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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녹이는 칵테일] 술한잔, 시원하게 즐기시오
여름에 마시기 좋은 술? 뭐니 뭐니 해도 맥주다. 하지만 맥주라고 맛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맛이 덜한 맥주는 커피와 섞으면 훌륭한 칵테일로 변신한다. 이른바 게으른 이들을 위한 칵테일이지만, 그 맛은 흑맥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불어 만들거나 구하기 쉬운 칵테일도 소개한다.

싱거운 국산 맥주와 커피의 조우
에스프레소 콘 비라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죄수들이 땡볕 아래서 작업하다가 주인공 죄수 (팀 로빈스)가 교도관을 도와준 대가로 맥주를 얻어 동료와 나눠 마시는 장면을 기억하는지. 아마도 술 마시고 싶게 만드는 영화 장면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여름 하면 떠오르는 술은 뭐니 뭐니 해도 시원한 맥주가 아니던가. 그런데 ‘시원한’ 맥주? 여름이니까 아무래도 시원한 게 좋다고 하지만 한국 사람은 맥주를 유별나게 차게 마시는 경향이 있다. ‘맥주’라는 말 앞에 ‘시원한’이라는 수사를 꼬박꼬박 붙이는 것도 한국 사람만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술에 관한 어떤 책을 봐도, 마시기 좋은 맥주 온도는 라거(하면발효 맥주)가 8℃안팎(6~10℃), 에일(상면발효 맥주)이 12℃ 안팎(10~15℃)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다들 이보다 차게 마신다. 냉장고에서 꺼내자마자 벌컥벌컥 마시고, 그것도 모자라 냉동실에서 얼린 잔에 따라 마시고, 심지어 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이도 있고…. 맥주가 너무 차가우면 그 향이 제대로 살아나기 힘든 게 당연한 사실이다. 그럼 그렇게 차갑게 마시는 이들은 한 광고의 표현대로 ‘맥주 맛도 모르는’ 건가. 그럴 리가!

왼쪽부터 에스프레소 콘 비라, 다이키리, 모히토, 화이트 러시안

유독 맥주를 차게 마시는 한국인의 습관은 국산 맥주가 맛과 향이 모두 싱겁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맥주 향이 약하니 목 넘김 전후에 충분한 식감이 오지 않을 테고, 그러니 온도를 낮춰 부족한 식감을 차가운 온도가 주는 촉감으로 대신 채워 마시는 게 아닌가 말이다. 나는 한국에만 있는,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마시는 ‘소맥’이라는 칵테일도 마찬가지 원리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식감을, 이번에는 소주를 섞어 알코올 도수를 높임으로써 자극적인 알코올로 대신 채우는 것이라고. 그럼 다시 보자. 여름 하면 맥주가 떠오르는데, 국산 맥주는 싱겁다? 그럼 어떻게 할까. 목젖이 시릴 만큼 차갑게 해서 마신다?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이건 그나마 약한 향까지 죽이는 것이고…. 수입 맥주를 마신다? 나도 최근엔 독일 밀맥주가 입에 붙어 마트에서 밀맥주를 사놓고 마시곤 한다. 밀맥주가 아닌 보리맥주의 경우 벨기에의 어떤 맥주, 미국의 어떤 맥주를 이따금씩 사다 마신다. 그래도 수입 맥주를 주야장천 마시기엔 돈도 많이 들고 또 아직 ‘국산품 애용 이데올로기’를 못 벗어나서인지 양심에도 좀 찔리고…. 그래서 나는 맛이 덜한 맥주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타서 마신다.

요즘 커피 많이 마시지 않나. 어지간한 동네마다 에스프레소 파는 가게도 있고. 에스프레소를 구하기가 쉬우니 그걸 사서(집에 에스프레소 만드는 기계가 있다면 집에서 만들어서), 식혔다가 맥주 한 잔에 에스프레소 반 잔을 섞어 눈 딱 감고 한번 마셔보시라. 난 이보다 향이 풍부한 흑맥주를 마셔본 적이 없다. 맥주? 싱거운 국산 맥주여도 상관없다. 아니, 싱거운 국산 맥주가 더 좋다. 에스프레소? 원두 품종이 좋은 게 아니어도 괜찮다. 맥주와 커피의 배합이 만들어내는 그 고소하고 알싸한 향이란… 쩝!
이렇게 마시는 걸 이탈리아어로 ‘에스프레소 콘 비라’라고 한단다. ‘콘’이 영어로 ‘with’, ‘비라’가 ‘beer’니까, ‘맥주 탄 에스프레소’라는 말이다. 해 질 무렵에, 저녁 먹기 전에, 야외로 나와 이걸 한잔 마시면 매일 보아오던 눈앞의 도시가 이국적인 공간으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지금 이곳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데, 그게 차갑지 않고 따뜻한 느낌이랄까. 주의사항 하나! 에스프레소를 반드시 식힌 후 맥주에 부을 것. 뜨거운 채로 넣으면 절반 이상이 거품으로 사라지고 만다.

게을러터진 이의 막무가내 칵테일 화이트 러시안
에스프레소 콘 비라를 만들기 위해 맥주에 넣을 에스프레소를 사러 가는, 또 에스프레소를 사서 식기까지 기다리는 수고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럴 만큼 매사에 게을러터진 영화 속 캐릭터가 한 명 있다. 코엔 형제가 연출한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의 레보스키(제프 브리지스)는 정말 게으르다. 하지만 약삭빠르고 몰염치한 세상에서 그의 게으름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이내 알게 된다. 영화를 보면 위대하게 게으른 이 레보스키가 낡아 빠진 소파에 드러눕듯 기대앉아서 마시는 술이 있다. ‘화이트 러시안’은 보드카, 칼루아, 우유를 섞은 칵테일이다. 얼음을 넣으면 더 좋고. 칼루아는 주정에 설탕과 커피 원액을 첨가한 리큐어인데 마트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다. 보드카와 칼루아를 사다놓았다면, 그리고 냉장고에 우유를 상하지 않게 보관할 정도의 부지런함만 있다면 이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보드카와 우유, 칼루아를 어느 정도의 비율로 섞어야 하느냐고? 대충 섞으면 된다. 진짜다. 우유를 많이 넣으면 넣은 대로, 칼루아를 많이 넣으면 또 그런대로 다 제맛이 난다. 편하게 취할 수 있는, 친숙하고 게으른 맛인데 그게 나름 매력이 있다.

몽환적인 취기를 부르는 다이키리
좀 더 부지런하다면 다이키리를 권한다. 럼주에 라임, 혹은 레몬주스와 설탕을 넣은 건데 무엇보다 그 맛이 여름에 딱이다. 레몬이나 라임을 믹서에 간 뒤 체에 받쳐 즙만 받아 물을 약간 섞으면 주스가 되는데, 럼주와 동량으로 큰 잔에 붓는다. 같은 양의, 혹은 1.5배의 가루 설탕을 물에 녹여 넣는다. 얼음을 넣고 여러 번 젓는다. 그 위에 탄산수를 조금 부어도 좋고 안부어도 된다(여기에 민트 잎을 넣으면 모히토가 된다).
칵테일 교본에 다이키리는 흔들어준 다음 얼음을 빼고 칵테일 잔에 따르라고 되어 있는데, 난 그것보다 큰 잔에 얼음과 함께 섞어 마시는 걸 좋아한다. 단, 우리나라에선 라임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모히토의 경우는 레몬보다 라임을 넣는 게 확실히 맛있는데, 다이키리는 레몬을 써도 큰 차이가 없으니 재료는 취향껏 골라도 좋다.
다이키리의 맛은 뭐랄까, 핫 hot한 맛인데 그 느낌은 쿨 cool하다고 할까. 달면서 톡 쏘는 맛이 매우 구체적인데, 뒤에 남는 향과 취기가 몽환적이다. 다이키리에 럼주 대신 보드카를 넣으면 진한 레모네이드 맛이 난다. 이것도 그대로 마실 만한데, 이것과 럼주를 넣은 다이키리를 비교해보면 다이키리의 맛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럼주의 단맛, 어딘가 비릿한 그 단맛이 아주 잘 살아나는 칵테일이 다이키리다.

쿨하게 이국적인 위로의 술 모히토
모히토를 만들어 마시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사서 마시려고 해도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제대로 맛을 내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 다이키리에 민트 잎을 살짝 찧거나 찢어서 넣으면 모히토가 되는데, 모히토엔 레몬보다 라임이 어울린다. <마이애미 바이스>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경찰 콜린 패럴이 바텐더에게 모히토를 주문하자 바텐더가 레몬을 넣을까, 라임을 넣을까를 되묻는다. 주인공은 라임을 넣어달라고 한다. 미국인에게도 라임은 레몬보다 이국적일 거다. 주인공의 대답은 마이애미를 벗어나 낯선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며, 영화에서도 그는 그렇게 한다.
민트 잎까지 넣은 모히토의 맛과 향의 핵심도 바로 이국적인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곳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지만 여하튼 이국적인, 이국적이라기보다 ‘초국’적인 쿨함! 그 맛을 살리려면 라임이 중요한데, 국내에선 라임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어지간한 가게에선 병에 넣어 파는 라임 주스를 쓴다. 그래서 맛이 덜하다. 결론! 라임과 민트 잎을 구할 부지런함이 있다면 이 여름엔 모히토를 만들어 드시라. 그 맛과 향에 힘입어 잠시나마 갑갑한 당신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보시라.

글을 쓴 임범 씨는 대중문화 평론가이자 애주가이다. 한겨레신문사에서 18년 동안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을 지내며 술에 대한 내공을 쌓았다. 20대엔 술을 많이 마셨고 30대엔 폭음했고 40대에 술을 즐기다가 지금은 애주가가 됐다고.

 

촬영 협조 서울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02-2230-3389)

글 임범 사진 김용일 기자 담당 신문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