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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엄마표 요리]김재영 씨에게 배우는 경기도 토속 음식 쑥콩죽과 무짠지 그리고 감자 볶음
봄날 경기도에서는 고소한 콩죽에 쑥을 넣어 끓인 쑥콩죽을 별미로 즐겨 먹었다. 싱그러운 봄기운이 담긴 쑥콩죽에는 묵은 김치보다 새콤달콤한 짠지무침과 윤기 나는 감자볶음이 제격이다. 어머니의 지혜로 차린, 봄을 닮아 산뜻하고 가벼운 밥상.
5월 신록의 아름다움이 더할수록 우리의 밥상도 무언가 새로운 맛을 찾게 마련이다. 이맘때면 꼭 떠오르는 음식이 있는데 어머니가 뚝딱 만들어주시던, 지금도 봄이면 잊지 않고 해 먹는 쑥콩죽과 쑥버무리가 그것이다. 먹을거리가 흔치 않던 내 어린 시절에는 그 계절 땅에서 나는 것으로 죽이나 전, 떡을 해 먹는 것이 유일한 간식거리였다.
어려운 시절에도 제철 재료로 늘 풍성한 밥상을 차려내신 내 어머니의 고향은 경기도로 지금의 고양시 현천동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고향 지명을 ‘가무내’로 부르곤 하셨는데, 이 이름은 꽤 멋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옛날 어느 학자가 너무 가난해서 글을 쓸 종이가 없었단다. 그래서 가랑잎에 글씨 연습을 했는데, 봄이 되어 얼음이 녹아 흐르면 그가 겨울 동안 연습했던 가랑잎들이 씻겨 검은 물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가무내’ ‘거무내’ ‘먹골’ 등으로 불렀다. 그러다 훗날 한자로 검을 현 玄 자와 내 천 川 자를 써서 지금의 현천동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외할머니를 일찍 여읜 어머니는 이 가무내에 있는 큰외삼촌 댁에서 살다 서울로 시집을 왔다. 내가 방학이면 늘 찾아가던 큰외삼촌 댁은 서울에서 꽤 가까운 곳이었는데 늘 ‘시골집’이라 불렀다. 큰외삼촌 댁에 가려면 버스 종점인 수색동에서 고개를 몇 개 넘어 걸어가야 했는데, 그 길 풍경이 깊은 산골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특히 이맘때면 가는 길마다 쑥이 참 많이도 자라 있었다. 어머니는 언 땅을 뚫고 올라온 파릇파릇한 쑥이 눈에 띌 때마다 ‘맨 처음 올라온 쑥이 몸에 좋다’고 하시며 쑥을 뜯어다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이기도 하고, 쑥버무리나 쑥갠떡 등 다양한 쑥 요리를 만들어주셨다. 그중 특별히 어머니의 솜씨가 빛나던 음식이 바로 쑥콩죽이다. 콩을 갈아 쌀과 함께 쑤는 콩죽은 어느 집이나 흔히 즐기는 음식이었지만, 쑥을 넣어 끓인 쑥콩죽은 별로 접하지 못했다. 아마 우리 집만의 별미가 아니었을까. 나른한 봄날 고소하면서도 쌉싸래한 쑥 향이 도드라지는 쑥콩죽 한 그릇을 비우면 파릇하게 돋아난 쑥 기운을 받아 금세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특히 봄비 오는 날 대청마루에 앉아 먹던 그 기막힌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왼쪽) 대학에서 약선 요리를 전공한 김재영 씨는 현재 청년여성문화회관에서 전통 혼례 음식을 담당하고,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외국인들에게 음식을 가르치는 강사로 일하고 있다.

쑥콩죽을 쑤려면 우선 흰콩을 물에 불려 살짝 삶은 뒤 껍질을 벗겨야 한다. 이때 콩 삶은 물은 즉시 따라버리고 다시 새 물을 부어 이 물속에서 껍질을 벗겨야 비린 맛이 나지 않고 더욱 고소하다. 이렇게 껍질을 벗긴 콩을 믹서에 가는데 어머니가 맷돌에 갈아 만들어주시던 그 거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콩이 너무 곱게 갈리기 직전에 믹서 작동을 멈춘다. 그러곤 갈아놓은 콩물을 가만히 뒀다가 윗물만 냄비에 부어 쌀과 함께 끓인다. 쌀알이 어느 정도 퍼지면 가라앉은 콩앙금을 넣는데, 이렇게 해야 죽을 쑤는 동안 바닥에 눌어붙지 않는다. 쑥은 5월 중순 전에 난 것이 질기지 않고 죽을 쒀도 색이 곱다. 쑥은 다듬어서 살짝 데친 뒤 제일 마지막, 불을 끄기 직전에 넣는다.
이 쑥콩죽에 꼭 곁들여 먹던 음식이 바로 감자볶음이다. 큰외삼촌 댁에서 봄에 씨감자로 쓰고 남은 감자를 가져다 씨눈을 도려내고 기름을 둘러 달달 볶다가 간장, 파, 마늘을 넣고 끓인 후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먹으면 참 맛있었다. 또 함께 먹던 음식이 짭조름하고 아삭아삭한 짠지무침과 물짠지다. 김장 김치가 물렸을 즈음 소금에 절여둔 짠지무를 꺼내서 채 썬 다음 물에 우려 짠맛을 뺀 후 갖은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짠지무침, 그리고 알맞게 썬 짠지무를 시원한 물에 동동 띄운 물짠지와 함께 먹는 쑥콩죽의 맛은 가히 일미였다.
우리 집은 지금도 봄이 되면 이 음식들을 자주 먹는다. 항상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방법 그대로 만들려고 애쓰는데도 맛은 어머니가 해주신 것과 같지 않다. 아마도 콩을 맷돌로 갈지 않고, 깨끗한 땅에서 직접 뜯은 여린 쑥이 아니고, 씨감자가 아니고, 당원이라 부르던 뉴슈가나 신화당 대신 설탕을 넣기 때문일 것이다. 아! 감자볶음의 간도 어머니는 양조간장 대신 직접 담근 조선간장으로 내셨다. 비단 재료 탓만 할 수는 없다. 자식에게 다양한 음식을 먹이려고 부족한 재료로 이러저러한 요령을 부린 어머니. 어머니의 그 정성과 마음까지 헤아린다면 지금의 나는 한참 부족한 것이 분명하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합니다.

쑥콩죽.짠지무침.물짠지.감자볶음 만들기


쑥콩죽

재료 쌀 200g, 흰콩 100g, 쑥 50g, 물 10컵, 소금 약간
만들기 1 쌀은 깨끗이 씻어서 1시간 동안 불리고, 흰콩은 씻어서 물에 담가 6시간 동안 불린다. 2 불린 콩은 냄비에 담고 콩이 잠길 만큼 물을 부어 콩 비린내가 가실 정도로만 살짝 삶아 물을 따라 버린다. 여기에 찬물을 부어 손으로 비벼 콩 껍질을 벗긴 후 찬물에 담가놓는다. 3 쑥은 어리고 연한 것으로 구해 깨끗이 다듬어 잎만 떼고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넣었다 꺼내 찬물에 주물러 씻은 뒤 물기를 짠다(데친 쑥은 주물러 씻어서 푸른 물을 빼야 풋내가 나지 않는다). 4 ②의 콩을 믹서에 담고 물 10컵을 넣어가며 거칠게 갈아 그릇에 담는다. 콩이 가라앉을 때까지 가만히 두었다가 윗물만 따라 솥에 붓는다. 5 ④의 윗물에 불린 쌀을 넣고 끓여서 쌀알이 퍼지면 남은 가라앉은 콩 앙금을 붓고 저어가며 죽을 쑨다. 6 콩과 쌀이 거의 다 익으면 ③의 쑥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먹을 때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짠지무침
재료
무짠지 300g, 실파 10g, 마늘・깨소금・참기름 5g씩, 고운 고춧가루 15g
만들기 1 무짠지는 가늘게 채 썬 다음 냉수에 담가 짠맛을 빼고 물기를 꼭 짠다. 2 실파는 송송 썰고 마늘은 다진다. ①에 고춧가루, 파, 마늘,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무친다. 3 물짠지는 알맞게 썬 무짠지를 생수에 담그고 잘게 썬 실파나 청양고추를 띄운 뒤 약간의 식초를 넣어 먹는다.
* 무짠지 만들기 갸름하고 단단한 무 25kg과 굵은소금 5kg을 준비한다. 무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독에 담는 데 이때 소금과 무를 번갈아가며 켜켜이 담는다. 독 안에 무가 80%쯤 차면 무가 보이지 않도록 소금을 듬뿍 뿌린다. 3~4일 정도 지나면 무 위에 무거운 누름돌을 얹고 남은 소금에 물을 타서 끓여 식힌 뒤 누름돌이 완전히 잠길 정도로 붓는다. 한 달 이상 지난 후 먹는다.


감자볶음

재료 감자 500g, 대파 50g, 마늘 10g, 간장 75g, 식용유・설탕 10g씩, 깨소금 또는 볶은 통깨・실고추 약간씩, 물 적당량
만들기 1 감자는 껍질을 벗기고 사방 2.5cm, 두께 1cm 크기로 자른다. 파는 가늘게 채 썰고 마늘은 다진다. 2 냄비를 뜨겁게 달궈 기름을 두른 후 감자를 볶는다. 3 감자 겉이 투명하게 익어가면 재료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분량의 간장과 설탕을 넣어 끓이다가 약한 불로 줄여 은근히 조린다. 양념이 잦아들면 파와 마늘을 넣어 한번 섞은 뒤 그릇에 담고 깨소금이나 볶은 통깨, 실고추 등을 뿌려 장식한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