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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철든 부엌] 1월의 온전한 맛
정월正月 초하루 설날은 새해를 맞이하는 날로, 예로부터 복을 기원하는 음식과 덕담을 나누느라 웃음소리가 끓이지 않습니다. 또한 정월은 ‘크게 춥다’는 대한大寒이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소한小寒 추위가 매서운 때입니다. 아직 한겨울이니 제맛이 온전하게 든 음식으로 보양도 해야지요. 좋은 마음과 단정한 손끝으로 소담스럽게 차린 음식을 나누며 안녕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를 맞는 정월에는 묵은 가지에도 새로이 순이 돋아나 줄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정월이 다가올수록 엄마 손에는 물기 마를 날이 없어 마른 가지처럼 거칠었다.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엿을 고는 것이었는데, 집 안에 단내가 진동하면 설날이 다가오는 기미였다. 설날 아침에도 칠흑 같은 새벽부터 재료를 다듬고 세찬상을 차리셨다. 세찬상에 올리는 음식은 정성과 수고가 여기저기 묻어나 한눈에도 때깔이 달랐다. 단연 주인공은 온 집안 식구의 합작인 떡만둣국. 엿을 곤 후 어머니가 하시는 일은 나박김치를 담그고, 두부를 만들고, 방앗간에서 떡국 끓일 가래떡을 뽑아오는 것이었다. 가래떡이 꾸덕꾸덕하고 단단하게 마르면 집안 어른들이 모여 가래떡을 썰었다. 그중에서도 작두를 깨끗이 씻어 하얀 명주실같이 긴 가래떡을 뚝뚝 잘라내시던 아버지가 어린 눈에는 칼로 써는 어른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처럼 빛나 보였다.

설을 맞기 하루 이틀 전에는 온 집안 식구가 음식 준비에 동원되었는데, 세찬상의 주인공인 만두를 빚기 위해서였다. 양은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찍어낸 만두피에 김치, 두부, 숙주, 돼지고기 등이 들어간 만두소를 넣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모양내는 데 온갖 정성을 들이곤 했다. “만두를 예쁘게 빚어야 이다음에 딸내미 인물이 훤하다”는 어른들 말씀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우리 집은 남자고 여자고 만두 빚는 본새가 모두 예사 솜씨가 아니다. 가래떡만 두세 말을 했을 정도로 대가족이었으니 빚어내는 만두 양도 어마어마했는데, 동그란 채반에 두었다가 가마솥에 미리 쪄 식혀서 보관해두었다. 그래야 설날 아침에 떡만둣국 끓이기가 수월했다. 우리 집은 떡만둣국 국물이 요즘 말로 ‘끝내줬다’. 국물이 개운하고 진했는데, 양지머리를 넣고 육수를 끓이는 북쪽 지방식이었다. 이렇게 떡만둣국을 만들어 먹으며 새해를 맞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떡만둣국과 함께 세찬상에 늘 올린 음식 중 하나가 김치움파산적이다. 겨우내 밥상을 주도하며 온 집안을 한바탕 들썩이게 한 김장 김치가 이때가 지나면 맛이 막바지에 이른다. 토속적인 데다 대중성까지 겸비한 김치적은 만들기도 쉽고 손님을 맞을 때도 급히 만들어 대접하기 좋아 정월 손님 초대 음식으로도 그만인데, 맛이 든 움파와 함께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잘난’ 음식이 되었다. 움파가 자라는 곳은 할머니 방이었다. 따뜻할 때 앞마당이나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할머니 방 윗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콩나물, 움파, 숙주를 화초처럼 가꾸신 덕에 할머니 방에서는 겨울 채소 자라는 냄새와 메주 뜨는 냄새가 어우러져 늘 진동했다.

정월 즈음에는 24절기의 스물세 번째 절기인 소한小寒과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도 있다. 이때는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모든 게 꽁꽁 얼어붙는다. 여름철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도 보양을 해야 하는데, 그 비법은 제철 음식을 먹는 것. 이즈음은 잦은 술자리로 어느 때보다 간절해지는 시원한 속풀이 해장국이 보양식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해장국은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데, 옛날에는 해장국에도 반열이 있었다. 음주를 즐기는 데 신분의 귀천이 있겠느냐마는 술 깨는 방법은 반상이 달랐던가 보다. 양반들의 해장국이 효종갱이었다. 새벽 효曉, 쇠북 종鐘, 국 갱羹 자를 쓰는데, 말 그대로 ‘새벽에 먹는 국’이다. 효종갱은 나도 어릴 때는 맛본 적이 없다. 불과 2~3년 전에 옛 책을 보고 만든 음식으로, 내용물만 보더라도 값진 재료가 많이 들어간 것이 여간 호사스러운 보양식이 아니다.

이때에 맛이 든 음식으로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것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바로 묵밥이다. 어릴 적 엄마는 특별한 날이면 묵을 쑤셨는 137데, 김치와 무쳐 밤참으로도 먹고 북엇국에도 넣어 아버지 해장국으로도 올렸다. 묵밥은 원래 여름 별미로 차갑게 먹었다고 하지만, 날씨가 쌀쌀하니 국물을 따끈하게 끓여 붓고 김치는 송송 썰어 올리고 구운 김은 부숴 얹어도 좋겠다. 국수처럼 굵게 채 쳐서 길게 잘라 먹는 것이 전통 방식이지만, 젓가락으로 먹기도 불편하고 숟가락으로 먹기도 애매해 아예 숟가락으로 편안하게 떠먹을 수 있도록 네모나게 썬다면 맛은 지키면서 모양도 좋고 먹기도 편하다. 나처럼 국에 밥을 말아 먹지 않는 이도 있으니 밥은 따로 내서 덜어 먹을 수 있게 한다면 ‘묵밥’이 아닌 ‘묵탕’이라 부르면 될까.

맛은 지키면서 모양도 좋고 먹기도 편하게 하는 것이 받는 이에 대한 배려이니 새해에는 만드는 이들이 요리할 때 한 번 더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떡만둣국
재료
(4인분) 가래떡 얇게 썬 것 600g
국물 양지머리 300g, 무 4cm 길이 1/2토막, 양파 1/2개, 대파 잎 1대분, 마늘 10쪽, 통후추 1/2작은술, 물 20컵
국물 양념 쇠고기 육수 6컵, 국간장 1큰술, 설탕 1/2작은술, 고운 소금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만두소(20개분) 쇠고기ㆍ돼지고기ㆍ두부(단단한 것) 50g씩, 김치 200g, 숙주 150g
만두소 고기 양념 다진 파ㆍ국간장 1작은술씩, 다진 마늘 1/2작은술, 설탕 1/4작은술, 참기름 1/3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만두소 숙주 양념 참기름 1/4작은술, 소금ㆍ후춧가루 약간씩
만두소 전체 양념 대파 2대, 쪽파 8뿌리, 다진 마늘ㆍ참기름 1/2큰술씩, 소금ㆍ후춧가루 약간씩 만두피 20~24장, 달걀흰자 1개분(혹은 물 적당량), 고명 적당량
만들기 1 냄비에 국물 재료 중 물 16컵, 무, 양파, 대파 잎, 마늘, 통후추를 넣고 끓인다. 물이 끓으면 고기를 씻어서 덩어리째 넣고, 끓으면 거품을 걷어내고 10분쯤 끓이다가 찬물 4컵을 마저 붓고 끓어오르면 불을 줄인 뒤 1시간 정도 더 끓인다.
2
만두소 재료 중 쇠고기, 돼지고기는 곱게 다져 한데 섞고 분량의 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무친다. 두부는 끓는 물에 삶아서 면포에 싸서 물기를 꼭 짠 다음 체에 내려 으깬다.
3 김치는 한번 씻어서 곱게 다진 후 물기를 꼭 짠다. 숙주는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쳐 물기를 꼭 짜서 송송 썬 다음 양념한다.
4 만두소 양념 재료 중 대파는 굵게 다지고, 쪽파는 송송 썰어 나머지 재료와 함께 모두 볼에 넣고 섞는다.
5 볼에 ②, ③, ④의 만두소 재료를 모두 넣고 훌훌 섞는다.
6 만두피 가장자리에 달걀흰자나 물을 바르고 ⑤의 소를 넣은 다음 반으로 접어 소를 손가락으로 눌러가며 맞붙여 양 끝을 아물려 모자 모양으로 만든다.
7 팔팔 끓는 물에 ⑥의 만두를 넣고 삶는다. 둥둥 떠오르면 다 익은 것으로 건진다.
8 체에 젖은 면포를 깔고 ①의 육수를 밭아 6컵을 따로 준비해 국물 분량의 양념을 넣고 간한 다음 팔팔 끓인다. 여기에 떡을 씻어서 넣고 끓이다 떡이 말갛게 되면 ⑦의 만두를 넣고 살짝 데치듯이 끓인다.
9
그릇에 만두 4개를 바닥에 깔고 떡을 건져 담은 다음 국물을 붓고 고명을 얹는다.


효종갱

재료(4인분)
쇠갈비 400g, 전복 2마리, 해삼 불린 것 1마리(100g 정도), 배추속대 300g, 콩나물 100g, 대파 1대, 된장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만들기 1 쇠갈비는 뼈와 반대 방향으로 뼈에 닿게 칼집을 두 군데 내고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2 냄비에 ①의 쇠갈비를 넣고 물을 넉넉히 부은 후 끓으면 건져서 칼집 낸 사이까지 말끔히 씻는다. 냄비에 다시 담고 물을 넉넉히 부어 1시간 정도 푹 삶는다. 이때 중간 중간 거품을 걷어내고, 물이 줄어들어 갈비가 물 위로 보이면 물을 보충한다.
3 전복은 솔로 깨끗이 씻은 뒤 껍데기에서 살을 떼어낸 다음 칼집을 낸다. 해삼은 속을 깨끗이 씻어서 1cm 길이로 썬다.
4 대파는 어슷하게 썬다. 콩나물은 어린 것으로 준비해 콩 껍질을 골라내고 씻어 물기를 뺀다.
5 ② 쇠갈비를 1시간 정도 푹 삶았으면 배추속대와 ④의 대파를 넣고 끓이다가 된장과 다진 마늘을 넣어 한 번 더 끓인다. 마지막에 콩나물을 넣고 끓이는데, 이때 국물이 싱거우면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묵탕
재료(4인분)
도토리묵(혹은 메밀묵) 240g, 김치 120g
김치 양념 참기름 1/2작은술, 통깨 1/3작은술, 송송 썬 실파ㆍ부순 김 약간씩
국물 황태 1마리, 무 400g, 다시마 60g, 죽방멸치 50g, 양파 1개, 대파 잎 2대분, 통후추 2작은술, 물 25컵
국물 양념 국물 2컵, 참치액 1/2큰술, 소금 약간
양념장 국간장 1큰술, 다진 청양고추ㆍ다진 홍고추 1개분씩, 다진 마늘 1/2큰술, 송송 썬 실파 2뿌리분, 참기름 1작은술
만들기 1 냄비에 분량의 국물 재료를 모두 넣고 끓어오르면 다시마를 건져낸 뒤 1시간 이상 푹 끓이다 분량의 국물 양념을 넣어 간한 뒤 한 번 더 끓인다.
2 메밀묵은 60g씩(1인분) 썰어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3 김치는 송송 썰어 분량의 양념을 모두 넣고 무친다.
4 볼에 양념장 재료를 모두 넣고 고루 섞는다.
5 그릇에 ②의 묵을 담고 ①의 국물을 부어 따뜻하게 한 뒤, 그 위에 ③의 김치 무친 것을 올리고 다시 국물을 부은 뒤 김 부순 것을 얹는다.

김치움파산적
재료(4인분)
김치 2~3줄기(참기름 약간 ), 움파 2대, 쇠고기(산적용) 80g, 참기름ㆍ설탕ㆍ밀가루ㆍ식용유 약간씩
양념장 진간장 1큰술, 다진 파ㆍ설탕 1/2큰술씩, 다진 마늘ㆍ참기름 1작은술씩, 후춧가루 약간
부침옷 부침 가루 1컵, 얼음물 11/4컵
만들기 1 김치는 3cm 폭, 10cm 길이로 썬다. 움파는 뿌리를 잘라 겉껍질을 벗긴 다음 씻어서 물기를 없앤 뒤 10cm 길이로 썬다. 쇠고기는 5mm 두께, 12cm 길이로 썰어 잔칼질한다.
2 볼에 분량의 재료를 모두 넣고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 김치는 참기름과 설탕을 약간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②의 양념장 1/2 분량은 움파에 넣어 무치고, 남은 양념장은 쇠고기에 넣고 무친다.
4 달군 팬에 ③의 쇠고기를 살짝 굽는다. 김치도 달군 팬에 살짝 볶는다.
5 꼬치에 김치, 움파, 쇠고기, 움파, 김치 순으로 꿴 다음 밀가루를 골고루 묻히고 여분의 가루는 털어낸다.
6 부침 가루에 얼음물을 넣고 섞어 부침옷을 만든다. ⑤의 꼬치를 부침옷에 담갔다가 건져 흐르는 것은 털어낸다.
7 달군 팬에 식용유와 참기름을 약간 섞어서 두르고 ⑥의 꼬치를 올려 앞뒤로 노릇하게 지진다.





요리 노영희(스튜디오 푸디)

구술 정리 신민주 기자 사진 김용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