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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남&정지은 모녀 [엄마의 맛을 기록하다] 엄마의 맛을 ‘그림’으로 기록하다
“밥은 먹었니?” 엄마는 늘 끼니 걱정부터 하십니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 보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인 것이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삼시 세끼 밥해 먹이는 일을 숙명처럼 여기며 이른바 부엌데기를 자처하는 이들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 엄마입니다. 자식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껏 만든 음식이니 세상 모든 아들딸에게 엄마의 맛은 배속과 마음속을 가득 채우는 행복한 먹거리인 동시에 최고의 미식美食일 수밖에요. 고단한 세상살이를 견디게 하는 위로이자 “괜찮아, 괜찮아” 하며 엄마가 넌지시 건네는 응원이 기도 합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음이 시리고 아플 때, 홀로 적적할 때 가장 먼저 엄마가 해준 따뜻한 집밥이 떠오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미식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요즘 한창인 집밥 신드롬은 집에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싶다는 현대인의 절절한 호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뿐인가요. 엄마의 음식은 입맛의 기준이기도 합니다. 태어나서부터 내내 길들여진 입맛인지라, 어떤 음식이든 맛의 기준은 엄마의 손맛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엌에서 문지방을 넘어 안개처럼 부옇게 스며들던 찌개 냄새, 그 냄새와 맛에 홀려 밥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운 기억은 ‘우리 엄마’의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천상의 맛으로 등극시키기도 합니다. 가슴을 아련하게 하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레시피 카드로, 사진으로, 그림으로, 스크랩북으로, 요리책으로… 삶의 근간이 되는 엄마의 맛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추억하는 엄마의 음식도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엄마의 맛을 기록하는 순간을 치유의 시간이라고 입 모아 말합니다. 엄마가 해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배뿐 아니라 영혼의 허기를 달랜 경험, 당신이라고 없을까요? 언젠가는 엄마의 김치, 엄마의 찌개를 절절하게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요. 내 입에 달고 내 몸에 약이 되는 우리 엄마의 손맛을 기록해보세요. 가족을 위해 헌신한 엄마에게 바치는 헌사로 내게는 물론 우리의 엄마에게도 마음 훈훈한 선물이 될 겁니다.


“일요일 아침, 늘어지게 잠을 자다가도 ‘떡볶이 다 됐다’ 하는 엄마의 한마디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을 했어요.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서 식탁에 둘러앉아 TV에서 하는 월트 디즈니 만화를 보면서 눈을 부비며 떡볶이를 먹는 한가로운 풍경,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가장 따뜻하게 자리한 기억이에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게 기억되는 장면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정지은 작가에게는 가족이 모여 한가로이 떡볶이를 먹는 일요일 아침이 그렇지요. 엄마의 솜씨가 유달리 빼어나서도, 음식이 특별해서도 아닙니다. 엄마 손끝에서 나와 혀에 버무려진 그 맛이 주는 위로가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지요. 그에게 엄마의 음식은 마음 한 상이기에 그리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자 그림을 그립니다. 엄마의 손맛을 기록하겠다는 포부보다는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그리며 따뜻한 이미지와 순간을 되새김하고 기억하는 과정이 그에겐 더욱 의미 있는 것이지요.

“제게 음식을 그리는 작업은 일기를 쓰는 것과 같아요. 음식 자체의 맛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한 스토리 한 줄이 더해져 더욱 의미 있는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 찍듯이 말이에요.” 연필로 스케치하고, 색연필이나 수채화 물감으로 채색하고, 다시 붓펜으로 세밀하게 작업하는 과정은 그에게 추억을 재현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듯,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듯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엄마의 음식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모든 형태를 오롯이 인식할 수 있다지요. 손바닥만 한 캔버스 위에 그린 집밥에 실고추같은 고명까지 생생하게 올라간 모습을 보니 소소한 기억을 붙잡기 위한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엿보입니다. 핸드폰으로 찍어 SNS에 자랑하듯 올리는 사진과는 다른, 간절한 그리움이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니 솜씨가 서툴러도 엄마가 차려준 추억의 음식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동합니다.

매일 9첩, 12첩 반상을 차려준 것은 아니지만 기억 속 집밥은 엄마가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입니다. 집이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라는 인상을 자녀에게 심어준 어버이는 훌륭한 부모라지요. 음식 솜씨는 없다 손사래를 치지만, 박옥남 씨는 최고의 요리사이자 세상 부럽지 않은 행복한 엄마입니다. “친정엄마만큼 솜씨가 좋지는 않지만 바깥 음식이 워낙에 자극적이니 덤덤하게 만들어줘요. 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손맛 같은 건 딱히 없어요. 그냥 내 품에 있을 때 다 해보고, 나중에 시집가면 솜씨대로, 입맛대로 제 가족에게 잘하면 되죠.” 그러곤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라고 딸에게 이릅니다.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말이지요.


덤덤한 치즈 떡볶이와 감자전
“손맛이 필요한 요리는 아니지만 떡볶이와 감자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표 음식이자, 학창 시절 친구들이 놀러 오면 늘 해주시던 메뉴였어요. 우리 집 집밥은 덤덤한 맛이 특징인데, 떡볶이도 맵고 짜고 달달한 것보다 엄마가 해준 것이 제 입맛엔 딱이었죠. 설탕 대신 매실액을 넣는 것이 포인트예요. 떡볶이 떡과 양배추, 양파 등 채소를 육수와 함께 끓이다 고추장 양념을 넣기 전에 매실액을 넣어 끓여요. 그래야 단맛이 잘 배거든요. 그런 다음 고추장과 간장으로만 간을 하지요. 감자전은 고칼로리라 특별한 날에만 해주셨어요. 감자를 갈지 않고 채 썰어서 밀가루를 약간 넣어 섞은 다음 프라이팬에 올려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 치즈를 올려 열기에 녹여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에요.” 

<행복> 음식문화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