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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철든 부엌] 호사스러운 한가위 절식
한낮에는 무더위가 여전하지만 밤에는 기온이 제법 내려가 ‘풀잎에 하얀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를 지나면 하루아침에 가을이 성큼 다가옵니다. 계절이 바뀌는 때로 나락이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하늘은 성큼 높아졌습니다. 곧 추수철이 다가오니 온 산과 들에 먹을거리 천지입니다. 그래서 이맘때 추석이 들어 있나 봅니다

온 집 안에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정다운 명절 냄새다. 평소보다 푸짐하게 차려놓은 음식 덕분에 추석은 늘 즐겁다. 요즘엔 전이며 송편이며 한가위 절식을 사다 먹는 집도 꽤 있다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추석 전날이면 어느 집이든 명절 음식 준비로 분주했다. 각종 채소전이며 고기전, 생선전을 부치고 온 가족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일이 새삼스러울 것 없는 명절 풍경이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식구가 많았던 까닭에 엄청난 양의 송편을 빚었다. 워낙에 양이 많았던 터라 어머니와 할머니는 추석 전전날부터 준비하거나 이웃집과 품앗이를 하고는 했다. 돕겠다고 나서면 어머니는 주물러 터뜨린다고 한사코 못하게 말리셨지만 툇마루에 빙 둘러앉은 어른들 틈에 끼어 한몫하고는 했다. 할머니가 하시는 대로 반죽을 떼 동그랗게 만들고 엄지로 가운데 구멍을 판 다음 소를 넣고 아물려 주물러서 공기를 빼고 입술을 만들어주면 제법 그럴싸한 모양이 됐다. 그러다 싫증이 나면 빚어놓은 송편을 몰래 가져다 호야(등불)에 구워 먹기도 했는데, 끝내 어른들에게 들켜서 혼나기도 했지만 그 스릴과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한쪽에서 송편을 빚으면 다른 한쪽에서는 빚은 송편을 바로 쪄냈다. 큰 가마솥에 겅그레(솥에 음식물을 찔 때 재료가 물에 닿지 않게 하려고 물 위에 놓는 물건)를 놓고 베보를 깐 다음 솔잎을 깔고 송편을 얹은 뒤 다시 솔잎으로 덮고 송편을 올려 층을 쌓아 쪘다. 반죽이 반투명한 상태로 익으면 베보째 들어서 물에 헹궈 솔잎을 떼어내고 식히는데, 우리 집에서는 송편이 뜨거울 때 참기름 섞은 물을 겉에 골고루 발라 식혔다. 그러면 쫄깃한 식감이 입맛을 돋웠다. 김이 펄펄 나는 송편은 우선 아이들 입으로 들어갔다. 형제들과 함께 뜨거운 송편을 호호 불어가며 속을 확인하기 위해 불빛에 비춰보기도 하고 꾹 눌러보기도 했다. 달큼하고 고소한 깨 소가 단연 인기였다. 반죽에 천연 재료를 섞어 색과 모양을 달리해 개성을 더할 수 있는데, 어려서는 알록달록한 것에 손이 가더니 요즘에는 은은한 색이 좋아 기본 흰색 송편과 그 반죽에 다진 대추를 섞거나 송홧가루 섞어 만든 대추송편과 송화송편을 즐긴다.

추석에 꼭 먹는 계절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토란탕이다. 토란엔 변비를 막고 소화를 돕는 성분이 들어 있어 과식하기 쉬운 추석 음식으로 더없이 좋다. 어려서는 미끌미끌한 식감에 맛도 없어 국그릇을 물리곤 했는데, 그럴수록 할머니께서는 “명절 음식은 기름진 것이 많아 탈이 안 나려면 토란탕을 먹어야 한다”며 한사코 떠먹이셨다. 닭찜도 할머니께서 종종 해주시던 추석 별미였다. 닭찜에 잘 말려 애지중지 두셨던 북어를 다듬이 방망이로 쾅쾅 두들겨 물에 담가 푹 불렸다가 넣기도 하셨는데, 그러면 훨씬 부드러우면서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추석 즈음이 되면 아버지도 바쁘게 움직이셨다. 송편에 쓸 솔잎이며 차례상에 올릴 밤 준비는 아버지 몫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밤나무 밑에서 토실토실 살이 오른 알밤을 제법 주워다 차례상에 올릴 것을 빼고 어머니께 갖다드리면 실하게 여문 밤을 삶아서 속만 으깬 뒤 꿀과 계핏가루를 넣은 반죽으로 밤 모양을 앙증맞게 빚어 율란을 만들어주셨다. 만드는 데 공이 많이 들지만 영양 간식으로 집어 먹기도 편했고, 모양새가 예뻐 손님상에 내면 솜씨를 뽐내기에도 좋았다. 여기에 꿀을 넣고 조려 생강 모양으로 빚은 생란과 맵싸한 배숙을 더하면 가을철 식사를 개운하게 마무리할 수 있고, 국물을 따끈하게 해서 먹으면 감기 예방에도 좋다. 이번 추석, 절식부터 가을철 별미까지 가을의 맛을 만끽해보시길.

삼색 송편
재료(각 20개분)

녹두 소(송화송편 소) 거피 녹두 1/2컵, 꿀 2작은술, 고운 소금 약간
깨소(흰색송편과 대추송편 소) 참깨 4큰술, 꿀 1큰술, 고운 소금 약간
흰색 송편 반죽 멥쌀가루 2컵, 꿀 1큰술, 끓는 물 4큰술, 소금 약간
대추송편 반죽 대추 10~13알, 멥쌀가루 2컵, 꿀 1큰술, 끓는 물 3~4큰술, 소금 약간
송화송편 반죽 멥쌀가루 2컵, 송홧가루 2큰술, 꿀 1큰술, 끓는 물 4~5큰술, 소금 약간
만들기
1 녹두는 거피한 것을 미지근한 물에 담가 4~6시간 정도 불린 다음 바락바락 주물러서 남은 껍질을 벗기고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군다. 껍질을 말끔히 벗기고 물기를 뺀 후 젖은 면포를 깐 찜통에 30분 정도 찐다. 푹 무르면 체에 내려 소금과 꿀을 넣고 섞어 식힌다.
2 참깨는 씻어서 물기를 쪽 뺀 후 마른 팬에 볶는다. 손으로 으깨질 정도가 되면 식혀서 믹서에 갈아 고운 소금과 꿀을 넣어 섞는다.
3 흰색 송편 분량의 쌀가루는 체에 한 번 내려 고운 소금과 꿀을 넣고 양 손바닥으로 싹싹 비벼 고루 섞은 다음 끓인 물을 부어 익반죽한다.
4 대추송편 분량의 대추는 돌려 깎아 씨를 바르고 과육을 곱게 다진다. ③과 동일하게 고루 섞은 쌀가루에 다진 대추를 넣고 섞은 후 끓는 물을 부어 익반죽한다.
5 쌀가루에 송홧가루를 섞어 체에 내린 다음 고운 소금과 꿀을 넣고 양 손바닥으로 싹싹 비벼 고루 섞은 후 끓는 물을 부어서 익반죽한다. * ③~⑤의 반죽은 매끈해지도록 치대서 덩어리로 뭉쳐 젖은 면포에 덮거나 비닐주머니에 담아야 굳지 않는다.
6 반죽을 엄지 한 마디 크기로 떼어 동그랗게 만든 다음 가운데 구멍을 파고 준비해 놓은 소를 넣는다. 아물려서 주물러 공기를 뺀 다음 럭비공 모양으로 만들어 입술을 만든다.
7 찜통에 솔잎을 깔고 젖은 면포를 깐 다음 ⑥의 송편을 놓고 김이 오른 통 위에 올려 25~30분 정도 찐다. 색깔별로 찌는데 솔잎은 여러 번 써도 되므로 색이 옅은 흰색 송편, 송화송편, 대추송편순으로 찐다.
* 송편을 꺼내서 뜨거울 때 바로 색깔별로 물 1큰술에 참기름 1/4작은술 정도를 섞어 송편 전체에 바른 뒤 식히면 고소한 맛을 더한다.


(왼쪽) 세 가지 전
재료(4인분) 표고버섯 4개, 다진 새우 50g, 애호박 1/2개, 대하 4마리, 청주 1큰술, 밀가루 2큰술, 달걀물 1개분, 식용유·참기름·소금·후춧가루 적당량
새우 양념 다진 파 1작은술, 다진 마늘 1/3작은술, 참기름 약간, 소금·후춧가루 적당량
만들기
1
표고버섯은 흐르는 물에 씻어서 기둥을 비틀어 뗀 다음 마른 면포에 싸서 살짝 눌러 물기를 뺀다. 안쪽에 소금과 밀가루를 살짝 뿌린 뒤 턴다.
2 새우는 다져서 재료를 모두 넣고 양념한 다음 ①의 표고버섯에 채운다.
3 애호박은 5mm 두께로 썰어 소금을 살짝 뿌린 뒤 면포로 살짝 눌러 물기를 뺀다.
4 대하는 껍질을 벗기고 등 쪽에 길이로 칼집을 넣어 편 다음 배 쪽에 칼집을 넣어 오그라드는 것을 막는다. 그런 다음 청주, 소금, 후춧가루를 뿌려 잠깐 재웠다가 면포에 싸서 물기를 뺀다.
5 ②~④의 재료를 밀가루, 달걀물 순으로 튀김옷을 입힌 뒤 달군 팬에 식용유와 참기름을 섞어서 두르고 노릇하게 지진다.

(오른쪽) 토란탕
재료(4인분) 토란 200g, 쇠고기 100g, 쪽파 2뿌리, 물 6컵, 대파 1대, 마늘 5쪽, 소금·식초 약간씩
쇠고기 양념 국간장 2작은술, 다진 파 1작은술, 다진 마늘·참기름 1/2작은술씩, 후춧가루 약간
국물 양념 국간장 1큰술, 설탕·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토란은 씻어서 쌀뜨물이나 식촛물(분량 외)에 잠깐 삶아서 아린 맛을 뺀 후 건져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게 썬다.
2 끓는 물에 소금과 식초를 약간 넣고 ①을 꼬치가 들어갈 정도로 삶는다.
3 쇠고기는 납작하게 썰어 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밑간한다.
4 냄비에 ③을 볶다가 물과 대충 토막 낸 대파, 마늘을 넣고 끓인다. 20분 정도 끓이다가 국물 양념 재료로 간을 맞추고 ②의 토란을 넣어 10분 정도 더 끓인다. 다 끓으면 마늘과 대파는 건져내고 그릇에 담는다.


(왼쪽) 닭찜
재료(4인분)
황태 1마리, 닭다리 긴 것 4개, 마늘 4쪽, 대파 1/2대, 마른 붉은 고추 1개, 식용유 2큰술, 물 4컵 닭고기 양념 양파즙 1개분, 청주 2큰술 양념장 진간장 4큰술, 설탕 3큰술, 다진 마늘·청주 2큰술씩, 굴소스·조미술·참기름 1큰술씩, 다진 생강 1/2큰술, 후춧가루 1/4작은술 곁들임 밤 8톨, 표고버섯 4개, 양파 1개
만들기
1
황태는 미지근한 물에 담가 2시간 정도 불린다. 부드러워지면 지느러미와 뼈를 바르고 토막 내서 껍질 쪽에 칼집을 1cm 간격으로 넣는다.
2 닭은 소금으로 문질러 씻는다. 물기를 뺀 후 포크로 쿡쿡 찍어서 간이 잘 배게 한 다음 반으로 잘라서 양파즙과 청주로 밑간하고 30분 정도 재운다.
3 마늘은 편으로 썰고 대파는 3cm 길이로 썰어 반 자른다. 고추는 어슷하게 썰어서 씨를 털어낸다.
4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③의 채소를 볶아 향을 낸 다음 ②의 닭을 노릇하게 지진다.
5 냄비에 ④의 닭고기와 ①의 황태를 담고 물을 4컵 정도 부어서 끓인다. 처음엔 센 불에서 끓이다 거품이 오르면 중간 불로 줄여 걷어낸 후 30분 정도 더 끓인다.
6 밤은 속껍질까지 벗겨 과육만 남긴다. 표고버섯은 씻어서 기둥을 떼 먹기 좋게 자르고. 양파는 큼직하게 썬다.
7 볼에 재료를 모두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⑤의 냄비에 양파, 표고버섯, 밤을 넣고 양념장을 끼얹어 섞어서 국물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조린다.

(오른쪽) 율란
재료
밤껍질째 200g(속 120~130g 정도), 꿀 11/2큰술, 계핏가루 1/4작은술, 잣가루 약간
만들기
1 밤은 껍질째 삶는다. 끓기 시작해 20분 정도 삶은 뒤 반 잘라서 작은 숟가락으로 속을 파낸다.
2 뜨거울 때 곧바로 체에 내린 뒤 꿀과 계핏가루를 넣고 고루 섞는다.
3 ②를 밤톨 모양으로 엄지손톱만 하게 만든 뒤 한쪽 끝에 잣가루를 묻힌다.

생란
재료(20개 정도 분)
생강 껍질 벗긴 것 100g, 설탕 30g, 물 1컵, 꿀 11/2큰술, 잣 1큰술, 잣가루 1/2컵 정도
만들기
1 생강은 씻어서 쪽을 뗀 다음 껍질을 벗겨 물에 한 번 헹군 후 강판이나 커터로 곱게 갈아 물을 붓고 맑은 물이 날 때까지 헹궈 매운맛을 뺀다.
2 ①을 고운 체에 밭아 건더기는 물기를 꼭 짜고, 헹군 물은 큰 그릇에 받아 가만히 두어 앙금을 가라앉힌다.
3 냄비에 생강 건더기를 담고 물 1컵을 붓고 설탕을 넣어서 끓인다. 처음엔 센 불에서 끓이다가 거품이 오르면 중간 불로 줄여 거품을 걷어내면서 조린다.
4 반쯤 조려지면 ②의 윗물을 따라내고 앙금과 꿀을 넣고 수분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조린다.
5 ④를 접시에 펴서 식힌 후 잣을 넣고 섞은 다음 20등분해서 생강 모양으로 빚은 뒤 잣가루를 고루 묻힌다.

배숙
재료(4인분) 생강 60g, 물 8컵, 배 1개, 통후추 1작은술, 황설탕 60g, 흰설탕 40g, 꿀 2큰술
만들기
1
생강은 껍질을 벗기고 얇게 썰어서 찬물에 헹궈 냄비에 담고 물을 부어서 끓인다.
2 배는 껍질을 벗기고 작은 꽃 모양 커터로 40개 정도 찍은 뒤 가운데 부분에 통후추를 꼭 눌러 박는다. 꽃 모양으로 찍고 난 자투리 배와 통후추 남은 것은 ①에 넣어서 함께 끓인다.
3 ①을 30분 정도 끓이다가 건더기를 건져내고 황설탕과 꽃 모양 배를 넣고 10분 정도 더 끓인 뒤 불을 끄고 꿀을 넣어 녹인 다음 식힌다.


요리 노영희(스튜디오 푸디)

진행 신민주 기자 사진 김용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