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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철든 부엌 이른 봄기운에 일어선 햇나물
입춘立春은 새해의 첫 번째 절기로 봄이 들어서는 때지요. 아직 한겨울이건만 이날이 지나면 꽁꽁 언 땅도 스멀스멀 녹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절기인 우수雨水를 맞아 봄비가 오고 나면 날씨도 풀리고 봄싹이 고개를 내밉니다. 겨우내 언 땅에서 돋아난 냉이며 쑥이며 햇나물이 밥상 위에 오르기 시작하지요. 찬 기운을 견디며 자라난 쌉싸래한 햇나물은 보약이나 다름없답니다.


입춘을 맞아 집집마다 대문이나 기둥에 한 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써 붙이면 봄이 머지않다. 봄비가 내리는 우수도 지나면 봄이 성큼 코앞에 닿아 있다. 지금도 이 즈음이 되면 봄처녀처럼 마음이 설레지만, 어릴 때는 몸이 근질근질거려 신발을 제대로 꿰어 신을 새도 없이 동무들과 들에 나가 햇나물을 캐곤 했다. 그 와중에도 녹슬어 무뎌진 찬칼과 어른들이 씨 뿌릴때 쓰던 짚으로 엮은 작은 바구니인 종댕이(‘종다래끼’의 경기도 방언)만큼은 꼭 챙겼다. 신이 나서 뛰쳐나가는 내 뒤꽁무니에는 늘 엄마의 잔소리가 따랐다. 꽁꽁 언 땅이 이제 막 녹기 시작할 때라 바짓가랑이에 흙을 묻혀온다고 질색하셨던 것.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에도 아랑곳없이 햇나물을 뜯다 보면 겨우내 집 안에만 틀어 박혀 있느라 답답하던 마음이 봄 햇살에 잔설 녹듯 스르르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때 먹을 수 있는 나물은 산보다 들이 먼저다. 가장 흔한 것은 쑥. 간간이 냉이도 있었다. 칼로 밑동을 싹둑 자른 쑥은 뿌리째 남겨두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 날씨가 좀 더 풀릴 즈음 말 그대로 쑥밭이 되곤 했다. 냉이는 호미로 땅을 파 뿌리째 캐는데, 종댕이에 햇나물이 차오르면 신이 나 희열마저 느꼈다. 묘한 경쟁심이 발동해 동무의 것보다 양이 많아 보이게 하려고 손으로 슬슬 부풀리기도 했을 정도다. 이렇게 한 바구니를 가득 채운 쑥과 냉이는 할머니와 엄마 손에서 다듬어져 국으로 반찬으로 간식으로 금세 밥상위에 올랐다. 특히 된장국을 즐겼는데, 그 맛과 향이 가히 예술이었다. 된장을 풀어 넣고 화로에서 보글보글 끓이는 햇나물된장국 하나만으로도 봄 향기가 온 집 안에 가득 퍼졌다. 어린 햇나물이라 오래 푹 끓이면 맛이 없으므로 살짝 끓여 신선한 맛에 먹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 우리 집에서는 쑥이며 냉이를 생으로 넣었지만 콩가루를 살짝 버무려 넣기도 했다. 그러면 국물은 콩가루 때문에 살짝 탁해지지만 고소한 맛이 한층 깊었다.

냉이는 흔하지 않았지만, 쑥은 생명력 강하기로 으뜸인지라 밥상을 온통 쑥 천지로 만들기도 했다. 특히 할머니는 초봄이면 쑥버무리를 자주 만들어주셨다. 멥쌀가루에 연한 쑥을 섞어 시루에 찌기만 하면 되는 쑥버무리는 조리법이 아주 간단해 주전부리로는 그만이었다. 정월이 지나고 설도 쇠고 나면 엿이며 인절미도 바닥이 나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던 그 시절에는 일용할 양식이 따로 없었다. 생김새가 투박하지만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인 쑥개떡도 종종 해주셨다. 가마솥에 넣어두어 밥알이 붙어 있기도 한 쑥개떡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하지만 보기 좋으면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법. 요즘은 다식 틀에 찍어내 예쁘게 쑥개떡을 만들어 손님 상에도 낸다. 모양이 남다르고 먹기도 편해 오미자차 등을 곁들여 찻상에 내기 그만인 것. 반면, 쑥굴리는 워낙에 격식을 차려야 하는 상에 올리는 쑥떡이다. 찹쌀가루에 삶아 다진 쑥을 넣어 친 떡을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끓는 물에 삶아내어 녹두 고물을 묻힌 떡으로, 병아리처럼 노르스름한 고물 색감이 마치 봄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쑥과 냉이뿐만 아니라 햇나물은 해 먹을 것이 참 많다. 특히 캐서 바로 양념만 더해 무쳐 먹으면 입맛을 돌게 하는 데는 단연 최고다. 하지만 양념을 초고추장 일색으로 무치기보다는 드레싱을 더하면 샐러드로도 즐길 수 있다. 유자간장드레싱만 더해도 향긋한 향을 즐길 수 있는 것. 재작년에는 한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냉이를 넉넉하게 섞어 지은 밥이 나왔다. 파릇파릇한 색이 잘 살아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았다. 여기에 달래간장으로 입맛을 돋우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봄에는 꼭 해 먹어볼 참이다. 이른 봄나물에는 다른 계절에 나는 채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생명력이 담겨 있다. 비타민이 골고루 들어 있고 무기질도 풍부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 기운을 돋우고 입맛을 되살려주니 햇나물로 차린 밥상은 보약이요 명약이나 다름없다.

냉이콩가루버무리된장국
재료(4인분)
냉이·모시조개 200g씩, 날콩가루 4큰술, 물 4컵, 된장 2큰술
만들기 1 떡잎을 떼어낸 냉이는 잔뿌리를 칼날로 훑어 씻는다.
2 물에 조개를 넣고 우르르 끓이다가 입이 벌어지면 조개를 건져내고, 국물은 젖은 면포에 밭는다.
3 ②의 국물에 된장을 풀어 넣고 끓이다가 ①의 냉이에 날콩가루를 골고루 묻혀 넣고 한소끔 끓인다.

쑥개떡
재료
(25개 정도) 멥쌀가루(소금 간한 것) 2컵, 쑥 110g, 참기름 약간, 물 적당량, 소금 약간 시럽 물 3큰술, 설탕 11/2큰술
만들기 1 쑥은 떡잎을 떼어내고 줄기 끝을 잘라 흐르는 물에 씻는다.
2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①의 쑥을 넣어 데친 다음 찬물에 헹궈 물기를 꼭 짜 칼로 다지거나 커터에 넣고 간다.
3 소금으로 간한 멥쌀가루에 ②의 다진 쑥을 넣고 손으로 비벼 섞는다.
4 냄비에 물과 설탕을 넣고 끓여서 시럽을 만든다. ③에 끓는 시럽을 붓고 섞은 다음 오래도록 치대 말랑하고 매끈하게 반죽한다.
5 찜통을 얹을 냄비(찜기)에 물을 부어 불에 올린다.
6 찜통에는 젖은 면포를 깔고 ④의 반죽을 15등분해 동그랗게 만든 뒤, 랩을 깔아 반죽을 몇 개씩 서로 붙지 않을 정도의 간격으로 놓은 다음 다시 랩을 씌우고 떡살로 찍는다.
7 ⑤의 끓는 찜기 위에 ⑥의 찜통을 얹어 25분 정도 찐 다음, 한 김 식힌 뒤 양손에 참기름을 발라 떡을 한 개씩 비벼서 담는다.

쑥굴리
재료
(30개 정도) 찹쌀가루 2컵, 꿀 3큰술, 끓는 물 1~2큰술, 쑥 데쳐서 물기 짠 것 100g, 녹두 고물 적당량, 꿀(그릇에 바를 용도) 약간
녹두소 녹두 고물 1/2컵, 유자청·굵게 다진 잣 1큰술씩, 다진 대추 2개분
만들기 1 볼에 찹쌀가루와 꿀을 넣고 고루 섞은 다음 데쳐서 물기를 꼭 짠 쑥을 다져 넣고 섞는다. 여기에 끓는 물을 부어 익반죽해 둥글납작하게 반대기를 만든다.
2 찜통에 젖은 면포를 깔고 ①을 올려 25~30분 정도 찐다.
3 볼에 녹두소 분량의 재료를 모두 넣고 잘 섞는다.
4 ②를 볼에 담고 방망이로 꽈리가 일도록 치댄다.
5 손에 꿀을 바르고 ④의 떡을 떼어 녹두소를 적당량 넣고 아물린 다음 녹두 고물을 고루 묻힌다.
녹두 고물 녹두(2컵)는 거피한 것으로 준비해 물에 담가 4~6시간 불린다. 바락바락 주물러서 껍질을 벗긴 후 물을 따라내면서 껍질을 흘려보낸다. 다시 물을 받아 위에 떠오르는 껍질은 버리고 녹두를 바락바락 주물러 껍질을 벗긴 후 물을 따라내면서 껍질을 흘려보내기를 여러 번 반복해 껍질을 말끔하게 벗긴다. 소쿠리에 밭쳐 물기를 쪽 뺀 후 젖은 면포를 깐 찜통에 담는다. 김이 오른 찜기에 찜통을 올려 30분 정도 찐다. 손으로 쉽게 으깨지면 뜨거울 때 굵은체에 내리거나 커터에 갈아서 체에 내린다. 이것을 설탕(4큰술)과 고운 소금(1작은술)을 넣고 팬에 슬쩍 볶아 다시 한 번 체에 내려 식힌다.


봄동무침
재료
(4인분) 봄동 150g, 더덕 50g, 달래 40g
무침 양념 식초 11/2큰술, 고춧가루 1큰술, 참기름 2작은술, 설탕 11/2작은술, 통깨 1작은술, 고운 소금 2/3작은술
만들기 1 봄동은 밑동을 잘라내고 한 잎씩 떼어내 흐르는 물에 씻은 뒤 어슷하게 썬다. 더덕은 껍질을 벗기고 손으로 반 쪼개 젖은 면포 사이에 넣고 밀대로 민 다음 가늘게 찢는다. 달래는 뿌리 쪽 껍질을 벗기고 씻어 물기를 뺀 뒤 4cm 길이로 썬다.
2 볼에 분량의 양념 재료를 모두 넣어 섞는다.
3 볼에 ①의 채소를 한데 넣고 ②의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유자간장드레싱 돌나물샐러드
재료
쇠고기 얇게 썬 것·돌나물 150g씩, 달래 50g, 소금·후춧가루·참기름 약간씩
유자간장드레싱 다진 양파 30g, 진간장·식초 2큰술씩, 유자차·참기름·물 1큰술씩, 설탕 1/2큰술, 굵은 후춧가루 약간
만들기 1 쇠고기는 소금, 후춧가루, 참기름으로 무쳐 달군 팬에 굽는다.
2 돌나물은 깨끗이 다듬어 씻고 물기를 뺀다. 달래는 동그란 알뿌리를 깨끗이 다듬어 씻어 물기를 빼고 3cm 길이로 썬다.
3 볼에 분량의 유자간장드레싱 재료를 모두 넣고 섞는다.
4 접시에 ①을 담고 ②의 돌나물과 달래를 올린 후 ③을 곁들인다.


요리 노영희 (스튜디오 푸디)

구술 정리 신민주기자 사진 김용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