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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이웃과 오붓이
비오는 날이면 유독 당기는 음식이 있다. 대개는 기름진 빈대떡이나 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수제비를 떠올리며 막걸리 한잔 생각이 간절해질 터. 궂은 날씨에 어느 때보다 아늑한 집으로 이웃이나 친구를 초대할 때 제격인 푸근한 손님상을 제안한다. 일명 ‘번개’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메뉴도 있으니 가까운 이들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음식은 따뜻하게, 분위기는 산뜻하게

온종일 얄궂게 비가 오는 날이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지게 마련이다. 유명한 옛 노랫말처럼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이 간절해지고, 수제비며 칼국수 등 국물이 뜨끈한 밀가루 음식이 유독 당긴다. 축 처진 몸이 제 스스로 필요한 영양소를 찾기 때문이다. 밀가루 속 단백질인 글루텐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과 비타민 B가 ‘행복 물질’이라 부르는 세로토닌 성분과 비슷해 일시적으로나마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 편안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좋은 사람들과 음식이나 술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유독 ‘번개’ 모임이 잦은 날도 비 오는 날인데, 궂은 날씨에 더없이 아늑해진 집으로 가까운 이들을 초대하면 그 어느 때보다 훈훈한 자리를 만들 수 있다. 노영희 요리 연구가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종종 어릴 적 집에서 즐기던 단골 메뉴인 수제비를 메인 요리로 지인들을 초대해 대접한다. 날씨가 궂어 멀리 있는 손님을 초대하는 것은 외려 부담을 줄 수 있어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를 불러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것.

어릴 때 먹던 대로 제철인 햇감자를 넣은 수제비와 열무김치를 색감이 고운 옻칠 매트 위에 1인 세팅으로 내는데, 소박한 음식도 상차림에 따라 격식 있는 초대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그릇이나 화려한 장식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백자를 기본으로 대나무 채반만 포인트로 더해도 우중충한 날씨에 산뜻한 느낌을 낼 수 있다. 코스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상차림을 지루하지 않게 연출할 수 있는데, 개인 접시를 백자에서 대나무 채반으로 바꾸거나 여럿이 나눠 먹는 요리 접시로 대나무 채반을 이용하는 식이다. 여기에 수저받침으로 돌멩이를 사용하면 근사한 오브제가 된다. 술잔은 비 오는 날에 안성맞춤인 전은 물론 채소구이와도 제격인 막걸리 잔으로 준비할 것. 막걸리도 투명한 유리병에 담고, 널찍한 옹기 볼을 아이스버킷으로 사용하면 제법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상차림인 만큼 센터피스도 정갈하고 운치 있게 만든다. 모던한 라인의 분청이나 백자에 담벼락에서 흔히 자라는 담쟁이덩굴과 돌을 올려 여백의 미를 살리면 동양화처럼 근사한 센터피스를 연출할 수 있다. 이때 용기는 높이감 있는 것이 식탁에 생기와 리듬감을 준다.

코스 1 간장소스를 곁들인 채소구이와 깻잎부추전


간장 소스를 곁들인 채소구이
재료(6인분)
가지 1개, 새송이버섯 2개, 표고버섯 4개, 양파 2개, 애호박 1개, 올리브유 적당량
소스 진간장 3큰술, 설탕・참기름 2작은술씩, 식초 11/2큰술, 다진 마늘・통깨 1작은술씩, 다진 홍고추・풋고추 1개분씩, 송송 썬 실파 적당량
만들기
1 가지는 1cm 두께로 썰고, 새송이버섯은 4cm 길이로 토막 내서 7mm 두께로 썬다. 표고버섯은 기둥을 떼어 갓에 칼집을 내고, 양파는 5mm 두께로 썰어 꼬치로 고정한다. 애호박은 7mm 두께로 썬다.
2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①의 손질한 채소를 올려 앞뒤로 굽는다.
3 볼에 분량의 소스 재료를 모두 넣고 섞는다.
4 접시에 구운 채소를 담고, 소스를 종지에 따로 담아 곁들인다.

깻잎부추전
재료(6~8인분)
깻잎 80g, 부추 120g, 풋고추 4개, 부침 가루 200g, 얼음물 2~21/2컵, 식용유 적당량
만들기
1 깻잎은 한 장씩 씻어서 물기를 털고 길이로 반 잘라서 1cm 폭으로 썬다. 부추는 밑동을 약간 잘라내고 씻어서 물기를 털고 3cm 길이로 썬다. 풋고추는 송송 썰어서 씨를 털어낸다.
2 볼에 부침 가루와 얼음물을 넣고 섞은 다음 ①의 채소를 넣어 섞는다.
3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반죽을 한 국자씩 떠 올리고 평평하게 펴서 지진다.

“전채로 제철 채소를 푸짐하게 즐겼다면 다음 코스로는 고기 요리를 낸다. 항정살구이는 그릴 팬에 앞뒤로 살짝 구운 후 230℃로 예열한 오븐에 10분간 굽다가 뒤집어 10분간 더 구운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썰면 기름기도 쪽 빠지고 군내도 안 나 더욱 맛있다. 깻잎에 쌈장과 함께 싸서 먹어도 맛있지만, 봄부터 여름까지 별미 김치로 제격인 부추김치와도 잘 어울린다.”

코스 2 항정살구이와 부추김치


항정살구이
재료(6~8인분)
항정살(또는 삼겹살) 800g,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항정살(또는 삽겹살)은 도톰하게 썰어서 소금과 후춧가루를 고루 뿌린다.
2 달군 그릴 팬에 ①을 올리고 노릇하게 구워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기름기가 있으므로 가볍게 뒤집어 육즙이 빠지지 않게 빠르게 구워 먹는 것도 좋다.

부추김치
재료
부추 500g(1묶음), 멸치 액젓(또는 까나리 액젓) 1/4컵
양념 멸치 액젓(또는 까나리 액젓) 5큰술, 다진 새우젓 2큰술, 고춧가루 1/2컵, 설탕 2큰술(또는 매실청 3큰술), 다진 마늘 4큰술
만들기
1 부추는 밑동을 약간 잘라내고 떡잎을 떼어낸 다음 씻어서 물기를 걷는다. 큰 볼에 가지런히 담고 액젓을 끼얹어서 30분 정도 절인 다음 젓국은 따라낸다.
2 볼에 분량의 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섞는다.
3 ①의 절인 부추에 ②의 양념을 넣고 고루 버무려 한 끼 분량씩 사리 지어 김치 용기에 담고 비닐을 씌워 뚜껑을 덮는다. 실온에서 하루 정도 익혀 냉장 보관한다.

“어릴 적에 어머니는 수제비를 상에 올릴 때 뒤꼍에서 약 오른 매운 고추를 따다가 송송 썰어 다진 뒤 종지에 담아 곁들이셨다. 얼큰한 음식을 즐기시던 아버지를 배려한 것. 그래서 지금도 손님상에 수제비를 준비할 때마다 늘 매운 고추를 다져 따로 올리고 입맛대로 즐기게 한다. 칼칼한 맛이 더해져 비 오는 날엔 몸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고, 더운 날엔 이열치열 메뉴로도 손색없다.”


코스 3 감자바지락 수제비

재료(8인분)

밀가루(중력분) 400g(4컵), 소금 1/2큰술, 물 11/4컵 정도, 감자 800g, 매운 풋고추 2개
국물 바지락(껍질째) 800g, 물 15컵
양념 다진 마늘 2큰술, 국간장 1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밀가루에 소금을 넣고 물을 부어 반죽한다. 한참 치대서 표면이 매끈해지면 비닐백에 담아 냉장고에서 30분~1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2 감자는 껍질을 벗겨 반 자른 후 5mm 두께의 반달 모양으로 썰어 물에 헹궈 건진다.
3 바지락은 소금물에 담가 해감해 깨끗이 씻은 후 냄비에 담고 물을 부어서 우르르 끓인다. 조개가 입을 벌리면 건져내고, 젖은 면포에 국물만 밭는다.
4 ③의 국물을 다시 냄비에 붓고 ②의 감자를 넣어 끓인다. 국물이 끓어오르면 ①의 수제비 반죽을 얇게 펴서 뜯어 넣고 양념 재료를 넣어 간을 맞춘 다음 가끔 휘휘 저으면서 끓인다. 수제비가 위로 둥둥 떠오르면 다 익은 것.
5 수제비를 그릇에 담고, 매운 풋고추를 송송 썰어 종지에 따로 담아내 취향껏 즐기게 한다.

“누룽지는 걸인에서부터 제왕까지 즐겼던 원조 국민 음식이다. 요즘은 프라이팬이나 오븐에 일부러 눌려 만들기도 할 정도로 즐기는 이가 많아 각광받는 건강 디저트다. 누룽지튀김과 시판 아이스크림을 이용한 디저트는 만들기도 쉬울뿐더러 맛도 빼어나다. 다완이나 밑이 좁은 볼에 담으면 먹기도 편하고 담기도 좋으니 참고할 것.”


코스 4 누릉지 튀김과 아이스크림

재료(8인분)
누룽지 100g, 시판 바닐라 아이스크림 8스쿠프, 식용유・견과류 적당량
만들기
1 누룽지는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2 식용유를 부어 달군 냄비에 누룽지를 넣어 노릇하게 튀긴 후 건져 기름기를 빼고 적당한 크기로 조각낸다.
3 스쿠프(아이스크림 스푼)로 아이스크림을 떠서 볼에 담고 ②의 누룽지를 그 위에 꽂은 뒤 견과류를 올린다.


정성을 더하는 음식 포장법
봄부터 여름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별미 김치인 부추김치와 열무김치는 이즈음의 음식 선물로도 더할 나위 없다. 밀폐 용기에 각각 담아 사이즈가 꼭 맞는 대나무 도시락을 선물 상자로 이용하면 정성은 물론 감동까지 더할 수 있을 것. 대나무 도시락은 도시락 용기는 물론 센터피스 용기, 자질구레한 살림살이 보관함 등 여러모로 쓰임이 많아 그 자체로도 훌륭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먼저 대나무 도시락에 한지나 흰 종이를 깔고 그 위에 김치를 담은 밀폐 용기를 넣는다. 이때 종이는 용기를 감쌀 만큼 넉넉한 길이로 자른다. 그래야 종이로 덮었을 때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다.

포장의 미학이 빛을 발하는 부분인 것. 거즈 테이프로 고정한 후 뚜껑을 덮고, 컬러 지푸라기인 라피아로 대나무 도시락 통을 돌돌 둘러 매듭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부추김치와 열무김치를 각각 넣은 도시락 통을 쌓아 포장지로 사용할 패브릭 위에 올리는데, 삼베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 원해져 여름에 가장 많이 애용하는 천이다. 2단으로 쌓은 도시락 통을 삼베 천으로 감싼 뒤 다시 라피아로 여러 번 둘러 매듭을 짓는다. 여기에 센터피스로 사용한 담쟁이덩굴을 꽂아 다시 한 번 묶으면 귀하게 만든 음식 포장으로 손색이 없다.

열무김치 담그기
열무(1단, 손질하면 1.5kg 정도)는 뿌리를 잘라내고 잎을 그대로 씻는다. 굵은 소금(100g)을 뿌려 1시간 정도 절인 다음 물에 살살 헹궈 건져 물기를 뺀다. 이때 마구 주물러 씻으면 풋내가 나므로 주의한다. 밀가루풀은 물(1컵)에 통밀가루 (1큰술)를 풀어 나무 주걱으로 저으면서 쑨다. 그런 다음 양념을 준비하는데, 먼저 홍고추(150g)를 길이로 반 갈라 적당한 크기로 썰고, 믹서에 양파(80g), 마늘 (25g), 생강(10g), 멸치 액젓(120ml)을 넣고 갈다가 손질한 홍고추를 넣어 굵게 간 다음 볼에 쏟아 밀가루풀과 매실청(50ml), 소금(1작은술)을 넣고 고루 섞는다. 마지막으로 열무에 준비한 양념을 넣고 살살 버무려 소금으로 간한 뒤 김치 용기에 담고 비닐을 씌워서 뚜껑을 덮는다. 실온에서 1~2일 정도 익힌 뒤 냉장고에 보관하고, 먹을 때 썰어서 그릇에 담는다.
*부추김치 만드는 법은 코스 2 메뉴인 항정살구이와 함께 있습니다.

음식 포장, 이렇게 하세요

노영희 요리 연구가가 직접 만들어 밀폐 용기에 각각 담은 부추김치와 열무김치는 감사 메시지와 함께 허명욱 작가에게 선물했다.

여러 방면에 다재다능한 센스쟁이 허명욱 작가님.
어려운 부탁을 흔쾌히 들어줘서 멋진 도시락도 만들 수 있었고, 서랍장에도 손잡이로 돌멩이 한 개를 달아주었을 뿐인데 훌륭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뭐든지 척척 해내니 늘 맥가이버를 옆에 둔 듯 든든합니다. 볼 때마다 너무 바빠서 끼니를 챙길 겨를도 없는 것 같더군요. 여름 무더위에 입맛을 돋워주는 열무김치와 부추김치를 정성껏 담가 보냅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요리와 스타일링 노영희(스튜디오 푸디) 캘리그래피 정선희

글 신민주 수석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