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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프랑스, 멕시코, 지중해의 음식문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오르다
지난해 11월 16일, 유네스코는 ‘프랑스의 미식 Gastronomic meal’ ‘멕시코 요리 Mexican cuisine’ ‘지중해의 음식 Mediterranean diet’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음식 문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 리스트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정 메뉴가 아니라 식재료를 얻는 방식, 조리하는 방법, 식사법 등 음식 문화 전반이 등재 대상이다. 이를 계기로 각국의 ‘먹는 문화’에 관한 관심이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대체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먹기에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일까?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음식 문화에 정통한 세 지역의 명사가 각각 자국의 음식을 차려 소개한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의 총지배인 디디에 벨투와즈 Didier Beltoise 씨와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최정화 이사장 부부로부터 프랑스의 미식을, 마르타 오르티스 데 로사스 Martha Ortiz de Rosas 주한 멕시코 대사로부터 멕시코 요리를, 파크 하얏트 서울의 총주방장 스테파노 디 살보 Stefano di Salvo 씨로부터 지중해 음식의 본질이 무엇인지 들어본다.

디디에 벨투와즈, 최정화 씨 부부
프랑스의 미식은 삶의 에너지를 찾고 행복을 나누는 것
“프랑스의 미식 즉 ‘Gastronomic meal’이란 음식 자체뿐만 아니라 테이블 세팅과 먹는 자세, 식탁 예절까지 모두를 포함합니다. 또 프랑스 음식은 계절별, 지역별로 나는 식재료를 사용해서 독특하고 특 별한 그 지역만의 맛을 내는 것이 가장 주된 강점이지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의 총지배인 프랑스인 디디에 벨투와즈 씨의 설명이다. 프랑스식 식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전채 요리(오르되브르)→채소를 곁들인 생선 혹은 육류 요리→치즈→디저트(데세르)로 이어지는 식사 순서, 다양한 조리법으로 완성한 섬세한 요리, 각 코스의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와인 매치(마리아 주), 격식에 맞춰 아름답게 차린 테이블 등을 꼽을 수 있다. 디디에 씨의 아내인 국내 최초의 국제회의 통역사이자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연구원 최정화 이사장은 프랑스인의 음식 문화에서 가장 부러운 부분은 바로 ‘식사 시간을 중요히 여긴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음식을 즐기면서 여유 있게 먹고, 서빙도 그에 따라 여유 있게 하며, 식사 중에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프랑스 가정에서의 저녁 식사 초대를 보면 대부분 식사 전 아페리티프 apéritif(식전주)를 마시며 얘기 나누는 것을 시작으로 식사가 끝난 뒤 코냑 같은 디제스티프 digestif(식후주)까지 하면 전체 식사 시간이 무려 4시간인 경우도 많지요. 우리는 식사를 10~15분 만에 끝내는 경우가 적잖고 ‘끼니를 대충 때운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식사 시간의 중요성을 잊고 있지만 프랑스인들은 먹기 위해 산다고 말할 정도로 식사 시간을 중요시하고, 지친 일상에서 삶의 에너지를 찾고 행복을 느끼며 즐기는 시간으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또 늘 우리 한식에서 디저트가 아쉽다고 느끼는데 여러 종류의 디저트가 있다는 점도 부러운 부분입니다. 프랑 스인들은 ‘살레 salé’ 즉 소금을 친 음식에서 ‘슈크레 sucre’ 즉 설탕이 들어간 디저트까지 다 먹어야 조화로운 식사 한 끼를 먹었다고 생각 합니다. 주요리 이후 치즈를 레드 와인에 곁들여 먹는 것도 인생의 큰 낙으로 생각하며 케이크, 타르트, 무스 등 수많은 디저트가 있고, 커피나 차를 마시며 식사를 마무리합니다. 이를 통해 카페 문화, 대화 문화가 발달했죠.”

프랑스 음식 문화는 크게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기름지고 넓은 농토에 대서양과 지중해를 면하고 있어 식재료가 풍부한 까닭에 프랑스 귀족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나는 특산물로 무척 다양하게 음식을 즐겼다. 숙련된 솜씨의 요리사가 여러 종류의 음식을 호화롭게 차려 놓으면 원하는 것을 조금씩 즐겼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는 코스식과는 다른 형태였다. 그러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 귀족이 몰락하면서 예전처럼 음식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형태는 사라졌다. 하지만 요리사들이 레스토랑을 열어 그 지역의 독특한 조리법을 지키며 음식의 역사를 이어나갔고, 점차 세대가 교체돼 사람들의 이동이 잦아지면서 서로 다른 지역의 음식이 소개되고 어떤 것은 섞이기도 하면서 조화로운 음식이 탄생하게 되었다.


1 꿩고기와 블랙 트뤼플 콩소메
2 당근과 감자그라탱을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
3 프렌치 치즈 모둠
4 얇은 크레페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프랑스 정부는 이번 문화유산 지정 신청서에 “프랑스인 중 95.2%가 프랑스식 식사가 자신의 전통 및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믿는다. 프랑스인들은 함께 식사를 하며 ‘맛’이라는 즐거움을 나누기를 좋아한다”고 적었다. 실제로 프랑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전채 요리→주요리→치즈와 디저트 정도의 3코스는 기본이고, 음식 하나하나에 맞는 와인과 빵을 매치해서 식사를 즐긴다. 드골이 대통령으로서의 고뇌를 토로할 때 “매일매일 다른 치즈를 먹을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치즈가 있는 이 나라를 어떻게 통치할 수 있는가”라고 말 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좀 더 강렬한 느낌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코냑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디디에 씨에게 “프랑스인들도 어머니에게 요리를 배우느냐”고 물었더니, “부모님께 배운다”는 고친 대답이 돌아왔다. “프랑스인들의 미식에 대한 이해는 가정교육에서 시작합니다. 어릴 때부터 마당의 텃밭에서 계절 채소와 허브를 기르고, 부모님과 함께 시장에 가서 신선한 재료 고르는 법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식재료와 요리에 자주 노출되는 거예요. 또 와인과 치즈 고르는 것, 고기를 썰고 굽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고요. 그렇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식사 준비하는 것을 많이 보고, 배우고, 따라 해보면서 경험이 쌓여 ‘이 음식에는 어떤 와인이 좋겠다, 오늘은 어떤 치즈가 어울리겠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체득하게 되는 겁니다.”

요리가 있고, 요리와 매치하는 치즈나 와인이 있고, 손님을 초대해 집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알고, 그러다 보니 테이블 세팅이나 분위기까지 신경 쓰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식생활 자체가 전반적으로 발전하게 된 셈이다.


Gastronomic meal
(왼쪽)
바닷가재와 그린아스파라거스 샐러스, 적양파 비네그레트 드레싱
(오른쪽) 식탁 위에 놓인 5코스의 메뉴 구성


테이블 세팅에도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테이블 가운데 꽃을 놓고 대칭을 이루도록 세팅하는데, 메뉴에 따라 2~5개의 와인잔이 놓인다. 테이블보, 식기류, 커트러리 등은 음식의 모양이 나 색깔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특히 와인 잔은 와인의 향과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두께와 크기의 것으로 각별히 신경 써서 준비한다. 접시 오른쪽에 나이프, 왼쪽에 포크를 놓되, 접시의 아래선과 일직선상에 놓이도록 정렬하는 게 원칙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메뉴를 작성해서 손님 앞에 놓아두는 것. 디디에 씨는 “영국 메뉴는 짧고 간단한데 비해 프랑스 메뉴를 보면 심미적으로 표현돼 있지요. 구어메 식사에서 누군가가 메뉴를 낭독하면 그것만 듣고도 꿈속 같은 환상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메뉴가 무척 중요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오늘날 프랑스식 식사가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데는 요리사들의 노력이 밑받침됐다. 전설적인 요리사 에스코피에 Escoffier와 퀴르농스키 Curnonsky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오랜 시간 총정리한 프랑스 전통 음식의 레시피를 프랑스의 수많은 셰프가 존중하고 따랐기 때문이다. 이 두 셰프는 프랑스 음식이 발전하는 데 가장 중요 한 뿌리와 근간을 만들었고, 고맙게도 이후의 요리사들은 그 전통의 바탕 위에서 계승하고 변형을 시도해온 것이다.

비즈니스 모임이나 프랑스에서 가족이 왔을 때는 프랑스식으로 먹지만 평소에는 한식을 즐긴다는 최정화 씨 부부, 한식 세계화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우리 스스로가 한식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세계인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 음식 하면 대표할 만한 것이 없지만 사람들이 프랑스를 미식의 나라로 기억 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국의식 문화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와는 달리 사회적으로 요리사가 대우받으며 자신의 직업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요. 한식의 최고 장점인 건강식 즉, 웰빙식이라는 점을 주지하여 신선한 식재료를 계절별로 다양하게 사용해 만드는 조화롭고 균형 잡힌 음식이란 점을 부각하면 좋겠습니다. 식사도 공간 전개형보다는 코스식으로 내는 시간 전 개형으로 서브하는 게 좋겠고요. 무엇보다 음식 자체는 물론 식당의 한국적인 분위기, 냄새, 위생 상태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신경 써야 지요. 구어메식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손쉽게 즐길 수 있는 패스트푸드식 접근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조언한다.


로사스 주한 멕시코 대사 부부
음식은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고리
멕시코에서는 인간의 생로병사 生老病死를 중심으로 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일종의 의식으로 음식을 먹는다. 인간이 옥수수에서 비롯됐다고 믿는 부족도 있고, 결혼하는 신부에게 인형 모양의 빵을 선물해 다산 多産을 기원하며, 마게이 maguey 즙을 발효시켜 만든 ‘풀케 Pulque’라는 술을 제사 등에 사용하고, 11월 ‘사자 死者의 날’에는 사자의 빵을 굽고 해골 모양의 사탕을 만들어 망자를 기린다. 음식을 통해 인간과 신이 연결된다고 믿는 것이다. 성북동 주한 멕시코 대사관저에서 만난 마르타 오르티스 데 로사스 대사는 남편과 함께 지난해 2월 한국에 부임했다.

그녀는 멕시코 요리책을 펼쳐보이며 자국의 음식 문화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멕시코 음식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음식 문화에 스페인의 음식 문화(300년간의 식민 통치로 인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융합’을 이루었다는점이다. 그 다음은 재료와 조리법의 ‘다양성’이다. 고추만 해도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작고 빨간 것부터 별로 맵지 않은 피망에 이르기까지 약 200여 종이 넘는다. 그뿐만 아니라 옥수수, 고추, 토마토, 카카오, 강낭콩, 아보카도, 바닐라, 주키니 호박, 고구마, 사탕수수의 원산지가 바로 멕시코다.

“멕시코는 32개의 주로 구성된 나라입니다. 각 주마다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이 무척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기본은 똑같지요. 옥수수와 ‘프리홀레스’라는 콩, 그리고 고추, 이 세 가지 식재료가 멕시코 음식의 기본입니다. 유네스코에서 멕시코 음식 문화가 세계적인 음식으로 인정받은 이유가 바로 역사적인 배경과 자연환경적인 영향으로 ‘다양하게’ 발전해오면서도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멕시코의 주식은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 손으로 편편하게 편 다음 기름 없이 화덕에 구운 ‘토르티야’다. 그리고 콩과 고추를 기본으로, 육류나 해산물, 채소, 허브 등 그 지역의 갖가지 재료를 추가해 다양한 음식을 만든다. 토르티야에 각종 재료를 올리고 다양한 살사salsa(‘소스’라는 뜻)를 끼얹은 뒤 싸먹는 음식이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타코 taco’다. 옥수수 반죽 사이에 고기, 치즈, 채소 등을 넣고 바나나 잎이나 옥수수 잎에 싸서 찌는 ‘타말리 tamale’도 대표적이다. 또한 멕시코 식탁에서 술이 빠질 수 없다. 용설란의 수액을 증류해 만든 테킬라, 테킬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 마르가리타, 그리고 와인과 맥주까지 곁들이다 보니 식탁에 앉으면 매일매일이 축제다.

“멕시코 음식의 또 다른 특징은 가족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거예요. 음식을 이유로 가족이 모이기도 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가족애를 돈독히 하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에서는 인생의 중요한 행사를 음식과 관련된 의식으로 치르기 때문에 식사가 문화적인 것뿐 아니라 사회적인 역할도 하는 중요한 매개체인 셈입니다.”


Mexican cuisine
1 아로스 콘 레체 Arroz con Leche
우유, 달걀, 롬포페(전통 술)를 밥과 섞어 만든 디저트
2 플란 Flan 우유, 꿀 등을 넣은 푸딩
3 볼리타 데 누에스 Bolita de Nuez 호두로 만든 미니 볼
4 아르골 데 라 비다 ‘생명의 나무’란 뜻의 멕시코 공예품 촛대
5 아로스 알라 메히카나 Arroz a la Mexicana 토마토 소스를 이용한 멕시코식 밥 로메리토스 Romeritos ‘로메로’라는 채소를 익힌 요리로 감자를 얹어낸다
6 포요 피빌 Pollo Pibil 삶은 닭고기와 적양파 요리
7 라하스 데 칠레 Rajas de chile ‘칠레 포블라노’라는 고추를 익힌 요리
8 타말리 Tamale 옥수수 가루에 고기, 치즈, 고추 양념 등을 넣고 반죽해 옥수수 잎에 싸서 찐 음식
9 치차론 Chicharon 돼지 껍데기를 고추 소스로 볶은 것 프리홀레스 Frijoles 붉은팥과 유사한 콩 요리
10 토르티야 Tortilla 옥수수 가루로 얇게 구운 빵
11 테킬라 Tequila 아가베로 만든 증류주


한 장 한 장 요리책을 넘기는 대사의 표정에서 아련한 향수가 느껴진다. 어릴 적 부모님과 증조부모님까지 대식구가 한집에 살았다는 그녀는 “요리하는 걸 무척 좋아하신 할머니는 식구들 입맛별로 여러 종류의 음식을 손수 준비하셨고, 사람들에게 요리도 많이 가르치셨다”며, 현재 대사관저에 할머니의 솜씨를 전수받은 요리사가 상주하고있어 ‘텍스멕스 TexMex’(텍사스의 Tex와 멕시코의 Mex가 합쳐진 말로, 미국화된 멕시코 음식을 뜻함)만 있는 서울에서 다행히 향수병을 달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대사의 요리 솜씨는? 웃으며 “먹는 걸 좋아한다”고 답하는 그녀가 요리를 배워 누군가에게 직접 대접한 때는(업무로 바쁘기도 하고, 실제 요리할 기회가 많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현재의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이란다. 멕시코에는 ‘남자를 정복하려면 그 사람의 뱃속을 정복하라’는 말이 있는데, 요리 잘하는 여자가 좋은 남자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란다!


스테파노 디 살보 씨
건강식을 넘어 치유식으로 각광받는 지중해 음식

(오른쪽) Mediterranean diet
1
구운 채소와 참치 스테이크 Tuna Steak baked Vegetable 허브를 묻혀 구운 참치 스테이크에 토마토 소스에 익힌 각종 채소를 곁들인 요리
2 그리스식 샐러드 Greek Salad 페타 치즈와 레몬, 케이퍼, 올리브, 오레가노, 토마토 등에 올리브유를 뿌려 만든 그리스의 대표 샐러드
3 쿠스쿠스를 곁들인 양고기 타진 Lamb Tagine with Cous Cous 향신료를 넣고 익힌 모로코식 양고기 요리에 쿠스쿠스와 요거트 소스를 곁들인다


지중해식 요리는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지중해 연안 지역의 음식을 뜻한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지중해식 요리등재를 공동 신청한 나라는 그리스, 모로코, 스페인, 이탈리아의 4개국. 연중 온화하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선선한 바람까지 부는 쾌적한 자연환경이 특징인 지중해 연안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질 좋은 식재료를 풍부하게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4개국 모두 지리적여건과 자연환경이 유사해 사용하는 재료도 엇비슷하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총주방장 이탈리아인 스테파노 디 살보 씨는 “지중해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지역보다 좀 더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채소와 과일, 풍부한 해산물, 질 좋은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 치즈, 요구르트, 허브 등이 대표적인 재료죠. 기본 조리 방식도 원재료의 맛과 특징을 살려 최대한 빠르고 단순하게 조리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요리의 핵심이 다양한 소스에 있다면, 이탤리언 요리를 비롯한 지중해식은 재료 자체가 좋은 소스이기 때문에 양념을 많이 첨가하지 않고 신선하게 조리하는 편이지요.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부담이 없어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스테파노 셰프의 말처럼 지중해 음식의 강점은 ‘건강식’이라는 것. 스페인의 올리브유와 그리스의 요구르트는 몇 년 전 미국 <헬스>지가 선정한 세계 5대 건강 식품이기도 하다(우리나라의 김치, 일본의 콩, 인도의 렌틸콩과 더불어).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코발트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집 앞마당에서 투명한 햇살 아래 온 가족이 둘러앉아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음식을 즐기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큰 접시에 요리를 넉넉하게 담아내면 각자 작은 접시에 조금씩 음식을 덜어 먹는다. 프랑스가 격식에 맞춰 고급스럽게 코스로 나오는 음식과 와인을 침착하게 음미한다면, 지중해 지역에서는 먹는 것 자체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어울리는 것’에 더 중점을 둔다고 할까. 그런 이유로 문화유산 등재 신청서에서 위의 4개국은 “지중해 지역에서 식사는 사회적 교류이자 축제”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가 고향인 아버지와 나폴리가 고향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스테파노 셰프는 어려서부터 지중해식 음식을 몸에 익혀왔다. 일요일이나 명절이면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야외에 널찍한 테이블을 내놓고 할머니나 어머니의 시크릿 레시피로 만든 음식을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흥겹게 즐기다 다 함께 성당에 가곤 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음식은 건강을 넘어 마음까지 치유하는 힘이 있다. 그에게 있어 소울 푸드 soul food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뇨키 알라 로마나 Gnocchi alla Romana’.세몰리나 semolina(거칠게 빻은 밀가루로 드라이 파스타의 주재료)로 만든 뇨키에 파르메산 치즈를 솔솔 뿌려 오븐에 구운 음식이다.

스테파노 셰프가 차린 지중해 음식도 그런 맥락에서 구성되었다. 큼직하게 썬 페타 치즈와 신선한 레몬, 케이퍼, 블랙 올리브, 오레가노, 토마토, 오이, 피망, 양파에 질 좋은 올리브유를 뿌려 아주 심플하게 만든 샐러드는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리다. 또 말린 자두를 넣고 익힌 양고기 타진 tagine(모로코 전통의 도기 냄비인 타진에 만든 일종의 스튜)은 모로코의 대표 요리로 커민이나 사프란 같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해 향미가 강한 편이다. 양고기 타진은 양파, 코리앤더, 민트 등을 넣은 간단한 샐러드와 쿠스쿠스에 요거트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허브를 묻혀 심플하게 구운 참치 스테이크에는 가지, 호박, 파프리카, 건포도, 올리브 등 토마토 소스로 익힌 채소를 곁들인다. 이 채소 요리는 스페인식 스튜와 비슷하다.


취재 협조와 도움말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02-555-5656), 주한 멕시코 대사관(02-798-1694), 파크 하얏트 서울(02-2016-1234)


글 구선숙 기자 사진 박찬우, 김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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