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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의 취향 단팥빵
우리나라에 단팥빵이 전해진 건 일본을 통해서다. 18세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서 빵의 낯섦을 극복하기 위해 빵에 단팥을 넣어 간식으로 변형한 것. 그것이 다시 우리에게 전해졌으니, 이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빵이 바로 단팥빵인 셈이다. 한국인에게 단팥빵이 가장 만만하고 친숙하며 편안한 건 빵 계의 ‘터줏대감’이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출출한 속을 달래고 달달하게 마음을 위로해주는 단팥빵은 어느 빵집을 막론하고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아이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맛있기로 소문난 단팥빵 열한 개로 단팥빵의 어제와 오늘을 엿본다.


단팥빵의 절대강자와 신흥강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빵집이 어딘 지 아는가. 바로 군산의 이성당이다. 1945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3대째 이어오고 있는 군산의 관광 명소로, 일부러 이곳 빵을 맛보러 찾는 이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성당을 대표하는 빵이 바로 단팥빵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소박한 외관과 참 잘 어울리는 빵이다. 멀리 군산까지 가지 않아도, 동네 빵집 어디를 가도 단팥빵은 흔하다.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빵집에 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을 족히 먹었으련만 단팥빵은 물리는 법이 없다. “아무리 신메뉴를 출시해도 사람들은 익숙한 빵을 좋아해요. 잘 아는 맛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연희동 피터팬 제과점의 박지원 대표의 말처럼 단팥빵은 빵집에서 만날 수 있는 친근한 맛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작은 빵집이 맛있다>의 저자 김혜준 씨는 트위터에서 ‘빵당’을 운영하던 시절, 빵 마니아들이 서울 곳곳 윈도 베이커리의 개성 강한 빵들을 사 들고 오는 자리에서도 누군가 군산에 들러 이성당의 단팥빵을 사 온 날에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주말에는 단팥빵이 하루에 9천~1만 개까지 팔린다는 이성당은 현재 창업주의 며느리 김현주 씨가 물려받아 운영하며, 손녀딸 조윤경 씨가 운영하는 서울 서초동의 ‘햇쌀마루’ 에서 이성당과 똑같은 단팥빵을 맛볼 수 있다. 이곳 빵맛의 핵심은 절대 공개할 수 없는 팥 삶는 노하우에 있지만, 전통 그대로의 단팥빵에 ‘건강함’이라는 현대인의 절대적 니즈를 함께 버무려 쌀가루로 반죽한 쌀단팥빵으로 진화한 것도 한몫한다.

이성당 못지않게 오래된 빵집인 장충동의 태극당 단팥빵도 묵직한 팥소를 아낌없이 넣어 만든다. 옛날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한 매장 모습처럼 변함없이 정겨운 단팥빵을 맛볼 수 있다. 연희동의 피터팬제과점 역시 단팥빵 맛집으로 꼽히는 곳이다. 빵집 운영은 아들에게 물려준 뒤에도 팥소만은 직접 만들 만큼 박용배 셰프는 단팥빵에 애착이 크다. 강원도에서 재배한 팥을 구입해 네 차례에 걸쳐 삶고 조려 만든 이곳의 단팥빵은 하루에 2백 개 가까이가 팔릴 만큼 마니아층이 두껍다.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단팥빵은 서울연인이다. 공덕역, 홍대역, 양재역 내 작은 가게에서 팥소를 베이스로 한 호두통단팥빵, 팥앙금빵, 팥소보로빵과 고구마앙금빵, 크림치즈빵, 야채빵 등 여섯 가지 메뉴만 판매한다. 동글동글 앙증맞은 이곳 단팥빵은 그야말로 최고 재료만 사용하는 ‘현대식 단팥빵’이다. 유기농 밀가루, 천연 버터, 천일염, 천연 발효종으로 만든 반죽을 29시간 숙성시킨 뒤 부드러운 팥소를 듬뿍 넣어 구워낸다.

개성을 더한 단팥빵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입맛이 변해 도 살아남은 단팥빵의 미덕을 꼽으라면 달달하고 든든한 맛, 정겨운 맛, 추억의 맛이라 하겠다. 한데 프랜차이즈 빵집부터 윈도 베이커리까지 전국 1만여 개가 넘는 빵집이 성업 중이다 보니 이제 갖가지 아이디어와 주인장의 개성을 더한 단팥빵도 속속 등장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팥빵과 소보로빵을 하나로 합친 성심당의 ‘튀김소보로’가 대표적. 성심당을 ‘대전의 명물’로 만든 효자 상품으로, 대전역사 내 매장에서는 한 사람당 여섯 개까지만 판매할 정도로 없어서 못 판다. 하루 종일 만들어내기 때문에 늘 따끈한 튀김소보로를 맛볼 수 있지만, 이 빵은 식어도 눅눅해지지 않고 더욱 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핫도그처럼 길쭉한 빵 속에 통팥을 가득 담은 나폴레옹과자점의 통팥빵도 재미있다. 일반 단팥빵처럼 팥 앙금이 아닌팥 알갱이가 여실히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인데, 팥을 삶고 설탕을 넣어 조리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팥이 뭉개지지 않아 입에서 알알이 터지는 식감이 인상적이다. 서울 홍익대 근처의 빵나무에서는 호빵처럼 생긴 뽀얀 빵 속에 생크림과 팥소를 함께 넣은 생크림 단팥빵을 선보인다. 단팥과 고소한 생크림이 어우러져 하나만 먹어도 포만감이 든다. 이 외에도 미니 바게트속에 두툼한 버터와 앙금을 함께 올린 ‘브레드05’의 앙버터, 오징어 먹물로 반죽한 검은 치아바타 속에 버터와 앙금을 차례로 올린 ‘쿄베이커리’의 깜장고무신도 빵 마니아에게 인기가 높다.


호텔 베이커리의 대세는 프리미엄 단팥빵
고급 디저트 와 케이크류, 유럽식 식사 빵만 있을 것 같은 특급 호텔 베이커리에서도 단팥빵은 효자 상품으로 꼽힌다. 요리 잡지 <쿠켄>의 문경옥 기자는 자칭 단팥빵 마니아. 처음에는 호텔 셰프가 만드는 단팥빵은 뭔가 남다른 구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나 둘사 먹기 시작했는데, 재료도 맛도 신뢰할 수 있는 데다 동네 빵집과 가격 차이도 크지 않아 이제는 단팥빵을 사 먹으러 종종 호텔을 찾는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국산 팥을 매장에서 직접 삶아 만든 팥소를 듬뿍 넣은 호두단팥빵과, 앙금과 크림치즈를 함께 넣은 호떡 모양의 크림치즈 단팥빵을 선보인다. JW 메리어트 호텔 델리 숍의 히트 상품 역시 단팥빵이다. 델리 숍 신태화 셰프는 “단팥빵만 하루에 약 2백 개 가까이 팔릴 만큼 인기가 높으며,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인 관광객도 즐겨 찾는 메뉴”라 했다. 빵의 80%가 단팥일 정도로 묵직하고 소가 실하다.

한 시간에 열 개씩 팔린다는 롯데호텔서울의 단팥빵은 막걸리를 넣은 반죽을 하루 동안 저온 숙성한 뒤 다음 날 한 차례 더 반죽해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국산 팥을 완전히 갈아 넣어 부드럽고 달콤한 데다 구운 호두까지 더해 고소한 맛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서울신라호텔 패스트리 부티크는 하루 두 번에 걸쳐 약 1백10개 정도의 앙금빵을 만들어 판매한다. 천연 발효종인 주종과 막걸리를 넣어 반죽해 식감이 쫄깃하고 부드럽다. 전남 무안의 유기농 팥을 공수받아 말티톨이라는 특수 당을 넣어 끓여 만든다. 설탕 대신 몸에 축적이 되지 않는 말티톨을 첨가해 건강에도 신경 쓴 것. 정흥도 제과장이 매일 새벽 팥소의 당도와 밀도, 텍스처까지 손수 체크해 사용할 만큼 엄격하고 세심하게 관리한다.
수십 년을 이어오며 그 매력은 변하지 않았지만, 단팥빵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건강한 재료로 건강한 단맛을 내는 것이 요즘 단팥빵의 특징.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는 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가 아니라 현대 흐름과 발맞추어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을 동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도서 <돈가스의 탄생>(뿌리와이파이)  취재 협조 나폴레옹과자점(02-3445-5566),롯데호텔서울 델리카한스(02-317-7148),빵나무(02-322-0045), 서울신라호텔 패스트리 부티크(02-2230-3377), 서울웨스틴조선호텔 메나쥬리(02-317-0022),성심당(042-256-4114), 태극당(02-2279-3152), 피터팬제과점(02-336-4775),햇쌀마루(02-582-9240),JW 메리어트 호텔 델리숍(02-6282-6737)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