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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백석 詩의 맛
백석白石의 시는 맛있습니다. 유독 시에 음식을 많이 등장시킨 시인으로, 그 시를 읽다 보면 입에 침이 고일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백석의 시는 1백여 편쯤 되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음식 종류는 무려 1백10여 가지에 달할 정도로 먹는 이야기 천지입니다. 출중한 외모에 1930년대 최고의 모던 보이요, 엘리트로 꼽히던 백석이건만, 그는 음식을 소재로 한 시를 통해 오래된 전통과 아울러 근대화에 의해 사라져가는 것을 회복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에 등장한 음식도 서구적인 것은커녕 당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음식으로 입치레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깃들어 있는 마음을 음미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숨은 맛집을 찾듯 맛깔난 시를 찾아 그 시 맛을 보는 것은 어떨까요. 백석의 시에는 음식이 담겨 있고, 그 음식에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 본문의 시 중 일부는 음식 부분만 발췌하였음.


야우소회夜雨小懷

캄캄한 빗속에
새빨간 달이 뜨고
하이얀 꽃이 피고
먼바루 개가 짖고
어데서 물외 내음새 나는 밤은

나의 정다운 것들 가지 명태 노루 메추리
질동이 노랑나비 바구지꽃 메밀국수
남치마 자개짚세기 그리고 천희 千姬라는
이름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밤이로구나


비 내리는 밤에 메밀국수 한 그릇과 그리운 것을 떠올리다
‘야우소회’란 비 내리는 밤에 떠오른 마음속의 작은 생각이란 뜻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문득 그리움이 밀려드는 것은 시인도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시의 말미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열하며 그리움을 달래지요. 모두 그의 시에서 한 번 이상 등장한 것들입니다. 음식 중에서는 유독 메밀국수를 좋아한 듯한데, ‘국수’라는 제목으로 쓴 시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고향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국수가 그에게는 솔 푸드였던가 봅니다. 시에 등장하는 국수는 ‘평양냉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정주는 평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도 하지요. 밍밍한 듯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육수에 메밀면을 말아 얼음을 동동 띄워 먹어보세요. 아삭한 물외(참외와 구분해 오이를 이르는 말)를 채 썰어 고명으로 가득 올리고 말이에요. 그러면 백석이 시에서 노래하듯 사무치는 그리움도 일상의 고단함도 뚝뚝 끊어지는 메밀국수 맛처럼 술술 넘어갈지도 모르지요.

메밀국수(평양냉면)
재료
메밀국수(냉면용) 4인분, 식초・겨자・설탕 적당량(기호대로)
육수 쇠고기(양지머리 또는 사태) 300g, 돼지고기(사태) 200g, 닭(영계) 1마리, 백김치 국물(또는 동치미 국물) 2컵, 청주 1/2컵, 생강 1/2톨, 소금 1큰술, 식초・설탕・겨자 적당량, 물 12컵
고명 오이 1개, 달걀 2개, 백김치(또는 동치미) 건지 적당량, 식용유 약간
만들기
1
냄비에 물 12컵을 넣고 팔팔 끓기 시작하면 쇠고기, 돼지고기, 닭을 한꺼번에 넣고 중간 불에서 삶는다. 물이 다시 끓어오르면 청주, 생강, 소금을 넣고 중간에 떠오르는 기름을 말끔히 걷어내면서 40분 정도 삶는다.
2 ①의 고기를 갈랐을 때 속에서 핏물이 나오지 않으면 불을 끄고 고기를 건져내 식힌 다음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결 반대 방향으로 얇고 넓게 썰고, 닭은 살만 발라 굵게 찢는다. 이때 국물은 냉장고에 넣어 차게 둔다.
3 ②의 육수가 차가워지면 국물 위에 뜬 기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백김치나 동치미 국물을 섞어 식초와 설탕으로 간한다.
4 오이는 반 갈라 어슷하게 썰어 소금에 절였다가 기름을 두른 팬에 살짝 볶는다. 백김치는 먹기 좋은 크기로 굵게 찢고, 달걀은 황백으로 나눠 얇게 지단을 부친 후 채 썬다.
5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센 불에 올려 팔팔 끓어오르면 메밀국수를 헤쳐 넣고 삶은 후 냉수에 여러 번 헹구어 1인분씩 사리를 만들어 채반에 건져 물기를 뺀다.
6 그릇에 ⑤의 냉면 사리를 담고, 그 위에 ②의 편육, ④의 오이・백김치・달걀지단 등 고명을 고루 얹은 다음 ③의 육수를 옆에서 살며시 붓는다. 식초, 겨자, 설탕은 기호대로 간할 수 있도록 따로 낸다.



(왼쪽) 박각시 오는 저녁
당콩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휑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쏘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다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도루래며 팥중이 산 옆이 들썩하니 울어 댄다
이리하여 하늘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때는 여름, 느긋한 저녁 시골 밥상 풍정을 노래하다
여름은 계절이 베푸는 향연의 절정입니다. 갓 딴 강낭콩을 밥에 넣어 먹으면 마치 밤을 씹어 먹는 듯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 거기에 짙은 자줏빛으로 맛이 든 가지를 살짝 익혀 길게 찢은 후 냉국을 만들어 곁들이면 여름 별미로 이만한 것이 없지요. 첫 구절인 당콩(‘강낭콩’의 평북 방언)밥에 가지냉국을 곁들여 먹는 저녁 식사 장면부터 군침이 돕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휑하니 열어젖힌 문 너머로 하얀 박꽃에 박각시나방이 찾아오는 여름 저녁의 느긋한 장면은 마치 그림 같습니다. 백석의 시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시골 여름의 풍정을 어디서 대면할 수 있었을까요.

가지냉국
재료 가지 2개, 식초 4큰술, 물 6컵
양념 국간장 1큰술, 다진 파・참기름 2작은술씩, 다진 마늘・깨소금 1작은술씩,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가지는 반 잘라 길이로 4등분한 다음 김 오른 찜기에 부드러워질 정도로 5분간 찐다.
2 ①의 찐 가지에 젓가락을 찔러 넣어 가늘지 않게 찢는다. 가지가 식기 전에 분량의 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조물조물 무친 후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힌다.
3 ②의 가지에 물을 붓고 식초로 간한다.

(오른쪽) 칠월七月 백중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도에 바늘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치듯 하였는데
본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섭가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 하고
그러다는 백중물을 내는 소나기를 함뿍 맞고
호주를 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본가집을 가는 것이다
본가집을 가면서도 칠월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씨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칠월 백중에 여름을 즐기며 음식을 먹고 놀이를 벌이다
음력 칠월 보름부터는 더위도 한풀 꺾이고 힘든 농사일에서 벗어나 계절을 즐기며 여러 가지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면서 온종일 놀이를 벌이곤 했는데, 이날이 백중 百中으로 농민들의 여름 축제였지요. 특히 백석은 이 시를 통해 1930년대 농촌 여성들이 백중을 어떻게 보냈는지 정교하게 묘사했습니다. 여인들에게 무엇보
다 반가운 것은 모처럼 친정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명절 때에도 시집살이를 하느라 친정에 가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오죽 반가웠을까요. 깨죽, 문주, 섭가락(섭산적 꼬치), 송구떡(송기떡으로, 나무의 속껍질인 송기를 얇게 벗겨 가루를 내어 곡식 가루와 섞어 만든 떡)은 칠월 백중을 맞아 이웃 친지들과 나누어 먹으며 우의를 다지는 음식들이었습니다. 한량처럼 백중을 보내고 나면 초가을걷이의 고된 농사일을 견뎌낼 힘이 절로 생기지요. 노동 끝의 여름휴가였으니 얼마나 다디달았을까요.

깨죽
재료 쌀・흰깨 1컵씩, 물 6컵, 소금 적당량
만들기
1
쌀은 일어서 씻은 뒤 2시간 이상 충분히 불린 후 체에 건져 물기를 뺀다.
2 흰깨는 일어서 씻은 다음 물에 담갔다가 손으로 비벼서 껍질을 벗기고 물 위에 뜨는 흰 껍질은 체로 건져낸다. 껍질 벗긴 깨는 체에 따로 담아 물기를 빼고 길이 잘 든 마른 팬이나 냄비에 넣고 타지 않을 정도로 뒤적이며 볶는다.
3 믹서에 ①의 불린 쌀과 ②의 흰깨를 넣고 손에 알갱이가 조금 만져질 정도로 간다.
4 두꺼운 냄비에 ③과 물을 붓고 중간 불에 올려 나무 주걱으로 멍울이 지지 않도록 가끔 저으면서 끓인다. 한 번 끓어오르면 불을 약하게 줄이고, 죽이 잘 어우러질 때까지 뭉근하게 끓인다.
5 ④의 죽을 그릇에 담고, 소금은 따로 작은 그릇에 담아 기호에 맞추어 간하게 한다.

수수부꾸미
재료 수수 2컵, 찹쌀 1컵, 설탕 1큰술, 소금 1작은술, 더운물 1/2컵, 식용유 적당량 소 붉은팥 1컵, 설탕 1/2컵, 소금 1/2작은술
만들기
1 수수와 찹쌀은 각각 4~5시간 이상 불려 물을 여러 번 갈아서 씻어 체에 내려 물기를 뺀 다음 함께 섞어서 믹서에 갈아 가루를 낸다.
2 팥은 물을 넉넉히 붓고 무르게 푹 삶아서 식힌 후 으깬 다음 냄비에 설탕, 소금과 함께 넣는다. 중간 불에서 되직하게 조린 다음 식혀 팥소를 만든다.
3 ①의 수수 가루를 더운물로 익반죽한 후 오래 치대어 쫄깃해지면 동글납작하게 빚는다.
4 기름을 두른 팬에 ③의 반죽을 올린 후 갸름한 타원형으로 지진다. 뒤집어서 가운데 ②의 팥소를 밤톨만하게 빚어 올리고 반으로 접어 반달 모양으로 만든 후 가장자리를 꼭꼭 눌러 부친다.
5 ④의 부꾸미가 식기 전에 설탕을 약간씩 뿌려 그릇에 담는다.

섭산적
재료
쇠고기(우둔살) 300g, 두부 1/2모(150g), 잣가루 2작은술
양념 간장・다진 파 2큰술씩, 다진 마늘・깨소금・참기름・설탕 1큰술씩, 소금 1작은술
만들기
1
쇠고기는 연하고 기름기가 없는 부위를 준비해 곱게 다진다.
2 두부는 면포에 싸서 무거운 것으로 눌러 물기를 뺀 다음 칼을 눕혀서 곱게 으깬다.
3 볼에 ①의 쇠고기와 ②의 두부를 넣고, 분량의 양념 재료를 모두 넣은 후 끈기가 생길 때까지 섞는다.
4 ③을 한 숟가락씩 떠서 동그랗게 뭉친 다음 꼬치에 3~4개씩 꿴다.
5 석쇠에 ④의 꼬치를 올린 후 고루 익도록 가끔 자리를 움직이면서 굽고, 한 면이 익으면 뒤집어서 뒷면을 익힌다.
6 그릇에 ⑤의 섭산적 꼬치를 담고 잣가루를 고루 뿌린다.



(왼쪽) 고야古夜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 고모가 고개 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랫목의 삿귀를 들고 쇠든 밤을 내어
다람쥐처럼 밝아 먹고 은행 여름을 인둣불에 구워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위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워
굴면서 엄매에게 윗목에 두른 평풍의 새빨간 천도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고모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메추라기를 잡아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째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 안에서는 일갓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 가루 손이 되어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일가친척이 모인 풍경을 정겹게 그리다
혼사를 앞둔 막내 고모가 치장감(혼삿날 쓰는 옷감)을 가지고 와서 엄마와 둘이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하는데, 어린 백석은 곁에서 밤을 까먹거나 은행을 인둣불에 구워 먹으며 밤참을 즐깁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식구들과 함께 정겨운 최고의 날은 명절 전날 밤이지요. 부엌에서는 곰국을 끓이며 음식을 준비하고, 방 안에서는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송편을 빚습니다. 이야기꾼은 단연 할머니입니다. 솜씨를 부려 빚은 조개송편이며 달송편은 물론 작고 쫀득하게 빚은 죈두기송편까지, 흥겹고 떠들썩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장면이 마치 영상처럼 펼쳐집니다.

곰국
재료 쇠갈비(국거리용) 500g, 양지머리 400g, 양 300g, 무 600g, 대파 2대, 마늘 5톨, 물 5L, 청장또는 소금 적당량
국거리 양념 다진 파 4큰술, 다진 마늘・청장・참기름 2큰술씩, 소금 2작은술, 후춧가루 1작은술
만들기
1
쇠갈비와 양지머리는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냄비에 물을 붓고 팔팔 끓으면 쇠갈비와 양지머리를 넣고 센 불에서 끓인다.
2 양은 소금을 뿌려 바락바락 주물러 물로 깨끗이 씻는다. 다른 냄비에 물(분량 외)을 넉넉히 붓고 끓어오르면 잠깐 넣었다가 건진 뒤 검은 막의 껍질은 칼로 깨끗이 긁고 안쪽의 막과 기름 덩어리를 떼어낸다.
3 무는 껍질을 벗긴 뒤 2~3토막으로 썰고, 파와 마늘도 굵게 썬다.
4 ①에 ②의 양을 넣고 끓어오르면 불을 약하게 줄여 끓이다 ③의 채소를 넣고 2시간 정도 뭉근하게 끓인다. 이때 국물 위에 뜨는 기름과 거품은 말끔히 걷어낸다.
5 ④의 고기가 무르고 무가 아삭한 정도로 익으면 건져서 고기는 한 입 크기로 납작하게 썰고, 무는 도톰하게 나박 썬 다음 분량의 양념을 모두 넣고 버무린다. 이때 국물은 식혀서 위에 뜨는 기름은 제거한다. 6 ⑤의 국물을 다시 팔팔 끓이다가 양념한 고기와 무를 넣고 한소끔 끓인 다음 청장이나 소금으로 간한다.

(오른쪽) 구장로球場路
이젠 배도 출출히 고팠는데
어서 그 옹기 장수가 온다는 거리로 들어가면
무엇보다도 먼저, 주류판매업, 이라고
써 붙인 집으로 들어가자

그 뜨스한 구들에서
따끈한 35도 소주나 한잔 마시고 그리고 그 시래깃국에
소피를 넣고 두부를 두고 끓인 구수한 술국을
트근히 몇 사발이고 왕사발로 몇 사발이고 먹자


선짓국과 소주로 차린 술상으로 위안 삼다
1939년 백석은 신문사에 사직서를 내고 발길 닿는 대로 평안북도를 여행했는데, 막상 집을 떠나니 고생길입니다. 비를 만나 흠뻑 젖은 옷을 말려 입고 다시 길을 가는데, 산모퉁이를 돌면서 또다시 비를 만나 반나절이 넘게 빗속을 걸었으니 고역일 수밖에요. 산길에서 만난 고운 색시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며 지루함을 달래보지만, 시장기가 돌자 뜨끈한 선짓국과 독한 소주 생각이 간절합니다. 주막도 밥집도 아닌 ‘주류판매업’이라고 써 붙인 집으로 가기로 마음먹는데, 이 시대에는 그런 곳이 술과 음식을 함께 팔았나 봅니다. 어지간히 출출했는지 조리법까지 세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소주를 곁들여 왕사발에 수북이 담긴 선짓국을 먹는 백석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합니다.

선짓국
재료
선지 400g, 우거지(또는 배추나 말린 무청) 300g, 콩나물 150g, 두부 1/2모, 대파 1/2대, 청양고추 3개,
고춧가루・후춧가루・된장 적당량
국물 쇠뼈 500g, 쇠고기(사태) 200g, 물 10컵
우거지 양념 된장・다진 마늘・고춧가루 2큰술씩, 고추장 1큰술, 소금 약간
만들기
1
쇠뼈는 깨끗이 씻어 냄비에 넣고 물을 넉넉히 부어 2~3시간 뭉근히 끓인다. 중간에 쇠고기를 넣고 함께 끓이면 국물 맛이 진해진다.
2 선지는 체에 담아 흐르는 물에 헹궈 핏물을 빼고, 우거지는 삶아서 굵은 것은 적당한 길이로 썬다.
3 두부는 네모나게 썰고, 대파는 어슷하게 썬다. 청양고추는 길게 반 갈라 씨를 빼낸 후 얇게 채 썬다.
4 끓는 물에 ②의 핏물이 빠진 선지를 덩어리째 넣고 삶다가 쪼개보았을 때 속까지 익었으면 건져 찬물에 깨끗이 헹군다.
5 ②의 삶은 우거지는 분량의 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6 ①의 국물이 뽀얗게 충분히 우러나면 쇠뼈를 건져내고 된장을 푼 다음 콩나물과 ⑤의 양념한 우거지를 넣고 끓인다.
7 콩나물이 익으면 ④의 선지를 크게 잘라서 넣고 후루룩 한 번 끓인 다음 마지막에 ③의 두부, 대파, 청양고추를 넣고 불에서 내린다. 고춧가루와 후춧가루는 기호대로 넣는다.



(왼쪽) 주막酒幕
호박잎에 싸 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八모알상이 그 상 위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 한 잔盞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군침 넘어가던 여름철 보양식으로 어린 시절을 추억하다
시골 길가에서 밥이나 술을 팔고, 나그네에게 묵을 곳을 내주던 주막이 1900년대 초 어린아이의 눈에는 맛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요, 낯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을 테죠. 백석의 비상한 기억력은 여기서도 발휘되는데, 주막집 아들내미 범이가 동갑내기 친구였던 모양입니다. 특히 이 주막집은 붕어곰 요리를 잘했다지요. 요즘에는 생소한 음식이지만, 호박잎에 싼 붕어곰이 그 시절에는 여름철 보양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원래 ‘곰’은 ‘고기나 생선을 진한 국물이 나오도록 푹 삶은 국’을 뜻하는데, 호박잎에 싸서 붕어찜으로 즐기기도 했나 봅니다. 시를 읽다 보면 ‘호박잎으로 싼 붕어찜’을 올린 주안상이 머릿속에 그려져 군침이 절로 돕니다.

붕어곰(조림)
재료
붕어 4마리(10cm 길이), 호박잎 8~10장, 쌀뜨물 4컵, 대파 2대, 쑥갓 50g, 풋고추・홍고추 2개씩, 소금
약간
양념
고추장 3큰술, 된장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고춧가루 1작은술, 다진 생강 1/2작은술
만들기
1
붕어는 칼로 비늘을 긁어낸 후 지느러미를 자르고 내장을 빼 물에 깨끗이 씻는다.
2 냄비에 쌀뜨물을 붓고 분량의 양념 재료를 모두 넣은 다음 고루 섞는다.
3 ②에 ①의 손질한 붕어를 가지런히 올리고 센 불에서 끓인다. 장물이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가끔 장물을 떠서 위에 끼얹어 가며 간이 고루 배도록 한다.
4 붕어에 충분히 간이 들고 익으면 대파, 쑥갓, 풋고추, 홍고추 등을 어슷하게 썰어 올린 후 잠시 더 끓여 불에서 내린다.
5 호박잎은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파랗게 데쳐 식히거나 찜기에 찐다.
6 ⑤의 호박잎에 ④의 붕어찜을 싸서 그릇에 담는다.

(오른쪽) 고방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촌이 밥보다 좋아하는 탁주가
있어서 삼촌의 입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촌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 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 꼬치에 두부 산적을 꿰었다


유년 시절의 아지트 광(고방)과 제삿날 풍경을 노래하다
살림살이를 넣어두는 곳으로 ‘곳간’이라고 하고, ‘광’이라고도 하는 고방은 서늘하고 직사광선이 없어 음식을 보관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질동이 안에는 송기떡(송구떡, ‘칠월 백중’ 참고)이 늘 있었는데, 별미로 먹기도 하지만 먹을거리가 부족할 때 시골에서 많이 만들어 먹었던 모양입니다. 송기떡만큼이나 늘 광 안에 있던 음식이 찹쌀 탁주입니다. 찹쌀로 만든 막걸리로 ‘술’이면서 ‘밥’이었지요. 제삿날이라 모인 사촌과 시큼털털한 탁주를 들이켜며 삼촌 흉내를 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할아버지 옆에서 두부 산적을 싸리 꼬치에 꿰는 등 제사상 준비에도 한몫 단단히 하던 시인은 아무래도 어른이 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요리 박경미(동병상련) 스타일링 서영희 세트 제작 노제향 도움말 소래섭(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참고 도서 백석의 맛백석 시 바로 읽기백석을 만나다 제품 협조 담연(02-546-6464), 이도(02-722-0756), 정소영의 식기장(02-541-6480), 차이 김영진(02-333-6692)

진행 신민주 기자 사진 김성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