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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사투리처럼 개성 넘치는 전통 비빔밥

비빔밥은 쌀을 주식으로 삼아온 우리 민족이 오랜 시간을 통해 연금해낸 밥 문화의 정점이다. 이 한 그릇의 밥 안에는 쌀을 재배하기 시작한 부족국가시대 이후로 한반도에 거주해온 한민족의 뜨거운 열망과 안타까운 원망이 교차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1980년대까지 쌀은 주식이면서도 언제나 모자랐다. 한강 이북 지방은 통일신라시대가 되어서야 벼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고, 식민지시대엔 비약적으로 생산량이 늘었지만 공출로 인해 대다수의 서민은 보릿고개에 신음했다. 공업화가 가속의 페달을 밟기 시작하던 1970년대까지 한반도의 모든 삶은 쌀로 통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마저 ‘혁명은 쌀’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밥에 고깃국’은 한마디로 유토피아의 지표였다. 농업정책이 실패한 북한은 여전히 식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지만 휴전선 이남 지역은 패스트푸드를 위시한 서양의 음식 문화가 급속히 상륙하면서 밥상에서 쌀의 지위가 급격히 쇠락한다. 근 2천 년 만에 처음으로 쌀을 여유롭게 움켜쥐는 듯했으나 그 순간부터 외면당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대한민국에서 연출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비빔밥’이라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새로운 신화 하나가 화려한 반전의 드라마를 펼치기 시작한다. 다른 문화권에는 지극히 배타적인 한국 음식의 한계를 단숨에 돌파한 비빔밥은 이웃 일본과 미국의 식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면서 세계적인 웰빙 푸드로 급부상했다. 이른바 음식 한류의 시발이다.
비빔밥은 수직과 수평의 입체적인 공간성과 계절의 시간성이 함축된 쌀밥 미각의 극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들녘의 민초부터 재상과 임금에 이르기까지 계급의 장벽을 초월하는 폭넓은 포용력을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해왔다.
물론 문헌을 통해 비빔밥의 유래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비빔밥이 처음으로 등장한 책은 19세기 초 정조 때의 유학자 정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이다.
“강남(양자강 이남을 말한다) 사람들은 야외로 놀러 갈 때 먹을 밥(遊飯)으로 도시락(盤)을 좋아했다. 도시락은 밥 밑에 생선식해, 육포나 생선 말린 것, 생선회나 육회, 구이를 담아 만든다. 이를 야외에 나가 놀면서 섞어 먹는 것을 즐겼다.”
<동국세시기>의 이와 같은 골동반 骨董飯을 19세기 말의 조선 음식 레시피를 모은 <시의전서>에서는 ‘부밥’으로 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밥은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전은 붙여 썬다. 각색 채소를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 부수어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계란을 부쳐 골패짝처럼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넣는다.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
<시의전서>의 묘사가 지금 우리가 접하는 비빔밥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면 <동국세시기>의 설명은 오히려 일본의 지라시 스시를 연상케 하는 굉장히 화려한 찬합 음식이다. 19세기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비빔밥이 존재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며, 그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광범하다.
일본의 스시가 에도 시대의 재난 구휼 음식에서 비롯되었듯이 비빔밥에도 고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들밥의 유전자가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다. 간편하고 집약적인 이동식으로서의 비빔밥에 식은 콩나물국이 동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들밥의 상 위에 앞에 언급한 양반들의 유반이 놓여 있다. 야외용 들밥과 더불어 비빔밥 유전자의 다른 축을 이루는 것은 음복례용 제사밥으로서의 성격이다. 제상에 올린 밥과 나물을 큰 그릇에 넣고 비벼 제상에 참여한 후손들이 나눠 먹으며 가족공동체의 일체감을 고양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정월의 상원에 먹는 오곡밥, 입춘에 먹는 오신채 비빔밥, 섣달 그믐날 저녁에 궁중의 남은 음식을 모두 비벼 먹는 풍습 모두 비빔밥이라는 거대한 문화를 일구는 요소가 되었다.
밥과 채소, 고기와 향신료가 빚어내는 다양한 색과 맛을 한데 어우른 비빔밥의 탕평의 미학은 하나하나의 각기 다른 개체가 한자리에 모여 이루는 벼농사 문화권의 작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한 그릇 속에 구현된 이 미각의 공화국을 세계 시민이 이제 주목하고 있다.

사투리처럼 개성 있는 토속 비빔밥
비행기 기내식으로 히트를 쳤고, 세계인의 웰빙 식단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한식의 대표 주자 비빔밥.
비빔밥에도 레시피가 있냐고? 물론이다. 한반도 이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도 고유한 지역색을 고스란히 반영한 개성 넘치는 비빔밥의 전통이 이어져오고 있다.


차진 육회와 개운한 선짓국이 일품 함평비빔밥 
지금은 나비축제로 더 잘 알려진 전남 함평. 예로부터 함평장은 소 시장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2일, 7일에는 5일장이 서는데, 함평 5일장터 안에는 질 좋은 육회를 얹은 비빔밥집이 여전히 인기다. 육회비빔밥의 맛을 결정짓는 첫 번째 요소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한우의 질. 깨끗하게 작업한 함평한우(암소만 고집한다)를 매일 아침 받아 와 사용한다는 목포식당의 육회비빔밥은 다른 지역 비빔밥에 비해 재료가 간단한 편인데, 그만큼 육회 맛에 자신 있다는 의미다. 고슬고슬하게 찐 밥(그래야 밥알이 뭉치지 않고 잘 비벼진단다)을 넓적한 대접에 퍼 담고 선짓국물에 살짝 담가 익힌 애호박 채와 콩나물, 김 가루, 허벅지살이나 엉덩이살을 채 썬 육회, 두툼하게 부친 지단, 다진 마늘, 송송 썬 쪽파,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매일 아침에 짠 것), 그리고 이 집만의 비법인 고추장 양념장(새우젓과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고추장과 섞어 숙성시킨 것)를 얹어 내준다. 솔(부추)이 많이 나올 때는 솔도 함께 넣는다. 함평육회비빔밥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하얀 돼지비계(시루에 쪄서 기름을 뺀 뒤 채 썬 것을 그릇에 따로 담아준다)를 몇 가닥 넣고 된장을 끓여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특제 고추장으로 슥슥 비벼야 한다. 그날 아침에 잡아 선홍색으로 숙성되기 전 짙은 자줏빛을 띠는 육회는 차지고 쫄깃하며, 함께 나오는 부드러운 선짓국은 냄새 하나 없이 깔끔하고 개운하다. 쇠머리와 뼈를 우려 육수만 말갛게 내뒀다가 그때그때 선지를 듬뿍 넣고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다. 금방 무친 배추겉절이, 3년 묵은 칼칼한 묵은지, 열무물김치가 곁들여 나온다.
* 육회와 육회비빔밥 전문점인 ‘목포식당’(061-322-2764)은 함평군청 문화관광과 최대현 계장이 추천한 맛집이다.


간장에 비벼 먹는 양반가의 한 상 안동헛제삿밥
선비의 고장인 경상북도 안동에서는 집집마다 4대 봉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제까지 합하면 한 해 스무 차례 이상 제사를 지낸다. 헛제삿밥은 제사를 올리고 난 후 음복 문화를 재현한 것으로, 제사를 올리지 않고도 먹는다 하여 ‘헛’자가 붙었다. 안동댐 월영교 앞에 있는 안동 민속 음식의 집(맛 50년 헛제삿밥)에서는 옆옆에 담은 고사리, 묵나물(취나물, 곤드레 등 뜯어두었다 이듬해에 먹는 산나물), 도라지, 무나물, 콩나물, 얼갈이배추나물과 흰밥, 탕국, 각종 산적을 유기에 담아 한 상에 낸다. 헛제삿밥은 나물과 밥을 조선간장에 비벼야 제맛이다. 나물은 실제 제상에 올리듯 마늘, 파, 고춧가루 등의 양념을 넣지 않고 참기름과 소금, 깨소금, 간장만으로 무친다. 탕국은 무, 다시마, 문어, 상어, 쇠고기로 육수를 낸 뒤 깍둑썰기한 무와 두부, 쇠고기 등 건지를 넣고 소금으로만 간해 깔끔하다. 굽접시에 한 개씩 담겨 나오는 각종 산적과 전유어는 안동 지방 제사 음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내륙 지방이라 해물을 구하기 어려우므로 잘 상하지 않는 상어, 고등어, 동태 등을 소금으로 간해 찌거나 적을 만든다. 배추전, 애호박전, 다시마전, 두부부침, 고등어찜, 오징어(혹은 문어) 데침, 상어돔배기, 쇠고기적, 삶은 달걀 등을 하나하나 음미해보는 재미가 있다. 헛제삿밥을 먹고 나면 불그레한 안동 식혜로 마무리해야 한다. 끓이지 않고 발효시킨 안동 식혜는 고두밥에 독특한 생강 맛, 고춧가루의 매운맛, 엿기름의 단맛, 무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진 안동의 별미. 배불리 헛제삿밥을 먹고 난 후 식혜로 소화를 도운 조상들의 지혜 아니었을까.
* 50년 전통의 헛제삿밥 전문점인 ‘안동 민속 음식의 집’(054-821-2944)은 안동시청 문화관광과에서 추천한 두 곳의 음식점 중 <행복>이 엄선한 곳이다.


사골 국물로 밥을 지은 국가 대표 비빔밥 전주비빔밥
(왼쪽)
비빔밥 하면 대부분 전주비빔밥을 떠올린다. 전주비빔밥의 시초는 물 대신 쇠머리 육수로 밥을 짓고, 뜸 들일 때 콩나물을 얹어 밥 김으로 살짝 데친 다음 계절 나물과 육회를 얹어 비벼 먹던 것이었다. 이후 영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진화하고, 놋그릇에 신선로처럼 오방색을 갖춰 정갈하게 담은 것이 현재의 전주비빔밥이다. 전주 음식 무형문화재 39호로 지정된 김년임 선생이 운영하는 ‘가족회관’의 비빔밥은 사골 국물로 지은 밥 위에 전주팔미 全州八味의 하나인 서목태(쥐눈이콩)를 자만동 시암물로 기른 콩나물, 전주 녹두를 갈아 노란 치자물로 쑨 황포묵, 표고, 도라지, 호박, 오이, 참나물, 고사리, 팽이버섯, 무생채, 당근, 무순, 김, 잣, 밤, 은행, 호두, 대추, 지단 등 20여 가지 재료가 올라간다. 그는 “사골 국물로 밥을 하면 쌀알이 지방으로 코팅돼 윤기가 나고 쫀득쪽든하게 씹히며 밥이 잘 비벼집니다. 채소와 영양의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도 숨어 있지요” 하고 말한다. 또한 날것, 볶은 것, 데친 것, 더운 것, 찬 것 등 많은 재료가 합쳐지면서 혹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은 황포묵이 해준다. 녹두와 치자의 살균・해독 작용 때문이다. 마지막에 육회를 살짝 익혀 고추장에 무친 것을 얹고, 달걀노른자를 올려 찹쌀고추장으로 비비면, 대한민국 대표 비빔밥이 완성된다. 여기에는 반드시 맑은 콩나물국을 곁들여 먹는다.
* 30년 동안 오로지 전주비빔밥만을 연구하고 내놓는 ‘가족회관’(063-284-0982)은 전주대 문화관광대학 교수이자 전주대 박물관장인 한복진 교수가 추천했다.

돼지기름으로 볶은 밥에 닭고기 고명 해주비빔밥
(오르쪽) 북한의 비빔밥으로는 평양비빔밥과 해주비빔밥이 유명하다. 황해도 해주의 비빔밥은 맨밥 대신 돼지기름에 밥을 볶고 소금으로 간한 것을 사용한다. 비빔밥 재료로는 콩나물, 애호박, 쇠고기, 미나리, 표고버섯, 지단 외에 닭고기가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예전에는 잘게 썬 짠지(황해도에서는 김치를 짠지라고 한다)와 함께 밥을 볶아 ‘짠지비빔밥’이라고도 했다. 팬에 기름이 많이 붙은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달달 볶다가 기름이 나오면 고슬고슬하게 지어둔 밥을 넣고 볶는다. 나물도 각각 들기름에 소금으로 간해서 볶는다. 콩나물은 머리를 떼고 들기름에 살짝 볶다가 육수를 약간 넣고 뚜껑을 덮어 익힌다. 애호박은 5cm 길이로 토막 내 파란 껍질부분만 돌려깎기한 뒤 채 썰어 볶는다. 미나리, 표고버섯, 당근 그리고 꾸미로 얹는 붉은 고추 채도 각각 들기름에 볶고 소금으로 간한다. 채 썬 쇠고기는 간장으로 간해 볶는다. 닭고기는 미리 삶아 살만 발라내 소금 간하고, 뼈는 다시 푹 고아 기름기를 걷어낸 뒤 곁들임 국물로 쓴다. 기름에 볶은 밥을 대접에 담고 갖가지 나물과 닭고기를 돌려 담은 뒤 모지단과 붉은 고추 채로 장식한다. 비빌 때 모자라다 싶은 간은 참기름과 통깨를 섞은 조선간장을 조금 넣어 맞추면 된다. 비빔밥이라기보다는 볶음밥에 가깝지 않을까 싶지만, 간장에 비빈 깔끔하고 고소한 맛이 매력적이다.


19세기 비빔밥의 지존 평양비빔밥
(왼쪽)
평양비빔밥은 볶은 쇠고기와 각종 채소를 밥에 얹어 고추장에 비벼 먹는 것으로, 전주비빔밥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데 19세기 중반 이규경이 편찬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 “평양비빔밥이 가장 맛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비록 전주비빔밥처럼 상품화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당시에는 평양비빔밥이 상당히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비빔밥에는 쇠고기볶음과 호박, 숙주나물은 기본이고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송이버섯 등 버섯류가 특히 많이 들어가며, 약고추장에 비벼 먹는다. 쇠고기는 힘줄을 뺀 살코기를 절반은 가늘게 채 썰고 절반은 다져서 갖은 양념을 해 따로 볶는다. 북한은 쇠고기가 흔하지 않아 돼지고기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살코기만 이용해 같은 방법으로 볶는다. 송이버섯과 느타리버섯은 가늘게 찢어서, 표고버섯은 가늘게 채 썰어 볶는다. 숙주나물과 미나리는 살짝 데쳐서 갖은 양념을 넣어 무치고, 고사리와 도라지는 삶아서 쌀뜨물에서 담가 쓴맛을 우려내 각각 팬에 볶고 간한 뒤 육수를 넣어 익힌다. 달걀은 황백 지단을 부쳐 채 썰고, 달큼한 배도 채 썬다. 큰 대접에 밥을 담고 그 위에 쇠고기와 나물을 색 맞추어 담고, 가운데에 다진 쇠고기볶음을 놓고 그 위에 김 가루를 뿌리거나 다시마튀각을 얹는다. 평양비빔밥에는 고추장을 심심하게 푼 쇠고기 양지 육수에 마름모꼴 지단을 띄워 곁들인다.
* 해주비빔밥과 평양비빔밥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02-733-9905) 이애란 원장이 만들었다. 그는 새터민 출신 여성 박사 1호로 이화여대에서 식품영양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진주 기생처럼 아리따운 화반 진주비빔밥
(오르쪽)
경상남도 진주의 비빔밥은 부드러운 여덟 가지 나물과 육회를 얹어 비비고, 선지를 넣은 쇠고깃국을 곁들여 먹는다. 여러 가지 계절 채소를 숙채 熟菜로 마련해 씹을 때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진주비빔밥은 1592년 임진왜란 진주성 싸움에서 의병과 군, 관, 민 그리고 돌멩이를 나르던 부녀자들의 식사 제공을 위해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여러 가지 나물을 담은 모습이 꽃처럼 아름답다 하여 ‘화반 花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주 대안동에서 70년째 3대를 이어 진주비빔밥을 만들어오고 있는 ‘천황식당’에서는 어린 배추나물, 콩나물, 숙주나물, 양배추나물, 무나물, 고사리 그리고 애호박(여름), 미나리(봄가을), ‘속대기’라 부르는 김자반(김에 조선 파를 쫑쫑 썰어 넣고 조물조물 무친 것)을 얹어 낸다. 진주가 소싸움의 근원지여서 소 엉덩이의 기름기 없는 부위로 만든 신선한 육회도 빠지지 않는다. 밥은 진주 인근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품질 좋은 메뚜기 쌀로 짓는다. 진주비빔밥만의 색다른 맛의 비결은 ‘포탕’에 있다. 쇠고기와 마른 홍합, 말린 문어를 푹 삶아 육수를 우린 뒤 문어는 건져내고 홍합과 쇠고기는 잘게 다져 다시 육수에 넣고 자박자박하게 끓인 것인데, 비빔밥 위에 이 포탕을 한 숟가락 얹어 비벼 먹어야 제대로다.
* 진주비빔밥 전문점 ‘천황식당’(055-741-2646)은 진주 토박이이자 사단법인 진주문화사랑모임의 리영달 이사장이 추천했다.


해풍 맞고 자란 방풍과 짭조름한 해산물의 조화 통영비빔밥
얼마 전 공개된 이순신 장군이 즐겼던 밥상 메뉴에 통영비빔밥이 끼여 있었다. 남해 청정 해역에서 건져 올린 각종 해산물은 통영비빔밥의 더할 수 없이 좋은 재료가 된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계절 따라 종류가 달라지는데, 가장 통영다운 색다른 비빔밥을 맛보려면 겨울이라야 한다. 겨울철 양지바른 곳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방풍 잎, 생미역, 톳나물, 국파래 등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신 여름에는 박나물, 가지나물, 호박 등을 주로 쓴다. 통영 전통 비빔밥의 맛을 지켜오고 있는 60년 전통의 ‘산양식당’에서는 모든 나물을 조개장으로 꼬작꼬작 무친다. 조개장은 개조개, 홍합, 바지락 등의 조갯살을 발라 깨끗이 씻은 뒤 잘게 다져 집에서 담은 콩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바특하게 끓인 것. 콩나물, 미나리, 무나물, 고사리, 호박, 가지는 물론 모든 해조류도 조개장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볶거나 무친다. 여기에는 반드시 두부 탕수국을 곁들인다. 쌀뜨물을 탑탑하게 받아 조개장으로 간을 맞춘 후 참기름, 다진 쇠고기, 홍밥, 문어, 바지락을 삶아 잘게 썰어 넣고 끓인 두부 탕수국을 비빔밥에 한두 숟가락 얹어 질척하게 비벼 먹는다. 또 말린 생선(삼뱅이, 가자미, 도미, 대구, 볼락 등)을 매콤하게 쪄서 함께 먹는데, 그 어우러짐 또한 일품이다. 산양식당에서는 부추, 방아 잎, 고추를 썰어 넣고 향긋하게 부친 부침개도 비빔밥에 같이 낸다.
* 통영비빔밥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산양식당’(055-645-2152)은 통영문인협회 강수성 회장이 추천한 맛집이다.


1 월영교 앞에 있는 안동 민속 음식의 집.
2 통영 중앙동에 있는 60년 전통의 통영비빔밥・소머리 곰탕 전문점.


못다 한 비빔밥 이야기
비빔밥이라는 주제로 전국 투어를 계획하게 된 건, 올 초 요리 촬영 때문에 만난 통영 출신 윤옥희 씨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재료 중 통영의 방풍나물이 있는데, 그의 말이 “통영비빔밥에는 방풍나물이 들어가야 진짜”라는 겁니다. 그리고 통영의 비빔밥에는 조갯살을 넣은 두부 탕수국을 곁들이고, 통영 사람들은 비빌 때 그 국물을 넣어 질척하게 먹는다는 얘기였지요. 이후 조사를 해보니, 비빔밥에도 지역마다 재료가 다르고, 곁들임 국물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각 지역의 토박이들에게 전통 비빔밥 집을 추천받고, 서울을 출발해 안동, 통영, 진주를 거쳐 함평과 전주까지 달렸습니다. 황해도 해주와 평양의 비빔밥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각 지방에서 맛본 비빔밥은 재료부터 양념까지 색달랐고, 다들 자기 고장의 비빔밥이 최고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자부심 역시 대단했고요. 여러분께도 한번 맛보시라고 강력 추천합니다. 이번 달 <행복>처럼 비빔밥을 여행 테마로 잡아도 좋겠네요. 참, 비빔밥이 건강식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틀 동안 일곱 그릇의 비빔밥을 내리 먹었는데 질리지도 않고 소화가 아주 잘돼 속이 편안~했습니다.

안동 민속 음식의 집 ‘맛 50년 헛제삿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이 집은 안동댐 월영교 앞에 있다. 일본 관광객들이 와서 간장만 남겨놓고 싹 비우고 가는 집이다. 헛제삿밥을 처음 상품으로 선보인 조계행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전수했고, 지금은 그 며느리에게 전수받은 전명자 씨가 운영한다. 김선일 선생의 봉화 유기에 정갈하게 담겨 나와 조선시대 양반의 품위가 그대로 느껴진다. 나물비빔밥에 상어돔배기와 쇠고기 꼬치, 각종 전유어와 두부 부침, 고등어찜과 오징어 데침, 김치와 물김치가 함께 나오는 ‘헛제삿밥’ 7천 원. 헛제삿밥에 조기구이, 쇠고기 산적, 도토리묵, 약식이 추가되는 ‘선비상’ 1만 1천 원. 주소 안동시 상아동 513-2 문의 054-821-2944

통영 산양식당 아쉽게도 이 계절은 통영비빔밥이 가장 소박한 때였다. 방풍나물, 물미역, 톳나물, 국파래 등 통영의 향기가 가득한 비빔밥은 겨울에나 맛볼 수 있다니, 다시 찾아가야 할 것 같다. ‘60년 전통의 음식명가’라고 명함에 적혀 있는 산양식당은 통영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집. 시고모와 시어머니를 이어 지금은 며느리인 허순채 씨가 운영한다. 쇠머리 곰탕으로도 유명한데, 비빔밥을 주문하면 진한 곰탕 한 사발과 매콤하게 조린 말린 생선, 방아 향이 나는 부침개를 함께 내준다. 쫀득쫀득한 가자미 맛도 일품일뿐더러 비빔밥도 먹고 곰국도 먹는, 일석이조의 푸짐한 밥상이다. 6천 원(요즘 파스타 한 접시 값과 비교하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든다). 주소 통영시 중앙동 131-1 문의 055-645-2152


3, 4 잘 보존된 목조 가옥에서 진주육회비빔밥을 내는 천황식당과 김정희 대표.

진주 천황식당 3대째 80여 년을 이어오는 비빔밥 집으로, 맛도 맛이지만 일단 집 구경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식당. 현재 식당이 한국전쟁 이후 원조받은 나무로 지은 1백여 평의 일본식 가옥과 비품들을 처음 모습 그대로 보존했는데, 손자며느리인 김정희 사장이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널따란 장독대에는 손수 담근 간장, 된장, 고추장이 담겨 있다. 콩나물을 넣은 쇠고기 선짓국과 곁들여 나오는 육회비빔밥 6천 원. 석쇠에 바로 구워주는 불고기 1만 5천 원. 육회 2만 원. 주소 진주시 대안동 4-1 문의 055-741-2646


5 함평천지한우로 만든 육회비빔밥 전문 목포식당.

함평 목포식당 목포식당의 주인 송기현 씨는 육회의 품질에 목숨 건다. 매일 아침 작업한 함평천지한우 암소를 25~30근씩 받아 사용하고, 남은 고기는 저녁에 반품한다. 일반적으로 익혀 먹는 쇠고기는 24시간 이상 숙성시켜 먹어야 하는 반면, 육회는 갓 잡은 신선한 것이라야 차지고 풍미가 좋다고 한다. 육회 담은 접시를 거꾸로 해도 떨어지지 않고 접시에 붙어 있을 정도로 차지고 부드럽다. 육회비빔밥을 주문하면 신선한 생고기를 바로바로 썰어 밥 위에 얹어주고, 참기름도 아침마다 새로 짠 것만 쓴다. 3년 묵은 묵은지와 함께 먹는 육회비빔밥은 정말 환상이다. 육회만큼 특별한 것이 선짓국인데, 특유의 냄새가 전혀 없고 개운하다. 육회비빔밥 6천 원. 특육비빔밥 1만 원. 생고기 육회(400g) 3만 원. 주소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980-7(5일장 내) 문의 061-322-2764


6, 7 전주 가족회관에서 비빔밥 정식을 주문하면 김년임 대표가 만든 반찬이 한 상 딸려 나온다.

전주 가족회관 전주음식명인 1호이자 전주음식 무형문화재 39호인 김년임 대표는 전주비빔밥의 산증인이자 전주음식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1만 원짜리 전주비빔밥 정식을 주문하면 안성 유기(겨울에는 장수 곱돌)에 정갈하게 담은 비빔밥과 함께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한 상 가득 반찬이 차려진다. 무슨 반찬이 이렇게 많냐고 물으니, “전주를 찾는 이들은 비빔밥과 푸짐한 한 상이라는 두 가지 기대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상차림”이란다. 아롱사태 김장아찌, 더덕장아찌, 매실장아찌, 콩나물 잡채, 감자조림, 멸치 강정, 깻잎 보푸라기, 황포묵, 달걀찜, 도라지 정과 등 맛깔스러운 반찬에 마음의 배까지 불러온다. 재료 값 안 아끼고, 장을 담거나 참기름 짜는 것도 직접 한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밥상인가? 주소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3가 80번지 문의 063-284-0982


8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의 이애란 원장.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이곳의 이애란 원장은 신의주대학 식품발효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친정 식구와 돌도 안 된 아들을 업고 탈북, 13년째 서울에서 산다. 새터민 출신 여성 최초의 박사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해주비빔밥과 평양비빔밥을 촬영하기로 한 날, 그는 손 많이 간다는 함경도식 명태순대까지 준비해 색다른 북한 음식을 맛보였다. 북한에서는 설날 떡국을, 생일날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날 알았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도 참 많이 다른 것 같다.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에서는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좋은 요리와 식생활 강좌를 진행한다. 문의 02-733-9905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