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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철든 부엌] 나누고 싶은 겨울날의 맛
땅 얼고 물 어는 대설大雪을 지나 겨울의 한가운데인 동지冬至가 가까워 오면 추위를 끌고 동장군이 밀어닥칩니다. 예부터 동짓날이 되면 백성들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다고 하지요. 또 일가친척이나 이웃 간에는 붉은팥으로 죽을 쑤어 살얼음이 낀 동치미를 곁들여 먹으며 서로 화합했다고 합니다. 긴긴 겨울밤에는 온 가족이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고구마며 인절미를 굽거나 얼린 홍시를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요. 이것저것 넣고 복잡하게 해 먹는 게 아니라 단순하게 차리는 음식이었지만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게 해주었으니, 이만한 영양식도 없지요.

팥죽
재료(4인분) 붉은팥 2컵, 물 20컵, 찹쌀가루 2컵, 소금 약간
새알심 찹쌀가루 2컵, 끓는 물 4~5큰술, 잣 약간
만들기
1
팥은 씻어서 냄비에 넣고 물을 넉넉히 부어 끓인다. 끓으면 물을 따라 버리고 다시 물 20컵을 부어서 1시간 30분 정도 푹 삶는다.
2 ①의 삶은 팥은 한 김 식혀서 믹서에 갈아 고운 면포에 감싸 팥 껍질이 남을 정도로 주물러서 앙금을 뺀 다음, 팥물을 가만히 두어 앙금을 가라앉힌 후 윗물은 따로 담는다.
3 찹쌀가루에 끓는 물을 부은 다음 익반죽해 잣을 두 개씩 넣고 지름 1cm 크기의 새알심을 빚은 뒤 끓는 물에 넣고 삶는다. 위로 둥둥 떠오르면 바로 건져서 찬물에 담가 식힌다.
4 ②의 팥물에 찹쌀가루를 넣어 응어리가 생기지 않게 섞은 후 냄비에 넣고 중간 불에서 저으면서 끓인다.
5 ④의 찹쌀가루가 퍼지면 ②의 팥앙금을 넣고 끓이다가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③의 새알심을 넣어 다시 한 번 끓인 뒤 그릇에 담는다. 취향에 따라 꿀을 곁들인다.


연말이 다가오니, 크리스마스 파티다 송년회다 묵은해를 보내기 전에 소원했던 이들과 밥 한 끼, 술 한잔이라도 나누고자 모두 ‘연말 스케줄’ 짜기에 여념이 없다. 한데 크리스마스 등 외국의 명절이나 낯선 기념일은 잘 챙기면서 정작 우리의 아름다운 세시 풍속은 잊고 지나가는 것 같아 늘 아쉽다.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인 동짓날은 시기적으로도 크리스마스나 연말과 가까운 때로, 우리나라에서는 ‘작은설’로 불리는 길일이었다.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 꽁지만큼씩 길어진다”는 말도 있듯, 동지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져 옛사람들은 태양이 부활한다고 믿었다. 이날이면 이웃 친지와 서로 마음을 열고 그동안 쌓인 것을 풀어 해결했다. 그 풍습을 되살리고자 요즘도 ‘동지 파티’를 열곤 하는데, 주메뉴는 물론 팥죽이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늘 그러셨듯이 살얼음이 낀 동치미를 빼놓지 않고 곁들인다. 어린 시절에는 팥죽을 쑤어 먼저 집 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뜨거운 기운이 가시면 식구들이 모여 먹은 기억이 생생한데, 나는 유독 차갑게 식어서 퉁퉁 불은 팥죽을 좋아해서 일부러 딴청을 피우다 먹곤 했다.

동지팥죽은 새해의 무사안일을 빌던 풍습이 남아 있는 것으로, 한가위 송편, 설날 떡국처럼 꼭 챙기는 절식이었다. 팥죽을 쑤어 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는 속신俗信 때문이었으리라. 선조들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는 팥죽ㆍ팥밥ㆍ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요즘도 고사를 지낼 때 팥떡을 해서 사업 번성이나 무사고를 기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팥이 들어가는 음식은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믿었지만, 동짓날이라도 이날이 음력 11월 10일 안에 들면 애동지라 하여 아이에게 나쁘다고 해서 팥죽을 쑤지 않았다. 올해는 동지가 음력 11월 28일로 양력 12월 22일이니 크리스마스 즈음이다. 연말 모임에 동짓날 팥죽을 만들어내면 그 의미가 특별할 것이다. 동지팥죽에는 새알심을 넣어 끓이는데, 가족의 나이 수대로 넣어 끓이는 풍습도 있다. 그래서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전해 오는 것이다. 팥죽을 끓이다 중간에 넣는 새알심은 둥둥 떠올라야 다 익은 것. 어쩌다 덜 익은 새알심이 입천장에 붙으면 떼어내느라 애를 먹던 일도 이젠 추억의 한 자락이다.

어린 시절, 말 그대로 ‘밀어닥치던’ 추위를 이겨낼 수 있게 해주던 겨울철 음식 중 차갑게 식어 퉁퉁 불은 팥죽만큼 좋아하던 음식이 있으니, 바로 동치미국수다. 마당 한쪽에 볏짚으로 만든 원뿔 모양이 우뚝 서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김칫독이 묻혀 있었다. 원뿔형 볏짚은 보온을 위해 만든 것으로, 독 뚜껑을 열면 동치미 국물에 살짝 살얼음이 껴 있었다. 바가지로 톡톡 쳐서 살얼음을 깬 뒤 국물과 동치미를 꺼내 삶은 국수를 말아낸 동치미국수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겨울 별미였다. 늦은 밤 출출할 때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고 소화도 잘돼 야식으로 즐겼다. 또 동치미를 쭉쭉 쪼개서 젓가락을 쿡 찔러 넣어 구운 고구마와 함께 먹으면 한 끼로도 든든했다. 겨우내 단맛이 든 고구마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독에다 왕겨를 켜켜이 깔고 고구마를 넣어둔 어머니의 지혜 덕분이었다.

땅이 어는 겨울은 사실상 농부에게는 휴가철로, 집에서 놀고먹으며 지내야 하니 간식거리가 집 안에 끊이지 않았는데, 할머니의 다락은 보물 창고 같았다. 엿이나 강정, 홍시가 늘 가득하던 다락에서 가장 인기였던 것은 언 홍시였다. 집 울타리에 있는 감나무에서 딴 아이 주먹만 한 감을 다락에 넣어두면 살짝 얼어 요즘 디저트로 많이 먹는 홍시 아이스크림 같았다. 단 음식이 귀하던 시절이니 껍질을 벗겨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던 언 홍시 덕에 낮이고 밤이고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할머니는 시제時祭가 지나고 나면 손님들 손에 꾸러미로 싸서 보내고도 남는 떡과 맷돌사탕도 다락에 넣어두셨다. 그중 단단하게 굳은 인절미의 콩고물을 툭툭 털어 화로 위 석쇠에 올려 구워 먹기도 했다. 말랑말랑하게 구운 인절미를 조청에 찍어 먹으며 형제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겨울밤 방 밖에서는 바람 소리가 매서웠지만, 방 안에서 즐기던 야참은 길고 긴 밤을 든든하게 날 수 있게 해주는 간식이었고 겨울철 영양식이었다.

동치미국수
재료(4인분) 동치미 무 200g, 동치미 국물 6컵, 소면 400g
만들기
1
동치미는 5cm 길이로 채 썬다.
2 끓는 물에 소면을 넣고 삶는다. 우르르 끓어오르면 삶은 즉시 건져내 찬물에 손으로 여러 번 비벼 씻은 후 물기를 뺀다.
3 그릇에 삶은 국수를 담고 동치미 채 썬 것을 올린 다음 동치미 국물을 붓는다.

인절미구이
재료
인절미 굳은 것, 조청이나 꿀
만들기
1
인절미는 콩고물 묻은 것을 털어내고 석쇠에 굽는다. 그래야 타지 않고 깔끔하게 구울 수 있다. 또는 기름을 약간 두른 팬에 종이타월로 닦아내고 약한 불에서 은근하게 굽는다.
2 구운 인절미를 그릇에 보기 좋게 담은 뒤 조청이나 꿀을 곁들인다. 


얼린 홍시
1 홍시가 되기 전의 감을 소금물에 담가 하룻밤 정도 두면 떫은맛이 없어진다.
2 물기를 닦아낸 후 냉동실에 얼린다. 먹기 한 시간쯤 전에 상온에 두면 자연스레 녹는다. 껍질을 벗겨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군고구마와 동치미
재료
고구마 4개, 동치미 적당량
만들기
1
고구마는 껍질째 깨끗이 씻어 200℃로 예열한 오븐에서 30~40분 굽는다.
2 고구마가 따뜻할 때 동치미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함께 낸다.



요리 노영희 (스튜디오 푸디)

구술 정리 신민주 기자 사진 김용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