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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철든 부엌 밀이 익어드는 여름의 밥상
들녘이 보리와 밀로 황금빛을 이루면 어느새 6월 망종芒種이 코앞에 있습니다. 옛날에는 쌀이 귀해지는 이맘때 햇밀이 나오면 수제비며 칼국수 등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별미로 즐겼지요. 어느 집이고 영락없는, 여름이 드는 밥상의 풍경이었답니다.


낮이 점점 길어지는 6월이면 시골은 농사일로 손 놀릴 새가 없이 바쁘다. 장마가 오기 전에 보리와 밀을 베고 밭마다 김을 매야 하기 때문이다. 농사일은 망종에서 하지까지가 고비라고 하지 않는가. 지난가을 수확한 곡식이 바닥나 그 옛날 보릿고개라 부르며 힘겹게 넘기던 시기도 이때면 막바지에 이른다. 가난하던 밥상은 보리와 밀의 수확으로 다시금 풍성해지곤 했다. 어릴 적, 농사지은 밀을 베고 도리깨로 떨어 바람에 말리면 엄마는 돌을 골라낸 뒤 방앗간에 가서 곱게 가루로 빻아 오곤 하셨다. 밀가루는 쌀이 귀해지는 이때에 요긴한 식량이었다. 이렇게 만든 밀가루는 요즘 사서 먹는 것보다 쫄깃함이 덜했지만, 뚝뚝 끊기고 텁텁하던 그 맛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 비 오는 날이면 단골 메뉴이던, 멸치를 우린 국물에 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수제비나 김치를 넣은 국수도 간절해진다. 여름철 복날에 백숙을 해 먹은 후에는 어김없이 닭 육수에 칼국수를 넣어 먹었다. 그 시절의 닭한마리칼국수였던 셈이다. 수제비와 칼국수는 주말 점심에 별미로도 즐겼는데, 통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법이 없으시던 부모님이 실랑이를 벌이던 때가 엉뚱하게도 그때였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칼국수를 고집하셨고, 엄마는 손이 덜 가는 수제비를 만들고자 하셨다. 밀가루에 식용유, 소금, 물을 넣어 반죽한 후 숙성시키는 동안 메뉴는 정해지곤 했다.

간혹 할머니가 수제비 반죽을 하실 때면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기도 했다. 그러면 고소한 맛이 더해졌다. 가끔은 나도 부뚜막에 올라앉아 할머니가 쥐여주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멸치 국물에 떼어 넣으며 수제비 만드는 것을 도왔다. 아궁이에서 연기가 올라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말랑말랑한 반죽을 떼어내는 재미에 매운 눈을 비비며 할머니를 돕곤 했다. 햇감자가 제철이라 수제비에는 빠지지 않고 들어갔는데, 칼로 예쁘게 껍질을 깎아 모양을 내 썰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할머니는 주둥이 부분이 닳아서 사선이 된 놋수저로 껍질을 벗겨내라고 성화셨다. 칼로 벗기면 감자의 살이 많이 깎인다는 것이 이유였다.물론 할머니 말씀대로 놋수저로 물에 불린 감자를 살살 긁으면 껍질이 쉬이 벗겨졌다. 감자는 밭에서 캐온 것이지만, 부엌 뒷문을 열고 나가면 나오는 뒤꼍에는 엄마의 조그마한 텃밭이 있었다. 거기에는 여름철 밥상에 늘 오르던 열무와 오이, 고추가 곱게 자라나 있곤 했다. 엄마는 상차림이 얼추 끝나면 늘 뒤꼍에서 약 오른 매운 고추를 따다가 송송 썰어 종지에 담아 밥상에 올리셨는데, 얼큰한 음식을 즐기시던 아버지를 위한 엄마의 배려였다. 특히 수제비나 칼국수에 넣으면 칼칼한 맛이 더해져 그 맛이 일품이었다.

식구들이 워낙 국수를 좋아해 소면도 부엌 찬장에 늘 있었다. 두 손으로 둘러도 모자랄 만큼 양이 넉넉한 국수 다발을 바라만 봐도 군침이 돌던 기억이 또렷하다. 특히 나는 새콤달콤한 비빔국수를 좋아했는데, 소면을 삶고 고추장 양념을 만들어 햇양파나 오이만 넣고 비벼도 맛이 좋았다. 햇볕이 뜨거워 입맛이 까칠한 때에는 신 김치나 열무김치를 넣은 비빔국수도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었다. 국수는 별미로도 좋지만, 일일이 반찬을 만들 필요가 없어 여름철 뜨거운 기운에 지친 엄마의 일손을 덜어주는 기특한 음식이기도 했다. 그 옛날 우리 어머니가 그러했듯 불 앞에 서기 고단한 하루, 국수 한 그릇으로 입맛을 돋우는 것도 좋겠다.

수제비
재료(4인분)
껍질 벗긴 감자 200g, 애호박 100g
반죽 밀가루 350g, 식용유 1큰술, 소금 약간, 물 1컵 정도
멸치 국물 멸치 30g, 다시마 10cm, 물 15컵, 국간장·소금 약간씩
양념간장 국간장·다진 고추 2큰술씩, 잘게 썬 양파 1큰술, 후춧가루 약간
만들기 1 밀가루에 식용유, 소금을 넣고 손으로 싹싹 비빈 다음 물을 붓고 반죽한다. 한참 치대어 표면이 매끈해지면 비닐백에 담아 냉장고에서 1시간쯤 숙성시킨다.
2 멸치는 내장을 빼고 머리를 떼어내고, 다시마는 젖은 면포로 닦는다.
3 냄비에 멸치와 다시마를 담고 물을 부어서 불에 올린다. 막 끓으려고 할 때 다시마만 건져내고 팔팔 끓인다.
4 ③의 국물을 면포에 밭쳐 이물질을 걷어내고 국간장과 소금으로 약하게 간을 맞춘 뒤 다시 냄비에 붓고 감자를 썰어 넣고 끓인다.
5 ④의 국물이 끓으면 ①의 수제비 반죽을 얇게 떼어 넣으며 가끔 휘휘 젓는다. 수제비를 다 떼어 넣으면 애호박을 반달 모양으로 썰어 넣는다. 수제비가 둥둥 떠오르면 다 익은 것. 분량의 재료로 만든 양념간장을 곁들여 각자 간을 맞춰 먹는다.

감자전
재료(2장분)
껍질 벗긴 감자 400g, 소금 약간, 식용유 적당량
만들기 1 껍질 벗긴 감자는 강판에 갈아 체에 밭친 뒤 살짝 눌러서 국물을 짠다. 이 국물은 가만두어 앙금을 가라앉힌 다음 물만 따라 버린다.
2 볼에 ①의 감자 간 것과 앙금을 담고 소금을 약간 넣어 반죽을 만든다.
3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반죽을 반으로 나눠 노릇하게 지진다.



콩국수
재료(4인분)
소면 400g, 서리태 1컵, 잣 2큰술, 물 4컵, 오이 4cm 길이 1토막, 방울 토마토 2개, 꽃소금 1큰술
만들기 1 콩은 물에 담가 6시간 정도 불리고, 오이는 채 썬다.
2 ①의 불린 콩은 냄비에 넣는다. 콩이 잠길 정도로 물(분량 외)을 붓고 뚜껑을 덮어 삶는다. 우르르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그대로 2분 정도 두었다가 소쿠리에 쏟아 찬물에 헹군 다음, 볼에 담고 바락바락 주물러서 껍질을 벗긴다. 다시 물(분량 외)을 부어 껍질을 흘려보내고 또 주무른 후 헹구기를 반복해 껍질을 깨끗하게 벗긴다.
3 믹서에 ②의 콩과 잣, 물 2컵을 붓고 곱게 간다. 이것을 젖은 면포를 깐 체에 부은 후 물 2컵을 부어서 밭친 다음 면포째 꼭 짜 콩국물을 낸다.
4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불에 올려 물이 끓으면 소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풀어준 다음, 한소끔 끓어오르면 찬물을 1컵 붓는다. 다시 끓어오르면 찬물 1컵을 붓고, 다시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소쿠리에 쏟아서 흐르는 물에 헹군 다음 물기를 뺀다.
5 사리를 지어 물기를 뺀 소면을 담고 콩국물을 부은 후 ①의 오이와 반으로 썬 방울토마토를 고명으로 올린다. 꽃소금은 따로 곁들인다.

고추장비빔국수
재료(4인분)
소면 400g, 오이 150g, 양파 100g, 참기름·통깨 1큰술씩
고추장 양념장 고추장 5~6큰술, 식초 3큰술, 설탕 11/2큰술
만들기 1 오이와 양파는 곱게 채 썬다. 이때 양파는 물에 한 번 씻어 건진 뒤 물기를 완전히 빼 매운맛을 던다.
2 볼에 분량의 재료를 모두 넣고 섞어 고추장 양념장을 만든다.
3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불에 올려 물이 끓으면 소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풀어준 다음, 한소끔 끓어오르면 찬물을 1컵 붓는다. 다시 끓어오르면 찬물 1컵을 붓고, 다시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소쿠리에 쏟아서 흐르는 물에 헹군 다음 물기를 뺀다.
4 국수에 참기름을 넣고 버무린 다음 ②의 고추장 양념장을 넣고 무친다. ①의 채소와 통깨를 넣고 한 번 더 고루 무친다.



골동면(비빔국수)
재료(4인분)
소면 350g, 쇠고기 200g, 오이·숙주 100g씩, 미나리·표고버섯 60g씩, 국간장·통깨 1큰술씩, 달걀지단·소금·참기름·식용유 적당량
양념장 진간장 11/2큰술, 설탕 1/2큰술, 다진 파 2작은술, 다진 마늘·참기름 1작은술씩, 후춧가루 약간
만들기 1 쇠고기는 곱게 채 썬다. 오이는 4cm 길이로 토막 내 돌려 깎은 후 채 썬다. 여기에 소금을 약간 뿌려서 10분 정도 절였다가 물기를 살짝 짜낸다. 숙주는 머리와 꼬리를 떼고 씻은 후 냄비에 담고 물을 약간 부어서 뚜껑을 덮어 삶은 다음 체에 쏟아서 식힌다. 미나리는 잎을 다듬어 4cm 길이로 썰어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친 다음 찬물에 헹궈 물기를 걷는다. 표고버섯은 채 썰고, 달걀지단도 4cm 길이로 채 썬다.
2 볼에 분량의 재료를 모두 넣고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 기름을 약간 두른 팬에 오이를 넣고 센 불에서 재빨리 볶은 후 식힌다.
4 볼에 쇠고기와 버섯을 넣고 양념장으로 버무린 다음 팬에 볶아 식힌다.
5 숙주와 미나리에 소금과 참기름을 약간씩 넣고 무친다.
6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불에 올려 물이 끓으면 소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풀어준 다음, 한소끔 끓어오르면 찬물을 1컵 붓는다. 다시 끓어오르면 찬물 1컵을 붓고, 다시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소쿠리에 쏟아서 흐르는 물에 헹군 다음 물기를 뺀다.
7 국수를 큰 볼에 담고 참기름과 국간장을 1큰술씩 넣고 섞은 다음, ④와 ⑤의 재료와 통깨를 넣고 섞는다. 싱거우면 소금으로 간한 다음 그릇에 담고 ③의 오이와 달걀지단을 고명으로 얹는다.

칼국수
재료(4인분)
양파·애호박 1/2개씩, 국간장 2큰술, 다진 고추 1개분, 소금 약간
반죽 밀가루 중력분 4컵(400g), 소금 2/3작은술, 식용유 2큰술, 찬물 1컵 정도
닭 육수 닭 1마리, 양파 1/2개, 대파 잎 1대분, 통후추 1/2작은술, 물 20컵
닭고기 양념 국간장 1작은술, 다진 마늘·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밀가루에 소금과 식용유를 넣어서 손으로 싹싹 비빈 다음 물을 붓고 반죽해 덩어리가 되면 비닐백에 담아 하루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시킨다. 이렇게 하면 식감이 쫄깃해진다.
2 닭은 꽁지를 잘라내고 깨끗이 씻은 뒤 엎어놓아 물기를 뺀다. 냄비에 닭과 물, 양파, 대파 잎, 통후추를 넣고 불에 올린다. 끓어오르면 거품을 걷고 불을 약간 줄여서 2시간 정도 더 끓인다.
3 ②에서 닭은 건져 껍질을 벗겨내고 가늘게 찢어 분량의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국물은 젖은 면포에 밭는다.
4 양파와 애호박은 손질한 후 채 썬다. 애호박은 소금을 약간 뿌려서 절였다가 물기를 짠 뒤 볶아 쏟아놓고, 양파도 볶아 소금 간을 약간 한다.
5 ①의 반죽을 다시 치대어 매끈하게 만든 뒤, 반으로 잘라 동글납작하게 빚는다. 밀가루를 뿌린 도마나 평평한 쟁반에 반죽을 올린 후 다시 밀가루를 뿌려서 밀대로 최대한 얇게 민다. 다시 밀가루를 뿌리고 접어서 3~5mm 폭으로 썰어 훌훌 털어서 편다.
6 냄비에 ②의 닭 육수 12컵을 붓고 끓인다. 팔팔 끓으면 ⑤의 칼국수에 묻은 밀가루를 다시 한 번 훌훌 턴 다음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들러붙지 않게 끓인 다음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한다.
7 그릇에 ⑥의 칼국수를 담고 ③의 닭고기와 ④의 볶은 채소를 얹는다. 얼큰한 맛으로 즐기려면 다진 고추를 종지에 담아 곁들여 낸다.

때에 맞춘 음식으로 엄마의 손맛이 더해진 한식의 맛과 멋을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한 ‘노영희의 철든 부엌’ 연재를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아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세요. 더욱 차지고 살가운 요리와 음식 이야기를 <행복> 요리 칼럼에서 만날 수 있을 거랍니다.

 

요리 노영희(스튜디오 푸디)

구술 정리 신민주 기자 | 사진 김용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