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초파일이 지나면 절의 온 식구와 불자들이 총동원되어 찻잎을 딴다. 이 무렵은 차의 새순에 가장 원숙한 맛이 돌 때. 가운데 뾰족한 순이 하나 있고, 그 옆으로 벌어진 두 개의 잎이 있는 상태가 최고의 맛을 낸다. 이런 잎을 창 하나에 깃발이 두 개라는 뜻으로 ‘일창이기一槍二旗’라 부른다. 스님은 이 원숙한 맛이 ‘한국차의 이정표’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따온 차는 그날로 멍석에 널어 말리고 가마솥에 덖기 시작해야 한다. 차는 만드는 법에 따라 찐차, 완전발효차, 반발효차, 덖음차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덖음이다. 찐차는 자칫 비릿내, 풋내가 날 수 있고, 발효차는 발효한 향이 날 수 있는데 무쇠 솥에 덖어서 만든 우리 차는 고소하고 담백하며 맛이 깊다. 그 향을 스님은 ‘다정다감한 향’이라 이른다. 차는 5월 20일쯤 되어야 따기 시작한다는데, 시기를 맞추지 못해 그 과정을 눈으로 보지는 못해도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우선 갓 따온 찻잎을 멍석에 널어 찻잎에 남은 태양열을 식힌다. 이것을 아주 뜨겁게 달군 가마솥에 넣고 민첩하게 덖는다. 찻잎이 뜨거워지면 멍석에 일제히 쏟아 멍석에 비빈다. 이때 힘을 잘 조절해야 찻잎이 으깨지지 않고 골고루 동그랗게 말린다. 우리가 먹는 찻잎을 자세히 보면 잎에 꼬임이 있는데, 이 비비는 과정 때문에 생긴 것이다. 비비다가 손바닥에 끈적함이 느껴지면 덩어리지지 않게 잘 펼쳐서 말린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가마솥에 넣고 덖는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는 약간 약한 온도에서 덖는다. 찻잎이 뜨거워지면 다시 멍석에 쏟아 비빈다. 세 번째 덖을 때는 온도도 더 낮추고 멍석에 비비는 것도 아주 부드럽게 해야 한다. 이때는 서로 유착이 심하니 멍석에 펼칠 때 정성 들여 잎을 서로 떼어놓는 것이 관건이다. 그 후에 덖는 것은 차의 상태에 따라 덖는 횟수와 비비는 것을 조절한다. 덖음차는 차의 상태에 따라 8~12번을 덖는다. 마지막으로 센 불에 슬쩍 볶아내는 것으로 차가 완성된다.
이리 귀하게 만든 차를 어찌 그냥 마실까 싶어 몸가짐이 조심스럽기만 한데, 스님은 ‘누워서만 마시지 않으면 된다’ 하신다. 차를 우릴 수 있는 다관과 좋은 차, 찻잔만 있으며 마시는 것이 차라며 스님은 다도를 걱정하지 말고 세 가지만 알고 있으라 이르신다. “정조결精燥潔이면 다도진의茶道盡矣니라.” 초의선사가 <다신전>에서 한 말로,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저장할 때 건조하게 하며, 마실 때 청결하게 하면 다도는 완성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다도를 어렵게만 여기는 것은 일본에서 온 형식적인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차를 마시며 그것을 따를 필요는 없다.
“팽주烹主의 행복을 아시는가?” 팽주는 차를 끓이고 대접을 하고 치우는 것까지 차 마시는 일을 주관하는 사람을 말한다. 누구든지 팽주가 되면 찻주전자에 물을 부을 때 올라오는 그윽한 향이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뜨거운 물이 찻잎과 만나는 순간 아련하게 올라오는 그 향은 가히 팽주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팽주는 누구든지 될 수 있다. 음식은 어머니가 만들지만 차는 아버지도, 자식도 팽주가 되어 만들 수 있다. ‘차나 한잔 하지’라는 말로 커피나 탄산음료만 찾지 말고, 직장에서도 상사나 사원이나 돌아가면서 팽주가 되어 좋은 차를 널리 마셨으면 하는 것이 지허스님의 큰 바람이다.
|
|
찾아가는 길 전남 순천시에 위치한 금둔사는 호남고속도로 승주IC로 나와 낙안읍성으로 가는 857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금산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낙안읍성에서부터 절 이정표가 나온다. 061-754-6942, www. geumdunsa.org
주변 관광지 금둔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넓은 평야에 축조된 성곽으로 성 내에 관아와 1백여 채의 민가로 구성되어 있다. 성안을 산책하며 민가와 대장간, 관야 등을 둘러볼 수 있고, 민속촌처럼 토속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곳도 있다. 읍성이 한눈에 보이는 성곽 위를 걸어보는 것도 필수 코스다. 입장료 2천 원. 문의 061-749-3347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