. 햇빛과 바람을 이겨내고 단단히 여물어갈 장맛 생각에 몸놀림이 부산하다.
1 약재 식초, 과일 식초, 곡물 식초 등 80종에 달하는 다양한 발효 식초를 선보인다.
2 누룩 향을 줄이기 위해 누룩양을 최소화하고 대신 손으로 호환하는 작업을 한 시간 이상 거친다.
시작은 아내를 위한 김치였다
월출산 자락에서 나고 자라 대처로 나가 병원 사무직으로 밥벌이 하던 그는 몇 해 전 갓 돌이 지난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벌어놓은 돈을 탈탈 털고 농협 빚도 내어 땅과 집을 마련했다. ‘김명성발효연구소’라는 문패 하나 내걸고 간장, 된장 담그며 사는 남자가 되기로 했다. 몇 년 후(전기문의 기승전결이 늘 그러하듯) 그는 자신만의 개념으로 입소문 난 ‘간장 선생, 된장 선생, 발효 선생’이 되었고, 두 아이의 아비 된 자로 인생의 일가를 이루었다. 사실 급선회를 하기까지 그의 삶에 예기치 않은 뇌우가 내리친 적도 없고, 정수리가 쨍하고 뚫리는 이벤트도 없었다. 그저 아내에게 김치를 담가주고 싶다는 바람이 시작이었다.
“김치를 담그기로 마음먹고 서점의 김치책을 모조리 훑었어요. 주말마다 전국의 음식 대전을 찾아다녔고요. 뭣보다 소금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는 또 소금책을 섭렵하고, 8개월 동안 주말이면 배 타고 비금, 하의, 증도, 도초, 안좌도 이렇게 다섯 섬을 쫓아다녔지요. 그러다 도초도에서 박성창 씨를 만나 소금에 대해 제대로 배웠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식객>에 나온 분이더만요. 그다음엔 젓갈을 찾아 돌다가 임자도로 들어가는 아침 첫 배에서 운 좋게 전장포 젓갈 명인을 만나 새우젓에 대한 지식을 싹 다 배웠고요. 어디어디에 명인이 있다는 소문 듣고 찾아가다 잘못 들어간 집이 알고 보니 명인 집이고. 그런 식으로 하면서 제대로 된 재료 찾아 김치를 담가보니 원하는 맛이 나옵디다.” 그의 무기이자 닻은 바로 이 ‘열정’과 ‘몰두’였다.
3 호형호제하는 도예가 정희창의 옹기로 실내를 채웠다.
4 이곳에 직접 들러 시음을 하고 자신에게 맞는 식초를 고르고 나서야 비로소 구입할 수 있는 발효 식초들.
전통 음식에 대한 의문
‘재료 찾아 삼만 리’로 분주하던 그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발효 연구에 투신했다. “우리 전통 음식에까지 관심이 갑디다. 그런데 전통 음식에 대해 파면 팔수록 의문이 생기데요. 왜 장 담글 땐 꼭 고추, 숯, 웃소금, 대추를 넣어야 할까? 왜 그렇게 짠 소금물로 장을 만들어야 할까? 왜 발효액은 재료:설탕=1:1이라는 공식을 따라야 하나? 책도, 선생님들도 속 시원한 설명을 해주지 못하데요. 그게 다 부패를 막고 제대로 발효시키기 위해서일 텐데, 그렇다면 잡균은 생기지 않게, 발효에 필요한 미생물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면 되겠다 싶데요.”
단심으로 무장한 이 남자는 그날부터 태양전지에 플러그 꽂은 것처럼 고민하고 연구하고 궁리했다. 먼저 발효액은 재료와 설탕의 비율을 1:1(설탕 비율이 무려 50%)로 해야 부패하지 않는다는 정설을 깨고 재료와 설탕을 비율별로 나눠 실험했다. 설탕양은 줄이면서도 부패 없이 미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니 재료 중 설탕 비율이 2~5%까지 낮아졌다.
전통 장의 과한 염도(일반적으로 18~19%), 유해 곰팡이(전통 방식으로 띄운 메주는 건강에 유익한 곰팡이뿐 아니라 유해 곰팡이도 함께 핀다. 이 유해 곰팡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전통 장을 먹는 건 암 덩어리를 먹는 것과 같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쿰쿰한 냄새도 그의 도전 욕구를 부추겼다. 먼저 염도가 높아지는 건 장의 부패를 막기 위함일 테니 염도를 낮춰도 장이 상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 콩을 삶을 때부터 물을 넣지 않아 습도를 낮추고, 일본의 낫토나 미소처럼 발효할 때 밀과 보리(역시 수분을 제거해)를 곡물 발효시키니 염도가 10% 수준으로 낮아졌다. 곡물이 들어가니 장맛도 더 깊어졌다. 발효에 필요한 곰팡이만 필 수 있는 환경(메주 띄워 장담글 때까지 스물네 시간 온도를 관리하고, 접지면에 곰팡이가 피지 않게 자리바꿈해주는 등)을 만들어주니 유해 곰팡이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전통 장의 쿰쿰한 냄새는 산야초로 잡았다. 수많은 산야초를 넣어본 끝에 냄새를 잡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산야초를 찾아냈다. 청국장의 냄새 역시 그 산야초로 잡았다.
5 오직 메주, 소금, 물만 넣고 그만의 노하우가 담긴 제조법에 옹기의 신비한 힘을 더하니 이렇게 말간 간장이 만들어졌다.
6 미생물이 독 안에서 제대로 작용해 잘 ‘익은’ 장은 항아리 밖으로 이런 결정체를 만들어낸다.
7 서로를 뗄 수 없는 ‘동행’이라 부르는 도예가 정희창과 발효 전문가 김명성.
대개의 발효 식초에서 나게 마련인 누룩 냄새는 황칠나무, 어성초 같은 약초를 넣는 것으로 해결했다. 우연히 차 만드는 이에게서 “대부분의 음식은 더하는 음식인데 차는 빼 먹는 음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약재를 넣어 약성을 발효 식초 안으로 빼내는 실험을 거쳤다. 의문이 생기면 신열에 들뜬 것처럼 그 해결에 매달리곤 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지금 ‘전통 방식에 자신의 노하우를 더해 새로운 발효의 장을 연 발효 전문가’로 불린다. 짜지 않으면서 깊은 맛의 된장, 감미甘味와 신미辛味가 잘 조화를 이룬 찹쌀떡고추장ㆍ흑마늘고추장ㆍ딸기고추장, 페퍼민트ㆍ바나나ㆍ황칠나무ㆍ울금ㆍ딸기ㆍ누룩 등 뜻밖의 재료로 독특한 풍미를 발하는 80종의 발효 식초, 산야초로 냄새까지 잡은 간장을 만들어내는 참발효 브랜드의 대표가 됐다. 이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불확실함에 도전하는 광기(용기라 하기엔 더 힘차다), 그 도전을 위한 극기에 마음이 꺾인다.
참발효 선생이 되다
주위의 우려와 냉소를 보충 에너지원으로 삼는 배짱, 어떤 다른 삶의 장도 받아들일 준비가 된 행동력까지 갖춘 이 남자. 아이가 태어날 즈음 업과 직을 바꾼 그는 그 아이가 걸음마를 뗄 즈음 ‘발효 선생’이라는 낯설고도 흥미진진한 일에 나섰다. “경제적으로 쪼들려 팔기 급급하다면 내가 어렵게 실험하고 애정을 쏟아 담근 이 된장을 사람들이 그냥 된장으로만 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홍보를 전혀 안 했어요. 의미 있게, 맛있게, 양심껏 만들면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고 믿었죠. 옛 어르신들 방식에 내 실험과 고심을 더한 전통 장 제조법을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오면 장 만드는 수업을 하고, 수업받은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고. 그렇게 흘러갔으면 해요.” 그러고 보니 참발효의 전통 장류는 발효연구소에서 장 담그는 법을 교육받아야 구입이 가능하고, 발효 식초는 직접 이곳에 방문해 그가 권하는 6~7가지 식초를 시음한 후 구입할 수 있다. 이건 자기 삶에 대한 자신감, 남편을 맹신(!)하는 아내가 없다면 꿈조차 꾸지 못할 일이다. 그리고 그의 이 가열찬 인생 2막에는 도예가 정희창이 함께한다. 단맛이 옹차게 녹아든 장독뿐 아니라 김명성발효연구소의 안팎을 채운 조명등, 테이블, 벽난로, 수족관, 세면대, 장식 소품, 식기와 찻잔까지 모두 정희창의 작품이다.
1 ‘사람이 먹고 마실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음식의 사전적 정의, 곧 입맛에 맞아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전통 장을 만들겠다는 그의 다짐이 이 세 종류의 고추장에도 들어 있다.
2 광주의 신창동 유적지 근처에 작업실을 두고 옹기 작업에 매진하는 도예가 정희창.
“따로 온도 관리하는 발효실을 두지 않고, 마당의 장독대가 바로 발효실인 이곳의 장류와 식초는 여름과 겨울을 다 여기서 나야 하니 옹기가 더 중요할 수밖에요. 다른 옹기들은 여름엔 끓어버리고 겨울엔 얼어버릴걸요. 항아리 표면에 이슬처럼 내용물이 배어나오거나 맺히는 거 보세요. 이게 참 신기한데, 내용물은 항아리 밑부분에 깔려 있는데 결정은 항아리 윗부분에 맺힌다는 거예요. 그만큼 숨쉬는 그릇, 미생물이 잘 살아 역할을 하는 그릇이란 의미에요. 그런 옹기를 만들어주는 희창이 형은 그야말로 제 동행이죠.” 1200℃의 고온에서 만들어진 숨구멍으로 밖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안의 습기를 선택적으로 내보내는 이 신비하고 관대한 그릇. 그걸 만드는 정희창은 발효 전문가 김명성에게 동반자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정희창이 빚은 옹기는 이 공간의 생장점을 차지하는 핵심부에, 어머니 내리사랑 같은 장맛을 담는 그릇에 두루두루 쓰인다.
발효라는 인생
필요 없는 것을 얻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이들에 비하면 그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하고 부러워할 즈음, 그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내게 발효가 주는 의미 같은 게 있어요. 두려움 그리고 꿈이에요. 50~ 60이 되었을 때, 남자로서 볼품없어질 나이가 됐을 때 아내에게 ‘나 잘 살았는가’ 물어보면 그 답이 어떻게 나올까 늘 생각해왔어요. 그 생각이 직장을 그만두고 발효에 몰두하게 한 거고요. 발효는 나를 꿈꿀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노년의 내 모습에 대한 꿈.” 썩는다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콩이 발효라는 이름으로 썩어 고추장ㆍ간장 되고, 무ㆍ배추가 발효라는 이름으로 썩어 김치로 거듭나고, 쌀이 발효라는 이름으로 썩어 술이 되듯이. 썩는다는 건 자기 전부를 내놓는 일이니 이만한 베풂이 또 어디 있을까. 몸뚱이 썩어져야 비로소 맛있게 건강하게 완성되는 된장, 간장의 삶에서 깨달은 바다. 옹기 안에 담긴 그의 꿈들도 햇빛과 바람을 이겨내고 여물어갈 것이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베풂이 되면서.
취재 협조 김명성발효연구소(061-472-7372)
- 발효 연구가 김명성 월출산의 간장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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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랑 시스랑, 바그르 퐁!” 발효가 일어날 때 옹기 속에서 나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이 남자, 수많은 실험과 연구로 새로운 발효의 장을 연 ‘김명성발효연구소’의 김명성 대표를 찾았다. 간장, 된장, 발효 식초, 김치, 발효 음료 등 발효 식품을 만들고 제조법을 전수하는 그에게서 본 건 바로 과감한 행동력과 추진력과 응집력으로 지켜가는 한 남자의 ‘꿈’이었다.#김명성발효연구소 #발효식품 #전통음식 #김명성 #정희창글 최혜경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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