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그리운 엄마표 요리]김화엽 씨에게 배우는 금산 토속 음식 아욱죽, 호박잎국, 무청김치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 가족의 배를 든든히 채우기 위해 어머니의 지혜를 담아 만든 충남 금산의 토속 음식을 소개한다. 늦가을까지 쑥쑥 자라는 아욱으로 끓인 죽과 호박 넝쿨을 갈무리할 즈음 끓여 먹는 호박잎국, 채 여물지 않은 무청만 따다 담근 무청김치 모두 우리네 시골에서 흔히 먹던, 촌스럽지만 건강한 음식이다.
이맘때, 그러니까 추수 전에 먹었던 어린 시절 음식을 생각해내려니까 배고픈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50여 년 전 내가 자랄 때는 흔히 ‘보릿고개(묵은 곡식이 떨어지고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기간)’라 부르는 늦봄과, 곡식이 채 여물기 전인 초가을이면 항상 먹을거리가 귀해 배가 고팠다. 우리 집이 유달리 가난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농촌 대부분의 가정이 그랬다. 내가 자라면서 주로 먹던 거라고는 온통 푸성귀뿐이었다. 내 고향 충남 금산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생선이라고는 여름에 자반, 겨울에 동태(그나마 한 달에 한 번 상에 오르기 어려웠고), 제사상의 조기가 전부였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역시 잔치나 명절, 제사 때나 겨우 구경할 수 있었다.
대신 산과 들에 흔히 자라 실컷 먹을 수 있는 것이 푸성귀였다. 봄나물을 시작으로 여름철에는 열무, 가지, 오이, 호박 등을 주로 먹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렇게 흔하던 푸성귀마저 귀해지는 탓에 어머니는 볕 좋은 날 온갖 나물을 말려두셨지만 그 맛이 어디 제철 싱싱한 채소만 할까. 무성하던 잎들이 노랗게 물들고 낙엽이 될 때까지 밭에서 유일하게 푸른 잎을 보이는 채소가 아욱이다. 아욱은 줄기를 똑똑 끊어 먹고 며칠 뒤 밭을 보면 다시 풍성하게 자라 있을 정도로 생장성이 좋아 동네 어느 집이나 길러 먹던 가을철 비상 채소다. 이 아욱을 따다가 줄기가 억센 것은 잎만 따고, 남은 줄기의 껍질을 벗긴 뒤 바가지에 물을 붓고 바락바락 주물러 치대면 푸른물이 빠져나오는데, 이 과정을 2~3번 반복해야 아욱의 풋내가 빠지고 연해져 먹기 좋은 상태가 된다. 손질한 아욱을 된장 푼 물에 넣어 국을 끓이거나, 그 국에 쌀을 넣어 죽으로 끓여 먹으면 맛이 꽤 좋았다. 어머니는 추수 전 쌀이 귀해지면 주로 죽으로 끓여주셨는데, 그때 먹던 어머니의 죽에는 요즘 내가 끓이는 것과 달리 보리새우가 들어 있지 않았다. 자반도 귀하던 집에 보리새우가 있을 리 만무하다. 보리새우를 넣은 아욱죽은 최근 들어 먹기 시작한 이를테면 ‘고급’ 아욱죽인 셈이다.

봄에 심은 호박은 여름내 노란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반복한다. 이때 일부만 따 먹고 몇 개는 초여름부터 그대로 두면 크고 노랗게 익어 단맛을 내는 늙은 호박이 되었다. 호박 넝쿨은 애호박이 늙은 호박으로 익어가는 동안에도 듬성듬성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반복한다. 그동안 우리는 새로 달린 애호박을 따다(늙은 호박으로 기르는 것은 그대로 두고) 국이나 찌개를 끓이거나 나물로 볶아 먹었다. 추수할 즈음이면 밭작물도 갈무리를 시작하는데, 잘 여문 늙은 호박은 따다가 서늘한 광에 보관했다가 떡이나 죽을 해 먹고 누렇게 변한 호박잎은 거둬서 퇴비로 만든다. 그중에서도 푸른빛을 띠는 호박잎만 고르고, 듬성듬성 달린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어린 호박을 넣어 끓이는 것이 호박잎국이다. 어머니의 국이 특별했던 건 호박을 칼로 썰지 않고 칼등으로 두들겨 거칠게 부순 호박을 넣는 점이다. 그 이유를 여쭙지 않아 알수 없지만 요즘 나도 호박잎국을 끓일 때면 일부러 어리고 여린 애호박을 찾아 시장을 헤매고, 그 호박을 도마 위에서 두들겨 으깨듯이 부숴 넣는다. 반듯반듯 예쁘게 썬 호박을 넣은 국은 어머니의 호박잎국이 아니다.
무청김치는 한여름에 심은 김장 무와 배추가 다 여물기 전, 그러니까 여름 김치인 열무김치나 오이소박이가 다 떨어질즈음 담가 먹던 김치다. 김장 때 사용할 무가 자라는 데 지장이 없도록, 땅 위로 자란 무청만 상추 솎듯이 똑똑 따다가 열무김치와 비슷한 양념에 버무려 김치를 담근다. 씹는 맛은 열무김치보다 질기고 거칠며, 씹을수록 쌉싸래한 맛이 배어나 감칠맛은 떨어지지만 푹 익으면 개운하고 깊은 맛을 낸다. 무청김치는 그냥 먹어도 맛있고 밥에 넣고 쓱쓱 비벼 먹거나 기름 한 방울을 넣고 지져서 반찬으로 먹어도 맛이 그만이었다.
그리고 또 무얼 먹었나. 우리 집 앞뜰과 뒷산에 유독 감나무가 많아 감 익는계절이 가장 풍족했던 기억이 난다. 감 외에도 여름엔 감자, 가을 겨울엔 고구마와 밤을 삶아 간식으로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먹을 수 있는 식품도 귀하고, 음식을 만드는 방법도 참 간단하던 시절이다. 그래도 지금과 비교해보면 마음만은 부자였다. 배고프고 먹을거리가 귀했을 때도 ‘이 계절이 지나면 곧 저 나무에 감이 달리겠지. 저 감이 익으면 우리 광에 쌀도 그득 차겠지. 그럼 어머니가 맛있는 밥상을 차려내시겠지…’라는 자연의 섭리를 어린시절부터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의 가마솥 뚜껑 여는 소리가 그리 반갑기만 하던 내 어린 시절, 즐겨 먹던 음식을 소개하고 나니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것만 같다. 아욱죽, 호박잎국, 무청김치, 이 세 가지 음식은 만드는 법도 무척 간단하고, 재료가 유별나지도 않으며, 요즘 사람들 건강에 이로울뿐더러, 맛도 꽤 괜찮은 편이다. 꼭 한 번쯤 시도해보길 권한다.

(오른쪽) 자연에서 얻은 제철 채소만큼 건강한 식재료가 또 있을까. 어린 시절 먹고 자란 충청남도 금산의 토속 음식인 아욱죽, 호박잎국, 무청김치를 소개한 김화엽 씨.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합니다.


아욱죽, 호박잎국, 무청김치 만들기

호박잎국
재료 호박잎 200g, 아주 어린 호박 1~2개, 쌀뜨물 6컵, 멸치・다시마 50g씩, 된장2큰술, 고추장 1큰술, 대파 1대, 다진 마늘 1/2큰술, 청장(국간장) 적당량

만들기
1
호박잎은 줄기의 껍질을 벗긴 다음 맑은 물에 깨끗이 주물러 씻어 푸른 즙이나오면 헹궈내며(2~3회) 부드럽게 만든다.
2 어린 호박은 반으로 잘라 도마 위에놓고 칼등으로 두들겨 부순다.
3 냄비에 쌀뜨물을 붓고,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여 우러나면 멸치와 다시마는 건져낸다. 이 국물에 된장, 고추장을 풀고 호박잎과 ②의자른 호박을 넣고 끓어올라 맛이 들면, 어슷 썬 대파를 넣고 다진 마늘을 넣은 뒤
청장으로 간을 맞춘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불을 끄고 담아낸다.


아욱국
재료 쌀 1컵, 쌀뜨물 8컵, 아욱 200g, 보리새우 50g(조갯살 100g), 된장 2큰술, 고추장 1큰술, 송송 썬 실파 1큰술, 다진 마늘 1/2큰술, 청장 적당량

만들기
1 쌀은 씻을 때 첫 물은 버리고 두 번째 물부터 쌀뜨물을 받아놓고(약 8컵정도) 쌀은 1시간 이상 충분히 불린다. 아욱은 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맑은 물에 깨끗이 주물러 씻어 푸른 즙이 나오면 헹궈내(2~3회) 부드럽게 만든다.
2 보리새우는 마른 팬에 살짝 볶아 면포에 담은 뒤 손으로 살살 비빈 다음 체에 밭쳐 불순물을 걸러낸다.
3 냄비에 쌀뜨물을 붓고, 된장과 고추장을 푼다. 불린 쌀을 넣고 끓이다가 보리새우와 아욱을 넣고 쌀이 뭉근하게 어우러지면 송송 썬 실파와 다진 마늘을 넣어 한소끔 끓인후 청장으로 간을 맞춘다.


무청김치
재료 무청 3kg, 굵은소금 1컵, 쪽파 300g, 마늘 3통, 생강 1톨, 붉은 고추 300g, 양파 2개, 고춧가루 1컵, 액젓 1/2컵, 소금 약간 밀가루 풀 재료 물 3컵, 밀가루 1큰술

만들기
1 무청은 손질해서 깨끗이 씻은 다음(비비거나 뒤집지 말고 살짝 씻는다)굵은소금을 슬슬 뿌려 절이고(약 2시간 정도 숨이 죽을 정도만 절인다. 이때 뒤집거나 비비면 풋내가 나므로 주의한다), 쪽파는 다듬어 씻어놓는다.
2 냄비에 물 3컵과 밀가루 1큰술을 넣어 잘 푼 다음 한소끔 끓여서 식힌다.
3 절인 무청을 흐르는 물에 살살 씻어 소쿠리에 밭친다.
4 믹서에 밀가루 풀, 마늘, 생강, 붉은 고추를 넣어 곱게간다.
5 큰 그릇에 ④의 믹서에 간 것을 옮겨 담고 양파는 채 썰어 담는다. 고춧가루, 액젓을 넣어 한데 섞는다.
6 ⑤의 양념에 씻어놓은 무청과 쪽파를 살짝 버무려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익혀서 먹는다(양념한 무청의 간을 보아 싱거우면 소금을 살짝 뿌린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