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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쉬운 요리 연구가 김승용 남자의 요리는 순정
스노 아야코의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계로록戒老錄>을 보면 중년에 품위를 유지하며 지혜롭게 나이 들려면 순간을 즐기면서 작은 일이라도 놓지 말라고 말한다. 김승용은 초로의 나이에 ‘쉬운 요리 연구가’로 인생의 후반전을 살고 있는 이다. 요리에 젬병인 남자도 쉽게 따라 할 만한 감각 레시피로 흥이 넘치는 그의 쿠킹 클래스는 남자에 의한, 남자만을 위한 시간이요, 남자의 순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남자들을 위한 쿠킹 클래스는 조리법만 쉽고 간단한 게 아니라 그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정한 음악과 함께해 흥이 있고 재미가 있다. 현재 일곱 명씩 일곱 클래스가 진행 중이며, 30대 초반부터 70대 중반까지 회원 연령대와 직업도 다양하다.

칼질 못한다고 요리 못하나?
레시피도 딱히 없는 수상한 쿠킹 클래스에 남자들이 줄을 잇는다는 ‘제보’를 받은 것이 벌써 몇 달 전의 일이다. 칼질은커녕 부엌에는 얼씬도 않던 상남자도 그곳에 다녀오면 집에서 위신이 달라진단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어느 노신사는 그곳에서 배운 음식으로 아내에게 난생처음 칭찬을 받았다며 소년처럼 수줍게 웃고, 중년의 사업가는 음식을 만들면서 인생을 다른 앵글로 보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이 쿠킹 클래스는 단순한 요리 수업이 아니라 남자가 순수해지는 자리인 것이다. “요리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제가 그랬지요. 제가 만든 음식을 가족과 나눠 먹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보람의 순도가 높아지고,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집에서 남자가 하는 요리는 여자가 하는 요리와는 아무래도 다르니까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생존의 음식이 아니라, 이벤트에 가까워 무뚝뚝한 남자도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지요.”

김승용 요리 연구가는 사회에서 완벽한 리더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들이 가정에서도 멋진 리더로 가족을 한데 묶으려면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자들을 위한 쿠킹 클래스’는 식도락가인 그의 경험 수치가 바탕이 된 요리 수업으로, 조리법은 남자의 눈높이에 꼭 맞추어 효율적이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래서 그에게 ‘쉬운’ 요리 연구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 순서가 아닌 틀을 알려주는 레시피로 접근 방식 자체가 여느 쿠킹 클래스와 다르다. 이른바 감각 레시피요, 구조적 레시피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면 남자들은 ‘나 이거 안 해!’ 이래요. 누구든지 만만할 정도로 쉽게 여겨 해볼 마음이 동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보니 구조적 레시피라는 답이 나왔어요. 칼질 못한다고 요리도 못하나요? 에센스를 알려주고 마음대로 구가할 수 있게 해주어 자신만의 감각 레시피를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요.” 그래서 그의 레시피에는 식재료의 분량도 없고, 수업 중에 만드는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저녁 7시쯤 클래스 회원들이 모여 4~5코스의 음식을 대접받으며, 그가 경험으로 터득해낸 구조적이며 감각적인 레시피를 눈과 입으로 익히고, 그중 한 메뉴는 자세하게 배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겉으론 근사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음식으로, 집으로 돌아갈 땐 재료를 싸준다. 맛보는 데서 끝내지 말고 집에 가서 가족에게 그대로 해주라는 의미에서다. 그 대신 직접 요리해서 식구들과 먹었다는 증거를 스마트폰 인증샷으로 보내라는 것이 그가 내주는 유일한 숙제다.

“기술이 좋다고 요리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좋아야 요리가 쉬워지는 겁니다. 요리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면 좋은 재료를 찾아 제 발로 장을 보게 되지요.” 요리하는 데 제철 식재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면, 클래스를 하는 데서는 시간관념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남자들이 모이지만 사교를 위해 뒷일도 도모하지 않고, 회원들 대부분은 누가 누군지 모르고 온다. 계급장 떼고 요리 하나로 뭉치는 자리니 가족을 위해 요리를 배우는 남자들의 쿠킹 클래스가 순수한 이유다.


그의 아내 송영미 여사는 요리 선생이자 조력자다.


아이패드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으며, 스마트폰으로는 클래스 회원들이 그가 싸준 재료로 직접 만든 음식의 인증샷을 찍어 보낸다.


홍콩식 우럭찜은 그의 18번 요리.


1 저렴한 디저트 와인에 냉동 스트로베리를 갈아 섞은 칵테일만으로도 사랑받는 남자가 될 수 있다.
2 영국의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사. 그는 요즘 다양한 요리책으로 이론 공부에도 열심이다.

여생을 본생으로, 요리로 시작한 인생 2막
여생餘生은 자투리 삶이요, 본생本生은 당연히 살아야 할 삶이라고 한다. 아직 남아 있는 세월을 여생이 아닌 본생으로, 품위를 지키며 지혜롭게 나이 드는 일은 고령화 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하지만 1백 세 시대를 산다 해도 인생의 전반전과 후반전은 삶의 속도도 다르고 의미도 다를 터. 주방 가구 CEO이던 그가 초로의 나이에 요리를 업으로 인생 2막을 열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그의 어머니는 1970년대 국내에 단발머리 열풍을 일으킨 헤어 디자이너이자 요리 연구가인 그레이스 리 선생으로, 영면에 들기 전 그가 만든 음식을 맛볼 때면 늘 “너는 지금 음식 간이 딱 맞아!”라고 칭찬하셨단다. “간이 맞다는 말인즉슨 요리에 물이 올랐다는 어머니식 표현이에요. 일선에서 물러나 여생에 뭘 하면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때 어머니 말씀이 불현듯 떠오르더군요. 생전에 어머니는 사치하지도 않고 검소하셨는데, 세계 어디를 가도 음식값은 아끼지 않으셨어요. 우스갯소리로 ‘내 배 속에 빌딩 몇 채 들어 있다’며 자랑하셨지요. 어머니와 함께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두루 섭렵한 덕에 경험 수치가 높은 게 제 재산입니다.” 말하자면 쉽고 간단한 그의 감각 레시피는 진짜 음식과 좋은 음식을 다양하게 맛본 미식 경험 수치의 발로인 것.

그가 만든 음식을 맛본 지인들의 요청으로, 작년 초부터 그의집 주방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대로 요리를 가르치던것이 이렇게 쿠킹 클래스까지 꾸릴 줄 꿈에도 몰랐다는 그는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만사 ‘뜻밖에’ 일어난 일은 그리 흔치 않다. 60대 이후에 요리로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 그는 꾸준히 준비해왔다. 이전에 경험으로 축적한 요리에 대한 감각을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 학습에 들어갔고, 요리책을 ‘읽는’ 공부로 엄청난 양의 관련 서적을 보며 트렌드를 읽는 안목을 갖추었다. 일본ㆍ프랑스ㆍ이탤리언 요리의 골조를 알기 위해 요리 전문 학교의 클래스도 다니고, ‘한식 스타 셰프’ 양성 과정을 수료하는 등 요리 수업을 체계적으로 받았다. 푸드 칼럼니스트로 그동안 먹어본 요리를 심플하게 정리해 스포츠경향에 매주 연재하는 ‘미스터M의 사랑받는 요리’ 칼럼도 1년을 넘기고 있다. 물론 연재 내용은 누구나 만만하게 도전해볼 수 있는 요리다. “나는 내가 즐겁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명함에는 ‘when it comes to food…’라는 문구가 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즐겁고 보람된 일이 아닐는지. 그리고 그 뒷말은 이렇게 붙여도 좋겠다. 음식에 관해선… 뜨거운 순정이 있다고.


남자들의 쿠킹 클래스
인기 요리와 궁합 맞는 술


1 유자청 얹은 배와 디저트 와인
수분이 많고 당도가 높은 배는 과육만 먹기 좋게 깍둑 썰기해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한다. 껍질을 깐 생밤은 곱게 채 썬다. 오목한 접시에 냉장고에 둔 배를 올리고, 리코타 치즈를 칼로 넓게 떠서 올린 다음 소금을 약간 뿌린다. 그 위에 유자청(시판 제품을 이용해도 좋다) 건더기를 올리고, 채 썬 밤을 얹으면 동서양의 재료가 조화로운 근사한 디저트를 만들 수 있다.

2 데리야키 스테이크와 레드 와인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붓고 마늘과 로즈메리를 넣어 노릇하게 볶는다. 다 익으면 마늘과 로즈메리를 꺼낸 다음 이 팬에 토마토를 넣어 뚜껑을 닫고 살짝 익힌다. 볼에 복분자간장과 약간의 흑설탕을 넣고 섞은 후 전자레인지에 30초간 돌려 데리야키 간장 소스를 만들어 크고 납작한 접시에 뿌린다. 센 불에 뜨겁게 달군 팬에 두께 1cm 미만의 스테이크용 고기를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채 올린 후 앞뒤로 살짝 구운 다음 데리야키 간장 소스를 뿌린 접시에 올려 소스를 앞뒤로 묻힌다. 다른 접시에 소스를 묻힌 스테이크를 담고 그 옆에 구운 마늘과 토마토, 연겨자 소스, 호스래디시 소스 등을 곁들인다. 스테이크용 고기는 마트에서 한우의 채끝살이나 등심 부위를 구입할 것.


3 중국식 새우 요리와 화이트 와인
새우는 머리가 붙어 있는 것을 고른다. 새우 머리는 신선도의 바로미터인 셈. 씻어서 물기를 뺀 새우와 생강, 대파를 볼에 넣은 후 정종(혹은 소주)을 자박자박할 정도로 부은 다음 뚜껑이나 랩을 덮어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잡내를 없애면서 새우도 알맞게 익히는 간편한 방법으로, 색이 빨갛게 변하면 잘 익은 것. 밑에 있는 새우의 색을 확인해 덜 익었으면 전자레인지에 더 돌린다. 디핑 소스는 볼에 생강채와 대파채 듬뿍, 양조 간장(복분자간장 추천)과 포도씨유를 각각 2큰술씩 넣고 랩을 씌워서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돌리면 완성된다. 먹을 때는 껍질을 벗긴 새우를 디핑 소스에 푹 담근 뒤 대파채를 올려 먹으면 맛있다.

4 낙지볶음과 차가운 청주
믹서에 바질과 소금, 올리브유를 넣고 갈아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 냉장 보관해두면 두고두고 쓸 수 있다. 이때 소금은 약간 짭조름한 정도가 적당하다. 산낙지는 깊이 있는 체에 넣고 팔팔 끓인 물을 부어 겉만 살짝 익힌 다음 가위로 자른다. 이렇게 하면 뜨거운 물에 데친 것보다 식감이 훨씬 부드럽다. 데친 산낙지에 바질 페스토를 넣어 섞으면 완성. 바질 페스토는 산낙지 1마리에 1큰술 정도면 되지만, 산낙지 크기에 따라 페스토의 양은 변하게 마련이니, 골고루 비빌 수 있는 정도면 적당하다. 곁들이는 청주는 얼기 직전까지 냉동실에 뒀다가 음식과 함께 낸다. 청주는 온도를 잘 맞춰야 맛이 좋다.

간장은 그의 요리 맛을 내는 데 중요한 요소로, 그는 짜지 않고 단맛이 도는 몽고간장에서 복분자간장을 적극 추천한다. 현대백화점(본점)과 갤러리아백화점(본점) 식품관에서 판매한다.

글 신민주 수석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