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쪽빛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잘 익은 밤송이가 대롱대롱 매달린 것을 보면 가을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벌어진 밤송이 사이로 슬며시 보이는 윤기나고 옹골찬 밤은 지난 1년 동안 토양의 정기를 받고 자란 자연의 결과물이다. 밤은 우유나 달걀처럼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완전식품으로 구분된다. 그래서 보양이 필요한 어르신, 수술 받은 환자들, 어린이들에게 주로 권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특히 입이 짧아서 살 안 찌는 아이들에게 끼니마다 밤을 먹이면 금방 살이 오르고 건강해진다. 또 밤이 노란색을 띠는 것은 베타카로틴 성분 때문인데 이는 체내 면역력을 길러주고 거칠어진 피부에 윤기를 더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밤을 수확하는 기간은 8월 말부터 10월 말까지이며 시기별로 조생종과 중생종, 만생종으로 나눌 수 있다.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나오는 조생종은 껍데기가 얇고 잘 벗겨져서 군밤용으로 알맞다. 9월 중순부터 말일까지 나오는 것이 중생종이고, 이때부터 10월 중순까지 수확하는 것이 만생종인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껍데기도 점점 두꺼워진다. 충북 공주에 위치한 안산율원의 김서종 대표는 “생으로 먹었을 때 가장 맛있는 것이 중생종이고, 익혔을 때는 색깔이 노랗고 단맛이 강한 만생종이 최고”라며 수확 시기에 따라 먹는 요령을 달리하라고 권한다. 최근 엄지손톱보다 약간 크고 당도가 높은 ‘단밤’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천진밤’이라고 불리는 중국산 밤이다. 일교차가 워낙 심하고 공기가 건조한 지역이라 우리나라 밤보다 당도가 강한 것이 특징. 이렇듯 다양한 종류의 밤은 보관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생밤은 물에 잠시 담갔다가 꺼내어 신문지에 싸서 김치냉장고나 냉장실에 1~2주일 동안 보관하는 것이 좋다. 물기가 없으면 오히려 썩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이 넘어가면 상한 냄새가 나니 주의할 것. 가끔 냉동실에 얼리는 경우가 있는데 한 번 냉동된 밤은 예전의 맛과 향, 질감을 유지하기 힘들다.
제철에 수확한 신선한 밤을 가장 손쉽게 맛보려면 찌는 것이 최고다. 이때 물의 양과 시간 조절이 포인트. “집에서 찐 밤을 먹으려면 압력밥솥에 찌는 것이 가장 맛있습니다. 압력솥에 밤을 넣고 밤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부으세요. 김이 나면서 ‘팍’ 하고 밤 터지는 소리가 날 때 불을 끄면 됩니다. 압력솥에 찌기 전에 밤에 1cm 이상 깊이 칼집 내는 것을 잊지 마세요. ” 충북 충주에서 밤농장 ‘사락밤’을 운영하는 진정욱 대표는 맛있게 밤을 먹는 노하우 한 가지를 덧붙였다. “특별한 별미를 맛보려면 구워 먹는 것도 좋아요. 집에 화롯불이 없더라도 군밤을 즐길 수 있습니다.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숯불을 넣고 밤을 곳곳에 두면 됩니다. 밤이 ‘톡’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날 때 꺼내어 먹으면 되지요.” 찌기나 굽기와 같은 간단한 조리 외에도 밤을 이용한 요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밤은 맛이 순해 다른 식재료와도 두루두루 어울리기 때문. 구운 밤 서너 개를 샐러드에 넣으면 고소한 맛을 더하고, 갈비찜을 할 때 밤을 곁들이면 양념이 적당하게 밴 달달한 맛에 고기보다 밤 골라 먹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조림을 하여 밥반찬으로 이용하거나 밥과 함께 지으면 영양가와 풍미가 향상된다. 그 외에도 양갱과 타르트 등의 디저트에도 밤은 단골 식재료로 등장한다. 단순한 간식거리로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고 맛 좋은 밤을 여러 요리에 이용하면 한결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1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완전식품 밤. 밤송이는 익을수록 초록색에서 갈색으로 변한다. 2 밤은 단순히 열매가 아니다. 여러 요리에 활용되는 제철 재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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