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Fall in Love with Food [아는만큼 맛있다] Fall in Love with Food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투영하는 영화 속에서 음식은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주연도 되고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영화의 감동과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영화 속 사랑의 음식을 소개합니다. 사랑의 달 2월, 여러분도 마음을 녹이는 음식으로 사랑을 고백해보세요.


그리스인 조르바(미하엘 카코얀니스 감독 | 1964 | 그리스)
메리의 마음이 담긴 촉촉한 과자, 멜로마카로나
<그리스인 조르바>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이기도 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자유인 조르바에 비해 베이질은 ‘재는 머리’를 지닌 샌님이지요. 뭇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인 미망인 메리를 향한 자신의 마음도 표현하기는커녕 받아주는 것마저 망설일 정도입니다. 메리가 그에게 빌린 우산과 함께 그리스의 전통 과자인 멜로마카로나melomakarona를 보자기에 곱게 싸 인편으로 로즈 워터까지 보내주었는데도 말이지요. 망설이는 베이질에게 조르바가 일침을 가합니다. “신이 용서하지 않는 죄가 있다면 여자가 손을 내밀 때 혼자 두는 것이에요.”
조르바 : 대장! 똑똑한 악마인 신이 당신 손에 천국의 선물을 놓아준 거예요. 신이 우리에게 손을 왜 줬겠어요? 잡으라고 준 거라고요. 확 잡으라고! 어서 그녀에게 가서 문을 두드리고 ‘우산을 가지러 왔다’고 하세요.
베이질 : (망설이며) 골치 아픈 일 만들고 싶지 않아요.
조르바 : 사는 것이 다 골치 아픈 거예요. 살아 있다는 것은 허리띠를 풀어버리고 골치 아픈 일을 찾아 나서는 거라고요.



(왼쪽) 아이 엠 러브(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 2009 | 이탈리아)
엠마를 유혹한, 요리사 안토니오의 새우 요리
모두 가진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 하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벌 집에 시집와 세 아이의 자상하고 우아한 엄마로 살아가던 엠마처럼 말이에요. 남편과 자식들만 보고 살던 엠마는 아이들이 자신의 울타리에서 하나둘씩 독립해 나가자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고독함으로 삶에 회의를 느끼던 엠마는 아들의 친구인 요리사 안토니오의 새우 요리를 맛본 순간, 잊고 있던 생의 감각이
오소소 깨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대개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일상을 흔들어대면서 오는 법이니까요. 새우 두 마리의 앙상블이 메마른 엠마의 가슴속에 나비 한 마리를 잡아 넣은 듯 산들바람을 불게 한 거지요.
엠마 :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이기 이전에 나는 사랑을 원했어요.

(오른쪽) 화양연화(왕가위 감독 | 2000 | 프랑스)
첸 부인의 수줍은 고백, 검은깨죽
1962년, 홍콩의 작고 복잡한 아파트의 공용 주방에서 첸 부인이 깨죽을 만듭니다. 몸살로 앓아누운 차우가 깨죽을 먹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예부터 중국인이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즐기던 검은깨죽을 만들지요. 혹시나 마음이 들킬까, 일부러 이웃과 함께 나눠 먹고도 남을 만큼 양도 넉넉하게 하지요. 그의 아내와 그녀의 남편이 서로 바람을 피워 마주하게 된 인연이지만, 그들은 조용히 만나 식사를 하고 소설을 이어가며 서로의 마음을 숨긴 채 수줍게 만남을 이어오던 참이었으니까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뜻한다는 ‘화양연화花樣年華’. 그들의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에 따끈한 검은깨죽 한 그릇이 애틋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차우 : 깨죽 잘 먹었어요. 그날따라 유난히 그게 먹고 싶었어요.
첸 부인 : (무심한 듯) 그냥 만드는 김에 그런 건데…. 우연이 통했나 봐요.



(왼쪽) 아멜리에 (장 피에르 주네 감독 | 2001 | 프랑스)
사랑을 부르는 달콤함, 크렘 브륄레
행복 전령사로 엉뚱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지만, 평생 집 안에서만 틀어박혀 지낸 이웃 크리스탈맨처럼 아멜리에도 뼛속까지 외톨이지요. 정작 자신은 연모하는 니노를 몰래 훔쳐보며 공상만 하면서요. 영화에서 ‘혼자 놀기의 종결자’인 아멜리에가 가장 사랑스러워 보이는 장면은 디저트를 숟가락으로 톡톡 쳐서 깨뜨려 먹을 때입니다. 이 기상천외한 혼자 놀이에 등장한 음식이 바로 크림 브륄레cream brulee지요.밸런타인데이에 부서질 것 같아 꽁꽁 닫아둔 마음을 크렘 브륄레로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영화 속 삼류 작가인 히폴리토가 담벼락에 썼듯 “당신이 없는 오늘의 삶은 어제의 찌꺼기일 뿐” 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지도 모르지요.
크리스탈맨 듀파엘 : 사랑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야. 그러니 지금 당장 말하게.

(오른쪽)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왕가위 감독 | 2007 | 프랑스)
제레미의 우직한 사랑, 블루베리 파이
엘리자베스는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제레미를 만납니다. 이곳에서 제일 인기 없는 애물단지라지만 그가 만들어주는 블루베리 파이를 먹으며 이별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갑니다. 한데 사랑의 상처가 쉽게 지워지나요. 엘리자베스는 실연의 상처를 말끔히 치유하기 위해 훌쩍 여행을 떠납니다. 제레미는 매일같이 블루베리 파이를 만들며 그녀의 자리를 비워둔 채 기다립니다. 블루베리 파이는 사랑을 기다리는 제레미의 마음이었지요. 그녀가 언제 오더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제레미 : 장사가 끝날 때까지 블루베리 파이는 아무도 손을 안 대요.
엘리자베스 :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제레미 : 파이는 지극히 정상이죠. 다들 외면할 뿐, 파이는 멀쩡해요.



(왼쪽) 호노카아 보이(사나다 아츠시 감독 | 2009 | 일본)
마라소다와 롤캐베츠로 차려낸 할머니의 짝사랑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라고 가슴 떨릴 일이 왜 없을까요.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가슴속에 소녀를 품고 있다더니 그 말은 비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레오 청년과 비 할머니와의 운명적 만남은 입안에서 살살 녹는 달콤한 도넛 ‘마라소다malasoda’ 덕분입니다. 레오의 표현대로 하면 지나치게 맛있어서 ‘위험한’ 맛이지요. 말하자면 이 영화는 할머니의 풋풋한 짝사랑 이야기입니다. 귀여운 고이치 할아버지 말마따나 나이 먹었다고 해서 안 되는 것은 없으니까요. 한데 레오가 짐작이나 했을까요. 가장 좋아하던 롤캐베츠(양배추롤)의 부드러운 맛은 비 할머니의 연정을 똑 닮았다는 것을요.
비 할머니 : ‘사람 밥’ 만든 건 너무 오랜만이라서,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어요.
레오 : (폴라로이드 사진부터 찍은 후 식사를 하며) 완전 맛있어!
비 할머니 : (멀찌감치 떨어져 레오를 흉내 내며) 완전 맛있어?


(오른쪽)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송해성 감독 | 2006 | 한국)
윤수의 상처를 치유해준 유정의 주먹밥
교도소 내 만남의 방, 사는 게 지긋지긋해 죽고 싶어 하는 여자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형수인 남자가 마주 앉습니다. 각자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살아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롭던 그들은 ‘진짜 이야기’를 하면서 비로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나갑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주일에 단 세 시간을 위해 사형수인 윤수는 살고 싶어졌고, 마음의 벽이 높던 유정은그를 위해 손수 도시락도 쌉니다. 생김새도 못난 주먹밥은 간을 못 맞춰 짜디짰지만요.
윤수: 짠 주먹밥이라도 매일 먹어도 좋으니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으로 인해 살아 있다는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리 윤철호, 최윤영(서울 웨스틴 조선 호텔 조리팀 02-771-0500) 스타일링 서영희 어시스턴트 임지윤 제품 협조 골든가구(02-795-0907), 더 플레이트(02-512-4393), 바바리아(02-793-9032), 세덱(02-549-6701), 송희그라스하우스(031-982-8154), 씨 바이 클로에(02-3447-7701), 카렐 마리꼬슈(02-3446-5093)

진행 신민주 기자 사진 김정한 어시스턴트 윤호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