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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의 특별한 안내자, 커피
그는 언젠가 런던 히스로 공항 옆 숙소에서 이른 새벽에 잠이 깼다. 인천에서 런던까지 장거리 비행을 해 많이 피곤했는데도 갑자기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스레한 새벽빛이 비추기 시작하자마자 거리로 나가 첫차를 타고 런던 시내의 커피점으로 향했다. 이처럼 심재범 아시아나항공 바리스타 그룹장은 세계를 여행하는 독특한 직업 덕분에 런던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방문할 때마다 도시의 유명한 카페를 찾아나서며 자연스레 커피와 인연이 깊어졌다. 그리고 카페를 목적지로 삼는 여행이 그 어떤 여행 방식보다 그 지역의 문화를 진하게 음미하는 방법임을 알았다.


세계적으로 석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것이 커피인지라, 세계 각 나라의 혹은 각 도시의 커피 문화는 비슷하면서도 다양하다. 그래서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도 새로운 여행지에서 카페를 찾아 즐기는 일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커피를 주문하고 즐기는 방식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호주의 시드니에서는 밀크 커피라는 뜻의 화이트 커피를 미처 모르고 주문해 흡족하지 못한 커피를 마셔야 했고, 일본 도쿄에서는 핸드드립 전문점인 줄 모르고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민망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프닝 덕분에 여행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세계의 다양한 문화 속에 존재하는 특별한 커피 문화를 탐구하고 싶다는 흥미도 더욱 커져갔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석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많은 커피에 관심을 가지면 세계 여행을 좀더 색다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세계 각 나라 시민이 일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발걸음으로 들르는 카페를 방문하면 유명 관광 명소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그들의 진짜 삶과 일상의 표정을 그 어느 곳보다 진하게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한 잔은 문화

한 모금 이탈리아에서 커피는 에스프레소를 의미한다. ‘커피의 에센스’나 ‘커피의 태양’으로도 불리는 에스프레소 문화가 발달한이탈리아에서는 일반 가정에서도 모카 포트를 이용해 진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신다. 지역에 따라 커피를 즐기는 취향이 다른 점도 특징이다. 산업이 발달한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깔끔하고 우아한 아라비카 커피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남부의 외진 지역에서는 흡사 발효된 된장 느낌이 나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기도 한다. 이런 다양함이 이탈리아 커피의 매력이다. 그러니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혹시라도 “커피 주세요”라고 주문했는데 에스프레소가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이탈리아에서라면 한 번 정도는 에스프레소를 마셔보는 게 그 지역 문화를 좀 더 진하게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니 말이다.

이탈리아의 카페는 저마다 특징 있는 창작 메뉴를 만들어 판매하는 곳도 많다. 카푸킨 지역 한 수도승의 머리를 보고 만들었다는 드라이 카푸치노가 오늘날 거품 커피인 카푸치노로 발전한 것이 좋은 예다. 또한 테이블에 앉아서 마시는 커피 가격과 바에 서서 마시는 커피 가격이 다르다는 것도 독특한 특징이다. 테이블에서 마시는 커피는 서비스 요금이 포함된 휴식형 커피고, 바에 서서 마시는 커피는 애호가를 위한 합리적 커피라고 생각하면 낯선 여행자도 이내 이런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다.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는 데미타스demitasse 잔을 절반 정도 채워 각설탕 한 개를 넣은 다음 젓지 말고 두 번 정도 나눠서 마시면 된다. 첫 모금에서 쓰고 진한 커피의 질감을, 마지막 모금에서는 달콤쌉쌀한 여운까지 커피 한 잔에서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증기압을 이용해 순식간에 소량의 진한 커피를 추출하는 달콤 쌉싸름한 에스프레소 한 모금에서 다혈질인 이탈리아인의 정서를 느껴볼 수 있다.


영국, 스페셜티 커피의 새로운 강국
런던의 스페셜티 커피점, 몬무스
홍차의 나라로 유명한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받아들인 나라 중 한 곳이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지식인은 커피 하우스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관례였다. 지금도 영어에는 당시의 커피 문화와 관련한 표현을 종종 볼 수 있다. 가난해서 대학에 가지 못하더라도 1페니를 내고 커피 하우스에 가면 고급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페니 유니버시티’라는 표현이 영국식 영어에 남아 있다. 이처럼 유럽 커피 역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영국이었지만 식민지 개척 이후 홍차가 확산되면서 오랫동안 커피의 암흑기를 맞았는데, 최근 들어스페셜티 커피의 발전과 함께 영국 런던은 세계 최고 수준의 스페셜티 커피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이외의 지역 중 스타벅스가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곳이 영국이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처럼 사회 전체에 보편적인 카페 문화는 없지만 스퀘어마일 로스터, 프루프락, 몬무스 같은 개성 있는 커피 전문점이 세계의 커피 마니아를 열광시킨다. 그중 개인적으로 영국의 커피 전문점 중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곳은 코번트 가든 근처의 몬무스 커피 컴퍼니. 원래 커피 원두를 판매하는 곳이었지만, 손님들의 요청이 많아 운치 있는 작은 카페로 바뀌었다. 매장이 워낙 작기 때문에 줄을 서는 건 다반사고 모르는 사람과 합석은 기본이다. 좀 어색한 비유지만, 이곳에서 커피를 마실 때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역사 깊은 설렁탕집에 가서 낯선 사람과 합석하던 그때의 기분이 느껴진다. 몬무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핸드 드립 커피로, 한국이나 일본처럼 기술이 섬세한 핸드 드립 대신 드리퍼를 이용해 커피 자체의 힘으로 양질의 커피를 추출해낸다.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게 추출한 커피가 인상적이고, 핸드 드립 커피와 데운 우유가 서로 토닥이는 느낌을 전해주는 몬무스표 카페오레도 일품이다.


프랑스, 부드럽고 달콤한 카페오
파리 레뒤마고 카페의 카페오레
레의 나라 이탈리아와 이웃한 프랑스는 같은 유럽 국가지만 커피의 구성과 카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프랑스인은 카페에서 카페오레를 마시는 시간을 가장 사랑하고, 그들에게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인 동시에 사색, 작업, 대화를 위한 지역 문화 공간이자 사랑방이다. 특히 제2차 대전 이후 파리에는 전쟁 속에서 방황하던 예술인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헤밍웨이, 피카소, 사르트르 같은 예술인과 철학가의 작품 배경이 된 카페가 아직도 성업 중이다. 특히 레뒤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전용석을 지금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의 카페는 가르송이라는 웨이터가 서비스하는 정통커피 하우스를 표방한다. 가르송은 소년이라는 뜻이지만 실제 유명 카페의 웨이터는 연배가 지긋한 사람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가르송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인이다. 카페에서 좌석 안내, 주문, 계산까지 전 과정을 가르송이 담당한다.

또 프랑스의 카페는 간단한 식사와 맛있는 디저트, 와인과 샴페인까지 갖춘 곳이 많은데 특히 ‘피에르 에르메의 밀푀유’‘빅토르 위고의 디저트 케이크 ’ 등 시내 다른 유명 음식점의 특별한 디저트 메뉴 중에서 그 카페의 커피 맛과 어울리는 것을 선별해 제공하는 곳도 많다. 가르송에게 문의하면 해당 매장의 특별한 커피와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디저트와 간단한 식사 메뉴를 알려준다.

가르송에게 커피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면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카페오레를 마셔보라는 대답을 들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프랑스식 밀크 커피인 카페오레 café au lait는 ‘커피에 우유’라는 뜻으로, 진하게 추출한 브루잉 커피(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닌 일반 커피 머신으로 추출한 커피)에 우유를섞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이탈리아식 카페라테보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저항하면서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잊지 않은 프랑스인이기에 커피 사랑은 더욱 각별하다. 카페에서 작업하던 예술인을 기억하고 그들이 작업하던 좌석까지 성실하게 보존하는 유서 깊은 카페가 아직까지 건재한 커피 문화에서 프랑스라는 나라가 세계 속의 문화 강국으로 인정받는 이유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호주, 아메리카노를 원하면 롱블랙을 주문하라
시드니 알케미의 피콜로 커피
호주는 다른 문화권에서 멀리 떨어진 덕에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커피 용어도 미국이나 영국과 다른데, 예를 들어 에스프레소는 쇼트블랙, 아메리카노는 롱블랙, 카페라테는 플랫화이트라는 특별한 이름이 따로 있다. 특히 플랫화이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시는 카페라테보다 좀 더 진한 라테의 일종. 하지만 용어가 다르더라는 커피 자체는 큰 차이가 나지 않으니 주문할 때 당황하지 말고 원하는 커피를 설명하면 된다. 지역적으로 멜버른에서는 커피의 향미를 강조하고, 시드니에서는 보디가 좋은 커피를 많이 즐긴다.

플랫화이트나 카페라테 같은 밀크 커피는 피카디 글라스라는 유리잔에 담아서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호주 커피 문화의 특징인데, 밀크 커피가 뜨겁지 않아 유리잔을 들고 마시기에 불편하지는 않다. 실제로 유리잔이 뜨겁게 느껴지는 60℃ 이상의 온도로 밀크 커피를 만들면 우유 속 단백질인 카세인이 응고해 비릿한 냄새가 나기 쉽다. 호주에서 최고의 밀크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시드니 뉴타운 지역의 카페 커피 알케미를 추천한다. 연금술이라는 의미의 이름이 이해가 될 만큼 알케미의 싱글오리진 피콜로는 이제껏 마셔본 것 중 최고의 밀크 커피였다. 피콜로는 작은 유리잔에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1:1로 혼합된 커피로 호주의 커피 애호가들이 유난히 좋아한다.

호주의 카페는 대부분 브런치 등의 음식 메뉴도 갖추었으니 호주 여행에서는 카페에서 한갓진 식사와 커피를 즐겨보기를 추천한다. 특히 최근에는 시드니의 카페들이 고급 셰프와 연계해 양질의 식사 메뉴를 선보이는 것이 유행이며 미국, 영국, 북유럽과 함께 세계 4대 커피 강국답게 호주는 전 세계 바리스타가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국가로 손꼽힌다. 시드니나 멜버른 등의 도시에는 카페 순위 책자와 잡지가 꾸준히 발간될 정도로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 어느 곳에서도 최상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일본, 도제식 핸드 드립 커피를 즐겨보라
한국의 커피 문화는 일본의 기사 텐 방식(일본식 도제식 핸드 드립 커피 문화, 융 드립과 같은 방식을 선호하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혼을 담아 추출하는 듯한 일본식 커피 문화는 지금도 마니아층이 많은데, 방향성을 떠나서 진지하게 커피에 임하는 모습은 귀감이 된다. 일본에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1천 개가 넘는 핸드 드립 커피 전문 매장이 분포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많아져 다양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지만, 일부 커피 전문점은 여전히 핸드 드립만을 고집하거나 카푸치노 같은 밀크 커피도 기계 대신 핸드 드립과 직화로 데운 우유로 만들기도 한다.

일본의 수많은 핸드 드립 커피점 중에서도 내가 경험한 최고의 커피는 도쿄 긴자에 위치한 카페 드 람부르에서 마신 커피다. ‘커피만을 위하여’라는 뜻의 이름을 단 이 매장은 핸드 드립 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게 추출하는 융 드립으로 커피를 제공하고, 수십 년간 에이징한 생두를 로스팅한 커피를 추출한다. 이는 전문가들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이 있는 방식이지만, 좋고 나쁨을 떠나서 개성이 강한 커피임은 분명하다.

세계의 커피 문화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했고 서로가 영향을 주고 순환하는 경우도 많다. 태평양 주변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의 커피 바리스타들이 생계를 위해 유럽으로 많이 이주하면서 호주의 플랫화이트가 영국에서도 빛을 발하게 되었고, 에스프레소의 원조 이탈리아가 뒤늦게 발동이 걸려서 이탈리아 커피의 세계화를 서두르기도 한다. 때로는 낯선 곳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우리와 다른 이름에 당황할 수있겠지만, 세계인의 일상 음료인 커피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따듯함과 카페 문화라는 포근함을 품고있다. 그러니 여행을 하면서 커피 한잔을 즐기는 것은 여행의 피로를 잊는 즐거움과 동시에 세계의 다채로운 문화에 마음을 이완하는 작용을 한다. 게다가 멋진 카페가 있는 곳은 그 도시의 가장 세련된 문화가 존재하는 거리일 가능성이 높으니, 세계의 유명 카페를 목적지로 독특한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도 더없이 좋은 문화 여행의 방법일 것이다.


미국, 스페셜티 커피의 백미
샌프란시스코 블루바틀의 사이폰 커피
미국에서 음료나 식사를 주문하면 매장 대부분이 한국이나 유럽에 비해 두 배 이상쯤 되는 양의 음식을 내놓는다. 그래서인지 커피 인심도 아주 넉넉한데, 스타벅스만 해도 최소 크기가 톨 사이즈이고 그랜드, 벤티 등 놀라운 크기의 컵도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또 다른 나라의 커피보다 조금 심심한 맛과 농도의 커피를 즐기는 것도 특징이다.

미국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스페셜티 커피 업체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는 여전히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이 많지만,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하는 블루바틀처럼 양질의 커피와 창의적 공간을 제공하는 회사가 주목받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란 큐그레이드, 커퍼 등으로 불리는 커피 전문가가 열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테이스팅한 결과가 80점 이상을 받은 양질의 커피로, 전 세계에 유통되는 커피의 상위10% 정도가 여기에 포함된다. 향기와 질감, 입안에서 느껴지는 여운이 좋은 이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특히 정성 어린 로스팅과 바리스타의 섬세한 실력이 필요하다. 전국에 있는 블루바틀의 여덟 개 매장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은 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퀘어 옆의 민트플라자 매장으로, 분위기가 굉장히 동양적이다. 미국 최초로 사이폰(일본에서 유행하던 진공식 커피 추출 기구) 추출을 도입했고, 교토 드립이라는 이름으로 더치 커피를 판매하기도 한다. 이곳의 핸드드립은 관광객에게도 굉장한 볼거리로 유명하고, 추천 커피인 사이폰 커피는 한 잔에 10달러가 넘는데도 현지인에게 큰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니 미국 여행에서는 스타벅스의 평범한 커피 대신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스페셜티커피 전문점에서 시간을 즐겨보자.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양질의 커피를 실력 있는 바리스타들이 선보이지만 가격은 대부분 5달러 내외로, 큰돈 들이지 않고 미국의 핫한 커피 문화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다.


심재범 아시아나 항공 바리스타 그룹장
“세계 여행, 카페를 찾아다니며 즐겨보세요”

커피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항공사에서 기내 서비스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식음료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또 아내가 커피를 좋아해서 손수 아내에게 좋은 커피를 만들어주고 싶어 취미로 핸드 드립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자 회사에 건의해 업무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지요. 5~6년 전쯤 핸드 드립 커피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문 아카데미에서 훈련받았고, 국내 유명 전문가에게 개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후 커피 문화가 최고 품질의 커피 자체를 중요시하는 스페셜티커피로 변화되자 또다시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훈련도 받았습니다. 커핑 수업을 받고 미국에 가서 큐그레이더 시험을 보았지요. 큐그레이더는 커피를 감정하는 전문가로, 일주일 동안 하루 다섯 과목씩 실기 시험을 보고 스물네 과목을 통과해야 합니다

아시아나항공 바리스타 그룹은 어떤 일을 하나요?
항공사 그룹장은 일반 회사로 말하면 팀장입니다. 팀장으로서 우리 항공사 서비스의 차별성을 생각해 보다가 제가 좋아하는 취미인 핸드 드립 커피와 스페셜티 커피로 기내 서비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니 저도 재미있고 기내에서 고급스러운 커피 향을 음미하는 손님도 행복할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4년 전 제가 회사에 처음 커피 특화팀을 건의했을 때는 핸드 드립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아서 전문 부서의 지원 없이 저 혼자 좋은 커피 원두를 찾아다니며 기내 핸드 드립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세계 항공사 최초의 시도이자 지금도 세계 유일의 서비스이지요. 장거리 비행을 하는 중에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커피만 골라 직접 갈아서 손님 앞에서 핸드 드립으로 서비스하니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덕분에 회사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바리스타 그룹이라는 특화된 팀이 조직되었습니다. 열다섯 명 정도의 승무원으로 구성된 다섯 팀이 활동하고, 한 팀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장거리 노선에서 핸드 드립커피를 선보이지요. 스케줄은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에 공지합니다.

기내에서 즐기는 커피의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바리스타팀은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서비스합니다. 기내라는 제약된 공간이기에 커피는 두 종류만 준비하지요. 회사에서 아낌없이 비용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국내 유명 커피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세계적 커피를 제공합니다. 국내에서 사업이 잘되지 않아 미국 시애틀로 이민을 가던 한 손님은 기내에서 생각지 못한 최고급 스페셜티 커피를 받아 들고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이셨고, 외국인 손님들은 “원더풀, 엑설런트”라는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곤 합니다. 고급스러운 커피 향이 기내에 퍼지면 손님과 승무원 모두 기분이 좋아지고 기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럽고 편안해지지요. 이처럼 좋은 커피 한잔으로 긴 시간 여행하는 분들과 교감할 수 있으니 참 행복한 직업입니다.

외국 여행에서 경험한 최고의 커피는 무엇인가요?
비행 후 외국 도시에 체류할 때 커피기구로 직접 만들어 마시기도 하지만,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점을 찾아가보고 그곳의 커피 맛을 기록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닙스페셜티 커피라는 이름 때문에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경제적 부분보다 기호에 대한 의미가 더 크지요. 외국에는 5달러 미만으로 스페셜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미국 L.A.에 머물 때마다 찾아가는 G&B라는 커피점이 그런 곳이에요. 한때 미국의 국가 대표 바리스타로 손꼽히던 글랜빌과 바빈스키는 최고의 바리스타가 되고자 시카고에서 L.A.로 왔지만 운이 나빠세계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후배한테 밀려났어요. 그래서 L.A.의 재래시장 안에 커피 매장을 열었습니다. 당시 화려한 바리스타의 몰락이라며 그들을 동정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아몬드 마카다미아 라테로 최고의 명성을 되찾았지요. 커피에 우유를 넣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고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몬드 마카다미아 라테를 맛보고 달라졌어요. 역시 물어물어 찾아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커피 여행법을 알려주세요.
아시아나항공에서 20년째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커피에 관심을 갖기 전에는 기내에서 열심히 근무한 후 체류지에서는 주로 호텔에 머물면서 운동하고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커피에 관심을 가지니까 다른 나라 사람은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도시마다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났지만 예술혼이 가득한 거리에 좋은 카페가 많지요. 그런 곳에서는 현지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카페를 찾아가면 그 여정 자체가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현지인의 삶을 엿보게 되죠. 영국의 커피 문화를 주도하는 세력은 호주 출신의 바리스타들로, 그들이 영국에 호주스타일의 커피를 선보이자 영국인은 굉장히 잘 흡수했어요. 그러다 보니 개성 있는 커피점이 많습니다. 가장 추천하는 곳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옆에 있는 노트 뮤직 앤 카페예요. 내셔널 갤러리에 가면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이 다 있습니다. 명작을 감상한 후엔 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노트 뮤직 앤 카페로 가보세요.

원래 음반과 음악 관련 제품을 팔다가 카페도 겸하는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좋은 커피인 스퀘어 마일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추출합니다. 영국은 커피점의 순위를 매기고 이 순위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높은데, 이곳은 항상 5위 안에 들어요. 커피도 좋고 음악도 좋고 음식까지 좋으니 런던여행을 계획한다면 뮤직 앤 카페에 들러보세요. 파리에서는 루브르 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베르레VERLET라는 카페에 가보세요. 세계적으로 정통 스페셜티 커피점은 그들끼리 교육하고 연대하는데, 이곳은 독자적 스타일을 고수합니다. 스페셜티 커피가 주춤한 프랑스에서 스페셜티 커피의 면면을 지킨 곳중 하나죠. 저는 개인적으로 루왁 커피를 선호하지 않지만 이곳에 가면 진짜 루왁 커피를 7유로에 즐길 수 있고, 세계적으로 희귀한 커피를 경험할 수 있어 현지인도 즐겨 찾는 곳입니다. 이처럼 세계 유명 도시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옆에 특별한 커피를 선보이는 카페가 있습니다. 박물관과 카페를 함께 즐기는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특별한 세계 여행법이 될 수 있습니다.


담당 김민정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 글과 사진 심재범(아시아나항공 바리스타 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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