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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브뤼셀에서 주목받는 한식당 분위기에 반하고 맛에 감동하다
베를린의 ‘김치 프린세스’, 런던의 ‘김치’ 활약에 이어 프랑스와 벨기에에 문을 연 한식당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해외여행이 흔치 않던 시절, 패키지 여행자들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먹기 위해 들르던 한국 식당의 저렴한 이미지를 벗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최상의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으로 현지인에게 말을 건네는 ‘코리안 레스토랑’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소중한 경험과 용기 그리고 한식에 대한 열정으로 최근에 오픈한 이들이 이끄는 한국 음식 열풍은 한식 세계화가 지향해야 할 해답을 보여준다.

미MEE
콘크리트 노출 벽의 일부를 살려 오랜 건물의 역사를 자연스레 보여주는 미. 한쪽 벽면에 걸린 대형 그림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젊은 작가 박인혁의 작품. 
절제된 모던함 속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파리 한식 레스토랑을 꼽으라면 ‘권스 다이닝’이 언제나 1순위였다. 권스 다이닝의 오너인 권유철 사장의 아들 권하늬 씨가 오페라 지역에 새롭게 오픈한 한식 비스트로 ‘미’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이다. 2014년 11월 11일에 문을 연 이 레스토랑은 6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프랑스의 명문 음악 학교인 CNSM(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의 마스터 과정까지 졸업한 실력 있는 뮤지션이 운영한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하나 더 흥미로운 점은 권하늬 씨가 평생 연주해온 클래식을 잠시 접고 2년 전부터 일렉트릭의 매력에 빠져 랭페라트리스L’Impératrice라는 그룹을 결성했으며, 거기에서 키보드와 작곡에 몰두하며 미의 운영까지 맡고 있다는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 곳이 얼마나 예술적 감성이 충만한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권 씨가 루브르 박물관과 가르니에 오페라 사이에 레스토랑 자리를 고집한 것은 지난 삶의 친구가 되어온 문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미는 젊은 피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곳이다. 인테리어를 공부한 룸메이트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도와주었는가 하면 열광적인 클럽에서 만난 친구와 감각이 뛰어난 동창생이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었고 지금도 그들과 함께한다. 낯선 길이지만 가족과 친구가 함께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은 이유다.

권스 다이닝의 인기 메뉴인 매운 갈비도 미에서 맛볼 수 있다.
레스토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베르사유 궁전과 상원 등에 걸려 있는 빈티지 시계, 브리에가 시야에 들어온다. 3대에 걸쳐 벽시계를 만드는 장인의 모습이 잠시 오버랩되면서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기다란 식탁이 나온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앉을 수 있는 개방적 구조는 학교 식당의 정겨움이 배어 있다. 테이블 위에는 심플함과 모던함으로 유명한 알레시Alessi의 식기가 세팅돼 있다. 투명하고 가벼운 알레시 용품들은 한국 음식의 단아한 점이 도드라지게 만드는 특징이 있는데, 여느 한국 레스토랑에서 보기 힘든 세심한 선택은 부모가 운영하는 권스 다이닝의 그것과 꼭 닮았다.

매운 돼지갈비에서 볼 수 있듯 권스 다이닝의 인기 메뉴가 일부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메뉴의 전부는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 말고는 유독 음식 문화에 관심을 가져온 젊은 오너는 “프랑스인의 미각을 감동시키는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는 기대와 즐거움으로 하루를 살아간다”고 말할 정도로 의욕에 차 있어 신메뉴를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생업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국 문화를 알리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남다른 자부심으로 한국 레스토랑의 고급화를 이끌어가는 부모의 운영 철학을 이어가되 합리적 가격으로 문턱을 낮추고 한식을 단순히 음식이 아닌 문화로 접근하려는 캐주얼 다이닝 미의 새로운 시도는 현재 진행 중이다. 지금은 음식을 즐기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실내 음악도 배제하지만 조만간 친구들을 모아 음악을 연주하는 행사도 진행하고 다양한 테마의 한국 레스토랑을 속속 열어가겠다는 이민 2세대의 새로운 에너지는 오히려 부모에게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주소 5 rue d’Argenteuil 75001 Paris 문의 01 42 86 11 85


순 그릴Soon Grill
1 순 그릴의 천장에 매달린 전통 도자는 김정미 작가 작품. 
2 독일에서 특별 제작한 금속 소재의 발은 벽 역할을 겸하며 간접조명이 비쳐 순 그릴의 내부 분위기에 운치를 더한다. 

<꽃보다 할배> 프랑스 편에서 할배들이 찾은 샹젤리제 거리의 한식 레스토랑, ‘순Soon’을 기억하는지? ‘순 그릴’은 ‘순’의 오너가 함께 운영하는 구이 전문 레스토랑으로 2015년 2월에 문을 열었다. 파리에서 가장 창조적인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의 아지트인 마레에 레스토랑을 열겠다고 그가 계획한 것은 연극 배우로 유럽에 와서 꿈을 펼친 오너 한성학 씨의 고집 때문이다. 대학에서 연극과를 졸업한 후 동성아트센터에 들어갔다가 3개월 뒤 독일 극단에 공연을 하기 위해 오면서 유럽과 연을 맺은 그는 독일 극단에서 3년간 유럽 투어 공연을 하던 중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에콜 자크르콕과 에콜 샤를르 뒤랑에서 프랑스의 전통 연극을 공부하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아티스트이던 한 씨는 어느 날 생계를 고민하던 중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순 그릴을 오픈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레스토랑의 구상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설계를 맡은 막역지간의 임우진 건축사가 한 사장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파리에서 가장 한국적이면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최고 맛을 즐길 수 있는 제대로 된 한국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포부에서 시작한 순 그릴은 한 사장이 유럽에서 호평받는 한국 레스토랑은 물론, 파리 현지의 고급 레스토랑을 직접 발로 뛰며 3년간 준비한 결과물이다.

3, 4 순 그릴의 대표 메뉴는 단연 고기 요리다.  
5 순 그릴의 입구에는 항아리를 프랑스 스타일로 페인트칠해 연출한 작은 정원이 있다. 

레스토랑 입구 오른편에는 우리나라의 남도에서 가져온 항아리에 프랑스 스타일로 페인트를 칠한 작은 정원이 눈에 띄는데, 마치 평화로운 정원에서 식사를 즐기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내부 벽에는 발이 쳐져 있다. 일반적으로 나무 소재로 만드는 우리 것과 달리 연기와 기름에 강한 금속 재료로 만든 발은 독일에서 특별 제작한 것으로, 간접 조명이 비쳐 젠 스타일이 느껴진다. 레스토랑 중심에는 천장에 매달린 전통 도자들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천장이나 기둥에 도자를 두고 감상하는 유럽 스타일의 감상법에서 힌트를 얻어 착안했다고 한다.

돌솥비빔밥 같은 가벼운 점심 메뉴도 훌륭하지만, 순 그릴에서 즐길 수 있는 메인은 역시 고기 요리다. 프랑스산 고기는 물론 일본산 와규, 이베리코 돼지삼겹살, 프랑스산 등심처럼 여러 나라에서 고기를 들여오는데 그중 140g에 1백70유로에 달하는 일본산 와규는 이미 고기 맛을 좀 안다는 일본인 단골이 생겨났고, 도토리를 먹고 자란 흑돼지 특유의 쫄깃함과 깊은 풍미가 특징적인 이베리코 돼지고기 역시 인기 메뉴로 자리 매김했다. 40일간의 숙성을 거쳐 내놓는 독일산 안심 역시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입소문 났다. 거기에 고기 종류와 부위에 따라 마리아주를 고려해 엄선한 와인 리스트를 위해 프랑스 소믈리에를 상주시키고, 일부 와인의 경우 잔 단위로 즐길 수 있도록 1천만 원대의 디스펜서를 갖춘 것도 한 병을 소화하지 못하는 손님을 위한 특별한 배려다. 이제 갓 오픈했지만 <피가로 스코프> <렉스프레스> 같은 프랑스 현지 언론에 잇따라 소개되고 있는 순 그릴은 마레에서 가장 ‘핫’한 레스토랑 중 한 곳으로 현지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주소 78 rue des Tournelles 75003 Paris 문의 01 42 77 13 56


이바지Ibaji
1, 2 다양한 컬러의 플라스틱 바구니로 만든 천장의 펜던트 조명등과 깨진 접시 조각으로 장식한 외관이 인상적인 이바지의 공간 디자인에는 세계적 디자이너 파올라 나보네Paola Navone가 참여했다.
3 이바지의 인기 메뉴 김치 버거와 전. 

파리에서 예술가가 가장 많이 모여드는 북마레에 문을 연 코리안 레스토랑. 특별하게도 오너가 프랑스인이다. ‘이바지’는 프랑스인이 갖고 있는 전통 아시아 퀴진에 대한 레퍼런스를 지양하고 다양한 문화 요소를 가미한 특별 공간을 만들겠다는 콘셉트로 태어났다. 깨진 접시 조각을 모아 장식한 외관과 독특한 인테리어, 서로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기다란 테이블에 함께 앉아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격식을 없앤 점 또한 프랑스인의 자유분방한 정서에 가깝다.

음식은 미국의 르코르동블루와 프랑스 파리의 요리학교 에콜 페랑디 등에서 요리를 공부했으며, 호주의 아델라이드, 파리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인 죄 키친 갤러리 등에서 실력을 쌓아온 한국인 셰프 용석원 씨가 책임진다. 전통 한식 요리와 프랑스인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코리안과 프렌치 입맛의 접점을 찾아낸 퓨전 요리를 내놓기도 하는데, 요리에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친환경 재배만 고집하기 때문에 건강에 관심이 많은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 있다. 신선한 파와 해물을 넣은 바삭한 전이나 막걸리를 즐기는 프랑스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영락없이 한국의 포장마차가 연상되기도 한다. 김치를 곁들인 김치 버거는 이색 먹거리이자 개방적인 파리지앵을 위한 특별한 메뉴로 사랑받는다. 조금은 낯선 음식일 수 있지만 유니크한 인테리어와 음식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낮 시간에는 길게 늘어선 줄로 기다리다 못해 발길을 돌리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이바지야말로 파리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한국 레스토랑의 인기를 감지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주소 13 rue du Vertbois 75003 Paris 문의 01 42 71 67 81


벨기에 브뤼셀 마루Maru
1 마루의 인테리어는 피에르 로하스Pierre Lohas가 디자인했으며, 그래픽 디자인은 세계적 디자인 회사 바즈 디자인Base Design의 작품.
2 한국 전통 음식을 현지화 한 마루에서는 우리 음식과 잘 어울리는 유명 와인도 맛볼 수 있다.
3 우리나라 고지도에 유니크한 타이포로 ‘구름 위의 만찬’이라 쓴 메뉴판도 예술 작품에 가깝다. 

그랑 플라스 같은 관광지에서는 한 발짝 떨어진 브뤼셀의 워털루 거리에 위치한 ‘마루’는 유럽에서 가장 컨템퍼러리한 한국 레스토랑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공간 미술을 전공하고 활동 중인 안주인 허경 사장의 한식에 대한 열정과 남편이자 아티스트인 보리스 보카른Boris Beaucarne의 섬세한 터치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코리안 키친’이라는 글씨가 눈길을 끄는 통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내부는 활기찬 색채가 눈길을 사로잡고, 디자인 안목이 높은 주인의 센스를 감지할 수 있다.

시끌벅적한 포장마차 분위기가 얼핏 연상되지만 속살을 헤집고 들어가면 조금 차갑게 느껴지던 바깥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미니멀리즘과 컨템퍼러리한 분위기가 지배적인데, 여럿이 둘러앉아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기다란 테이블과 작은 탁자 등 다양한 형태의 가구가 놓여 있고, 메뉴판부터 명함에 이르기까지 작은 것 하나에도 세심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을 적용했다. 그릇과 젓가락도 허투루 내놓지 않고 안주인이 한국을 오가며 깐깐하게 고른 고급스러운 기물과 소품으로 한국의 미를 알린다. 또 벨기에 고객과 어울릴 줄 아는 오너의 모습에는 당당함이 있다. 이는 음식과 디자인 감각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리라.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것이 난무하지만 과하지 않은 이들의 조화는 벨기에와 한국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주인장의 감각 없이는 불가능한 연출이다.

음식에 눈을 돌리면 불고기와 비빔밥 같은 한국 음식은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했고, 음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와인은 소믈리에가 상주하면서 정성스레 설명해준다. 루아르의 슈베르니 지역에 있는 필리프 테시에 양조장의 피우피우Piupiu나 코테 드 피 모르공 다미앙 코켈레Côte de Py Morgon Damien Coquelet 같은 매운 우리 음식과 훌륭한 마리아주를 이루는 추천 와인이 대부분이며, 랑그도크루시용 지역의 클로 팡틴 포제르 Clos Fantine Faugères는 마루 이외의 레스토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 미슐랭 가이드북을 비롯해 벨기에 현지 언론의 추천 리스트에 늘상 이름을 올리는 마루는 벨기에 레스토랑계의 핫 플레이스임에 틀림없다.
주소 Chaussee de Waterloo 1050 Bruxelles 문의 32 2 346 1111

글과 사진 정기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