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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요리할 2030 한식 셰프 6인 한식, 문화 코드로 거듭나다
한식 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식 레스토랑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존재가 셰프다. 엄청난 노동력과 창조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그들이 만들어낸 또는 만들어갈 한식은 어떤 모습일까. 양식이나 일식에 견주어볼 때 비교적 변방에 머물던 한식 셰프의 인기가 급부상 중인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2030 한식 셰프 6인에게 물었다. 전 세계인의 입맛은 물론, 마음까지 사로잡을 한식은 무엇인가요?

(왼쪽부터) 문영한, 최현정, 이환의, 김민지, 고재철, 김병진 셰프. 남성 셰프가 입은 의상 모두 A.POLE 비즈니스 라인, 도자기는 모두 광주요, 유리병은 화요, 화이트 냄비는 르크루제 제품.

한식 셰프 6인에게 물었습니다
1
요리를 직업으로 삼게 된 동기는? 왜 한식을 선택했나?
2 내 직업을, 혹은 한식 선택을 후회한 적이 있나?
3 일 때문에 가장 행복한 기억은?
4 요리사에게 필요한 덕목 세 가지를 꼽는다면?
5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책임과 각오는?
6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7 잊을 수 없는 추억 속 요리는?
8 고객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오른쪽) 전복 밀쌈 냉채와 구절판

“전통은 지키고 프레젠테이션에 변화를 준 음식이다” 온달 문영한 셰프
1 조리학과 재학 시절 우연히 워커힐 호텔 한식당 온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 후, 10년간 온달에 근무하고 있다.
2 아직까지 후회한 적은 없지만 굳이 꼽자면 이 일을 시작할 때 이탤리언이나 프렌치, 일식을 선택한 이들이 한식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면 퍽 서운했다. 그때만 해도 한식은 외식 산업으로서 경쟁력이 없는 음식,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셰프로서의 발전 가능성도 적은 분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0년 만에 상황이 뒤바뀌어 요즘은 전통 한식을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셰프가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다.
3 처음으로 고객에게 칭찬을 받던 날이다. 한 일본 여성 고객이 내가 만든 대게 요리로 식사를 마친 뒤 나를 찾아와 지금까지 먹어본 게 요리 중 최고였다는 칭찬을 하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때 내가 만든 음식이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고, 내 직업에 자부심을 느꼈다.
4 인내, 성실, 정직한 마음.
5 우리 음식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한식 셰프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한식 세계화를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울 때가 있다. 한식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면서 조금씩 노력하면 언젠가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음식이 될 거라 확신한다. 전통 한식은 그만큼 우수하다.
6 구절판. 재료의 색과 맛의 조화부터 먹는 방법까지, 국제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음식이다.
7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콩 칼국수.
8 만든 사람의 마음과 정성을 생각하며 먹으면 더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워커힐 호텔 온달(02-450-4518)의 문영한 셰프가 만든 전복 밀쌈 냉채(위)와 구절판. 매콤한 겨자 소스 대신 홍시 유자 소스, 들깨 소스, 완두콩 소스 등 운산에서 개발한 소스와 함께 서브한다.


(오른쪽) 새우젓으로 맛을 낸 닭고기 바베큐

“우리의 품격만큼 값비싼 미식이다” 광주요 그룹 김병진 셰프
1 고교 시절 은사님의 권유로 조리과에 진학했다. 실습생으로 처음 주방에 들어섰을 때 일사 분란한 움직임에서 나오는 멋진 음식 그리고 요리를 즐기는 고객, 그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막연히 좋았다.
2 후회한 적은 없다. 다만 가족과 보내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3 해외 행사를 준비해 한식을 선보인 자리, 맛있게 먹는 외국인을 볼 때 가장 보람 있다.
4 새로운 재료와 맛을 찾아떠나는 모험가의 자세, 음식과 그릇 그리고 공간의 조화를 꾀하는 예술가적 자세, 기능과 이론을 겸비한 장인의 자세가 필요하다.
5 세계화라는 큰 명제를 풀어내려면 우리가(셰프와 고객) 먼저 변화해야 한다. 한식 세계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채 서로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답답함은 한식 세계화의 초석이나 밑거름이 아닌, 영원한 걸림돌이다. 전통은 지키되 장단점을 연구해 새로운 메뉴와 가치를 창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6 아직 갈고닦는 중이다. 굳이 말하자면 새우젓을 이용한 다양한 구이 요리와 탕.
7 전주에서 먹은 콩나물국밥 (즉석에서 다져 넣은 마늘, 대파, 청양고추로 인해 정말 신선하고 깔끔하게 느껴지던 그 시원한 맛).
8 파스타에는 2만~3만원을 선뜻 지불하는 사람이 한식 앞에선 지갑을 닫는 점이 답답하다. 한식도 재료와 만드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고급 요리가 될 수 있다. 소비자로서의 자격을 버리지 말고 의견(문제점) 및 보완점 등을 제시하며 긍정적인 한식 문화를 만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 광주요·화요(02-3442-2054)의 김병진 셰프가 만든 새우젓으로 맛을 낸 닭고기 바비큐. 최상급 육젓과 갖은 양념으로 재운 닭고기를 달군 팬에 구운 다음 ‘화요 41도’를 부어 잡 냄새를 날린 뒤 약한 불에서 찌듯이 익혀 완성했다.


(오른쪽) 콩나물 냉채


“서양식 터치로 외국인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민스키친 김민지 셰프
1 유학 시절 파리에서 쿠킹 클래스를 접한 뒤 요리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요리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악기를 들고 부모님 몰래(본래는 목관악기 바순 연주자로 유학간 상태였다) 요리 학교를 다녔을 정도니까. 돌아와서도 유명한 선생님에게 요리를 사사했고, 친구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다 결국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한식을 선택한 이유는 다들 너무 똑같은 음식만 만드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기본은 지키되 약간의 변화로 색다른 한식을 선보이고 싶었다.
3 일하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시장을 보는 것도, 직원과 미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어제 오신 손님이 맛있게 먹었다며 다음날 또 예약하는 경우다.
4 셰프라면 철저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정성스럽게 요리하는 자세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5 요즘 ‘한식의 세계화’라는 말을 많이 접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준비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한식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식의 세계화’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진정한 한식의 세계화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한식을 세련되게 포장해 외국인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6 된장찌개와 콩나물 냉채.
7 어머니가 해주신 고추장떡, 큰언니가 만들어준 잔치국수(맛도 좋지만 날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든 걸 알기에 먹는 내내 행복하다).
8 일식, 프렌치, 이탤리언보다 한식이 뒤처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식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은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한식이 매우 훌륭한 음식임을 인정해주기 바란다.

* 민스키친(02-544-1007)의 대표 요리는 음표 대신 콩나물을 선택한 김민지 셰프가 만든 콩나물 냉채다.
간장과 발사믹 비네거, 고추기름, 마늘을 넣어 만든 그만의 특제 소스에 버무려 먹는다.


(오른쪽) 갈비찜과 보쌈김치


“스토리텔링을 강조한 유서 깊은 음식이다” 운산 고재철 셰프
1
할머니가 김장을 담그실 때 항상 곁에서 도움을 드렸는데 그때부터 음식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3 나는 요리하는 일이 정말 좋다. 그 자체가 자부심과 행복이다.
4 자신의 일에 대한 즐거움(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맛있는 요리가 나온다), 팀워크, 배려심(누구나 초보인 시절이 있고, 사람의 능력은 모두 같지 않다. 새 식구가 들어왔을 때 그 친구의 눈높이에 맞춰 일을 가르쳐주고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5 일방적인 홍보와 전통의 맛만 고집할 게 아니라 세계인이 감동받을 만한 상차림, 포장법, 저장법 등을 연구하는 것이 우리 한식 셰프들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한다.
6 김치. 김치는 정말 매력적인 발효 식품이다.
7 늦은 봄, 다 시어 버린 김치와 돼지고기를 듬뿍 넣어 빚은 만두로 끓여주시던 할머니표 만둣국.
8 외국에 일주일만 다녀와도 한식부터 찾는 사람이 정작 평소에는 한식을 존중하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

* 가장 자신 있는 요리가 김치인 운산(02-780-6333) 고재철 셰프의 갈비찜과 보쌈김치. 조리장인 그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직접 담그는 보쌈김치 맛의 비결은 밤, 대추, 낙지 등 속 재료를 아낌없이 넣는데 있다고 귀뜸했다.


(오른쪽) 청국장 소스의 두부 스테이크


“외국인의 시각으로 개발한 건강식이다” 콩두 이환의 셰프
1 처음에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우연한 기회에 콩두로 직장을 옮겼고, 기존에 알고 있던 한식과는 전혀 다른 음식을 접하면서 한식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 이탤리언이나 프렌치처럼 그 나라를 기억하게 만드는 요리를 개발하고 싶은 욕심도 갖게 되었다.
2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때 내 직업을 후회했다. 드라마 <스타일>을 촬영한 레스토랑이 콩두다. 드라마 속 셰프는 무척 여유롭게 비춰졌지만(셰프가 잡지사 발행인을 겸하는 등) 실제 대부분의 셰프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주방에서 일한다. 주말은 물론 어버이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 가족 외식이 많은 날 더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과 아내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3 힘들게 준비한 음식을 맛본 고객이 좋은 평가를 해줬을 때 모든 어려움을 다 잊는다.
4 성실, 끈기, 노력.
5 한식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이름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좀 더 쉽게, 대중이 가깝게 느끼는 한식을 만들고 싶다. 전통 한식을 즐기지 않는 젊은이들과 외국인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는 것이 꿈이다.
6 청국장 소스의 두부 스테이크. 콩두에 와서 배운 요리로 재료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준
음식이다. 이전에는 두부를 그저 된장찌개에 넣거나 반찬으로나 먹는 조연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두부를 웰빙 음식으로 여기며 어엿한 주연 대접을 해준다.
7 어머니가 차려주신 평범한 밥상. 어머니의 음식은 무얼 먹어도 맛있다.
8 우리 식생활의 단점 중 하나가 음식을 음미하거나 즐거운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식을 먹으면서 오랜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콩두(02-722-7002)의 이환의 셰프가 만든 청국장 소스의 두부 스테이크. 청국장 소스에 살짝 지진 두부를 얹은 요리다. 청국장 고유의 냄새는 순화하고 고유의 맛과 부드러운 질감을 살리는 것이 포인트. 가니시로


(오른쪽) 오미자 파나코타와 깨강정 바닐라 아이스크림


“퓨전, 크로스오버로 만든 세련된 고급 요리다” 썬앳푸드 그룹 최현정 셰프
1 뉴욕의 요리 학교 CIA를 졸업하고 양식 셰프로 경력을 쌓은 뒤(당시 뉴욕에서는 아시아 요리가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각광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한식 전문가에게 요리를 배웠다. 자연스레 동서양의 조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한식에 대한 견해 차이를 좁히는 역할에 욕심이 났다.
2 고객이 처음 보는 재료에 대한 호기심보다 거북한 표정으로 음식을 대할 때, 가장 힘들고 안타깝다.
3 신규 브랜드 준비 중 콘셉트에 딱 맞는 메뉴를 개발했을 때.
4 요리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 습득이 가장 중요하다. 그 밖에 문화와 트렌드에 대한 관심, 외국어 능력을 갖춰야 한다.
5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한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외국의 음식을 그들만큼 알아야 하기 때문에 공부가 필요하다. 내 목표는 한식을 일식처럼 고급 요리로 인식시키는 것이다(일본의 스시는 미국에서 일정 수준의 지적과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다).
7 엄마가 만들어주신 카스텔라를 떠올리며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곤 한다.
8 외국 음식을 먹기 전에 그 나라의 음식 문화에 대해서 공부한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갤러리에 가기 전 작가나 그림에 대해 공부하면 작품 감상이 훨씬 즐거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 두 달 전 오픈한 썬앳푸드 그룹의 비스트로 서울(02-3466-8022)에서 선보일 디저트. 최현정 셰프의 야심작으로, 이탈리아 가정에서 즐겨먹는 생크림 푸딩 파나코타에 오미자 시럽과 시원한 배, 유자 청을 올렸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