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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맛의 방주를 지키는 사람들

제주신라호텔의 한식당 셰프 김영규

제주신라호텔 한식당 ‘천지’의 주방을 책임진 김영규 셰프는 제주도에 내려와 일한 지 벌써 24년째다. 타지인이지만 제주 사람 못지않게 제주 음식 고유의 맛과 멋에 흠뻑 빠진 지 오래다. 톳을 듬뿍 넣고 청양고추로 매콤함을 살린 몸국이나 제주도에서 잔칫날 주로 먹은 옥돔국 등 제주 향토 음식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제주신라호텔에서도 예전부터 제주도 고유의 재료를 이용한 메뉴를 꾸준히 선보여왔다. 몇 년 전 메뉴에 오른 한라봉동치미는 향긋한 귤 향으로 손님들의 미각을 사로잡았고, 옛 제주 어머니들이 밖에 나가 일하느라 양푼에 밥과 야채,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던 것에서 모티프를 얻은 낭푼밥상도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 천지 레스토랑에서 고사리육개장과 전복을 푸짐하게 넣은 해물뚝배기, 흑돼지구이, 갈치조림 등을 맛볼 수 있다.

그는 제주도의 자연에서 나고 자란 풍성한 고기와 해산물, 채소 등을 가장 가깝고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셰프로서 누리는 최대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주문을 하면 하루 만에 수급할 수 있기 때문에 요리에 쓰는 재료는 항상 최상급이다. 그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이번 칼럼을 위해 준비한 고사리육개장과 다금바리 요리, 제주 푸른콩장을 이용한 전복물회, 흑우 스테이크 등은 제주 향토 음식 재료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 가난하던 시절 쇠고기를 구하기 힘들어 돼지고기 육수로 끓인 육개장은 한우 양지로 국물을 내고, 제주푸른콩장은 스테이크 소스로 만들었다. 특히 서양식 스테이크로 조리한 흑우는 일반 한우에 비해 풍부한 육즙 덕분에 좀 더 익혀도 부드러워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다는 게 그의 설명. 앞으로 제주신라호텔을 찾은 고객에게 지역의 향토 음식을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음식은 정성이다”라고 말하는 김영규 셰프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천지’를 찾을 것!


제주특산 대표 김행근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제주특산 김행근 대표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가업을 물려받아 댕유지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댕유지를 대량으로 생산하며 맛의 방주에 등재시킨 주인공이다. 댕유지 속에는 항산화 성분인 레모네이드를 다량 함유해 우리 몸에 이로운데, 댕유지가 한라봉과 감귤에 비해 외지인은 물론 제주 사람들에게도 외면받고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맛의 방주에 올린 것이다. 쌉싸래한 맛이 강해 생으로 먹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이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댕유지차를 선보인다. 제철인 1월이 되면 멜론만큼이나 커다랗게 자란 샛노란 댕유지 55%와 설탕 45%를 배합해 전통 방법으로 댕유지차를 만드는 것. 김행근 대표는 액상 차로만 활용하기 아까운 댕유지를 화장품이나 건강 기능 식품인 캡슐의 원료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한라산청정촌 대표 김민수

김민수 대표의 어머니 양정옥 씨와 아버지 김성주 씨는 푸른독새기콩이 장류 원료로 우수하다는 믿음과 확신으로 1997년부터 푸른콩장을 만들어왔다. 제주푸른콩장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본 김민수 대표 역시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도우며 제주도만의 전통 장 제조 문화를 지켜가고 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푸른콩장은 2013년 우리나라 최초로 맛의 방주 1호에 올라갈 수 있었을 터. 김민수 대표는 푸른콩장을 단순히 잘 만드는 것을 넘어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2008년에는 최고의 발효 전문가를 제주도에 초청해 온 가족이 함께 발효 과정과 곰팡이, 균 등을 공부했을 정도로 푸른콩장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제주도 슬로푸드 지부장까지 겸하고 있는 그는 토종 교육장을 따로 두어 장 만들기부터 전통 장의 효능 등과 관련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진미명가의 다금바리 명인 강창건 

진미명가는 진귀한 제주다금바리를 가장 신선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33년간 다금바리를 조리해온 강창건 대표는 다금바리 한 마리에서 30여 가지의 맛을 찾아내 조리하는 기술로 ‘다금바리 특허 1호’의 영예를 안은 명인이다. 진미명가에 들어서면 펄떡이는 큼직한 다금바리에 놀라고, 그의 현란한 칼 솜씨에 탄성을 자아내며, 빠른 손놀림으로 회 뜬 다금바리 회 맛에 감동이 밀려온다. 이미 지난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 음식의 향연’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여, 유일무이한 조리 솜씨로 만든 다금바리 요리를 세계에 알리고 ‘100명의 요리 거장’에 선정된 바 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인은 물론 우리 입맛에도 그의 손으로 회를 뜬 다금바리는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진미 중 진미다. 강창건 대표의 다금바리 회는 ‘일생에 한 번 꼭 먹어야 할 음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해양수산연구원 수산종자연구센터 소장 원승환 

해양수산연구원 수산종자연구센터는 어류를 제외한 오분자기, 전복, 해삼 등의 패류를 기르며 종자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곳이다. 이곳을 책임지는 원승환 소장은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제주 해안가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오분자기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거대한 양식장에서 오분자기 어미를 키우면서 숙성·산란·수정 과정을 거쳐 오분자기 새끼를 얻는다. 수온과 수질, 빛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양식장에서 키운 약 1백만 마리의 오분자기 새끼를 해조류가 풍부하고 수질이 깨끗한 바다에 무상으로 방류하고 있는 것. 원승환 소장은 제주의 특산 요리인 오분자기 뚝배기가 아니라 전복 뚝배기로 바뀌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분자기가 많이 자라는 양식장을 적극 찾고, 무분별한 금채기(禁採期)를 제한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감물 염색 작가 박지혜

예부터 감나무가 많아 ‘감낭골’이라 불리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의 위미항구로121번길 골목으로 들어서면 귤나무와 감나무가 있는 마당이 펼쳐진 박지혜 작가의 작업실이 보인다. 섬유미술을 전공한 그는 염색 작업을 하면서 제주재래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옛 문헌에 따르면 어망부터 우산, 부채, 무명옷 등에 풋감즙을 물들여 쓴 기록이 있고, 감물로 염색한 복식이 성행했다. 감물을 빳빳하게 들인 제주 갈옷은 1960년대까지 민속 일상복으로 입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1백 년 이상 된 감나무는 10~15그루 정도뿐이라고. 박지혜 작가는 사라져가는 감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제주재래감을 맛의 방주에 등재하기에 이르렀다. 제주재래감은 한 번만 염색해도 발색이 좋고, 햇볕에 말리면 곱고 은은한 빛깔이 돈다. 그렇게 감물로 염색한 옷은 방수와 방부, 항균 효과가 있어 피부에 좋다.


제주민속식품 대표 강주남 

강주남 대표가 꿩엿을 만드는 이유는 확고하다. 꿩엿의 맛과 가치를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기 때문. 그는 꿩고기가 가장 맛있는 시기인 12월이 되면 사흘 밤낮을 꼬박 새우면서 정성스럽게 꿩엿을 만든다. 고아내면 낼수록 당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의 꿩엿은 단맛이 강하고 꿩고기가 씹히는 식감이 좋다. 재래종 차조가 워낙 귀해져 찹쌀로 만들 수밖에 없지만 그 맛과 품질은 변함없이 훌륭하다. 꿩엿을 대중화하기 위해 귤 잼, 전복엿, 해초 잼을 선보인 것도 강 대표의 아이디어다. 꿩엿의 맛을 좌우하는 엿기름에 귤, 전복, 해초 등을 넣어 달달하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한 것. 식당과 꿩 교육장을 함께 운영하면서 방문하는 이에게 단백질이 풍부한 꿩고기의 효능을 알리는 일도 한다. 농장 한쪽에 마련한 사육장에서 희귀한 흰 꿩도 볼 수 있고, 식당에서는 꿩고기로 육수를 낸 칼국수도 맛볼 수 있다. 


제주 향토 요리 명인 김지순·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원장 양용진

김지순 명인은 누구보다 제주 음식을 사랑한다. 젊은 시절부터대학교에서 요리를 가르친 그는 제주도 음식에 대한 자료를 체 계적으로 정립했고, 김지순요리제과전문학원에서 제주 향토 음식의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2002년에는 그의 아들 양용진 원장과 함께 제주의 맛을 제대로 알리고자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을 설립했다. 그러던 차 슬로푸드와 연이 닿아 제주 문화를 간직한 몸국, 골감주, 고사리 육개장, 강술 등을 맛의 방주에 올렸다. 이들 모자는 제주도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정체불명의 향토 음식을 파는 현실이 안타까웠단다. 그래서 다가오는 11월, 원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제주 향토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을 오픈한다. 꿩엿으로 만든 고구마맛탕을 비롯해 맛의 방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 소장 고정순

제주 음식 문화를 연구하고, 귀빈이나 외국인에게 제주도 밥상을 대접함으로써 제주 음식을 알리는 고정순 소장은 순다리를 맛의 방주에 등재시켰다. 칼로리가 낮고 섬유질과 유산균이 풍부한 순다리에는 조상의 정신까지 담겨 있어 슬로푸드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현대인에게 잘 맞을 거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으로 제주 음식 전시회나 세미나 등에서 순다리를 후식으로 내놓았고, “꽤 맛있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여기엔 순다리 본연의 맛을 잘 이해하면서도 현대인의 기호를 꿰뚫은 그의 심미안이 한몫했다. 누룩의 쿰쿰한 향과 탄산의 시큼한 맛을 중화하고 요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달달함을 가미한 것. 신선한 제철 재료에 과도한 양념을 배제한 제주 음식과 닮은 점이 많은 사찰 음식을 배우기 위해 10년째 선재 스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그는 제주 음식으로 코스 메뉴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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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혜민 기자, 이정주 | 사진 이우경,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