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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명작 굴을 탐닉하다
굴이 제철이다. ‘바다의 우유’라 불릴 정도로 영양이 풍부한 굴은 시대를 불문하고 즐겨 먹는 완전식품으로, 예부터 정물화에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 탐욕을 상징하는 명작 속 굴처럼 풍부한 맛을 그대로 살린 그림 같은 굴 요리가 군침이 돌게 한다.

생굴과 레몬에서 절제의 미학을 엿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굴처럼 오랫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아온 해산물도 드물다. 굴 자체의 맛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생굴일 터. 날음식을 싫어하는 서양에서도 굴만큼은 예외인데, 우리가 생굴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듯이 레몬즙을 뿌려 먹는다. 정물화의 단골 소재인 굴 옆에 대부분 레몬을 같이 그린 것은 신맛을 내는 레몬의 산 성분이 굴의 단백질과 어우러지면서 쫄깃한 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19세기 인상파의 대가 마네가 그린 굴 정물화는 굴의 식감을 잘 표현해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을 보여준다. 레몬에는 ‘절제’라는 뜻도 숨어 있다. _ 에두아르 마네, ‘굴’, 1862

세비체는 남미 전통 음식으로 흰 살 생선을 레몬이나 라임에 절여 먹는 것. 같은 감귤류인 우리나라 귤을 이용해 굴을 절였다.


굴 세비체
재료
굴 8개, 껍질 벗겨 다진 귤 2작은술, 귤 주스 1/3컵, 쌀 식초 3큰술, 홍고추 1개, 다진 셜롯(혹은 적양파) 1큰술, 후춧가루 1/8작은술, 베이비 채소 약간
만들기
1
홍고추는 씨를 빼고 다진 뒤 다진 귤, 다진 셜롯, 귤 주스, 쌀 식초, 후춧가루와 함께 섞는다.
2 굴은 껍데기에서 살만 떼어낸다. 이때 껍데기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다.
3 ②의 굴을 ①에 넣고 8시간 이상 재운다.
4 ③에서 굴만 굴 껍데기에 다시 담고 베이비 채소를 약간 올린 뒤 소스를 뿌린다. 


굴, 음식 회화의 주인공이 되다
음식 회화의 시작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시기의 그림에 소재로 사용한 식재료가 예술사의 메뉴를 결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 베이에런의 ‘굴과 정물’에 등장한 굴과 과일, 포도, 빵 등은 수세기 동안 정물화의 표준이 된 식품들이다. 마치 연회장의 식탁에 오르되브르hors-d’oeuvre, 즉 전채 요리로 놓인 굴 요리를 보는 듯한데, 먹는 이뿐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도 감각을 자극하고 식욕을 불러일으키니 진정한 힐링 음식이라 할 수 있다. _ 아브라함 판 베이에런, ‘굴과 정물’, 1660년경

우리의 굴미역국을 모티프로 해 접시 위에 서양식 담음새로 표현했다. 굴은 살짝 데쳐 미역 퓌레를 올렸는데, 느끼한 맛을 줄이기 위해 토마토를 넣었다.


미역 퓌레와 굴
재료
굴 3개, 토마토 1개, 잣 70g, 미역 40g, 타바스코 소스 10ml, 레몬즙・소금・후춧가루 약간씩 가니시 처빌・칼라마타 올리브・블랙 올리브 적당량
만들기
1
토마토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껍질을 벗겨 다진다. 잣은 마른 팬을 불에 올려 살짝 굽고, 미역은 물에 불린다.
2 다진 토마토와 구운 잣, 불린 미역, 타바스코 소스, 레몬즙을 믹서에 넣고 곱게 간 다음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다.
3 레드 와인 식초에 매리네이드되어 풍미가 뛰어나고 쫄깃한 과육 맛이 일품인 칼라마타 올리브와 블랙 올리브는 얇게 썬다. 처빌은 물에 씻어 물기를 뺀다.
4 굴은 껍데기째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앞쪽에 얇게 썬 올리브를 놓는다. 그 위에 ②의 미역 퓌레와 처빌을 순서대로 올린다.



늦가을의 산물로 풍요로운 식탁을 차리다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활동한 플랑드르 화가 오시아스 베르트는 굴 정물화를 자주 그렸다. ‘굴이 있는 정물’에서 먹음직스러운 상차림을 선보였는데, 늦가을부터 겨울이 제철인 굴과 함께 군밤, 올리브, 버섯 등을 은식기에 푸짐하게 담았고, 식탁 가운데는 다디단 음식을 잔뜩 담은 디저트 스탠드가 센터피스처럼 자리하고 있다. 빵도 초라한 검은 빵이 아니라 우아한 흰 빵으로 부유한 집안의 식탁 풍경이다. 당시 굴과 레몬으로
건강에 유익한 불포화지방산과 다양한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는 특권은 일부 상류층에서만 누린 것. _ 오시아스 베르트, ‘굴이 있는 정물’, 1610

레몬즙을 뿌려 먹는 것만큼 간단하게 굴을 즐길 수 있는 요리로 래디시 피클과 굴을 함께 먹는다. 래디시 피클의 아삭한 식감과 굴의 부드러운 식감이 잘 어울린다. 구운 가지에 올려 독특한 담음새로 연출했다.


래디시 피클과 굴
재료
굴 3개, 가지 1/2개, 래디시 1개, 피클 물 30ml
만들기
1
가지는 색깔 나게 굽는다.
2 굴은 껍데기에서 분리하고, 래디시는 0.3cm 두께로 썰어 피클 물에 1시간 이상 재운다.
3 ①의 가지 위에 래디시, 굴 순으로 올린다.



굴,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되다
서양인의 굴 사랑은 유별나다.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가 한 번에 1천4백44개의 굴을 먹었다는 유명한 일화나, 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독일의 명재상 비스마르크도 굴을 1백75개나 한자리에서 먹어치워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굴을 즐겼는가 하면, 매일 50개씩 먹고 연인과 뜨거운 밤을 보냈다는 카사노바의 정력제도 굴이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굴을 즐겨 먹은 이유는 무엇보다 스태미나 음식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최음제로 좋다는 속설은 음식 정물화가 인기를 끌던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회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표 작품이 얀 스텐의 ‘굴 먹는 소녀’다.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활동한 풍속화가 얀 스텐은 사람들의 심리 묘사에 특히 뛰어난 인물로, 이 그림에서 굴은 성욕을 돋우는 자연 강장제이다. 그뿐인가. 굴은 피부를 희고 곱게 만들어주어 클레오파트라도 즐겨 먹었는데, 비타민 A와 멜라닌 색소를 분해하는 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하얗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_ 얀 스텐, ‘굴 먹는 소녀’, 1958~1960

굴과 오이의 시원한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메뉴로, 오이 소스에 플레인 요구르트를 첨가해 부드러운 맛을 더했다.


오이 소스와 굴
재료
굴 3개, 오이・플레인 요구르트 1개씩, 레몬주스 1큰술, 적양파 1/6개, 껍질 벗겨 다진 토마토 약간, 굵은소금 적당량
만들기
1
오이는 굵은소금으로 겉을 문지른 뒤 흐르는 물에 씻고 물기를 턴 다음 4등분해 씨를 제거한다. 가니시로 사용할 오이를 약간 남겨 다지고, 나머지는 적당한 크기로 썬다.
2 믹서에 오이, 플레인 요구르트, 레몬주스를 넣고 곱게 간다.
3 접시 위에 굵은소금을 쌓고 그 위에 굴을 껍데기째 올린다.
4 굴에 ②의 소스를 적당량 뿌린 후, 다진 적양파를 올린다. 접시에 다진 오이와 토마토를 모양 나게 담아 가니시로 쓴다.



눈앞에 겨울의 별미, 굴 상을 차리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음식 회화에도 변화가 있었다. 굴의 성적 이미지가 사라지고 음식을 상세히 묘사한 것.
앙리 마티스가 71세의 황혼기에 그린 ‘굴이 있는 정물’이 대표적으로,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담은 굴이 식욕을 돋운다. 마티스에게도 굴은 겨울에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별미였던 듯. _ 앙리 마티스, ‘굴이 있는 정물’, 1940

계절의 풍미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메뉴로, 굴과 간장에 조린 표고버섯의 궁합이 가히 환상적이다. 표고버섯을 4등분해 조리면 간이 잘 배어 더욱 맛있다.


간장에 조린 표고버섯과 굴
재료
굴 7개, 표고버섯 3개, 꿀 120ml, 간장 30ml, 물 60ml
만들기
1
꿀, 간장, 물을 섞어서 팬에 담고 불에 올려 양이 반 정도 줄 때까지 은근한 불에서 조린다.
2 ①에 표고버섯을 깨끗이 씻어 넣고 버섯에 소스가 잘 묻도록 숟가락으로 끼얹으면서 조린다.
3 굴은 껍데기째 끓는 물에 데친 후 찬물에 씻는다.
4 굴 위에 ②의 소스를 뿌리고, 접시에 버섯과 함께 보기 좋게 담는다.



신선한 굴로 삶의 애착을 그리다
마티스는 굴 정물화를 완성할 때까지 수시로 방금 껍질을 깐 싱싱한 생굴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가 그림을 통해 자세하게 묘사하고자 한 것은 생굴의 모양이 아니라 입맛을 다시게 하는 생굴의 싱싱함이었던 것. 굴에는 글리코겐과 아연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데 글리코겐은 에너지의 원천으로, 아연은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굴은 비타민, 철분, 칼슘, 타우린, 아미노산 등을 함유해 ‘바다의 우유’라고도 불리는 완전식품이다. _ 앙리 마티스, ‘튤립과 굴이 있는 정물’, 1943

튀김옷을 입혀 튀긴 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미식으로 인기. 토마토 리소토는 굴 크로켓과 함께
즐기면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된다.


허브 크럼블을 올린 굴
재료
굴 1개, 바질 페스토 15ml, 빵가루 50g,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믹서에 빵가루와 바질 페스토를 함께 넣고 곱게 간 후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다.
2 굴은 끓는 물에 데친 후 찬물에 씻고 물기를 제거한다.
3 굴 위에 ①의 허브 크럼블을 올린다.



레몬 대신 소스를 캔버스로 불러들이다
오늘날에도 굴은 음식 회화의 단골 메뉴다. 다만 늘 함께 자리하던 레몬 대신 ‘타바스코 소스가 있는 굴 정물’에서 볼 수 있듯 토마토케첩, 레몬주스, 우스터소스 등 다양한 소스가 등장하기도 하고, 먹는 방법도 한층 다양해진 것. 굴을 먹기 시작한 것은 동서양 모두 역사가 깊은데, 유럽에서는 기원전 95년경 로마인 세르주스 오라타가 고안해 굴 양식을 시작한 기록이 있고, 동양에서는 420년경 송나라 시대에 대나무에 끼워서 굴 양식을 했다고 한다. 다른 해산물과 달리 굴은 양식을 해도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양식으로만 나오는 큼직한 굴은 생굴로 먹기에 더 적합하다. _ 크리스틴 카이너, ‘타바스코 소스가 있는 굴 정물’, 2008

바질 페스토가 들어간 허브 크럼블을 굴에 올린 후 매콤한 타바스코 소스를 뿌려 먹으면 별미다. 고기나 채소에 올려 먹어도 맛있다.


굴 크로켓과 토마토 리소토
재료
굴 크로켓 굴 7개, 맥주 350ml, 튀김가루 100g, 식용유 적당량 토마토 리소토 쌀 250g, 채소 국물 400ml. 토마토소스 125ml, 올리브유・버터 30ml씩, 다진 오징어 몸통・다진 새우 50g씩, 화이트 와인 20ml, 다진 양파 25g, 다진 마늘 10g, 파르메산 치즈 50m 소스 생크림 100ml, 고르곤졸라 치즈 20g
만들기
1
굴은 껍데기에서 떼어내 맥주와 튀김가루를 잘 섞은 튀김옷을 입힌다. 달군 식용유에 노릇하게 튀긴다.
2 프라이팬을 달군 후 올리브유를 넣고 다진 마늘과 다진 양파를 넣어 볶아 향을 낸다.
3 ②에 다진 오징어와 다진 새우를 넣고 볶다가 화이트 와인으로 플람베(불에 술을 끼얹어 강한 불길로 음식의 비린 맛을 제거하는 조리법)를 한다.
4 ③에 쌀을 넣고 투명해질 때까지 볶다가 채소 국물을 붓고 끓인다. 국물이 줄어들면 잘 저으면서 쌀을 익힌다.
5 ④의 국물이 거의 없어지면 토마토소스를 넣고 잘 젓는다. 이때 쌀이 익는 정도에 따라 채소 국물을 더 첨가해도 좋다.
6 ⑤에 파르메산 치즈와 버터를 넣고 고루 섞어 접시에 담는다.
7 프라이팬에 생크림, 고르곤졸라 치즈를 넣고 약한 불에서 물엿 정도의 농도로 졸인다.
8 ⑤의 리소토 위에 ①의 굴 크로켓을 올리고, 주위에 ⑦의 소스를 뿌린다.


1 얀 스텐, ‘굴 먹는 소녀’, 1958~1960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도로, 장소는 중국식 도자기, 은 식기, 백포도주가 담긴 술잔이 놓인 식탁이 있는 방 안. 굴 하나를 들고 소금을 뿌리고 있는 여인의 섬세한 손짓과 입가의 야릇한 미소가 굴이 최음제라는 것을 암시한다. 여인의 붉은 옷차림은 정욕을 의미한다.

2 앙리 마티스, ‘굴이 있는 정물’, 1940
원색의 강렬함에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단순하고 경쾌한 색감 덕에 굴이 더욱 맛있어 보여 입맛을 다시게 한다. 이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장암 수술을 받은 마티스가 삶에 대해 보이는 애착이 느껴진다.

3 에두아르 마네 , ‘굴’, 1862
굴의 식감을 가장 잘 표현한 굴 정물화. 차분한 분위기의 이 작품에서는 특별한 포크와 그릇이 묘사되어 더욱
기품 있다. 이 소재들은 부부 사이의 성을 나타내는데, 실제로 마네는 연인을 위해 성적 암시를 담은 굴 그림을 그렸다고.

4 오시아스 베르트, ‘굴이 있는 정물’, 1610
17세기 정물화 대부분의 사물 배치는 자유분방하다. 식탁 위에는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도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다.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이 없는 자유로운 식사로 격의 없이 풍요로운 식사를 표현한 것.

5 아브라함 판 베이에런, ‘굴과 정물’, 1660년경
정물의 구도를 피라미드식으로 잡아 안정감 있는 연회 정물로, 색색의 싱싱한 과일과 해산물 등을 고급스러운 은 접시에 놓아 화려하고 풍요로운 것이 특징이다.

6 크리스틴 카이너, ‘타바스코 소스가 있는 굴 정물’, 2008
빨간 타바스코 소스와 대비되는 그린&화이트가 믹스된 스트라이프 매트에 생굴을 먹음직스럽게 올려 식욕을
자극한다. 현대의 미식을 단순하고 극명하게 그린 작품.

7 앙리 마티스, ‘튤립과 굴이 있는 정물’, 1943
굴이 담긴 접시, 컵, 화병 등의 눈높이를 서로 다르게 표현했다. 입체파의 영향 때문으로, 평면화된 화면에 현란한 원색 색감과 정물들의 자연스러운 구성이 돋보인다.


요리 안재훈(그로브라운지 셰프, 02-6020-5577) 스타일링 강혜림, 김지나 그림 제작 최고은 소품 협조 앤틱반(02-512-1343), 옹뜨(02-3789-4869) 참고 도서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맛, 예술로 버무리다

진행 신민주 기자 | 사진 김정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