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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숙 씨에게 배우는 황해도 토속 음식 인절미와 고구마 떡 그리고 백보쌈김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속에는 늘 어머니의 음식이 진하게 담겨 있다. 황해도에서는 긴긴 겨울밤 출출함을 달래기 위한 간식으로 떡을 만들어 먹곤 했다. 화롯불에 살짝 구우면 더 맛이 좋은 인절미와 고구마 떡 그리고 이 떡과 함께 먹으면 입안을 시원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백보쌈김치를 소개한다.

내 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이다. ‘먹다 남길지언정 음식은 항상 푸짐해야 한다’고 생 각하는 황해도 사람들은 음식 인심이 후한편이다. 북쪽 지방을 대표하는 곡창지대인 연백 평야와 재령평야에서 쌀이 많이 생산되기 때문 에 항상 곡식이 넉넉하고 생활도 윤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떡을 자주 만들어 먹었다. 특히 찹쌀로 만든 인절미는 아침밥 대신 먹을 때도 많아 사철 집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요즘에야 떡집이나 방앗간에 가면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찰떡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예전 에야 어디 그랬나. 어머니는 일주일에도 몇 번 씩 떡 만들 찰밥을 직접 찌셨다. 하루 저녁 충분히 불린 찹쌀을 찜통에 올린 다음 소금물을 훌훌 뿌려가며 찌는데, 찰밥이 익으면 뜨거울 때 면포에 쏟아 으깬 후 절구에 담고 밥이 떡이 되도록 절굿공이로 계속 찧는다.
이때 어머니는 항상 “뜨거울 때 꽈리가 일도록 찧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나중에 음식 공부를 할 때 떡 관련 책에도 자주 나왔다. ‘꽈리가 일도록’이란 표현은 찹쌀의 밥알이 보이지 않도록 계속 찧어 표면이 매끄럽고 반죽이 곱게 뭉쳐진 상태를 말하는데, 떡이 알맞게 쳐지면 올록볼록한 공기 거품이 일면 서 꽈리 열매를 터뜨릴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나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렇게 곱게 찧은 찰떡을 온기가 식기 전에 소금물을 묻힌 칼로 적당히 잘라 거피고물이나 콩고물에 묻혀서 내면 인절미가 완성되었다.
어머니는 콩보다는 거피팥으로 고물을 만드시는 일이 많았는데, 거피고물이 콩고물보다 촉촉해 아침 식사로 먹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거피팥은 붉은팥이 아닌 검푸른 빛이 나는 팥으로 껍질이 얇아 벗기기 좋기 때문에 떡고물로 많이 쓰는 팥이다. 거피팥고물은 팥을 충분히 불린 다음 손으로 비벼 껍질을 벗긴 뒤 찜통에 앉쳐 소금물을 흩뿌려 쪄서 절구에 훅훅 찧으면 완성된다. 조금 더 얌전한 고물을 만들고 싶을땐 체에 한 번 내리면 더 곱고 보슬보슬해진다. 우리집 인절미는 황해도 사람답게 꽤 큼직하게 만들었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로, 요즘 떡집에서 파는 걸로 치면 약 4배 이상 클 것이다. 그렇게 만든 인절미 한 쪽과 녹두를 갈아 앙금을 가라앉힌 후 웃물만 따라 후루룩 끓인 묵 국물을 함께 먹으면 이른 아침에도 잘 넘어가고, 따뜻한 기운에 배 속이 든든해졌으며 그 맛도 참 잘 어울렸다.

도톰하고 큼직한 인절미와 함께 우리 집을 대표하는 떡, 특히 이맘때 자주 먹던 떡은 이름부터 재미난 ‘고구마 떡’이다. 둥글고 길쭉한 모양에 콩고물을 묻힌 색과 주먹만 한 크기가 고구마와 꽤 흡사해서 그렇게 불렀다. 고구마 떡을 만들 땐 찜통에 찐 찰밥을 꽈리가 일기 전, 그러니까 밥알이 약간 살아있을 정도로 절구에 찧어야 씹는 맛이 좋다. 그리고 안에 넣을 소가 필요한 데, 소는 팥을 무르게 삶아 손으로 비벼 으깬 후 체에 내려 면포에 담아 무거운 것으로 눌러 물을 뺀 다음, 팥이 보슬보슬해지면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해 치대서 만든다. 좀 더 고급스럽게 만들려면 이 소에 삶은 밤이나 잣, 호두 등의 견 과류를 넣으면 좋다.
찰떡과 소를 만들고 나면 먼저 찰떡을 달걀만 하게 떼어 넓게 펴고 비슷한 크기로 떼어낸 소를 가운데 올리고 찰떡을 오므린 다음 콩고물에 굴려 완성한 다. 고구마떡은 조금씩 자주 만들기보다 많은 양을 한 번에 만들어 독에 차곡차곡 담은 뒤 광에 두고 꽤 오랫동안 먹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광에 보관한 떡이 딱딱하게 굳고 얼면 그때마다 어머니는 화로에 석쇠를 얹고 노릇하게 구워주셨다. 그렇게 구운 떡은 적당히 따스하고 말랑말랑했으며, 숯불에 그을려 마치 군고구마처럼 보였다. 그 맛을 어찌 군고구마에 비할까. 가만 떠올려보니 떡 굽는 화로 옆에 바짝 붙어 앉아 한없이 행복한 눈으로 어머니와 화로 위의 떡을 번갈아보던 그 시절 그 겨울밤이 무척이나 그립다.

(오른쪽) 전통 궁중 한정식을 선보이는 한미리 본점(02-556-8688)의 대표 이남숙 씨와 그의 딸 명현지 씨가 나란히 섰다. 명현지 씨 역시 두바이의 호텔 버즈 알 아랍에서 한식 셰프로 근무한 전문 요리사. 현재는 외국 요리를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유학 중이다.

찰떡으로 만든 인절미와 고구마 떡이 겨울철 간식 역할을 톡톡히 했다면, 밥 상 위에 자주 오른 백보쌈김치는 겨울철 대표 반찬이었다. 백보쌈김치는 나박나박 썬 무와 절인 배추를 갖가지 재료와 함께 버무려 소를 만들고, 절인 배추 겉잎을 보시기에 십자로 펼쳐 깐 다음 미리 만들어둔 소를 올려 곱게 싸서 익히는 김치다. 이 김치는 양념에 고춧가루를 넣지 않기 때문에 맵지 않고 깔끔하게 즐길 수 있다.
백보쌈김치의 매력은 소를 만들 때 넣는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점에 있다. 배추, 무, 미나리, 쪽파, 배, 단감, 생률 등 갖 가지 채소와 과일만 넣으면 깔끔하게 즐길 수 있고 여기에 전복, 낙지, 새우 등을 넣으면 해물 맛이 진하게 나는 고급 김치가 된다. 만들 땐 손이 많이 가지만 상에 낼때는 보시기에 담은 뒤 배추 겉잎만 열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문밖을 나서기가 두려울 정도로 추운 이 겨울, 어머니 생각을 하며 음식을 만들고 나니 마음은 봄볕처럼 따스하다. 요즘처럼 상점이 흔하지 않고, 사먹을 수 있는 식당도 드물었기 때문에 항상 식구들 음식 준비를 미리 해두느라 정신없이 바빴을 어머니. 그 지혜로움과 부지런함을 내가 잘 배워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 내 딸도 내게서 그런 모습을 배울게 있을까? 어머니의 얼굴과 딸아이 모습이 번갈아 떠오르면서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인절미·고구마 떡·백보쌈김치 만들기

인절미 재료 찹쌀 2.4kg, 굵은소금 1큰술, 거피팥(시중에서 껍질을 벗겨놓은 것으로 구입한다) 800g
만들기 1 찹쌀은 씻어 12시간 이상 충분히 불린 다음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찜통에 물이 팔팔 끓어 김이 오르면 면포를 깔고 불린 찹쌀을 안친 뒤 물 1컵에 소금 3/4작은술을 넣어 만든 소금물을 흩뿌려준다. 충분히 잘 쪄진 후에 면포에 쏟아 잘섞이도록 으깬 후 밥알이 안 보일 정도로(꽈리가 일도록) 절굿공이로 찧는다.
2 거피팥은 충분히 불려(사진 1) 한 김 오른 찜통에 면포를 깔고 올린 뒤(사진 2) 물 1/2컵에 소금 1/4작은술을 넣어 만든 소금물을 흩뿌린다. 팥이 푹 익으면 뜨거울 때 절구에 담고 절굿공이로 훅훅 찧는다.
3 ①의 찰떡을 먹기 좋은 크기로 뚝뚝 자른 다음 ②의 고물에 버무려낸다(사진 3).


고구마떡 재료 찰떡(인절미 만드는 법 ①번 과정 참조. 단, 인절미보다 덜 찧어 쌀알이 살짝 보이면 더 맛이 좋다), 팥 2kg, 설탕・콩고물 800g씩, 꽃소금 2큰술 팥고물
만들기 1 팥은 깨끗이 씻어 냄비에 넣고 푹 잠길 정도의 물을 부어 한소끔 끓인 다음, 물을 따라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3시간 정도 삶는다. 삶은 팥 한 알을 꺼내 손가락으로 으깨보고 푹 물렀으면 체에 밭쳐 물기를 빼고 찬물을 부어 손으로 비벼 으깬 후 중간 체에 내린다.
2 ①을 면 주머니에 담고 무거운 것으로 눌러 물기를 뺀다. 보슬보슬하게 물기가 빠지면 볼에담고 분량의 설탕과 꽃소금을 넣어 질척해질 때까지 치댄다.
3 미리 만들어둔 찰떡을 달걀만 하게 떼어 손바닥에 넓게 편 다음 ②의 소를 달걀만 하게 떼어 가운데 올리고 찰떡을 오므려 타원형 모양의 떡을 빚은 다음, 콩고물에 버무려 접시에 담는다. 한 입 크기로 썰어서 내면 먹기에 좋다.


백보쌈김치 재료 배추 5포기(절임 재료 : 물 10컵, 소금 2컵), 무 2개, 미나리 1단, 쪽파 1/2 단, 배·단감 2개씩, 낙지 6마리, 생전복 3마리, 껍질 벗긴 작은 새우 500g, 대추·잣 1컵씩, 생률 300g, 실고추 1/2컵, 설탕 5큰술, 매실청 1큰술, 소금 4컵, 데친 호부추 1단 양념 재료 배 1/2 개, 양파 1개, 생강 1쪽, 간 마늘·새우젓 1/2 컵씩
만들기 1 배추는 밑동에 칼을 돌려 넣어 잎만 떼낸다. 잎의 끝 부분에서 20cm가량 잘라 물 10컵에 소금 2컵을 넣어 만든 소금물에 5시간 정도 절인 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2 ①에서 자르고 남은 배추 줄기와 무, 배, 단감은 가로세로 3.5cm, 두께 0.5cm 크기로 썬다.
3 낙지는 3~4cm 길이로 썰고, 전복은 얇게 저민다. 새우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4 생률은 껍질을 벗겨 0.3cm 두께로 저미고, 실고추는 4cm 길이로 자른다.
5 믹서에 분량의 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곱게 갈아 볼에 담고 ②, ③, ④의 재료와 고루 섞은 후 설탕, 매실청, 소금으로 간한다.
6 보시기에 데친 호부추를 열십자로 깔고 ①의 절인 배춧잎 4장을 열십자로 겹치게 얹은 후 ⑤의 소를 듬뿍 올린 다음 절인 배춧잎으로 감싼 후 호부추로 단단히 묶는다.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익히는 데, 2~3일 후 국물의 간을 봐서 싱거우면 새우젓국으로 간을 맞춘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난 2년간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한 ‘그리운 엄마표 요리’는 이달을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을 보내주 신 독자 여러분, 성심을 다해주신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촬영 협조 궁중음식연구원(02-3673-1122) 헤어&메이크업 3스토리 by 강성우(02-549-7767)

진행과 구술, 정리 이화선 기자 사진 김성용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