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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연구가 메이 "차 마시는 데 정답은 없어요"
차를 마시면 우리의 의식주가 변화한다. 의식주가 변화하면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다. 요리 연구가 메이가 그렇다. 다도를 배우고 작업실에도 차탁을 두고 일상에서 차를 밥처럼 매일 일용할 양식으로 즐기다 보니 업業인 요리를 할 때도, 그릇 하나를 마주할 때도, 손님을 접대할 때도 배려와 여유가 생겼다. 그에게 차를 마시는 일이란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생활에 여유를 들이는 취미이자 취향이다.

‘필’대로 만든 블렌딩 티. 개성껏 차를 즐기는 그는 다양한 차 선물도 많이 받는데, 그것을 하나하나 음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간혹 취향과는 다른 차를 받을 때도 있는데, 자신만의 스타일로 블렌딩하면 색다른 재미와 맛을 즐길 수 있다. 
차로 마음에 여유를 들이다
취미趣味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한 일로,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이자 감흥을 느껴 마음이 당기는 멋’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취향趣向은 또 무엇인가? 사전정의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이른다. 영어로는 ‘taste’라는 단어로 묶어 표현하기도 하며 미각이나 풍미를 뜻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미적 성향을 나타내주는 지표로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인 이 단어들은 같은 맥락인 듯 하나 서로 달라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한데 이 세 가지를 아울러 개성껏 차를 즐기는 이가 있으니, 요리 연구가 메이다. “요리를 워낙 좋아하니까 맥락을 같이하는 차에도 관심이 갔어요. 그래서 다도도 전문으로 배우고 있지만, 생활 속에선 차를 가까이 편하게 즐기려 노력해요. 손님을 접대할 때도 커피한 잔을 내는 것과 차탁에 앉아 물을 끓이고 마주하는 것은 주객의 마음가짐부터가 다르거든요. 차를 마신다는 건 서로를 배려하며 마음에 여유를 들이는 일이에요.”

하지만 차를 우려내기만 한다고 절로 맛있는 차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좋은 차와 차 종류에 따라 우려 마시는 요령, 차 도구인 다구, 곁들일 다식 등이 필요하며 분위기 또한 매우 중요한 법이다. 다실이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그는 소박한 가구일지라도 개성과 취향을 살려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면 차를 즐기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원래 다실은 번잡한 도구나 장식이 많으면 안 돼요. 꽃 하나도 그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정점의 꽃을 한두 송이만 꽂을 정도로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곳이니까요. 다실을 작위적으로 꾸미기 위해 일부러 호화로운 가구나 고가의 서화를 갖춘다면 그것이야말로 허영이 아닐까요. 뜻도 모르는 형식을 따라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격식을 틀대로 갖춘 것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느낌을 살린 다구와 찻상으로 보기 좋게 차려서 편안하게 차를 마시면 충분히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에요.”

작업실 차탁에서 행다법에 따라 말차(가루 녹차)를 즐기거나 다양한 차를 마시는데, 이때가 바로 그가 마음을 쉬는 시간이다. 
비풍류처풍류족
“물 끓는 소리가 참 좋지 않나요?” 고요한 작업실에 보글보글 찻물 끓는 소리만 들리니 그의 말마따나 과연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차탁은 찻물 끓이는 소리가 주는 행복감도 더불어 나누고 싶은 마음에 그가 직접 디자인해 제작한 것이란다. 다도의 정신과 예절은 지키되 격식에 얽매이기보다 개성을 살려 즐기는 그의 다도 스타일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차는 원래 물을 끓이면서 마시는 건데, 전기 주전자를 옆에 놓고 사용하는 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가운데 전기 화로를 넣을 수 있도록 차탁을 디자인해서 황학동 단골 목수님께 부탁했어요. 전기 화로도 황학동에서 직접 발품 팔아 찾아낸 것이고, 주물 차솥은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거예요.”

‘비풍류처풍류족非風流處風流足’이라 했던가. 풍류가 전혀 없는 곳처럼 보였는데, 들어가보니 풍류가 넘치는 공간이라는 선시禪詩처럼 제 느낌대로 취향을 살린 차탁 하나가 작업실을 편안한 찻자리로 변모시킨다. 차탁은 다이닝 테이블 사이즈에 맞게 제작했는데, 나란히 붙여 여럿이 차를 즐길 때 차 만드는 과정을 함께 향유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차는 정적인 것이라 최대4인 정도 적은 인원이 즐길 때 가장 제대로 즐길 수 있으니 차탁의 사이즈를 그에 맞춘 것. 차를 정성껏 대접할 때 상대의 표정이 온화해지고 행복해하는 걸 보는 것이 그에겐 차 마시는 크나큰 즐거움 중 하나다. 다도의 마음가짐은 갖추고, 혼자 즐길 때나 더불어 즐길 때나 허물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차를 즐기는 것이 요리 연구가 메이의 찻자리 풍경이다.

“차를 마신다는 건 마음의 준비인 거 같아요. 마음을 한가롭게 하고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예요. 그래서 차를 즐기기 전엔 유통기한이 지난 녹차나 말린 꽃 등을 아로마 오일과 함께 향로에 데워 좋은 향을 피우고, 차탁에 다구와 계절 꽃을 올려 차를 만들곤 달콤한 다과를 곁들여요. 그러곤 차 한잔으로 마음을 쉬게 하는 거죠.”

1 요리가 업인 만큼 차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차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2 녹차 부은 오차즈케는 간단한 식사로도 제격이다.

비쌀수록 가볍게, 싸구려일수록 귀하게
“한때 서양의 애프터눈 티 문화에 홀딱 빠진 적이 있어요. 결혼해서 처음 산 게 웨지우드 스트로베리 찻잔이었을 만큼 티웨어를 좋아하다 보니 홍차도 자연스레 즐기게 된 거죠. 안목도 넓힐 겸 가끔 혼자 여행을 가면 호텔에서 애프터눈 티를 꼭 즐겼어요. 나를 위한 작은 사치랄까요.” 그런데 어느 날 흥미가 뚝 떨어졌다. 태국 여행길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길 때 전통 복장을 한 현지인이 연신 굽신거리며 시중을 드는데, 그 자리가 영 불편하더란다. 여전히 홍차는 좋았지만 시쳇말로 쥐뿔도 모르면서 깊이 없이 분위기만 즐기는 게 허세처럼 느껴져 그렇게 좋아하던 애프터눈 티를 향한 로망이 일순간에 사그라졌다. “그 불편함이 뭘까, 궁금하던 차에 일본 다도를 접했어요. 다도는 차시(찻숟가락) 잡는 위치며 앉는 자세, 차와 사람 사이의 간격까지 모든 것이 엄격하게 정해진 규칙이 있을 정도로 완전 극강의 형식 아래 이루어져요. 하지만 그 자리를 위한 형식이 아니라 엄청난 배려와 섬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하나의 세리머니예요. 규칙 하나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고, 차 하나를 낼 때도 차와 차시, 다완을 만든 이의 수고로움까지 생각하며 감사 인사를 하고 시작하는 다도의 과정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우라센케 서울 사무소에서 일본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어언 6년째인 그는 차를 배우며 배려와 마음가짐에 대한 깨달음을 함께 배워나간다. “다도를 할 때는 반지를 끼면 안 돼요. 다완에 흠집이 나니까요. 하지만 유명 장인의 다완이라도 너무 귀하게 다루면 오히려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게 마련이니 ‘비싼 것일수록 가볍게, 싸구려일수록 귀하게’ 다루라는 마음가짐을 다도에서 배웠어요. 이는 요리를 하면서도 마음에 새기는 부분이에요. 덕분에 그릇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죠.”

행다법에 따라 차를 즐길 때는 먼저 찻잔을 데우고 차시로 말차 2작은술을 넣은 뒤 차솥에 끓인 물(80~90℃)을 붓는다. 물은 다도용 국자(히샤쿠)로 깊은 우물물 길어 올리듯이 뜨는데, 그래야 동작에 품위가 있다. 다도는 하나의 드라마틱한 연극으로, 보는 즐거움도 주는 것. 그런 다음 차선(찻솔)으로 거품을 내 달콤한 다식과 즐긴다. 
2 티포트 컬렉션도 그의 취미 중 하나. 
간단한 여행용 다구. 
말차는 ‘슉슉’ 소리 내 마시는 것이 예의다.
차를 즐기기 전엔 꼭 향을 피워 분위기를 조성한다. 

“내 취향은 귀족적이고, 내 행동은 대중적이다”
요리연구가 메이에게 다도는 흔들리는 정체성을 바로잡아준 스승이나 다름없다. 행다법行茶法을 배우면서 일상생활에도 도움을 받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고 차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도라는 말 때문에 차를 어렵게 여기는 분이 더러 있더라고요. 차는 즐거운 마음으로 편안히 마시면 돼요. 저는 커피도 차처럼 우려 마셔요. 채소를 직접 말려 우리거나 여러 가지 찻잎을 블렌딩해 즐기면 그 재미가 또 색다르죠.” 엄밀히 말하면 차는 차나무에서 얻은 찻잎으로 만든 차를 가리키지만 그는 차도 취향껏 즐긴다. 인위적이고 강한 향은 입에 안 맞아 요즘 유행하는 우엉차, 연근차, 생강차 등 대용 음료를 직접 만들어 우려 마시기도 하고, 먹다 남은 찻잎이나 말린 채소를 ‘필 가는 대로’ 블렌딩해 세상에 하나뿐인 차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녹차를 베이스로 할 때는 과일과 허브 등을 섞고, 녹차와는 별도로 우엉 등 채소를 직접 말려 블렌딩하기도 해요.”

“내 취향은 귀족적이고, 내 행동은 대중적이다.”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요리 연구가 메이는 동양의 고급문화인 차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생활에 편안하게 들인 이다. 그의 얼굴이 해맑은 것은 차의 음덕 때문일 터. 그는 차 마실 때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언젠가부터 차도 건강에만 치중하면서 몸에 좋은 것만 찾는 풍조가 요란한데, 차는 그저 제 입에 맞는 것을 찾아 즐겼으면 좋겠어요. 차를 즐기면 담백한 먹을거리를 좋아하게 되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 건강은 따라오게 마련이거든요.”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