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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맛, 통영 5味
이 땅에 어디 하나 허투루 다닐 곳은 없다지만, 그중에서도 통영은 각별하다. 이 도시처럼 황홀하고 위대한 수식어가 많은 애틋한 곳도 없으므로. 통영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뭔가 한가락 한다고 할 정도로 이 땅 사람들 몸 속엔 예인藝人의 피가 흐른다. 박경리, 윤이상, 전혁림, 김춘수, 유치환 등 걸출한 문화 예술인을 키워내고 무형문화재가 가장 많아 예향藝鄕이라 불리는 데는 통영의 비경이 한몫했을 터. 조선 사발을 엎어놓은 듯 부드러운 곡선의 섬을 5백70여 개나 거느린 바다의 땅으로, 눈길 머무는 곳곳마다 풍광이 수려하다. 오죽하면 이곳에 한번 발을 들이면 영영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을까.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땅으로 평화에 대한 기원 또한 곳곳에 스며 있다. 게다가 예부터 손에 꼽히는 맛의 고장으로 철마다 통영 사람조차 안달 나게 하는 음식이 지천이다. 음식은 생활과 맞닿아 있어 구체적이기에 시가 안 된다지만, 유독 시에 음식을 많이 등장시킨 시인 백석 또한 통영의 먹을거리를 시로 읊조리며“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 하지 않았던가. 재색을 두루 갖춘 여염집 규수 같지만, 한편 모진 풍파를 견뎌낸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섬 사나이 같은 이곳을 연모하는 이들이 꼽은 비경과 음식의 면면을 보노라면 그들이 그토록 통영에 몸 달아 하는 이유가 일각이나마 전해진다. 예인들의 기운을 느끼고, 수려한 풍광을 즐기며, 각별한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이 지치고 허기진다면 통영에 가보라. 당신을 몸 달게 할 것이다.


한산도에 해무가 깔린 풍경 사진은 사진작가이자 향토 음식 연구가 이상희 씨 작품.


동피랑마을, 낡고 오래된 것을 간직한 꿈의 언덕
통영 말로 ‘동쪽 벼랑’이라는 뜻의 동피랑은 통영의 대표적 산동네였다. 개발의 바람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으나 벽화로 살아났다. 지방의제 추진 기구 푸른 통영 21이 주축이 되어 집 담벼락을 기꺼이 내준 주민들과 재개발 계획을 중단한 통영시의 뜻이 모이고, 전문적이고 세련되지 않더라도 눈빛 선한 화가들이 재능을 기부해 마을에 벽화를 그린 것이다. 덕분에 이제는 통영의 몽마르트르로, 오래된 사람살이가 보존된 현대의 문화재나 다름없다. 더러는 통영이 아니라 동피랑에 왔다가 통영을 보고 느끼고 돌아간다고 할 정도다. 동피랑마을과 중앙시장만 둘러봐도 통영의 삶터와 사람살이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벽화의 마을이지만 여기에도 유효기간은 있다. 세월이 지나면 자칫 흉물이 될 수 있기에 2년마다 새로 그린다. 그런 까닭에 이곳을 찾은 많은 이가 달라진 벽화를 보러 다시 오기도 한다. 벽화에는 큰 제목만 주어질 뿐 그림의 주제가 자유롭다. ‘언덕의 재발견’ ‘동피랑 블루스’에 이어 작년에 그린 벽화 콘셉트는 ‘땡큐! 동피랑’. 집과 집을 이어주는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마주하는 숨은 그림을 찾고 스토리를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다. 골목의 끝 마을 꼭대기인 동피랑 언덕에 닿으면 통영에서 가장 전망 좋은 노천카페인 구판장과 기념품을 살 수 있는 점방이 있다. 통영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비경의 뷰포인트인 이곳에서는 엽서도 쓸 수 있다. 동피랑에 거주하는 다섯 명 작가들의 생활 공간인 작가촌 아래 낡은 집 가운데는 채 7평이 안 되는 작지만 착한 갤러리도 있다. 벽화가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이라면 이곳에서는 통영 지역 프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갤러리, 구판장, 점방에서 나온 수익금은 주민을 위해 쓴다. 들여다볼수록 재미나고 따뜻한 곳이 동피랑이다. 하지만 이곳은 야외 갤러리가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마을이다. 동피랑엔 사람이 산다. 이 마을을 거닐 땐 발소리를 죽이고 목소리를 낮추고 사생활을 지켜주는 예의 또한 갖춰야 한다. 이 아름다운 골목과 벽화의 마을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도다리쑥국을 묵어야 봄이 오제”
흔히 경상도 음식엔 먹을 게 없다고 하지만, 통영은 먹을 게 천지요, 전국에서 제일 맛있다. 통영 사람들에겐 철마다 꼭 먹어야 하는 제철 음식이 있을 정도다. 겨울이 물메깃국 끓이는 계절이라면 봄은 도다리쑥국과 함께 찾아온다. 아직 살이 연한 어린 도다리에 섬 할매들이 캐온 쑥을 넣고 끓이는 국이 바로 도다리쑥국이다.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은 도다리와 따뜻한 피를 돌게 하는 쑥이 만났으니 말 그대로 약이 되는 음식이다. 도다리의 살이 무르니 익을 정도로만 끓여 담백하게 먹는데 그야말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통영의 식당은 메뉴판이 단출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서 나는 신선한 제철 재료로 메뉴가 바뀌니 당연하다. 4월 중순이 지나면 맛볼 수 없는, 오랜 세월 통영 사람들의 허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얼러준 도다리쑥국으로 봄을 맞이해보면 어떨까. 기운이 솟을 것이다.

명실식당
식재료 가격에 따라 음식값도 유동적이다. 도다리쑥국은 1만 2천 원 정도. 제철 식재료로 차리는 밑반찬도 맛깔스럽다. 정오~오후 8시(오후 2시~5시는 쉰다), 일요일 휴무.
주소 경남 통영시 무전동 374-6 문의 055-645-2598



세병관, 은하수 물을 끌어와 병장기를 씻다
“갯가라 카지마는 옛날에는 사또보다 높은 수군통제사가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명정리에는 이순신 장군을 모시놓은 사당도 있고요. 저어기 저, 왜놈들을 몰살시킨 판데목도 있고 통영 사람들 콧대가 얼마나 높으다고요?”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한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 통영 사람들은 통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땅이요, 3백여 년간 조선시대 전라・경상・충청도의 수군을 총괄지휘하던 삼도 수군 통제영의 사령부가 있던 군사도시니 그럴 만도 하다. 통영이란 이름도 이 삼도 수군 통제영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이 통제영의 심장이 바로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는 객사이던 세병관(국보 제305호)이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36대 통제사 서유대가 쓴 현판이다. 세병관洗兵館의 세병은 두보의 시 ‘세병마행’의 마지막 구절 중 ‘만하세병’에서 따온 것으로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어떻게 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하늘의 은하수 물을 끌어다가, 갑옷과 무기를 깨끗이 씻어 영원히 사용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군사령부 건물이면서도 그토록 간절히 평화를 기원하는 곳이라니, 세상 천지에 이런 평화의 염원을 가득 담은 군사 시설이 어디에 또 있을까. 세병관이 아름다운 장소인 이유다.


“다찌에 가봐야 통영 맛을 알제”
경상도 음식은 맛없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리는 곳이 바로 통영의 다찌집이다. “아지매, 빠께스로 주소.” 한마디면 술이 얼음 담긴 플라스틱 양동이에 적당히 담겨 나오고, 안주는 주인이 주는 대로 먹는 ‘주인 마음대로’ 선술집이다. 메뉴도 그날그날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안주를 골고루 조금씩 즐기는 통영 토박이 주당의 성향이 다찌집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제철 생선회나 생선구이, 찜, 무침도 종류별로 조금씩, 털게도 멍게도 굴도 물메기탕도 조금씩 맛볼 수 있는데, 통영 바다와 들에서 나는 거의 모든 음식이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주당을 위한 술집으로 본래 술값만 조금 비싸게 받고 안줏값은 안 받았으나, 요즘은 입소문을 타고 술보다 안줏발을 세우는 관광객이 늘면서 다찌집도 조금 변했다. 1인당 술을 포함한 일정액의 기본요금을 받는다. 그래도 여전히 다찌집은 통영 술집 문화의 진수다. 속정은 깊지만 겉으론 무뚝뚝한 통영 아지매 요리사의 손맛을 즐길 마음으로 찾는다면 바다의 온갖 진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통영의 대표 다찌집
통영시에만 60여 곳 있다는 다찌집 중에는 물론 실망스러운 곳도 많다. 제대로 맛보려면 통영 사람들이 잘 가는 곳을 찾아가는 것. 1인당 기본요금은 3만 원 앞뒤로 안줏값과 함께 보통 소주 3병, 맥주 5병 정도를 포함한 가격이다. 그 이후 마시는 술은 술값이 추가된다. 첫째 주 일요일은 대부분 휴무다.
대추나무 주소 경남 통영시 항남동 101-2 문의 055-641-3877
벅수실비 주소 경남 통영시 항남동 188 문의 055-641-4684
물보라다찌 주소 경남 통영시 항남동 139-11 문의 055-646-4884
강변실비 주소 경남 통영시 정량동 1158-58 문의 055-641-3225



수륙-일운자전거도로, 바닷가 따라 도는 길맛
말을 잃게 하는 일몰로 유명한 달아공원과 통하는 산양관광도로는 해 질 녘에 달려야 제맛인데, 여기엔 숨어 있는 해안도로가 또 있다. 통영전통공예관 가까운 곳에 있는 수륙-일운자전거도로다.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바다 쪽에 만든 길로, 복바위를 비롯해 기암괴석을 끼고 도는 이 길은 불과 2km가 채 못 되지만 그 운치는 단연 으뜸이다. 외지인보다 현지인이 더 즐겨 찾는 곳인데, 매일 산책을 즐겨도 만나는 바다 빛이 매번 다르다.


“보리 피기 전 굴이 젤이제”
통영 앞바다에서는 하얀 부표가 촘촘히 떠 있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대부분 굴 양식장이다. 전국 굴의 80%가 이곳에서 생산되어 굴의 고장이란 별칭도 있다. 통영에서 먹는 굴은 다른 도시에서 먹는 맛과는 천양지차다. 먹는 방법도 생굴, 굴전, 굴젓, 굴튀김, 굴무침, 굴구이, 굴찜 등으로 다양하다. 그중에서 제일은 굴밥과 굴을 삭힌 통영식 굴젓이다. 산란기에는 독을 뿜어내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R’가 없는 달, 그러니까 5~8월에는 굴을 먹지 말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보리가 피면 굴을 먹지 말라” 했으니 봄에 꼭 맛보아야 할 통영의 봄맛이다.

영빈관 다양하고 깔끔한 굴 요리 전문점으로 이미 맛집으로 입소문 나 있다.
주소 경남 통영시 도남동 198-17(1호점), 198-10(2호점) 문의 055-646-8028, 055-644-8028



평인일주도로, 나만의 섬이 있는 곳
통영 어디를 가든 5분만 지나면 바닷가 풍경이 펼쳐진다. 이 땅은 생판 모르는 외지인도 정 붙일 데가 많은데, 미륵도에서 섬 안쪽 신도심으로 이어지는 평인일주도로를 가다 보면 ‘밤섬’이라 이름 붙인 나만의 섬이 있다. 주변엔 굴 양식장과 작은 바위섬이 있으며, 낙조가 일품이다. 이순신공원은 한산대첩의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한산 바다 전망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산책로를 말끔하게 조성해 평화로운 바다를 벗 삼아 한가로이 거닐기에 제격이다. 


“주당 속은 복국이 달래제”
통영은 이 나라에서 복국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고장으로, 통영 주당들의 아침 해장은 응당 복국이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데 더없이 좋은 보양식이기도 하다. 대부분 크기가 작은 졸복을 취급하며, 밀복이나 참복 등 큰 복어를 다루며 복 이리(고니)까지 맛볼 수 있는 식당은 통영에서도 흔치 않다. 콩나물과 미나리만 넣고 맑게 끓여주는데, 그 살은 쫄깃하고 국물은 시원하다. 해독을 하겠다며 식초를 듬뿍 쳤다가는 오히려 그 맛을 해친다는 걸 명심하자. 복어의 독이 가장 강한 때가 벚꽃 필 즈음으로 영양은 물론 맛도 최고로 좋으니 속을 달래고 몸을 보하는 데 3~4월의 복국만 한 것이 없다.

홍도복어 어머니와 아들이 대를 잇는 복어 요릿집으로 제대로 된 밀복국과 복껍질무침, 복 이리 (고니)까지 맛볼 수 있다.
주소 경남 통영시 미수동 1-8 문의 055-648-3678



미륵산 일출, 바다의 땅이 깨어나는 신비로운 순간
통영에서 가장 높은 미륵산 정상에 오르면 저마다의 감동이 밀려든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통영 5>에서 고백한 정지용 시인의 시구처럼 미륵산에서는 통영 시내와 통영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한려수도가 시작되는 한산도 일대의 풍경이 수려하며, 올망졸망한 섬들로 들어찬 다도해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조선 사발을 엎어놓은 듯 섬들의 부드러운 곡선이 마치 여인네의 옆모습 같기도 해 신비할 따름이다. 통영에서 흔한 것 중 하나가 바다 풍경이지만, 이곳의 바다가 특별한 데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특히 미륵산 일출이 시작되기 40분쯤 전에 여유 있게 정상에 오르면 잠들어 있던 통영과 다도해가 깨어나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한낮에 케이블카를 타고 조망하는 한려수도도 색다르지만, 일출은 땀을 흘려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법정 스님이 출가한 절인 미래사에서 출발하면 산세가 험하지 않아 쉬엄쉬엄 올라도 20~30분이면 충분하지만, 고요를 즐기며 오르기엔 그도 미흡할 것이다. 하산 길에 미래사 근처 치유의 숲이라 불리는 편백나무 숲길에 들러도 좋다. 곧게 쭉쭉 뻗은 편백 숲을 걸으면 움츠러든 정신의 갈기가 곧추서고 피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바다의 봄소식은 멍게가 전하제”
통영에 있으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하고, 방 안에 앉아서도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 여기에는 음식이 한몫한다. 양념을 많이 하지 않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것이 이곳 음식의 특징이다. 그중 멍게는 표면의 우툴두툴한 돌기 때문에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데, 이 바다 꽃이 피어야 봄이 온다. 우리나라 멍게 전체 생산량의 70%가 통영에서 나오는 만큼 통영은 멍게 요리로도 유명하다. 요즘은 사계절 언제라도 즐길 수 있어 1년 제철 식품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역시 찬 바람 불기 시작할 때부터 늦은 봄까지가 제맛이 난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맛과 독특한 향이 입맛을 돋워 즐기는 이도 많고, 또 그래서 싫어하는 이도 많은 것이 멍게지만, 통영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멍게비빔밥이다. 각종 채소와 해초에 다진 멍게를 듬뿍 올리고 김 가루, 참기름,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멍게초무침과 멍게 샐러드도 별미다.

멍게가 멍게수협이 추천하는 멍게 요리 전문점으로 멍게해물뚝배기, 멍게된장찌개, 멍게물회, 멍게까스, 멍게냉면 등 맛깔스러운 멍게요리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첫째 주와 셋째 주 월요일 휴무다.
주소 경남 통영시 항남동 239-42 문의 055-644-7774

진행 신민주 기자 | 사진 민희기 | 어시스트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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