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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김종훈∙문지영 부부 "찻방은 편안하게 꾸미고, 차茶는 놀이처럼 즐겨요"
부부 도예가 김종훈ㆍ문지영에게 차는 일상이다. 말차 두 잔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김종훈 도예가는 낮 시간에는 작업실 옆에 마련한 다실에서 아내와 함께 보이차를 즐겨 마신다. 찻사발 작가이기도 한 그는 차 마시는 즐거움을 명쾌하게 정의한다. “소꿉놀이하듯 다도茶道를 하면 다인茶人입니다. 놀이의 미학이 차 안에 담겨 있습니다.”

겨울에는 장작 난로가 있는 다실 좌탁에 앉아 차를 즐긴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 하은이와 함께 보이차를 즐기는 김종훈ㆍ문지영 부부의 모습이 다정하다. 
장작 가마 옆에 있는 흙으로 지은 한옥 다실로 들어서자 군고구마 냄새가 그윽하게 콧속을 자극한다. 차가운 공기를 밀어내는 장작 난로 옆에는 탕관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련한 햇살 아래 놓인 좌식 테이블에 찻상이 금세 차려졌다. 차를 우리는 김종훈 도예가의 몸짓이 능숙하고 편안하다. “숙차입니다. 보이차普 茶는 발효하지 않은 찻잎으로 만들어 장기 숙성시키는 생차生茶와 발효가 진행된 찻잎으로 만든 숙차熟茶로 나뉘는데, 이건 10년 된 숙차예요. 보이차특유의 떫은맛이 적고 전체적으로 맛과 향이 부드러운 편이죠.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기에 어떤 차가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숙차를 선호합니다.” 진하지만 맑은 흙빛을 내는 보이차 한 잔 마시니 몸에 따스한 기운이 그대로 전해진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구마를 나누어주는 아내 문지영 작가 역시 보이차를 즐겨 마신다.

12년 전 여주에 정주定住한 도예가 김종훈은 찻그릇(다완)과 다기를 만들고 그의 아내 문지영은 도자기로 테이블웨어를 만든다. 그릇을 빚는 부부다. 큼지막한 한옥 다실에 좌탁 두 개와 입식 찻상, 찻잔 서랍까지 두루 갖추었다. 장정 여럿이 들어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돌로 만든 차탁은 한여름에 편하게 즐기는 찻자리. 고가구에 관심이 많은 김종훈 작가가 수집한 앤티크 찻장에는 찻사발을 비롯한 다기가 가득하다. 그야말로 차를 일상에 깊숙이 들인 다인茶人의 다실

1 설우요 김종훈 도예가의 탕관(찻주전자)들. 흙 느낌이 그대로 느껴지는 질감과 연꽃 모양의 주전자 뚜껑이 특징으로 찻물을 끓이는 데 사용한다 
2 돌로 만든 입식 찻상. 차가운 돌의 질감이 백자와 만나 만든 색 대비가 아름답다. 무더운 여름에 즐기는 찻 자리다. 

“격식도 하나의 놀이입니다”
김종훈 작가는 찻그릇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2년간 안국동에 있는 일본 다도 종가인 우라센케(裏千家)에서 다도 공부를 했다. 하지만 그에게 한국차, 중국차, 일본차는 종류가 다를 뿐, 차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모두 같다. “찻그릇을 만들기 전에는 차를 전혀 마시지 않았습니다. 대학교에서 도예를 공부하면서 조선시대 찻사발에 매료되어, 졸업 작품도 찻사발이었지요. 기능 면을 깊이 있게 알기 위해 다도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차를 즐기게 된 것이죠. 정보를 알아야 즐겁게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잖아요. 제게 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도를 알면 정성과 재미가 보여요. 다실에 걸린 족자, 화기, 다식이 무엇인지에 따라 차를 대접하는 이가 나를 얼마나 배려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실로 들어가는 정원에 있는 나무들의 잎을 닦고 촉촉하게 이슬을 적셔두기도 하는데, 그것을 볼 줄 모르면 알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이럴 땐 격식도 제겐 하나의 놀이입니다. 차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죠.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분야입니다.”김종훈 작가는 생활 속 차 문화도 강조했다. “차를 꼭 배워야 마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규칙을 정하고 강요하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해요. 차도 커피처럼 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블렌딩을 통해 취향대로 섞어 마실 수 있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일이 훨씬 번잡스럽지 않나요?”

1 한옥 문살의 격자 문양 너머로 빛이 아련하게 들어오는 다실 한 켠. 김종훈 작가의 찻사발과 다관 등 다기를 가지런히 놓았다. 단아한 미감이 살아 있는 고가구 선반에 놓여 단정하고 우아하다.
2 설우요 김종훈 작가의 찻사발. 김종훈 작가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 찻사발에 말차 두 잔을 만들어 마신다. 

“써봐야 알고, 마셔봐야 느낍니다”
김종훈 작가에 따르면 무엇보다 차에 대한 기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장 쉬운 방법은 좋은 차를 마시는 것이다. 비싼 차라기보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고 공감하는 차가 좋다. 둘째로 좋은 다기를 만나야 한다. 좋은 다기를 쓰면 나쁜 차를 마실 가능성이 적어진다. 그런 면에서 도자기는 훌륭한 차 선생이다. 그는 인지도가 있으면서 합리적인 가격의 다기도 많다고 조언한다. “맨숭맨숭하게 대여섯 번 우려 마시는 게 나을까요, 정말 맛있게 열다섯 번 우려 마시는 게 좋을까요? 좋은 다기를 만나면 못느끼던 차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차 맛을 알면 차를 즐기게 됩니다.” 김종훈 작가의 말처럼 좋은 차와 좋은 다기가 만났을 때 차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으리라.

높은 온도에서 우려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는 보이차의 경우 특히 다구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사호紫沙壺라 불리는 중국 주전자가 있어요. 중국 장쑤 성 이싱에서 생산하는 찻주전자로 다 기공성 소재예요. 주전자를 깨보면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공기구멍이 있습니다. 열전도율이 낮아 펄펄 끓는 물을 담아도 손잡이가 뜨겁지 않죠. 보이차의 색과 향, 맛을 결정하는 부분인 거예요. 백자는 반대입니다. 열 방출이 빨라 찻물이 빠지면 순식간에 식어버리고 맛도 앗아가지요. 그런 면에서 백자는 한번 식혀 마시는 녹차에 적합하죠. 물줄기가 힘 있게 나오는 출수出水, 차를 따를 때 물이 주둥이에서 지저분하지 않게 깔끔히 떨어지는 절수切水, 물이 흘러나오지 않는 금수禁水가 좋은 다관 역시 차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보이차용 백자도 있는데, 그 밀도가 굉장히 얇아요. 최대한 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죠. 이렇듯 차에 맞는 다기를 이해하고 쓸 줄 알면 훨씬 더 차를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습니다.”

좌탁 옆으로는 김종훈 작가가 빚은 찻사발이 큼지막한 테이블 위에 잔뜩 얹혀 있다. 가루차용 찻그릇으로 하나하나 그 모양새가 다르다. “찻그릇이 애인이자 자식 같다는 생각을 해요. 매일 같은 모습이 없어요. 찻물이 들어가면 물을 머금으면서 그릇의 색이 변합니다. 어찌 보면 완전히 익지 않은 그릇이에요. 함께 세월을 보내고, 함께 고난을 겪으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애틋한 마음이 생깁니다.” 찻그릇이 입술에 닿는 질감, 찻물의 움직임, 찻잔에 자작하게 담기는 차의 물결과 그릇을 감싼 손에 전달되는 온기를 느끼며 차와 나누는 교감, 이것이 이 부부가 차를 즐기는 방법이다

1, 2 김종훈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하나씩 구입하거나 선물 받은 보이차들. 주로 중국을 오고 가는 지인을 통하거나 믿을 수 있는 보이차 전문점에서 구입한다.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아요”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은 늘 있는 일이라 일상 다반사茶飯事라 했는데, 김종훈ㆍ문지영부부에게도 마찬가지다. 인터뷰 도중 학교에서 돌아온 열 살 된 막내딸 하은이가 달려와 익숙하게 좌탁에 앉는다. 두 손으로 곱게 찻잔을 모아 잡고 보이차를 마시는 모양이 제법이다. 김종훈작가가 직접 빚은 찻그릇에 말차를 만들자, 옆에서 말차 만드는 순서를 또박또박 알려준다. 차를 우리고 내리는 행위는 어느덧 아이에게도 취미이자,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좌탁에 앉으면 두세 가지 다른 종류의 보이차를 번갈아 우려마셔요. 맛과 향이 이야깃거리가 되고, 차 종류가 달라 맛의 지루함이 없으니 같은 자리에서 스무 잔은 마시더라고요. 그렇게 마시다 보면 등부터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요. 매일 마셔도 과함이 없지요.” 또 다실은 열린 마음과 같아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가까운 지인들이 차를 마시러 우리 집에 들릅니다. 예전엔 손님이 오면 상차림이 고민이었는데, 언제나 차가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이 없어요. 좋은 차를 꺼내놓는다는 말을 하면 멀리 저 부산에서도 달려옵니다. 좋은 차는 사람을 모으는 능력이 있어요.” 이렇게 차를 함께 나누면서 다정茶精이 쌓인다. “그런 면에서 찻상은 술상과 닮았어요. 차이가 있다면 인간의 선한 본성이 차행을 통해 표출된다는 것이죠. 차를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화를 누르게 되고, 타인에 대해 여유를 갖게 됩니다.”

김종훈 작가의 백자 다기와 중국 자사호들. 무슨 차를 어떤 다기로 마시느냐에 따라 차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차를 즐기는 순간은 여행과 같습니다”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서는 학문보다도 명상이 더 필요하다”고 철학자 데카르트가 말했듯이 김종훈 작가는 차를 도반 삼아 홀로 명상하듯 즐기곤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12년 전 여주에 정착하기 전까지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도시에서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게 거의 불가능하죠. 가끔 다실에 홀로 앉아 모든 불빛을 끄고 차를 내리는 소리에 집중한 채 차를 마시곤 합니다. 찻잔의 질감을 손끝으로 음미하며 세상 소리에 귀를 열고 생각에 집중하면 차 맛이 훨씬 강렬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오감이 열린다고 할까요? 그런 맛을 느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차와 자신에 집중하면, 주류를 이루는 생활에서 한 발짝 떨어지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그럴 땐 차가 곧 스승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게 차를 마시는 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떠나는 여행과도 같아요.”

이렇듯 김종훈 작가에게 차는 소꿉놀이 같은 유희이자, 사람을 모으는 보물이며,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명상이다. 그는 생활속에서 차를 누리는 사람이 많아져 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커피 텀블러를 갖고 다니듯이, 차 도구와 찻잎을 보자기에 싸서 갖고 다녀보세요. 그보다 더 우아한 스타일링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종훈 작가는 ‘자기만의 찻잔’을 갖는 것이 그 시작점이 될 것이라며, 직접 빚은 찻잔을 기자와 사진가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멋과 이야깃거리, 취향까지 만드는 이토록 멋진 차라니!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서송이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