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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칸 다실갖기] 오후의 홍차는 사교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베드퍼드 백작 부인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당시 영국인들은 점심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후에 차와 과자를 즐기며 친구들과 사교의 시간을 가진 것이 애프터눈 티의 유래라고 합니다. 인도에서 생산해 영국과 프랑스에서 상류층 문화로 꽃피운 홍차는 오늘날 지성인들이 사교의 시간에 마시는 차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문가 3인에게 홍차에 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습니다.
Q 홍차를 마실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이윤정 찻주전자와 찻잔, 스트레이너(거름망)만 있으면 홍차를 즐기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홍차를 즐기다 보면 도구나 그릇에 욕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도자기로 된 티포트, 잔, 스트레이너, 티메이저 tea measure(티캐디 스푼), 티코지(열기가 식지 않도록 티포트를 감싸는 패브릭 커버) 순으로 꼭 필요한 것부터 하나씩 구입하세요. 홍차용 잔은 커피 잔보다 입구가 넓은데 잔 안에 무늬가 너무 많은 홍차 잔은 수색 水色을 감상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티메이저는 일반적으로 한 스푼에 4g 정도의 찻잎을 덜어낼 수 있는 크기인데, 이는 350ml의 티포트에 한 번 우릴 정도의 양입니다. 스트레이너는 찻잎을 걸러내는 차 여과기인데, 망이 미세하고 촘촘할수록 수색이 좋으며 활용도도 높습니다. 인퓨저는 티백처럼 간편하게 티를 우려낼 수 있는 도구지만,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며 외부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면 홍차는 티포트에 넣고 우려서 스트레이너로 걸러 마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 외에 3분짜리 모래시계, 티백이나 레몬을 건져놓을 수 있는 작은 접시, 슈거볼 등이 있습니다. 티백 제품을 사용할 때는 납작한 직사각형보다 피라미드형 실크 티백이 공간이 넉넉해 점핑 현상(홍차를 우릴 때 중요한 포인트로, 끓인 물을 티포트에 부으면 찻잎이 상하로 움직이며 대류 운동을 하는 현상)이 활발하게 일어나므로 한층 잘 우러난 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왼쪽) 1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영국의 홍차 브랜드 위타드 Whittard 티 잔과 티포트, 로얄 코펜하겐 틴과 스트레이너 등은 모두 홍차 전문점 티캐디 소장품. 티캐디에서 애프터눈 티 플레이트를 주문하면 샌드위치, 스콘과 크림, 마들렌, 머랭, 쿠키, 프티 타르트 등 홍차와 함께 즐기기 좋은 음식이 담겨 나온다.

Q 집에 자그마한 티룸을 꾸미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은숙 홍차는 주방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니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방에 햇살이 들어오는 밝은 창가 쪽으로 테이블을 놓고 계절에 맞는 테이블클로스를 깔아보세요. 홍차 잔은 꽃, 나비 등 화려한 모양이 새겨진 것이 많으니, 테이블클로스는 깔끔한 흰색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화병에 잔잔한 꽃을 꽂아 테이블 위에 두면 더욱 좋겠지요.
임명희 테이블과 의자만 있다면 어디서든 홍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찻잔과 도구를 넣어둘 수 있는 작은 장식장을 하나 마련해 집 안 한쪽을 티룸처럼 꾸미면 더욱 좋겠지요.

Q 홍차와 음식, 어떻게 매치해 즐기는 것이 좋나요?
임명희
영국인은 하루 종일 모든 음식에 홍차를 곁들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토스트와 달걀, 베이컨 등의 아침 식사에는 홍차에 우유를 조금 섞어서 부드럽게 마시는데 아침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입니다. 오후에는 스콘이나 케이크, 가벼운 샌드위치를 애프터눈 티에 곁들이지요.
공은숙 홍차는 기름진 음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또 홍차는 치즈나 말린 과일 같은 안주와도 잘 어울립니다.

(오른쪽) 신촌에 있는 티캐디는 카페 경영 10년 경력의 티 마스터 이윤정 씨가 1호점 카페 드 클로리스, 2호점 티 가든에 이어 새로 오픈한 홍차 전문 카페다. 이곳에서는 티 마스터가 제대로 우려낸 홍차를 제공하며, 일반인에게 홍차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홍차 클래스를 진행한다. 아기자기한 스트레이너, 매혹적인 도자기는 물론 한쪽 벽면을 채운 수십 가지 종류의 틴(홍차를 보관하는 용기)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틴을 꺼내 직접 향을 맡아보고 마시고 싶은 차를 고를 수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오후 2시부터 11시까지 운영. 문의 02-312-7523

Q 나라별로 제조하는 홍차의 특징을 나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윤정 일반적으로 프랑스 브랜드는 가향차와 다원차, 중국차를 베이스로 한 동양적인 차를 많이 선보이고, 영국 브랜드는 전통적으로 즐겨왔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애프터눈 티, 얼리 모닝티와 밀크티로 즐길 수 있는 홍차를 선보입니다. 미국 브랜드는 허브를 넣은 건강한 홍차가, 일본 브랜드는 캐러멜, 메이플, 버찌 등 향을 가미한 달콤한 홍차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Q 계절이나 시간대별로 마시는 홍차가 다른가요? 때에 따라 홍차를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임명희 하이 티 high tea는 영국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오후 6시경 고기나 샌드위치에 곁들여 마시던 차로, 하이 애프터눈 티라고 불렀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애프터 디너 티라고 해 초콜릿이나 단 과자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별다른 음식 없이 가볍게 나이트 티만 마셨다고 하죠. 장마철에는 습도가 높아 홍차 맛이 쓰거나 진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찻잎의 양을 줄이고 물 온도를 낮춰 우리는 시간을 조금 길게 해 차를 준비합니다. 서늘한 가을이면 향이 가미된 진한 아쌈티가 어울리는데요, 로네펠트의 아이리시 몰트는 아쌈에 아이리시 위스키와 코코아가 절묘하게 블렌딩돼 서늘한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1 스트레이너 겸용 티캐디 스푼.
2 찻잎을 넣고 잔에 담가 우릴 때 이용하는 인퓨저.
3, 6 티캐디에서 차를 꺼낼 때 사용하는 티캐디 스푼.
4 주전자 주둥이에 끼워 사용하는 포트 스트레이너.
5 잔, 포트에 모두 넣고 사용할 수 있는 인퓨저.
7 2~3분 정도 홍차를 우릴 때 필요한 모래시계. 모두 홍차 전문점 티캐디 소장품.


Q 홍차에도 다도처럼 만드는 법칙이 있나요? 맛있는 홍차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윤정 먼저 물을 끓여 찻주전자에 넣고 일정 시간 예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티코지를 이용해 보온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어떤 물을 쓰느냐도 중요한데, 산소가 많이 함유된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돗물에 다량 함유된 산소는 찻잎의 점핑을 촉진해 차 맛을 더욱 좋게 해줍니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끄는데, 그 이상 두면 물의 산소 함량이 낮아지므로 좋지 않습니다.
산소를 많이 함유한 물일수록 점핑이 많이 일어나 차가 골고루 우러나게 됩니다. 예열된 주전자(350ml 기준)에 티메이저로 차를 한 스푼 넣고 끓인 물을 부어 뚜껑을 덮습니다.
임명희 차에 따라 우리는 시간을 조절하는 요령도 필요하지요.
차 맛이 강할 경우 2분 정도만 우리기도 해요. 티백일 경우는 1분에서 1분 30초, 작은 찻잎일 경우 3분, 큰 찻잎일 경우 4~5분간 우립니다. 또한 레몬을 넣어 마실 때는 좀 더 짧게, 밀크티의 경우 3분 이상 우려 맛을 조절합니다.
티백에 우릴 때도 잔 위에 잔 받침을 잠깐이라도 덮어놓아야 차가 잘 우러나 맛이 더 좋아집니다.

Q 홍차를 처음 마시면 떫은맛이 많이 느껴집니다. 맛있는 홍차란 어떤 건가요?
공은숙 떫은맛은 홍차에서 중요한 맛이에요. 하지만 적당히 우려서 떫은맛과 향, 여운이 잘 어우러져야 하지요. 홍차를 처음 드시는 분들이 많이 실수하는 것이 찻잎을 계속 담근 채 마시는 것입니다. 홍차는 적당한 시간 우려내고 완전히 걸러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찻잎에서 떫은맛 성분만 계속 나오기 때문이죠. 잘 우려낸 맛있는 홍차는 부드럽고 향긋합니다.

1 헝가리 도자기 헤렌드의 아포니 블루 시리즈 티 세트.
2, 3 일본 상고의 크리머와 티포트.
4, 5 러시아의 황실 도자기 로모노소프 티 잔.
6 영국 웨지우드의 블루 컬러에 도금한 잔.
7 헤렌드의 심벌인 나비와 꽃 시리즈 빅토리아 티 세트. 모두 홍차 전문점 티캐디 소장품.



1 영국 테일러스 오브 헤로게이트의 싱글 에스테이트 아쌈. 일반 아쌈보다 순한 맛으로 스트레이트는 물론, 진하게 우려서 밀크티로 즐겨도 좋다.
2 일본 마리나 드 부르봉의책 모양 티캐디가 인상적인 소토. 일본 시부야 거리를 형상화한 블렌딩티다.
3 일본 로레이즈 티의 순하고 감칠맛 나는 풍미의 애프터눈 티.
4 중국과 티베트의 차와 꽃을 형상화한 가향차로 프랑스 마리아주 프레르의 마르코 폴로.
5 미국 허니앤선스의 페퍼민트 허브. 삼각 피라미드 백 안에 들어 있는 페퍼민트 티는 홍차와 가장 잘 어울리는 허브티로 블렌드해서 마시기 좋다.
6 영국 웨지우드의 새콤달콤한 딸기 향 화인 스트로베리 홍차.
7 프랑스 마리아주 프레르의 2006년 에디션.
8 프랑스 다만 프레르의 다르질링 홍차. 질 좋은 화이트 와인의 감칠맛이 나는 고급 홍차로 ‘홍차의 샴페인’이라고도 부른다.
9 일본 로레이즈 티의 로즈 오브 매너는 영국의 정원을 형상화한 스트레이트 티다.
10 일본 베노아 티의 부드러운 다르질링을 베이스로 한 얼그레이.
11 프랑스 에디아르의 애플 티. 분쇄가 많이 돼 있어 빨리 우러난다. 틴은 모두 홍차 전문점 티캐디 소장품.


황여정, 이유진(프리랜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