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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귀촌 일기 3 농사의 끝,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김장
겨우겨우 어찌어찌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이제는 좀 쉬겠구나’ 하는 참에 마지막 대사大事가 걸려 있습니다. 다름 아닌 한 해 농사의 끝을 알리는 ‘김장’과 생계를 위한 노동 ‘유자차 담그기’. 저 먹을 것만 조금 만들면 문제가 아닐 것을,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하룻강아지처럼 일을 크게 벌였습니다.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는 시간들. 무, 배추는 신문지에 말아 얼지 않게 플라스틱 통 안에, 감자는 싹이 나지 않도록 어둡고 시원한 곳으로, 고구마는 따뜻한 곳으로…. 집집마다 내걸린 시래기만 보아도 걸쭉한 우거지뚝배기 생각에 군침이 돈다.

김장은 꼬박 사흘이 걸리는 일. 마늘 생강 까는 일로 시작해, 함께한 이웃들과 수육 삶아 먹고 나누는 일까지. 이때는 집집마다 남자들도 가세해서 배추를 씻고 양념을 버무리는 등 힘든 일들을 도맡아 하니 가히 민족의 문화유산이라 할 만하다.

직접 기른 배추 맛, 이 맛 때문에
나가서 일한다는 이유로 일생 남이 해준 밥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 제게 시골로 와서 텃밭 농사를 짓는다는 건 단순히 ‘농사’를 넘어서 농부이자 요리사가 되어야 하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밭에서 오이가 쏟아지면 오이지를 담가야 하고, 가지와 호박이 터져나면 썰어서 말려야 하고, 풍년인 늙은 호박은 즙을 내지 않으면 죽이라도 쒀야 하고, 고추가 휘어질 듯 열리면 장아찌를 담그든 밀가루 발라 쪄서 말리든 해야 하고, 무를 수확한 후엔 깨끗한 잎사귀 골라 시래기를 만들어야 하고…. 삼시 세끼 먹고 사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일이더군요. 그중 제일은 ‘김장’일 것입니다. 그 들어가는 품과 투자 규모도 제일이요, 성패가 미치는 영향도 제일이니 말입니다.
2011년 가을, 첫 배추 농사를 지었습니다. 귀농운동본부의 <텃밭 매뉴얼>과 박원만 선생의 10년 텃밭 경험을 담은 <텃밭백과-유기농 채소 기르기>를 바이블 삼아서…. 먼저 풀밭이던 마당을 삽으로 일일이 뒤집어 크고 작은 돌을 들어냈습니다. 기계없이 하려니 작은 땅이라도 엄청난 시간과 품이 들었지요. 그곳에 무ㆍ열무ㆍ갓 씨를 뿌리고 배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들여다보니 모종이 시들어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틀도 사흘도 아니고 하룻밤 사이에!’ 알고 보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작은 벌레들이 잎의 모가지를 댕강댕강 잘라 먹은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분했지만, 오리궁둥이(고무줄 두 개 끈에 다리를 끼워 엉덩이에 붙이고 다니게끔 만든, 다소 민망하지만 밭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둥그런 방석)를 끼고 앉아 다시 심는 수밖에요.
배추 농사의 성패는 옮겨 심고 2~3주의 성장에 달렸다고 하는 데, 이때부터는 손으로 벌레도 잡아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액비며 목초액을 뿌려야 합니다(관행농에서는 이때에 살충제와 복합비료를 뿌립니다). 그래야 청벌레, 섬서구메뚜기, 좁은가슴 잎벌레, 벼룩잎벌레 등 다양하기도 하고 많기도 한 벌레들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는데, 그러고도 살아 있는 것들은 일일이 나무젓가락으로 하나씩 잡아내야 합니다. 아침마다 벌레 잡기를 두어 달! 배추는 그럭저럭 자라났고, 시장에서 파는 배추의 3분의 1이나 될까 싶은 크기였지만 아삭하고 달콤하고 고소했습니다. 야무진 맛이라고나 할까요? 만약 이 맛이 없었다면 굳이 배추 농사를 짓지도, 김장한다고 매년 이 법석을 떨지 않았을것입니다. 물 주고 비료 주고 크게 크게 키운 배추와 달리 육질이 단단해 늦도록 아삭하고 맛도 환상이었습니다.

빨간 산수유 열매와 짙푸른 대숲에 내린 눈. 이것이 남도 눈 풍경의 백미다. 그런데 이 풍경은 한나절이 지나지 않아 사라져버린다. 풍경도 인생도 찰나임을 가르쳐주면서 말이다.

세 번의 김장, 그 좌충우돌
생애 첫 김장. 하늘이 도우셨는지 제게 수호천사 두 분을 보내셨습니다.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젓갈, 청각 등을 읍내 방앗간에 가서 갈아오던 길에 마을 어르신 두 분을 차에 태워드린 것 입니다. “이따 김장 구경이나 가겠다’’시던 두 분이 손에 ‘삘건’ 고무장갑까지 끼고 나타나시는 순간,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아름답게 진행되었습니다. 두 분이 배추의 절임 상태와 간, 양념의 간과 배합, 묽기와 적정한 양까지 맞춰 버무려주신 덕에 그해 나의 첫 김장 김치는 ‘전설’이 되었지요. 저는 밤새 두 시간에 한 번씩 배추 뒤집고, 김치 통 준비하고 랩으로 마감하는 등 잔심부름이나 하고 다녔지만, 그 사정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김치 장사 해도 되겠다”라는 칭찬까지 했더랬습니다.
최근 ‘김장’이 이웃 간의 연대와 나눔, 한국인의 정체성을 높이는 음식 문화로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데, 제가 바로 그 산증인일 것입니다. 미국의 미셸 오바마도 자기가 기른 텃밭 배추로 김치를 담근다는 요즘이지만, 사무실에서 인생의 반을 보낸 이 ‘서울 촌것’에겐 시골의 맘씨 좋은 이웃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니까요. 작년 김장은 앞뒷집 서울내기들끼리 모여 앉아 했습니다. 실력은 고만고만했지만 호호하하 즐겁게 만들고 “우리가 해냈다”며 대견해 하며 남자들이 삶아온 돼지 앞다릿살을 노란 배추 속잎에 싸서 소를 듬뿍 얹어 그 저녁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로 세 번째 김장. 그동안 키운 배추가 그리 크게 자라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서 모종 2백 개를 사다 심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사상 최대로 컸습니다. 얼추 시장 배추의 70%가 될 만큼 너무 잘 자랐지요.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서 남아돌 배추를 털어보려 했으나 모두가 묵묵부답. 급기야 ‘잘 자란 배추 2백 포기’의 소식을 들은 모친이 달려오셨습니다. 일단 배추 80포기를 밭에서 싣고 와 거침없이 겉껍질 뜯어내고 반 갈라 소금 뿌려 하룻밤을 재워두고 한밤에 일어나 한바탕 뒤집었죠. 드디어 결전의 날. 아침 일찍 장에 나가 미나리, 생새우, 삶을 돼지고기를 사 와 현관에 던져두었죠. 다음엔 ‘배추 씻어 건지기’ 대사역! 한 번, 두 번, 세 번! 채반에 배추를 쌓아 물기를 빼면서 드디어 본격적인 부재료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멸치젓 (봄에 생멸치를 사다 담근!)을 끓여 밭치고, 끝도 없이 무채를 썰고, 돌아서서 찹쌀죽을 쑤고…. 80포기나 되니 준비해야 할 소재료도 많았습니다. 그때 들려오는 모친의 일성! “아야, 어쩌까이, 배추가 밭으로 갈라고 헌다!” 저런! 소금물에 하룻밤을 재웠어도 다시금 시퍼렇게 살아 뚜벅뚜벅 밭으로 가려는 배추들…. 그것들을 하나씩 붙잡아 얼렁뚱땅 버무리고 버무려 밤이 다 되어서야 겨우 김장을 완료했습니다.
김장, ‘겨우내 먹을 김치를 한목에 담그는 일’. 두세 식구 먹을 양을 가늠치 못한 건 그렇다 치고, 적어도 ‘겨우내’란 단어를 새 겨들었어도 이런 사태는 막았을 텐데…. 결국 올해 김장은 그 규모 때문에 주변에 민폐를 끼친 사건이고, 덕분에 누군가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전해 받은 김치를 감사히 먹고, 그 김치는 누군가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요. 그래도 자승자박, 자업자득의 대규모 김장 끝에 반성인지 다짐인지 모를 독백을 합니다. “조금만 하자!”


나의 아름다운 실험실. 봄에는 매실, 겨울엔 유자가 주인공이다. 백설탕, 황설탕, 유기농 비정제, 그리고 당뇨병 환자를 위한 자일로스 설탕 등 다양한 당원을 사용해 비교하는 중이다.

수확을 앞둔 유자밭은 지상 낙원 같다. 바람은 차가워도 여전히 잎은 푸르고 열매는 탐스럽다. 약을 치지 않은 유자는 작고 못났지만 향만큼은 월등하다.

‘생계를 위한 노동’ 유자차 담그기
“시골 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생계를 위한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신분상 깨끗한 손과 말끔한 옷, 현실 세계에 대한 상아탑적 무관심에 젖어 있는 교사에게서 기생 생활의 때를 벗겨준다.”- 스콧 니어링
굳이 니어링 할아버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자급자족의 삶과 심신의 건강을 위해 ‘일’을 계속하려고 내려온 시골입니다. 평생 직장을 찾아왔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기르고 만든 것을 지인에게 선물하거나 팔기도 합니다. 아직은 친구들만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임상 시험(?) 기간입니다. 심지어 돈을 받기도 하면서…. 그래도 주력 아이템을 대략 결정되는 듯합니다. 스콧과 헬렌에게 감자와 사과단풍 시럽이 있다면 제게는 여름의 꿀과 바질, 그리고 겨울의 유자차가 그것입니다. 깨끗한 지리산에서 채취한 천연 벌꿀과 따뜻한 남도에서 자란 바질 페스토는 친구들에게 반응이 괜찮은 아이템입니다.
그리고 유자차. 이는 제게 텃밭 농사를 가르쳐주신 도시농부학 교의 교장 선생님이 고흥에 본격 귀농하여 보내주신 유자 한 박스가 씨앗이 되어 시작했습니다. 혼자 먹기에 너무 많아 슬쩍 팔아본 것이 반응이 좋아 한 박스 더 만들었고, 올해는 두 배가 되었습니다. 그래 봤자 얼마 되지 않는 양이지만 기계가 아닌 손으로 일일이 다듬어 만들기엔 결코 적지 않은 양입니다. 용기와 설탕의 종류를 결정하고, 박스를 주문하고, 엑셀로 주문을 정리하고, 항아리에서 숙성된 유자를 일일이 용기에 떠 넣어 포장하고, 안내문과 에어캡을 넣은 후 박스 테이핑을 하고, 택배 용지에 주소를 적어 붙이고, 트럭에 실어 택배사에 전달하고, 입금을 확인하고, 너무 많이 보낸 금액이나 덜 받은 금액들을 처리해야 하고…. 세상에 쉬운 일은 진정 없나 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백미는 유자씨를 포크로 일일이 빼는 일!
하나당 스무 개씩은 나오는 깊이 박힌 유자씨를 터뜨리지 않으면서 빠른 속도로 빼내는 게 관건입니다. 남자들은 이 대목에선 30분이 못 되어 주리를 틉니다. 한자리에 앉아서 같은 동작을 무한 반복하는 일, 그것도 세밀한 일. 이는 여자들, 할머니들의 영역인가 봅니다. 동네 할머니들을 모셨더니 몇 배의 속도로 끝냅니다. 저도 여자니까 해냅니다. 결국 일은 손이 하는 것이고, 시간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한 작업으로 허리가 쑤시자 ‘기계화’ ‘자동화’ 같은 단어들이 머리에 마구 떠오릅니다. 잠시나마 부농의 꿈을 꾸어봅니다. 그랬다가 다시 제정신으로!
‘하루 네 시간의 노동’을 나름 규칙으로 정하고, 한 해를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비 이상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극도로 단순하고 검약한 삶을 실천한 니어링 부부. 그들의 삶이 준 자극과 교훈을 이렇게도 수시로 잊어버리다니요.
어쨌건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밭엔 아직도 배추 1백여 포기가 뒹굴지만 고라니가 먹건 어쩌건 알 바 아니고, 저도 이젠 동면에 들어갈 거니까요. 이 겨울 잘 쉬고 나면 힘들던 것을 잊고 다시 일할 맘과 힘이 생길 테지요. 부디 그러하길 기도해봅니다.

글과 사진 정현선 | 담당 김민정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